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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챠우
read 2147 vote 1 2019.12.03 (03:23:28)

그 어떤 사람도 문법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지는 않는다. 

언어는 원래 감각이며 그 감각은 쿵쿵따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언어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장의 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 


단 한 마디의 인간 언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보자. 

러시아 중부 시베리아 근처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당신은 love를 모르는 지구인이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럼 전혀 대화가 되지 않을까?

된다. 손짓 발짓을 하는데, 규칙이 있다. 

그리고 그 규칙은 인류 보편의 규칙이다. 



1. 네안데르탈인에게 "내가 밥을 먹는다"라는 문장을 전달해보자. 

1) 나를 가리킨다.

2) 밥을 가리킨다.

3) 먹는 시늉을 한다. 

물론 이 어순은 한국인인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일 수 있다.


영국인이라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1) 내 가슴을 친다.

2) 먹는 시늉을 한다. 

3) 밥을 쳐다 보거나 왼손으로 가리킨다.


이러한 감각은 "쿵쿵따"와 같은 것이다.

"쿵쿵따"를 읊어보면 "쿵"이나 "쿵쿵"의 불완점함과 사뭇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쿵쿵따를 막상 해보면 뭔가 또 부족함을 느낀다. 


쿵쿵따 쿵쿵따, 쿵쿠따리 쿵쿵따, 쿠우웅~ 따 쿵쿵따.. (반복)"하면서 더 확장해야 마음이 차오른다. 

왜 그럴까? 인간은 기본적인 언어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이건 뉴런에 새겨진 거다. 


왜냐하면 뉴런이 존재하는 방식도, 뉴런에 정보를 기록하는 방식도, 

결국은 우주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원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 감각이 대단한게 아니고 그냥 대칭과 비대칭 감각의 연쇄다. 


그래서 인간은 보통 1, 2형식이라 불리는 주어 + 자동사/보어로 이루어진 문장이라도 

억지로 쿵쿵따를 문장에 적용하고야 만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냥 주어와 동사만 나열해도 되는데 굳이 뭘 하나 더 끌어다 붙인다.


I go to school.


문법적으로는 1형식이라고 해서 I go까지만 말해도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근데 I go라고 해봐라. 상당히 어색하다. 뭔가 빼먹은 느낌이 든다. 

여기에 to school를 붙이면 왠지 안심이 된다. 왜 그럴까?



2. 추론 알고리즘에는 대표적으로 연역과 귀납이 있다. 

구조론에서 귀납은 안 쳐주지만 일단 있다고 쳐주자. 귀납은 없지만 귀납적 방향은 있기 때문이다. 

연역이라면 입력이 2이고 출력이 1(+주변)인 상황이다. 


그냥 출력을 1이라고만 해도 되겠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출력도 무언가를 가리켜야 하므로 절대로 1일 수가 없다.

가리키려면 반드시 그것과 그것 아닌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그리고 둘을 가르는 기준 하나 더해야 하지만 여기선 생략)

이건 알고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다. 

무조건 다수 중에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귀납이라면 출력이 2이고 입력이 1(+주변)인 상황이 된다.

사실상 연역과 메커니즘이 같은데,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다.

가령 연역이라면 범인이 흘렸을 만한 증거를 찾는 것이고,


귀납이라면 증거를 보고 범인을 추론하는 것이며,

연역이나 귀납이나 범인(원인)과 증거(결과)는 모두 "2 이상의 다수 중의 하나"여야 한다. 


연역이라면 

<입력>  범인1, 범인2..

                 ▼

<출력>  증거1(정답), 증거2(오답)..


귀납이라면

<출력>   범인1(정답), 범인2(오답)..

                 ▲

<입력>   증거1, 증거2..


이를 일반화하면, 

"인간은 입력(혹은 출력) 둘을 받아, 출력(혹은 입력)의 정답과 오답을 추론한다"가 된다.

이러한 원리는 쿵쿵따에도 적용된다.

"쿵쿵"이 입력이 되고, "따"가 출력이 되는 것을 인간은 기억하는 것이다.



3. 이때 쿵쿵과 따를 무엇으로 정하느냐가 

한국어와 영어를 가른다.


한국어는 주어/목적어를 쿵쿵으로 두고 동사를 따로 두지만

영어는 주어/동사를 쿵쿵으로 두고 목적어를 따로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어의 어순은 정확히 연역이고, 

영어의 어순은 귀납'적'이 된다. 

한국어는 큰데서 작은데로 시선이 이동하지만

영어는 나에서 대상으로, 작은 곳에서 큰 곳으로 시선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라면 말하고자 먼저 나와 상대를 확인하고 그 이후에 둘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행위를 생각하며, 이때 사유의 중심은 나와 대상이고,

영어라면 내가 어떤 느낌을 느꼈고, 근데 그것의 원인이 대상이라는 식으로, 나의 느낌을 중심으로 대상을 사유하는 것이 한국어와 다른 것이다.



