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10 vote 0 2019.08.24 (22:12:05)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사건이 패턴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최초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무수히 복제되어 널리 망라되니 천하는 비로소 이루어졌다. 이는 좋은 소식이다. 세상이 하나의 근본에서 비롯되었다면 우리는 그 하나의 내막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복잡한 세상을 한 줄에 꿰어낼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은 일련의 연속적인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건은 머리와 꼬리가 있다. 머리가 꼬리를 복제하니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를 이룬다. 사건의 머리를 알면 꼬리는 저절로 알게 된다. 기관차가 가는 곳을 안다면 객차가 가는 곳은 뻔하다. 손바닥 들여다보듯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다. 


    만유의 자궁이 되는 그 하나의 원형에 진리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다. 그것은 사건과 그 사건을 구성하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조직하는 구조의 관계다. 계 내부에서 사건의 진행을 결정하는 것이 에너지라면 에너지 내부에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구조다. 사건은 계 내부의 모순 때문에 일어난다. 그 모순을 처리하는 것이 에너지다.


    계의 모순을 처리하는 방법은 에너지의 진행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방향을 바꾸는 것은 대칭과 비대칭의 구조다. 사건 속에 에너지가 있고 에너지 속에 구조가 있다.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이 각별하다. 내부에 갇히면 절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바깥에 노출되면 상대성이 성립한다. 상대성은 원인이 바깥에 있어 통제할 수 없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건과 에너지와 구조로 봐야 한다. 우리는 사물과 물질과 속성으로 본다. 틀렸다. 우리가 물질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믿는 것이 실제로는 속성이 아닌 주변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이 흐를지 머무를지는 거기가 강이냐 호수냐가 결정한다. 돌이 구를지 멈출지는 흙이 딱딱한지 부드러운지가 결정한다. 


    존재가 어떤 성질을 드러내는지는 주변과의 상대적인 관계가 결정한다. 불가촉천민이 천하다고 믿어지거나 브라흐만 계급이 귀하다고 믿어진다면 그 속성이 천하거나 귀해야 한다. 사실은 주변에서 천대하므로 천해지는 것이며 주변에서 떠받들므로 존귀해지는 것이다. 그것의 성질을 결정하는 핵심적 인자가 그것 내부에 있지 않다. 


    다양한 원인이 외부에 작용하므로 통제할 수 없다. 인류는 거기에 대응할 수 없고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앞에서 좌절하게 한다. 그러나 사건으로 보고 에너지로 보고 구조로 보는 눈을 얻으면 다르다. 에너지는 사건에 갇히고 구조는 에너지에 갇히며 우리는 구조를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처음 패턴을 복제하는 계가 사건을 이루고, 사건을 유발하는 계 내부의 모순이 에너지를 이루고, 그 모순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의 방향전환에 따른 대칭과 비대칭의 얽힘이 구조를 이룬다. 우리는 대칭을 조작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계 내부의 에너지 모순을 처리할 수 있다. 사건을 완결지을 수 있다. 패턴을 복제할 수 있다. 


    모순의 처리는 주변에서 또 다른 모순을 야기하므로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계에 입력된 에너지가 처리되어 계 밖으로 출력하면서 또 다른 사건의 입력이 된다. 제 1 사건의 결과가 제 2 사건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사건의 머리를 통제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나를 처리하여 열을 해결할 수 있고 하나를 배워 열을 알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이익과 선함과 진보와 발전과 활력의 근원이 되는 에너지의 효율성이 그곳에 있다. 여기에 사건의 완전성이 있고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다. 사건은 일련의 연속적인 의사결정으로 성립하는 것이며 사건이 복제되는 완성단계까지 진행해야 복제가 된다. 


    바이럴 마케팅이 성공하는 경우와 실패하는 경우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복제가능성이니 곧 완전성이다. 기승전결을 갖추어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 구조를 가져야 복제되고 전파된다. 거기서 하나가 빠지면 광고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어설픈 미완성품 100개보다 완제품 하나가 더 낫다. 인생에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2퍼센트 부족한 미완성품 백 개를 만들어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빈둥대다가 제대로 된 완제품 하나를 만들어 크게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는 게 중요하다. 사건과 그 사건을 진행시키는 에너지와 에너지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구조가 그 완전성으로 인하여 근원의 진리를 이룬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아제

2019.08.25 (01:07:58)

태초에 사건이 터졌다.

짜릿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8.25 (03:10:26)

"어설픈 미완성품 100개보다 완제품 하나가 더 낫다. 인생에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게 중요하다."

http://gujoron.com/xe/1117544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챠우

2019.08.25 (03:15:43)

힘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사람들이 믿는 것이다. -출처 까먹음.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9.08.25 (06:25:48)

힘이 내게 있다고 믿게 하는 것, 그게 나의 힘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6746 구조론 동영상 1 김동렬 2010-03-22 196447
6745 LK99 과학 사기단 image 김동렬 2023-08-07 70980
6744 진보와 보수 2 김동렬 2013-07-18 58184
6743 진화에서 진보로 3 김동렬 2013-12-03 58076
6742 '돈오'와 구조론 image 2 김동렬 2013-01-17 55981
6741 소통의 이유 image 4 김동렬 2012-01-19 55384
6740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image 13 김동렬 2013-08-15 54924
6739 관계를 창의하라 image 1 김동렬 2012-10-29 48564
6738 답 - 이태리가구와 북유럽가구 image 8 김동렬 2013-01-04 45434
6737 독자 제위께 - 사람이 다르다. image 17 김동렬 2012-03-28 44583
6736 청포도가 길쭉한 이유 image 3 김동렬 2012-02-21 42029
6735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image 3 김동렬 2012-11-27 41959
6734 구조론교과서를 펴내며 image 3 김동렬 2017-01-08 41811
6733 아줌마패션의 문제 image 12 김동렬 2009-06-10 41590
6732 포지션의 겹침 image 김동렬 2011-07-08 41078
6731 정의와 평등 image 김동렬 2013-08-22 40779
6730 비대칭의 제어 김동렬 2013-07-17 38800
6729 구조론의 이해 image 6 김동렬 2012-05-03 38713
6728 비판적 긍정주의 image 6 김동렬 2013-05-16 37864
6727 세상은 철학과 비철학의 투쟁이다. 7 김동렬 2014-03-18 37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