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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10 vote 0 2019.12.23 (22:32:46)

      

    맨 처음 이야기


    구조론은 세상을 구조로 설명하는 방법론이다. 구조가 아니면 속성이다. 구조는 둘이 엮여서 이루어지고 속성은 하나의 대상에 내재한다. 여기서 둘이냐 하나냐다. 우리는 성질에 따라 사물을 구분한다. 그 성질이 어디서 왔느냐다. 어떤 둘 사이의 간격에 성질이 숨어있다고 보는 관점이 구조론이다. 보통은 그냥 막연히 그 자체에 속성으로 내재해 있다고 본다.


    우리가 자연에서 1차적으로 얻는 것은 정보다. 설탕이 달고 소금이 짜다는 것은 정보다. 그것은 어떤 관측의 결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원인은? 그것이 속성이다. 결과는 인간이 혀로 느낀 맛이고 원인은 설탕과 소금이 혀에 화학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 속성을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 대상의 내부에 숨어 있다고 여겨진다.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는 있다.


    방울을 흔들면 소리가 난다. 방울을 쪼개보면 속에 작은 쇠구슬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성질이 대상에 내재해 있다면 그 내부를 쪼개보면 어떨까? 곤란해진다. 쪼개면 더 작은 것이 나오는데 그것을 쪼개면 더 작은 것이 나온다. 언제까지 계속 쪼개야 하는가? 우리가 얻는 것은 정보다. 정보가 내재하지 않고 외재한다면 쪼갤 필요가 없다. 그 경우는 속성이 없다.


    그런데 정보가 외부에 떠돌아다녀도 곤란하다. 그것을 어떻게 포획하지? 정보는 둘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러므로 내부를 쪼갤 필요도 없고 외부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잡으려고 잠자리채 들고 쫓아다닐 필요도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정보는 어떤 둘 사이의 경계면에 걸쳐져 있다. 둘이 만나는 시공간적 방식이 정보의 내용을 결정한다. 다만 관점의 변화가 요구된다.


    둘을 떼어 각각 보지 말고 둘 사이를 동시에 봐야 한다. 그것이 주체의 관점이다. 관측대상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내가 어떤 방법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대상을 앞에 놓고 실험을 반복할 필요가 없고 내가 관측방법을 바꾸는 방법으로 한꺼번에 모두 알아낸다. 이에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가 요구된다.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정보다. 우리는 그 정보의 출처가 물질의 고유한 속성에 숨어있다고 믿어왔다. 금이 금이고 은이 은인 것은 그러한 성질이 내부에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구조론은 그 성질이 대상 자체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둘의 엮이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관계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그 관계를 고정시키면 구조다.


    관계를 고정시키는 방법은 사건 안에서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건은 계에 에너지가 작용할 때 입력에서 출력까지 에너지 모순의 처리과정이다. 계가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의 모순을 처리하느냐에 따라 구조가 결정된다. 내부에서의 처리형태가 외부에 정보로 드러난다. 우리는 정보를 보고 내부에 어떤 속성이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의사결정구조가 있다.


    구조는 둘의 만남 형태로 있다. 물이 흐르는 것은 물에 흐르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의 중력 때문이다. 꽃이 예쁜 것은 꽃에 스며든 미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나비나 벌과 만나는 방식 때문이다. 어떤 것을 그것답게 규정하는 원인은 그 자체에 내재해 있는게 아니라 외부환경과의 관계로 안팎에 걸쳐져 있다. 불교용어로 말하면 자성自性은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성은 어떤 둘의 만남의 형태로 안과 밖에 걸쳐져 있다. 그것이 석가의 연기법이다. 2500년 전 고타마 아저씨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건 속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구조다. 만유는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의사결정구조의 연결이다. 사건은 내부에 고유하지 않고 안팎에 걸쳐져 있으므로 연결한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복제된다.


    구조론은 사건을 단위로 보는 관점이다. 사건이 아니면 사물이다. 우리는 주로 고체 형태의 사물을 단위로 삼아 대상에 작용하여 반작용을 수집하는 방법으로 관측하지만 중력이나 전기나 열이나 힘은 사물을 단위로 삼는 방법으로는 관측되지 않는다. 액체와 기체나 플라즈마와 같은 유체도 마찬가지다. 사물이 공간상에 위치해 있다면 사건은 시간상에 위치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사건은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의 연속적인 전개과정이다. 우리는 공간의 사물에서 속성을 찾지만 곧 원자론의 한계를 만나게 된다. 사물은 덩어리가 커서 내부사정을 알 수 없으므로 잘게 쪼개서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쪼개다 보면 원자를 만난다. 원자는 쪼갤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는 막연한 표현이다. 왜 쪼갤 수 없다는 말인가?


    원자의 크기가 작아서 인간의 기술적인 한계에 직면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원래 그 내부가 없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사실은 쪼갤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양파껍질을 까다가 같은 짓을 계속하려니 허무해서 포기하는 것이다. 구조로 접근해야 해답을 얻는다. 정보를 까서 시간을 얻고, 시간을 까서 공간을 얻고, 공간을 까서, 물질을 얻고, 물질을 까서 에너지를 얻는다.


