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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765 vote 1 2019.09.14 (19:18:13)

    통제가능성의 이해


    우주를 통째로 규율하는 단 하나의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통제가능성의 원리다. 인과율처럼 지당한 법칙이다.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는 것이 인과율이다. 이 하나의 논리에 의지하여 수학의 세계는 널리 구축되어 있다. 그리고 근대과학의 눈부신 성과는 그 수학의 성과에 의지한다.


    인과율은 한마디로 존재는 언제라도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형태의 변화과정을 낱낱이 추적하는 것이 수학적 사고방식이다. 마법이 어쩌고 술법이 어쩌고 하며 조물주의 조화로다 하고 두루뭉수리로 넘어가면 봉건적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21세기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현대를 뒷받침하는 것은 산업이고, 그 산업을 뒷받침하는 것은 과학이고, 그 과학을 뒷받침하는 것은 수학이고, 그 수학을 뒷받침하는 것은 인과율이다.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인과율은 질량보존의 법칙과 통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듯이 에너지는 언제라도 보존된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우리가 추적해야 할 변화가 있다. 겉보기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변함없이 보존되므로 수학이 성립한다. 1+2가 3으로 바뀐 것은 분명 변화다. 그런데 보존된다.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다. 3 속에 1도 있고 2도 들어있다. 숨어 있다. 잘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엔트로피의 원리는 독특하다. 서열이 있다. 원인이 결과보다 높다. 원인이 결과할 수 있어도 결과가 원인할 수는 없다. 되돌릴 수가 없으니 비가역성이다. 보존되어 있는데 자체적으로 원상복구가 안 된다. 여기에 단서가 있다. 자체적으로 원상복구가 안 될 뿐 외부에서 개입하면 물론 원상복구가 된다. 에너지는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계의 설정에 있다. 조립된 장난감과 분해된 장난감의 차이는 그 장난감을 조립하는 꼬마의 손길에 있다. 꼬마의 개입은 닫힌계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 외부의 개입을 빼고 장난감 내부만 논하면 질량은 당연히 보존된다.


    그러나 사건은 언제나 외부개입에 의해 일어난다. 외부를 닫아걸면? 자체적으로는 장난감이 조립되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만 놔둔 장난감이 저절로 조립될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장난감이 조립되어 있다면? 우주의 팽창, 생물의 진화, 문명의 진보는 외부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시스템이다. 얄궂지 않은가? 어 이거 이상하다! 


    그 경우는 내부가 소모된 것이다. 외부개입 없이 저절로 복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닫힌계를 닫아걸어 외부개입을 차단하고 보면 저절로 진행되는 사건의 원인은 언제나 결과보다 크다. 내부에 다시 구조를 이루고 또 다른 외부를 만들어낸 것이다. 내부의 외부다. 내부에 층이 만들어져 있다. 단계적으로 층위가 이루어져 있다. 그 원인과 결과의 차이는 내부의 외부가 개입한 것이다.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중구조인 상태에서 겉껍질이 무너지면서 그 힘이 속껍질에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닫힌계를 걸어놓고 사건이 저절로 진행되는 부분을 추적한다면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 원인을 결과로 바꾸는 제 3의 힘의 작용을 감안해야 한다. 1+2는 3보다 크다. 1+2를 3으로 바꿔줄 사람의 하루 노동한 일당을 고려하면 그렇다.


    정리하면 인과율은 존재는 언제라도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고, 여기서 외부에서 개입하여 형태를 바꿔준다면 그 변화의 대상은 바꾸기 전이나 바꿔진 후나 에너지 총량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1법칙이고, 외부개입이 없이 저절로 변한다면 바뀌는 데 드는 비용만큼 에너지가 손실되므로 비용의 자체조달이 가능한 한쪽 방향으로만 변화가 일어나며 그러므로 저절로는 방향전환을 수반하는 형태의 원상복구가 안 된다는 것이 2법칙이다. 


