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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127 vote 0 2019.01.29 (19:45:04)



    전지적 창조자 시점


    이분법적 사고 – 나는 힘이 없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누가 나를 해코지한다. 누구 날 도와줄 사람 어디 없나?


    일원론적 사고 – 내게 힘이 있다. 내가 가진 힘을 어디에 쓰지? 이곳저곳에 골고루 써먹자.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저렇게 대응하자.


    연역적 사고는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떻게 써먹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힘이 있어야 한다. 한국사람은 힘이 없으므로 소설을 써도 영화를 찍어도 제대로 작품이 나와주지 않는다. 헐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는 실제로 미국인들이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자면 힘이 없어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힘은 당연히 있다. 힘은 집단에서 나온다. 집단과의 관계설정이 중요하다. 한류 드라마의 힘은 유교주의와 밀접한 데가 있다. 특히 시어머니 힘이 세다. 박경리의 말대로 로맨스만 있고 사랑이 없는 일본과 다르다.


    한류 드라마는 재벌이든 도깨비든 귀신이든 신이든 나름 힘이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문제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 시청자는 여성이다. 주인공은 힘없는 여성이다. 힘을 가진 남자가 힘이 없는 주인공을 돕는다. 그런데 귀신이든 도깨비든 재벌이든 조연이다. 


    그래서 망한다. 조선시대 군담소설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군담소설은 주로 여성인 주인공이 남장을 하고 다닌다. 이상한 할아버지가 와서 돕는다. 할아버지가 가라는 곳으로 갔더니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라고 한다. 이 패턴이 반복되어 결국 중국까지 간다. 


    이상한게 양자강을 건너 강남으로 갔더니 이미 망하고 없는 송나라가 거기에 있다. 할아버지한테 배운 도술을 구사하여 오랑캐와 반역자를 토벌하고 군공을 세운다. 예나 지금이나 패턴이 같다. 사건은 힘따라 간다. 어떻든 힘이 있어야 스토리를 진행시킬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연역적이냐 귀납적이냐, 강자의 시선이나 약자의 시선이냐에 따라서 걸작과 태작은 가려진다. 강자의 시선이 필요하다. 주인공이 노숙자라도 찰스 부코스키처럼 강한 노숙자가 좋다. 혹은 예리하거나 섬세하거나 민감해야 한다.


    혹은 아이러니한 교착상태에 뛰어들어야 한다. 50 대 50으로 교착된 상황에서는 누구나 강자가 된다. 2퍼센트가 부족한 상황에서 2퍼센트의 힘으로 100퍼센트를 먹는다. 무쇠처럼 힘이 있거나 칼날처럼 예리하나 혹은 아이러니한 상태에서 탑포지션을 차지하면 된다.


    요리사라면 일단 칼을 들고 조리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유도 같다. 생각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나 좀 도와줘! 하고 응석부리면 곤란하다. 자기연민에 빠져 독자에게 동정을 구걸하는 태도라면 피곤하다. 넋두리를 읊어대면서 하소연하는 태도는 작태가 된다.


    칼이 없으면 요리할 수 없고, 총이 없으면 쏠 수 없고, 에너지가 없으면 생각할 수도 없다.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초딩일기의 약자 시점에 있는 사람과는 대화할 가치가 없다. 노예의 시선을 가진 자와는 상종할 이유가 없다. 그거 병이다. 옮을 수 있다.


    깨달은 자의 시선을 가져야 깨닫는다. 강해지려면 강자의 행동을 모방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내가 약자지만 거기에 빠져 있으면 계속 약할 뿐이다. 작가는 전지적 창조주의 시점을 얻어야 한다. 작가는 창조자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자신의 세상을 창조해 가는 것이다.


    재판장에게 읍소하러 온 가련한 피해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 창조자는 바둑의 첫 한 점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이후 모두 연동되어 결정된다. 연동됨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선으로 악을 물리치고 교훈과 감동을 던져주는 계몽주의 안 좋다.


