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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35 vote 0 2020.04.11 (21:18:50)

      
    만물의 척도는 무엇인가?


    모든 논리와 주장과 판단의 궁극적인 근거가 되는 절대적인 기준은? 모든 사상과 이념에 공유되는 대전제는? 만물의 척도는? 없다. 척도가 없다. 기준이 없다. 근거가 없다. 전제가 없다.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언어가 불성립이다. 프로토콜이 맞지 않는다. 대화를 해보지도 못하고 소통은 실패다.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다.


    굳이 말하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개념과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그런 질문에 대한 응답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나 플라톤이나 자기주장에 확신을 가졌을 리 없다. 일단 그게 필요하므로 한 번 던져보는 것이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면 맞다고 치는 거다. 신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그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화를 해야 하니까. 신이 없다면 도덕도 없고 윤리도 없고 이성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이성이 무신론자의 근거가 되는데 이성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이며, 합리적인 것은 효율적인 것이고, 효율적인 것은 이기는 것이며, 어떤 주장의 궁극적인 근거는 결국 내가 이긴다는 것뿐이다. 지면? 조용히 찌그러지면 된다. 


    사자와 사슴이 싸우면 사자가 이긴다. 사자가 룰을 정한다. 왜 서양이 옳은가? 서양이 이겼으니까. 이런 식이다. 그렇다. 신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논리는 힘의 논리, 승리의 논리, 게임의 논리다. 제왕은 무치라 했다. 누가 감히 왕에게 도덕적 훈계를 늘어놓겠는가? 도덕이 죽고, 논리가 죽고, 이성이 죽는 한계점이다. 


    그러므로 뭔가 있어야 일단 말을 붙일 자격이 생긴다. 일단 그것이 있다 치고 논리를 전개해 본다. 신이 있다고 치고, 이데아가 있다고 치고, 원자가 있다고 치고. 어라? 제법 말 되네. 주어가 없지만 대충 가주어를 썼더니 문장이 되네. 그렇다면 일단 씨부려 보는 것이다. 반박하는 자가 없으면 그냥 밀어붙여 보는 거다. 


    이것이 인류문명의 현주소다. 원자설의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개념은 인간의 희망사항에 불과하고 원자보다 작은 세계로 들어선 양자역학은 미궁에 빠져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나왔다. 구조가 만물의 척도다. 구조가 모든 논리의 대전제다. 모든 의사소통의 기본 프로토콜이다. 


    척도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척도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모든 논리와 주장과 판단은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그냥 내가 봤다. 내가 가서 딱 봤는데 내 눈에 그렇게 보이더라구. 하는 식의 자기소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유아틱한 것이다. 문제는 관측자가 움직인다는 점이다. 관측자를 신뢰할 수가 없다.


    고정된 것은 수학으로 계량하면 된다. 움직이는게 문제다. 수학계는 조용히 잘 돌아가는데 정치판은 유독 말이 많은 이유는 정치의 세계가 늘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이니까. 간단하다. 움직이는 것은 나란히 쫓아가면 된다. 관측자인 인간이 움직이므로 일단 논리에서 배제해야 한다. 인간은 변덕이 심해 안 된다.


    관측대상 자체의 내재한 질서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원자개념 곧 쪼갤 수 없다는 개념이 나온 것이다. 쪼갠다는 말은 인간의 개입에 따른 왜곡을 의미한다. 쪼개지 못한다. 인간이 개입하지 못한다. 관측자가 왜곡하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은 쪼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란히 쫒아갈 수 있다. 이는 역설적이다. 


    쪼갤 수 없어야 하는데 쪼갤 수 있어야 한다는 모순이다. 쪼개지면 인간의 손을 타서 왜곡되므로 곤란하고 쪼개지 못하면 나란히 쫓아가지 못하므로 근거를 댈 수 없다. 전제를 세울 수 없어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된다. 모든 논리와 판단과 주장의 대전제는? 근거는? 기준은? 척도는? 그것은 변화와 나란히 가는 것이다. 


    인간은 당연히 배제된다. 관측자를 배제하고 관측대상 내부에서 변화와 나란히 가는 것이 척도가 된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는 대칭이며 대칭은 축에 붙잡혀 있고 대칭된 둘이 축 하나를 공유할 때 둘은 나란해진다. 정리하자. 만물의 척도가 되는 궁극적인 근거는? 원자도 아니고 이데아도 아니고 인간은 당연히 아니다. 


    원자는 관측의 상대성을 배제하려면 인간의 손을 타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데아는 원자처럼 딱딱한 것은 내재적인 질서를 가질 수 없다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손을 타지 말아야 하지만 동시에 내재적인 질서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구조다. 둘이 한배를 타면 둘은 나란해진다. 척도가 탄생한다.


    한 사람이 100킬로의 몸무게이고 다른 사람이 70킬로의 몸무게라 해도 배를 타는 순간 50 대 50이 된다. 100킬로와 70킬로가 육지에서 대결하면 당연히 100킬로가 이긴다. 70킬로는 100킬로를 밀어서 넘어뜨릴 수 없다. 그러나 100킬로는 70킬로를 얼마든지 밀어서 쓰러트릴 수 있다. 에너지는 일방적이며 비대칭이다.


    그런데 배를 타는 순간 같아져 버린다. 왜? 배의 무게중심이 100킬로 사람 쪽으로 이동하여 있기 때문이다. 핸디캡을 앉게 되는 것이다. 구조의 세계는 평등하고 나란하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의사결정지점은 다섯이다. 하나를 추가하면 반드시 하나가 나간다. 그러므로 왕이든 노예든 다섯 번은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


    화장실에서 똥을 눌 때는 멈추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멈추어야 한다. 달리면서 먹으면 배탈이 난다. 섹스를 하려면 멈추어야 한다. 키스를 하려면 멈추어야 한다. 나란해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지점에는 반드시 멈추어 둘이 나란해야 한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다섯 번 멈추어야 하는 절대원리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물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탄창에 총알을 넣으려면 멈추어야 한다. 활에 화살을 매기려면 멈추어야 한다. 게임을 시작하려면 선수들은 출발선에서 멈추어야 한다. 자동차를 타려면 멈춰 세워야 한다. 나란해야 결합과 분리가 일어날 수 있다. 비행기가 공중급유를 해도 나란히 가야 한다. 이것이 대전제가 된다. 


    존재는 다섯 차원을 가지며 한 가지 사건 안에서 다섯 번 멈춘다. 그리고 결합과 분리를 일으킨다. 의사결정한다. 멈추지 않으면 결정할 수 없다. 밀도, 입체, 각, 선, 점의 차원은 하나의 사건 안에서 일어나는 다섯 차례의 멈춤, 다섯 차례의 나람함을 의미한다. 혹은 일치를 의미한다. 다섯 번의 일치가 하나의 사건이다.


    주사위를 던지려면 주사위를 잡으면서 일단 멈추어야 한다. 손과 주사위가 일치해야 한다. 주사위가 손에서 떠나며 멈춘다. 일치한다. 포물선의 꼭지점에서 순간 멈춘다. 굴러가다가 어디선가 멈춘다. 눈금을 확인하려면 눈동자가 멈추어야 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다섯 차례의 멈춤으로 존재 그 자체를 성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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