    도미노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쓰러질 수는 있어도 그 쓰러진 도미노가 다시 일제히 일어설 수는 없다. 다시 일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착각을 일으키는 눈속임이거나 외부에서 몰래 개입해서 별도로 에너지가 작용한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냐 엔트로피의 법칙이냐는 사물로 보느냐 사건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둘은 공통적으로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며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외부에서 조달되는가 자체조달이 되는가의 차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을 외부로 빼고 내부만 보면 1법칙이 성립한다. 닫힌계를 설정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을 닫힌계 안으로 끌어들여 자체조달로 보면 2법칙이 성립하니 곧 엔트로피다. 2법칙이 더 많은 부분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인과율은 자연에는 언제라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며, 1법칙은 인간이 개입하여 자유자재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며, 2법칙은 일정한 조건에서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저절로 변화가 일어나도록 세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일정한 조건이 통제가능성이다. 1법칙은 인과율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고 통제가능성은 2법칙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어떤 결과가 일어났다면 그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통제가능성의 원리다. 어떻게 했기에 가능했을까? 태풍에 64톤 무게의 테트라포드가 부두 위로 올라와 앉았다면 그것이 실제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이 64톤을 어떻게 들어올리지? 지렛대를 이용하면 된다. 대칭을 이용하면 적은 힘으로도 큰 것을 움직일 수 있다. 50킬로 체중의 옥동자가 160킬로 체중의 최홍만을 자빠뜨릴 수도 있다. 최홍만의 160킬로를 80 대 80으로 나눈 다음 80과 80이 서로 싸우게 하면 된다. 최홍만이 제풀에 미끄러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80을 지렛대로 삼아 80을 든다. 왼다리를 지렛대로 삼아 오른다리를 들어올리고 다시 오른다리를 지렛대 삼아 왼다리를 들어올리면 된다. 최홍만의 절반으로 최홍만의 나머지 절반을 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상대의 힘을 역이용한다고 표현한다. 유도선수나 씨름선수가 써먹는 기술이다. 


    상대의 무게중심을 장악한 후 자신의 몸으로 받쳐서 그 지점에 지렛대를 세우고 상대의 절반을 움직여 나머지 절반을 들어 올린다. 역도선수는 역기를 허리춤까지 들어 올린 다음에 주저앉다시피 하여 역기 밑으로 들어간 상태에서 그대로 일어서면 된다. 팔심으로는 역기를 들 수 없으므로 하체의 힘으로 든다. 역시 역기와 신체 사이에 지렛대를 만드는 기술이다.


    우주는 닫힌계를 지정하고 계 내부에 대칭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대상을 통제한다. 이는 최소작용의 원리로 나타난다. 문제는 우주가 근본적으로 이 원리에 의해 조직되었다는 점이다. 대칭을 만들려면 방향이 둘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물질은 언제나 양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둘이라야 계가 만들어지고 계가 만들어져야 내부가 작용반작용으로 통제된다.


    둘이라는 말은 에너지가 수렴방향이라는 거다. 혼자는 ->다. 둘이면 -><- 다. 즉 계가 닫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존재의 출발이다. 혼자 ->를 이루고 있을 수는 없고 대개 다른 것에 빌붙어 있다가 일정한 조건에서 방향을 바꾸어 -><- 를 이루면서 사건이 격발된다.


    통제가능성의 통제는 내부통제이며 곧 닫힌계의 외부가 있다. 외부와 내부가 구분된 닫힌계의 성립이 모든 존재의 출발점이다. 그냥 ->는 독립적인 존재자가 아니며 다른 것에 빌붙어 있는 신세다. -><- 꼴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외력의 작용에 반작용하는 형태로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광자는 전자와 공간의 상호작용 형태로 -><- 를 만든다. 전자는 양성자와 상호작용하여 -><- 를 만들므로 고유한 자기 위치가 없다. 숨은 변수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원리적으로 없다. 그게 있으면 안 된다. 상호작용 그 자체가 곧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관측하면 관측자의 개입이 -><- 를 만들어 전자의 위치가 확정된다. 