    만유는 에너지의 방향성 하나로 다 설명된다. 원자의 쪼갤 수 없다는 개념은 양파껍질을 계속 까다가 다람쥐 쳇바퀴 같은 패턴의 반복 앞에서 좌절한 것이다. 방향이 틀렸다. 내부를 쪼개지 말고 안과 밖의 경계를 쪼개야 한다. 그럴때 더 이상 쪼개면 안 되는 에너지의 방향성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서 에너지의 공급이 끊어지고 사건이 멈추는 지점을 포착하게 된다.


    정보의 반복에서 시간성을 유도하고, 시간의 변화에서 공간성을 유도하고, 공간의 대칭에서 물질성을 유도하고, 물질의 경계에서 에너지의 일원적인 방향성 곧 엔트로피의 법칙을 유도해내면 사건의 전모가 확보된다. 거기서 더 이상 쪼개면 안 되는 사건의 단위를 포착한다. 원자개념을 고안한 것은 단지 그 단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위는 맺고 끊는 지점이다.


    단위를 근거로 일을 시작하고 끝낼 수 있다. 해가 넘어가면 하던 일을 멈추듯이 추론하다가 단위를 만나면 멈춘다. 사물에는 분명한 단위가 없다. 우리는 낱낱의 열매를 단위로 삼지만 과일은 나무와 연결되고 나무는 지구와 연결되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세포를 하나의 단위로 볼 수 있지만 세포를 떼내면 죽는다. 단위는 인간의 편의적 설정일 뿐 명확하지 않다.


    단위가 없으면 하던 일을 끝낼 수 없으므로 마땅히 그것이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이를 원자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단위는 사물에 없고 사건에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학위를 받고 공부를 멈춘다. 학위의 형태로 공부를 멈출 수 있는 근거를 획득한 것이다. 축구는 전후반 90분으로 끝나고, 야구는 9회로 끝나고, 농구는 4쿼터로 끝나고, 배구는 3세트로 끝난다.


    원인은 결과로 끝나고, 시작은 종결로 끝나고, 삶은 죽음으로 끝나고, 머리는 꼬리로 끝난다. 플롯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끝나고 한시는 기승전결로 끝난다. 사건에는 당연히 단위가 있고 단위를 쪼개면 시합이 무효가 된다. 그러므로 쪼갤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둘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구조는 원래 끊을 수가 없다. 끊음은 만남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관계를 끊으면 더 이상 부부가 아닌 것과 같다. 통화중에 전화를 끊을 수 없다. 끊으면 다이얼을 다시 돌려야 통화가 된다. 똥누다가 중간에 자르고 나올 수 없다. 에너지는 입력으로 시작하여 출력까지 전개해야 한다. 그래야 대응할 수 있다. 투수가 공을 던졌는데 날아가는 공을 중간에 세워놓고 작전타임을 가질 수 없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원자를 쪼갤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쪼갤 수 없는 한계를 현실에서 무수히 만나기 때문이다. 맨 손으로는 밤송이를 깔 수 없고 호두를 깔 수도 없다. 와인병의 코르크 마개를 뽑을 수 없다. 그런 경험의 원용이다. 그러나 엉덩이로 밤송이를 까는 사람도 있고 맨손으로 호두를 까는 사람도 있다. 사실 쪼갤 수 없는 것은 공간 속의 존재가 아니라 시간 속의 사건이다.


    우주는 쪼갤 수 없는 공간의 원자가 아니라 끊으면 안 되는 시간의 사건으로 되어 있다. 그 사건을 구성하는 것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곧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로 나타난다. 공간과 시간은 원래부터 그냥 있고 세상은 그 시공간의 좌표 위에 덧입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건을 연결하는 에너지의 변화가 물질과 공간과 시간과 정보를 도출한다.


    태초에 에너지가 있었다. 에너지가 고유한 활동성에 의해 출렁거리다가 우연히 구조적으로 얽혀서 계를 이루고 엔트로피 증가의 방향으로 가는 물질현상을 연출한다. 물질은 곧 엔트로피다. 움직이려면 동력이 필요하고 동력은 수학적 효율성에서 얻어지며 효율성은 방향과 순서의 감소로 얻어진다. 방향의 효율화가 공간을 만들고 순서의 효율화가 시간을 낳는다.


    사건의 근거는 엔트로피다. 존재는 사물이 아니라 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며 사건은 움직이고 움직이려면 힘이 필요하고 힘은 계 내부의 구조적 효율성에서 얻어지며 효율성은 엔트로피의 증가에서 유도된다. 사건의 전개는 효율성을 소모하므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멈추게 된다. 그러므로 시작에 끝이 있고 원인에는 결과가 있어 만유의 단위가 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2.24 (05:26:04)

"우주는 쪼갤 수 없는 원자가 아니라 끊으면 안 되는 사건으로 되어 있다. 그 사건을 구성하는 것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곧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다."

http://gujoron.com/xe/1151669

[레벨:9]회사원

2019.12.24 (16:32:31)

역대급 총정리 입니다.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네요 구조론이.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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