    교훈과 감동과 선악이면 관객을 어린이 취급하는 것이다. 물론 어린이에게는 눈물과 콧물과 교훈과 감동과 계몽이 필요하고 선으로 악을 물리치는 모습이 필요하고 영웅주의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어른이다. 더욱 소설가는 어린이가 아니어야 한다. 문제는 끝내기다.


    이야기는 풀어낼 수 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해서 괜히 주인공을 죽이는 수법을 쓰더라. 서로 연동되어 긴밀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다.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민 쾌걸은 우주적 조만장자라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을 지어내는 순간 판이 짜여졌다. 이후 전개될 모든 내용은 거기에 연동시켜야 한다. 사건 전체를 한 덩어리로 봐야 작가가 추구할 일관된 방향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에너지를 태워야 한다. 답은 사실주의에 있다.


    줄거리가 거짓이라도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관계는 사실이어야 한다. 디테일로 승부해야 한다. 현미경을 들이대려면 관측대상에 접근해야 한다. 접근하려면 자신에게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에너지가 없으므로 이야기가 겉돌게 되고 관념으로 흐른다.


    디테일한 묘사를 할 기회가 없다. 주인공에게 매력이 없으므로 이성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없고 멀리 떨어져서 사랑하니 디테일을 놓친다. 두 사람을 한 공간에 집어넣어야 이야기가 되는 건데 일단 두 사람을 한 공간에 집어넣지 못한다. 견우와 직녀처럼 거리가 멀다.


    춘향과 몽룡처럼 떨어져서 혼자 사랑가를 부르고 있다면 사실주의도 없고 디테일도 없다. 쓸거리가 없다. 질 입자 다음의 힘은 교섭이다. 서로 교섭하지 못한다. 신념, 맹세, 다짐, 의지, 상상으로 때우게 된다. 공허한 정신주의, 심리주의에 관념론으로 흐르면 망한다.


    기계에 넣고 돌려야 한다. 일단 기계가 있어야 한다. 기계는 자연일 수도 있고 심리일 수도 있고 전문분야의 지식일 수도 있다. 이게 이렇게 된다면 저게 저렇게 되는 연동구조가 기계다. 형편없는 작품들은 그러한 얽힘이 없다. 예컨대 올해는 흉년이 들었다고 써보자.


    흉년이 들었으면 거기에 연동되어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 내막을 묘사하지 않고 그냥 흉년이 들어서 민중은 고달프고 화가 났다는 식의 공허한 관념적 서술로 흐르고 만다. 흉년이 들면 거기에 맞게 혜민서에서 어떤 정책에 하달되고 하는게 있는 거다.


    흉년에 따른 조정의 각종 대책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내서 일일이 묘사해야 한다. 기우제를 지냈다거나 구휼미를 방출했다거나 제주도 상인 김만덕이 배에 쌀을 몇천 석 싣고 어느 항구로 왔다거나 하는게 있어야 한다. 그런 디테일을 놓치는 것이 작가의 한계이다.


    기계가 없기 때문이다. 흉년이 들었다. 백성이 굶주렸다. 피골이 상접해졌다. 서로 잡아먹을 정도가 되었다. 탐관오리들은 그 와중에 잔치를 열고 있다. 민중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런 식의 공허한 서술은 사실이지 자기소개다. 흉년이 들면 어떻게 되지? 배가 고프구나.


    초딩일기처럼 자기 입장을 관찰하고 그것을 생각나는 대로 쓴다. 그래서 망한다. 흉년에는 가뭄이 드는 만큼 도토리가 많이 열린다. 도토리를 주우러 산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이런 식의 기계적으로 연동되어 일어나는 내용을 써줘야 한다. 기계부터 장만해야 한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창조주의 관점이 요구된다. 도구가 있어야 한다. 매력이든 돈이든 완력이든 에너지가 있거나 감정의 섬세함과 예리함이 있거나 약자도 힘을 쓸 수 있도록 둘이 대립하며 토대를 공유하는 아이러니한 교착상태를 찾아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1.30 (04:07:35)

"내게 이 있다. 내가 가진 힘을 어디에 쓰지? 이곳 저곳에 골고루 써먹자.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저렇게 대응하자."

http://gujoron.com/xe/105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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