    반면 원자핵은 자체적으로 대칭의 균형이 맞으므로 위치가 확정되며, 전자는 핵에 붙들려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형태로만 균형을 맞추게 되며, 광자는 광속으로 이동하는 형태로만 균형이 맞으며 움직임이 멈추면 즉시 붕괴된다. 고유한 자기 위치를 갖지 못하고 활동에 의해서만 존재를 이루는 것이다.


    통제가능성은 사건의 결과를 단서로 원인을 추론하게 한다. 어쨌든 원인은 결과보다 높다. 에너지 준위가 높은 것이 범인이다. 어린이가 어른을 유괴하기는 불가능하다. 어른이 어린이를 유괴할 수 있다. 에너지의 층위가 높은 쪽이 사건의 원인측이다. 이는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통제가능성의 원리야말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근원의 법칙이라 할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심리든 모두 여기서 결정된다. 세상이 아름답고 신비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의 배려도 아니고 우연의 확률도 아니고 통제가능성이다. 자연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껍질 속에 또 다른 껍질의 형태로 5단계의 층위를 이루어 단계적인 대칭구조를 조직하고 최적화되어 최소경로로 움직여서 마침내 약간의 효율성을 달성하여 겨우 존재하는 것이다.


    우연에 의해 생물이 진화한다면 다른 별의 생물은 지구와 다른 모습을 가질 것이다. 생물이 산소가 아닌 황화수소로 호흡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렇지 않다. 황화수소로도 호흡은 가능하지만 호흡에 의한 산화작용의 압도적인 힘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므로 의미있는 진화라면 결국 산소로 방향을 잡는다. 게임이 벌어지면 이기는 것은 하나다. 반드시 산소가 이긴다. 다른 것은 산소에 밀려 죽기 때문에 대략 획일화된다.


    왜 이 원리가 중요한가? 답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효율성의 길은 많지 않다. 균형되어야 통제되는데 절대적으로 균형이 맞는 디자인은 보통 하나다. 예술성의 판단에 개인의 주관이 개입한다지만 가장 좋은 그림은 어떤 것이고 가장 좋은 음악은 어떤 것이고 최신유행은 어떤 것이며 낱낱이 따져보면 결국 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가장 비싼 차가 어떤 차고 가장 잘 팔리는 차가 어떤 차인지 여러분은 알고 있다. 길은 하나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무슨주의 하며 잔뜩 있는 게 아니다. 답은 하나고 곁가지는 효율성이 낮다. 최고는 우사인 볼트다. 인간이 그 이상 속력을 내기는 어렵다.


    우리는 세 가지 접근법을 알고 있다. 하나는 조물주에 의한 창조설이나 지적설계설 따위다. 틀렸다. 세상은 창조되면 안 된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창조는 외부개입인데 자체동력이 아닌 외부개입으로 뭔가 일을 벌이면 반드시 중간에 뽀개지게 되어 있다. 이것이 통제가능성의 원리다.


    반드시 자체동력으로 가야 무리 없는 진화가 가능하다. 내부모순 때문이다. 여러 가지 사항이 충돌하여 렉이 걸리고 고장이 난다. 절대 일을 이따위로 하면 안 된다. 이 방법으로 무리수를 쓰다가 망한 시스템이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다. 구소련과 북한의 방법이다. 일시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지속가능성이 없다. 소련의 발전은 외국기술을 배우거나 훔쳐서 이룬 것이며 자체적인 진보는 불가능하다.


