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read 13940 vote 0 2007.12.31 (18:35:12)

5년을 돌아보며

모두가 말한다. ‘노무현 때문에~!’ 이 말은 자기부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어야 한다. 5년전 노무현은 극도의 비관적인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을 찾아냈다. 결코 ‘김대중 때문에’라고 말하지 않았다.

‘노무현 때문에’라는 말은 노무현 외에 인간이 없다는 말이다. 선장이 없으면 기관장이 나서야 하고, 기관장이 없으면 갑판장이 나서야 한다. 진보진영에 기관장도 갑판장도 없었다는 말이다.

선장 혼자 뿐이니 선장이 잘못하면 파멸이다. 그렇다. 오직 노무현이 있었고 그 외에 아무도 없었다. 인간 하나가 없었다. 지난 5년은 노무현 혼자의 원맨쇼였다. 노무현 외에 사람이 없으니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 때문도 아니고 한겨레 때문도 아니다. 오마이뉴스도 한겨레도 죽은지 오래니까. 죽어버린 시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까. 죽어서 뻣뻣해진 진보진영에 책임이 있을 리 없으니까.

지난 5년을 겪어보고 내가 느낀 것은, 자칭 진보라 하는 것들은 집권할 자격도, 의지도, 능력도, 욕망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집권은 사치였다.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준비되지 않았다.

집권해서 뭐할 건데? 그게 없었다.

민노당을 보라! 선거 끝나기 무섭게 분열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무현 아니라 권영길이 당선되었어도 상황은 같다. 민노당부터 민노당을 인정 안하는 거다. 진보 자신이 진보 자신을 우습게 보는 거다.

파트너가 실수를 저질렀다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민하게 대처하여 상황을 수습하고 예정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승부사의 자존심이다. 실수한 파트너를 팽하는 것은.. 그 상황을 수습할 자신감도,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다는 거다.  

자포자기다. 진보진영의 자포자기가 민노당 현상으로 관측되고 있다.

분열의 이유는 하나다. 비전이 없고 목표가 없고 계획이 없기 때문에 분열한다. 그냥 우두커니 있을 수는 없고 무언가 해야만 하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짓이라 할 분열짓을 하는 것이다.

왜 분열하는가? 분열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분열한다. 그 분열하지 아니할 이유부터 만들어 두었어야 했다. 그것이 있어야 자기 자신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그것이 자존심이다.

자존심이 있어야 파트너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그래야 진지해지고 거기서부터 일이 풀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게 없다는 거다.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이 쳐 놓은 악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가 그 울타리가 파괴되자 모여있을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일제히 도망친다.  

강준만을 보자. 10년전 DJ 대통령 만들기에 열심이더니 당선되자 태도를 바꾸더라. 5년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열심이더니 당선되자 태도를 바꾸더라. 그는 누가 당선되어도 태도를 바꿀 사람이었다.

자신의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서. 그는 이 나라와 역사의 진실에 관심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를 사회에 들이댈 건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주목받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할 자다.

이 인간들에게 권력을 줄 국민이 있겠는가? 나라도 표 안준다. 그래서 나는 정동영을 찍지 않았다. 그들은 내 표를 받을 자격이 없다.

이번 대선에서 강단의 교수들은 누구를 찍었을까? 8할 이상이 이명박을 찍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듣기로 이 나라에 교수직함 쓰는 자들은 전부 이명박 광팬이었다.

지식이 썩었다. 지식이 썩었는데 그 지식으로 바탕이 구성된 진보가 썩지 않았을리 없다. 그 안에 일부지만 괜찮은 인간이 있다는 주장을 나는 믿을 수 없다.

지난 10년은 무엇이었던가? 이 나라가 비뚤어졌기에 바로잡은 것이다. 바로잡고 난 다음에 그들은 할 일이 없었다. 그들의 쓸모는 단지 한나라당이 쳐놓은 사고를 수습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결국 지난 10년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천재의 원맨쇼였다. 진보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짐이었다. 애물단지였다. 한자리씩 떼줘서 입닥치고 조용하게 만들거나.. 혹은 한자리씩 안겨주지 못해서 귀찮지만 앵앵거리는 원망소리를 들어야 하는 모기떼의 극성 그 자체였다.

