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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650 vote 0 2020.01.24 (23:12:30)

    우주의 절대원리


    엔트로피야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불문하고 모든 추론의 나침반이 되는 우주의 절대원리다. 그런데 다들 엔트로피를 모른다. 열역학은 어쩌다 보니 그렇더라는 식이다. 열역학의 특수성에서 자연과학의 보편성으로 갈아타지 못하고 있다. 단지 암시할 뿐이다. 누구든 엔트로피야말로 우주의 보편원리가 아닐까 하고 짐작하게 된다. 


    직관적 판단이다. 두 개가 있으면 그냥 둘이 있는 거지만 세 개가 있으면 줄이다. 이건 다른 거다. 갑자기 차원의 도약이 일어난다. 점 두 개가 연결되어 영토를 이루니 읍락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도약한다. 머리와 꼬리가 연결되어 몸통을 이룬다. 두 사람이 있으면 그냥 있는 거지만 셋이 있으면 집단이 형성된다. 세력이 뻗어나간다. 


    부족민은 숫자가 둘밖에 없다. 하나, 둘 다음은 많다고 한다. 많으면 셈하지 않고 쌓는다. 숫자를 세어 교환하는게 아니라 높이를 맞춰 교환한다. 뜬금없다는 말이 있다. 셈을 할 때는 물건을 쌓아놓고 막대를 세운 다음 금을 띄워 표시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금을 띄우지 않고 즉 시세를 확인하지 않고 함부로 들이댄다는 말이다. 


    우리말에 남은 부족민 시대의 흔적이다. 쌓기법은 대칭으로 셈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이누이트가 청혼한다고 치자. 신랑이 될 사람은 신부의 이글루 앞에 선물을 쌓는다. 만약 경쟁자가 더 높이 쌓으면 헛물을 켠 셈이 된다. 혹은 신부 아버지가 금을 띄운 막대를 세워놓고 이 높이까지 쌓으라고 요구한다. 마을사람이 심판을 본다.


    여기서 셈은 항상 상대적이다. 한 방향으로 가서 줄이 되지 않고 언제나 대칭된다. 상대성에서 절대성으로 도약하지 못한다. MBC TV에 나온 어떤 아마존 부족은 매를 한 다발 가지고 와서 하나씩 버리면서 매질을 한다. 매가 스무 개라면 매를 스무 대 맞은 것이다. 부족민 전원이 매를 스무 대씩 맞기로 결의하고 매질을 하는 것이다.  


    쌓기법의 응용형인 버리기법이라 하겠다. 이 기술로 모든 부족민이 공평하게 스무 대의 매질을 당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매질하고 버린 매와 처음 갖고 온 매 한 다발의 숫자는 같다. 대칭되는 것이다. 여전히 이런 대칭 세계에 살고 있다. 문제는 사고방식이 이쪽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매사에 대칭적으로 사고하면 진보는 없다.


    매 하나로 스무 대를 때리면 되는데 매를 한 다발이나 갖고 오다니 말이다. 어떤 부족민이 3을 발견하면 도약이 일어난다. 거기서부터 멈추지 않고 10진법까지 간다. 백, 천, 만, 억, 조로 계속 간다. 우리 부족은 숫자가 7까지 있다거나 우리 부족은 8까지 똑똑해졌다거나 이런건 없다. 어쭈 그 정도야? 우리 부족은 13까지 셈한다구. 


    이런 거 없다. 3은 줄이고 줄이면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 2는 마주보기 때문에 대칭이지 줄이 아니다. 2는 마주 보므로 교착된다. 그리고 막힌다. 어쩌면 인류문명 전체가 부족민의 대칭에 막혀 있는 것은 아닐까? 비대칭으로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과연 인류의 과학은 3으로 나아가서 줄을 이루었을까? 생각할 일이다. 


    모든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가 있듯이 근본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나무의 기둥처럼 모이는 중심이 있다. 우주의 제 1 지식이 인과율이라면 그다음 제 2 지식은 인과의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엔트로피다. 2에서 3으로 뻗어간다. 그런데 질량보존의 법칙은 부족민의 쌓기법과 같다. 질량보존은 대칭 2로 교착된다. 


    질과 량의 대칭, 원인과 결과의 대칭, 입력과 출력의 대칭에서 2로 막혔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의사결정이 있다. 3을 발견해야 한다. 부족민은 절대로 못 하는 그것 말이다. 당신은 3을 발견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공간은 좌우대칭에 막히고 시간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얻는다. 대칭의 사물에서 비대칭의 사건으로 도약한다. 


    3은 원래 왕과 지주와 경작자가 1/3씩 몫을 나눠가지는 데서 유래했다. 셈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시간의 순서가 있다. 왕이 전쟁으로 토지를 얻어서 1/3을 먹고 지주에게 넘긴다. 지주는 다시 1/3을 먹고 경작자에게 넘긴다. 지주는 그사이에 집을 짓거나 다른 일을 한다. 이 방법으로 왕과 지주는 역할을 나누어 공존할 수 있다. 