    또 하나는 모든 것을 우연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는 지적 게으름이다. 유물론의 입장이 그렇다. 우연으로 설명하는 방법과 통제가능성으로 설명하는 방법의 차이는 전체로 보느냐 개별로 보느냐다. 우연설은 개별적으로 접근한다. 소의 머리에는 왜 뿔이 돋을까? 어쩌다 보니 쇠뿔이 자랐다. 이런 식이다. 생태계 전체로 본다면? 황소의 뿔과 사자의 이빨이 균형을 이룬다. 


    소가 너무 번식해도 안 되고 사자가 너무 우월해도 안 된다. 그 균형은 우연히 달성된 것이 아니라 DNA구조 자체가 원래부터 균형을 찾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원리적으로 자연은 균형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균형은 곧 효율이고 게임의 장 안에서 효율성을 달성하는 쪽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통제가능성의 원리는 개별적인 변화들이 서로 충돌하는 문제를 고려한다. 사건은 반드시 밖에서 안으로 작용하며 밖은 안보다 크고 따라서 외부와 널리 연결되어 있고 의사결정은 그 연결된 전체에서 일어나야 한다. 개인의 결정은 사실 집단에서 내려진 결정이 개인에 의해 대표되는 것이다. 


    윤석열의 행동은 검찰집단의 결정을 윤석열이 집행한 것이고 손석희 사장의 결정은 JTBC 전체의 결정을 손석희가 집행한 것이다. 그 일이 거기서 결정되면 우연이겠지만 거기서 결정되지 않고 위에서 일어나므로 우연이 아니다. 이웃과 가족과 사회의 눈치를 보다가 결정한 것이다.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다면 통제할 수 없다. 대책이 없다. 통제가능성의 원리는 우연성을 배제한다. 통제할 수 있으면 우연이 아니다. 어떤 한국인의 행동은 유교의 지배를 받고 어떤 일본인의 행동은 신토의 지배를 받고 어떤 서양인의 행동은 기독교의 지배를 받는다. 동력원이 있다. 바로 거기에 대응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말단이 아닌 근본이 있고 사건은 거기서 촉발되며 근본이 되는 사상을 바로잡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물론 우연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건이 왜 하필 그날에 거기서 일어나는지는 우연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그러나 필연의 장 안에 부분적인 우연이 있다. 한국이 뜨면 일본은 언젠가 시비를 걸게 되어 있는데 하필 아베가 등장하여 그 시기를 앞당긴 것은 우연이다. 후쿠시마가 우연히 터지는 바람에 일본의 민주당이 몰락하고 자민당이 압승하여 혐한세력이 궐기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발악은 언제 일어나도 한 번은 일어날 일이었다.


    영국은 지난 수백 년간 줄곧 대륙에서 강자의 등장을 방해해 왔다. 프랑스가 강하면 프랑스를 치고, 스페인이 강하면 스페인을 치고, 러시아가 강하면 러시아를 치고, 독일이 강하면 독일을 치는 식이다. 언제나 약자를 돕고 강자를 견제했다. 왜 그랬을까?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다. 에너지의 효율성 때문이다. 


    대륙이 50 대 50으로 교착되어야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50대 50으로 팽팽해야 일본이 해먹기 쉽기 때문이다. 딱 가운데다 지렛대를 박아넣어야 대상이 통제된다. 미국과 소련이 교착되었을 때 한국과 북한은 미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았다. 소련이 망하자 미국은 바로 일본을 자빠뜨렸고 지금은 중국을 때린다. 통제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대상을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물질도 그러하고 우주도 그러하고 생물도 그러하고 여기서 예외는 없다. 세상은 신의 뜻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우연도 아니다. 전부 연결되어 있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계는 전부 연결되어 더 큰 단위의 계를 이루고 있고 통제가능성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팀에서 개인으로, 위치에너지에서 운동에너지의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작용한다. 계를 이루고 대칭을 박고 축을 심어 효율성의 루트를 개척하고 그 길로 온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현강

2019.09.15 (00:32:34)

질문을 올려봅니다.