4. 한편 인간은 동물과 사물의 머리와 꼬리를 어떻게 구분할까? 이미지 인식이라고 쳐보자.

인간이 사물을 파악할 때는 반드시 많이 움직이는 것과 상대적으로 덜 움직이는 것을 함께 보고,

이들을 묶어 방향성을 파악한다. 


인간의 신체라면 몸통은 덜 움직이고 팔다리가 많이 움직일 때, 

몸통이 상대적인 중심이라고 보는 것과 같다. 


언어감각도 이와 같다. 

덜 변화하는 것을 주어 혹은 목적어를 두고

많이 변화하는 것을 동사로 두는 것이다. 



5.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는 인식과 정확히 같은 원리를 공유하고

이는 전 우주 공통의 원리적 패턴을 따라가며, 이러한 사유의 방향성이 인식으로 복제되기 때문에

생각이 바뀌면 눈에 보이는 것도 달라지게 된다. 


즉 당신은 내 말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문법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2.03 (05:54:06)

흥미로운 분석입니다.


제 생각은

주어=주체, 목적어=객체, 동사=(주체와 객체의)관계 라고 보았을 때...

한국어의 어순은 주체/객체/관계

영어의 경우는 주체/관계/객체 순서이므로...


중요한 것이 먼저 온다고 가정하면

한국어의 경우는 관계보다는 객체(의 존재)를 더 중시하고...

영어의 경우는 객체보다는 관계 즉 주체의 의도나 행위를 더 우선시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차우님 의견처럼 어순에서 더 변화하는 것이 나중에 온다면

한국어는 객체(목적어)보다는 관계(동사)가 더 변화한다고 보는 것이고,

영어의 경우는 관계(동사)보다는 객체(목적어)가 더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챠우

2019.12.03 (17:28:17)

1. 동사를 주어와 목적어의 관계로 볼 것이냐로 저도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만, 

제 결론은 "아니다"입니다. 왜냐하면 주어나 목적어에 비해 동사는 "격"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격이 아래인 동사를 주어나 목적어보다 더 높은 개념인 "관계"라고 말하면 좀 이상합니다. 


근데 분명히 주어와 목적어는 격 차이가 납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표현하냐.

전치사로 합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 한국어의 능동어법에만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능동과 수동의 교체에 능한 영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능동과 수동의 교체에 사용되는 도구는 동사변형과 전치사입니다. 


물론 한국어도 격을 조사로 표현하지만, 영어에 비하면 활용성과 다양성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1) 동사변형,

동사변형은 done처럼 "~된"으로 동사를 변형하거나 ed를 붙여 비슷한 의미의 변형을 만들어내어

객체의 능동과 수동을 표현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과거형이니 과거분사니 하여 어떤 "시간(time)"의 개념을 생각하는데, 

사실 자연에는 time은 없고 order는 있습니다. 

즉 과거형 표현의 핵심은 옛 것과 같은 게 아니라, 기준에 대한 이전이냐 이후냐를 표현하는데 있습니다. 

It is done by him.


2) 전치사

주어와 목적어의 선후관계의 방향을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앞에서 예시로 든 by가 It ← him 이라면, with는 반대가 되는 거죠.


for와 to나 

of와 on about이 이러한 방향성의 차이를 설명하는 전치사 들입니다. 

물론 다른 모든 전치사도 방향성이 있습니다. 


즉 주체와 객체의 서열을 정하는 것은 전치사고 동사는 서열차에 따른 이후의 변화를 부연합니다. 



2. 

"나 밥 먹었어.", "I ate lunch." 


한국인은 대상인 밥을 머리에 떠올리고 이후에 대상에서 연역되는 "먹는다"를 찾습니다.

그래서 "밥 > 밥으로 뭘 했지? > 먹었어"

반면 영어인는 먼저 내가 느낀 게 뭔지부터 찾습니다. "ate > 뭔데 먹었지? > lunch."


즉 한국인은 상황을 파악하려고 대상부터 쳐다보고, 영어인은 내 느낌부터 쳐다보는 거죠. 

이런 차이의 연원을 유목민과 농경민의 차이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이는 말이라는게 타인과 의사소통에 의한 것이므로

인간 관계를 차이 내는 원인인 에너지와 사회구조로 설명하는 관점입니다. 


참고글

http://gujoron.com/xe/?mid=english&sort_index=readed_count&order_type=desc&page=1&document_srl=8466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9.12.03 (08:20:39)

뛰어난 사유입니다~

이글을 포함해서 앞으로는 구조론게시판에 올리면 좋겠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챠우

2019.12.03 (19:45:54)

아직 구조론 게시판에 올릴 정도의 글이 아닙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9.12.04 (06:30:48)

과정이야말로 중요하지요~
[레벨:7]오자

2019.12.03 (13:20:28)

한국어는 보다 객관적/균형적이며
영어는 보다 주관적/이기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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