    부족민은 절대로 못하는 일이다. 쌓기법을 쓰면 역할을 나누지 못한다. 전쟁도 같이하고 건축도 같이하고 경작도 같이해야 한다. 상대를 감시하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인류문명은 여전히 부족민의 교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처에서 마주 보고 투쟁할 뿐 3으로 줄을 이루어 행진하지는 못한다.


    존재는 공간의 사물이 아니라 시공간의 사건이다. 모든 사건은 에너지를 운용한다. 모든 에너지의 작용은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한다. 그것은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어떤 둘이 나란하지 않으면 계를 이루지 않으므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질서다. 플라즈마와 같다. 둘이 나란하면 계를 이루고 비로소 사건이 일어난다.


    계에 외력이 작용하면 나란함이 깨진다. 깨지면 끝이고 어떤 이유로 나란함이 복원되면 그것이 에너지의 작용이다. 모든 에너지의 작용은 계의 밸런스 복원이라는 한 가지 형태로 일어난다. 그러나 복원되지 않는다. 그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왜? 복원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건에는 반드시 비용조달의 방향성이 있다. 


    질량보존에 따라 사건은 질과 량 사이에서 복원의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복원되지 않으므로 편법을 쓴다. 구조를 파괴하여 효율을 달성한다. 최종적으로는 사이즈가 조금 작아진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다. 무질서도 증가다. 열이 식으면 부피가 조금 작아진다. 100의 에너지다. 사건이 일어나면 액션의 크기만큼 손실이 있다.


    밸런스를 복원하려면 내부구조를 보다 효율화해야 한다. 내부의 배치를 보다 쥐어짜서 밸런스를 복원하지만 실제로는 구조가 조금 깨져 있다. 구조손실이 일어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구조가 보다 단순해진다. 5층의 건물이 있다. 외부에서 물리력이 가해지면 깨진다. 그 과정에서 밸런스를 복원하면 4층으로 균형을 맞춘다.


    4.5층은 없다. 다시 변화가 일어나면 3층으로 밸런스를 맞춘다. 층수가 올라갈 수는 없다. 애초에 5층이었는데 6층이 될 수는 없다. 질량보존의 법칙 때문이다. 에너지는 보존되므로 증가할 수 없다. 밸런스가 잡혀 있는 5층에서 외력에 의해 밸런스가 무너졌을 때 4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밸런스를 회복하는 방법은 당연히 없는 것이다.


    밸런스는 복원되지만 복원에 비용이 소비되어 그만큼 층수가 내려간다. 그것이 무질서도 증가다. 전함이 어뢰를 맞아 한쪽으로 기울면 반대편 격실에 구멍을 뚫어 물을 채운다. 양쪽 다 공평하게 구멍이 나야 배가 쓰러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을 반복하면 배는 점차 가라앉는다. 오른쪽을 맞으면 왼편에도 구멍을 낸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배가 가라앉기 전까지 5회에 걸쳐 고의적으로 격실에 구멍을 내며 침몰을 면하고 버티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사건은 밸런스의 복원이라는 하나의 방법으로 에너지를 운용한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마찬가지다. 우주의 근본은 나란함이며 나란히 계를 이루고 계의 대칭을 비대칭적으로 운용한다.


    하나는 외롭고 둘은 대칭이며 3은 비대칭이다. 3이면 줄이고 줄이면 계속 간다. 2는 공간에서 교착되고 3은 시간에서 타개한다. 바야흐로 인류문명은 2에서 3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99퍼센트+1퍼센트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같은 대칭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부분 2에 갇혔다. 마주 선 채로 노려보고 있다.


    왕과 지주가 서로 토지를 차지하겠다며 대립하면 끝이 없다. 왕이 자리를 비우면 지주가 쳐들어와서 땅을 빼앗는다. 왕과 귀족의 팽팽한 대립이 유지된다. 카이사르가 로마를 비우면 뒤치기를 당한다. 군단병이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하는 악순환이다. 이성계가 개성을 떠나 요동으로 진격하지 못한다. 위화도회군이 된다.


    왕과 지주의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유태인을 끌고 와서 경작을 시키자 해결되었다. 왕이 자리를 비워도 되었다. 왕은 정복을 계속하고 지주는 건축을 하고 경작은 유태인이 담당한다. 이집트 문명이 일어났다. 말하자면 그런 식이다. 문명은 2와 3 사이에서 깔짝대고 있다. 대칭과 비대칭 곧 상대성과 절대성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르네

2020.01.25 (02:05:36)

우주에 공짜 점심은 없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1.25 (06:22:36)

"하나는 외롭고 둘은 대칭이며 3은 비대칭이다. 3이면 줄이고 줄이면 계속 간다. 2는 공간에서 교착되고 3은 시간에서 타개한다."

http://gujoron.com/xe/1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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