대개 인간은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 사이의 어떠한 관계가 있다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관계라는 것은 전체와 부분 사이의 방향성을 의미하는 '서열관계' 하나 뿐이며, 이 관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설명하자니 전체에는 원인이라는 이름표와 부분엔 결과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게 된 것 뿐이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 전체=불균일=에너지 ]이라는 자궁으로부터 촉발된다.
[ 전체=불균일=에너지 ]는 => [ 부분(균일)과 외력(에너지의 방향성) ] 식으로 자체 내부에서 자신을 쪼개며(수렴) 진행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큰 쪽으로 진행할 수 있다면 애초에 자기의 크기를 작게 설정해버린 오류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분(균일)에다가  외력(에너지의 방향성)이 작용하는 식으로 처음 전체의 모순을 소화시키게되면, 처음 싸이클에선 불균일한 '전체'에 대하여 균일했었던 '부분'이 이번엔 불균일하게 변모한다. 다음은 마찬가지로 이러한 불균일해진 '부분'이 더 작은 단위인 사건의 '전체'의 포지션을 가진다. 

다만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불균일의 규모는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점차 작아진다(수렴). 전체가 자체 내부적으로 쪼그라들어 부분이 되는 것이, 불균일이 내부적으로 대칭구조를 짜서 스스로 해소되는 것이,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 사건의 진행이며 존재이다. 

불균일은 이런식으로 스스로 내부적으로 순간적으로 균일을 도출할 수 있기에 불균일하다고 표현한다. 한 싸이클을 거쳐 스스로의 모순을 자체 내부적으로 처리한 계의 행위를 보고서 살아있다고 표현하고 존재라고 부른다. 전체가 부분으로 축소되는 과정에서 처음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분량은 말그래도 포텐셜을 소모한 즉 링크가 끊어졌으므로 회수할 없다는 것이 엔트로피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는 ---->>>>인 셈이므로 균일하다. 어떤 계기로  저 안에서 -><-의 형태로 대칭을 품은 닫힌계가 설정된다. 전체로 보면 균일했던 ---->>>>에 어떤 이유에서인지(아마 밖에서 뭔가가 때렸을 거다) --->>><- 라는 불균일이 생긴다. 이 때 내부구조 -><- 를 세우고도 내부의 외력 -->>이 남아있으므로 좀더 나아갈 수 있다. 대략 이런 식이다.

저는 대칭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전체와 부분의 대칭이 연상되는데요.
50 대 50 대칭이라 함은 '불균일을 내포한 전체'가 '균일한 부분'과 '외력'(전체에 대하여는 여전히 내부적이지만 부분의 입장에서는 외부인 개념으로)으로 스스로 쪼개질 때 '부분의 균일함'을 지칭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지요?

사건을 에너지 불균일의 해소로 보았을 때, 불균일은 스스로를 내부적으로 '균일과 그에 작용하는 외력'으로 포지션 설정을 하는 구조를 짠다. 균일한 부분을 50대 50으로 짜지 않으면 다음 싸이클의 사건의 모태가 될 분량이 작아지므로 조로한다.

예컨대 100이라는 전체가 ['49대 49 이라는 균일한 내부' + 2라는 외력]의 형태로 사건을 진행한다면 다음 싸이클에선 98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100이라는 전체가 70대30 이라는 대칭을 조직하려 한다면 이는 ['30대 30 이라는 균일한 내부' + 40라는 외력]의 형태로 사건을 진행시키며 한 싸이클이 끝나고 남는 분량은 60밖에 없다. 이런 형식은 롱런하기에는 비효율적이다.

틀렸다면 공연히 구조론 용어를 혼동시키는 댓글이 될 소지가 있겠습니다만, 예전부터 구조론의 사건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모형으로는 이것이 저의 최대치였던지라 여쭈어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09.15 (08:20:11)

대칭이 항상 정확히 50 대 50으로 가는 이유는 

사건이 에너지의 방향전환인데 방향이 확산과 수렴 밖에 없으며 

엄밀하게는 수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확산은 중간단계 기준에서의 상대적인 확산이지요. 

사건 안에서 에너지는 확산>수렴>확산>수렴>확산하는데 

이것이 질(확산) 입자(수렴) 힘(확산) 운동(수렴) 량(확산)이라면 

사실은 수렴>수렴>수렴>수렴>수렴합니다.

왜 말이 이중으로 나오는가 하면 판단기준이 사건 전체로 보느냐

아니면 질이나 입자나 힘의 단계에서 그 단계를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구조론은 안 그래도 용어가 너무 많아서 골 때리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래서 엄밀한 기준으로 보면 에너지는 무조건 50 대 50이지 70 대 30은 없습니다.

방향전환은 무조건 180도지 방향을 조금 트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조금 트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의 팔에 화살을 맞았다면 몸 전체를 기준으로 볼 것인가 

팔만 기준으로 볼 것인가에서 팔을 100퍼센트로 잡으면 50대 50이지만

몸 전체를 기준으로 잡으면 50대 50이 아니지요.

이런 식으로 존재에 결이 존재하므로 결이 애매하게 맞으면 에너지는 비효율적으로 소비됩니다.

에너지 자체로는 언제나 50 대 50을 정확히 따라가지만 그것은 에너지의 관점이고

외부에서의 관점으로 보면 비뚤어져 엉뚱한 곳으로 가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처럼 애매한 것들이 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쳤는지 크림반도를 쳤는지 기준을 잡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우크라이나여 궐기하라. 싸우자 이런 사랑도 있고

크림반도 쟤네들 원래 러시아놈들이었어. 지들 고향 찾아가게 냅둬.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에너지는 정확히 50 대 50으로 가지만 대상의 결과 불일치가 발생하면 구조가 깨집니다.

유도선수가 이기려면 정확히 상대의 무게중심을 쳐야 하는데

상대가 한쪽다리가 약한 사람인데 그 한쪽다리가 부러졌다면 

그 한쪽다리를 부러뜨려서 업어치기를 성공시켰다면 심판의 판정은?

1) 한쪽다리만 업어치기를 했으므로 반칙패다.

2) 한쪽다리라도 땅에 닿기만 하면 기술성공으로 승리다.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일은 당연히 현실에 없지만 만약 있다면 골때리는 경우입니다.

야구는 이런 식의 골때리는 일이 많이 일어나서 4심이 합의하고 난리지요.

질은 확산되어 있다가 외력이 작용하면 입자로 넘어가면서 결합하여 수렴하는데

외력의 기준으로 보면 질은 균일한 계를 이루고 외력을 흡수하므로 수렴이지요.

즉 이것을 제가 확산이라고 써야할지 수렴이라고 써야할지 맥락에 따라 다른 겁니다.

순수하게 에너지만 보느냐 구조의 변화를 보느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현강

2019.09.15 (10:28:54)

에너지의 관점에서는 무조건 50대 50 -><- 으로만 수렴한다
-><-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쥐어짜내는 형식도 역시나 -><- 이러한 결 뿐이다.
그렇다면 질대칭 ----->>>>><<<<<----- 에서 
입자대칭 ---->>>><<<<---- 
힘대칭 --->>><<<---
운동대칭 -->><<--
량대칭 -><- 으로 단지 내부를 소모하며 사건은 진행한다.

이것을 외부에서 보면 
----->>>>><-
----><-
---><-
--><-
-><-
이런식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이것은 관측자의 사정일 뿐이며 에너지의 사정은 추가적인 외력의 개입이 없을 시 무조건 50대50 구조를 조직하여 내부적으로 수렴 진행할 뿐이다.
50대50으로 결이 맞게끔 방향전환을 조직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수 있으며 그 과정이 애매할 수록 손실이 발생한다.

대략 요렇게 이해하는 것이 구조론 모형에 좀 더 근접하려나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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