거둬먹여야 할 군식구, 다 거둬멕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진보는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에게 어떤 아이디어도, 정책도, 이론도, 어젠다도, 권위도, 신뢰도, 세력도 선물하지 못했다.

김대중, 노무현이 진보로부터 뽑아 쓴 것은 없다. 그들은 김대중, 노무현이 자기네를 써주지 않았다고 믿겠지만 그 안에 써먹을 인간 하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청와대에서 수석 자리라도 하나 따내면 조금 있다가 사표내고 나와서 빌어먹을 그 직함 끝끝내 이용해먹으면서 노무현 씹어대는 쓰레기나 있었지.

인간이 개똥만큼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청와대 씹어도 좋지만 청와대 씹을때는 청와대 직함 내걸고 그러면 안 된다. 인간의 급이 아니다. 민노당 인심 얻으려고 그런 쓰레기를 정파안배한 노무현의 인사실패다.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은 진보라는 애물단지를 등에 업고 달렸고 그래서 막대한 손해를 봤다. 지금 이명박이 조중동과 전여옥이라는 애물단지를 등에 업고 출발선에 서 있듯이.

이번 대선의 의미는 진보가 통째로 용도폐기 된 사실을 확인한 데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볼때 진보는 단지 오직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들이 저질러 놓은 것을 수습하는 데만 쓸모가 있으며, 이제와서 그것이 대략 수습되었다면 더 이상 필요없다고 판단된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제대로 된 진보정책을 쓰지 않아서 졌다고 그들은 변명하고 싶겠지만 지금 보여지고 있는 우왕좌왕은 그들이 애초에 정책다운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다.

정책이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정책에서 신념이 나온다. 신념이 있으므로 흔들리지 않는다. 정책이 없으니 신념이 없고, 신념이 없으니 계획이 없고, 계획이 없으니 마땅히 할일이 없고, 할일이 없으니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분열하기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탓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편리하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끼리의 문제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되고, 산 사람끼리의 문제는 죽은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참 편리해서 좋겠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의 대통령이지 특정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다. 권영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치고 민노당 정책을 그대로 쓸 수 있는가? 없다. 누가 당선되든 국민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을 써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황제가 아니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못했다고 탓해서 안 된다.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그들은 하지 않았다. 소수파 출신의 대통령이 쓸수 있는 재량권의 폭은 참으로 좁다. 그 안에서 작은 가능성이라도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무엇인가? 진보의 주장은 모두 조건이 붙어있다. 내게 방법이 있어서 지구를 들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지구를 옮겨보라고 하면, ‘내게 무한히 긴 지렛대와 그 지렛대를 받칠 수 있는 받침대 하나만 다오’ 하고 요구하는 격이다.

이런 식으로 조건이 붙어있는 주장은 모두 가짜다. 논리의 함정이 있다. 현실성이 없는 그것은 명박이 잘 쓴다는 ‘돌려막기식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이.. 학생과 시민단체와 야당만 조용히 있으면 우리나라 선진국 된다고 우겼던 일과 같다. 그 말 맞다. 액면으로는 그렇다. 이 나라의 모든 노동자와 소수자가 권력자의 명령에 복종하면 적어도 GDP는 올라간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원래 그럴 수 없는 존재다. 아뿔사!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오해인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모든 한국인이 밤잠 안자고 미친듯이 일하면 선진국 되겠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절대 그럴 수 없다. 그건 로보트지 인간이 아니다. 원래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한계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보의 주장들은.. ‘내게 별까지 닿는 장대만 구해다오. 별 따다 줄께’ 하는 식이다. 원래 불가능한 것들에 이러저러한 조건을 부여하여 뭐뭐만 보장되면 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내 수명이 영원하다면 1억년 후에 나도 이건희 만큼 벌 수 있다.

문국현의 어리광도 그렇다. 인지도가 낮아서 졌단다. 인지도만 높아지면 된단다. 웃기셔. 정말. 그렇게 둘러댈 바에야 차라리.. ‘유권자들이 나를 찍지 않아서 졌다. 딱 천만표만 찍어주면 대통령 될 수 있다’고 말하지 그러셔.

이런 식으로 전제조건이 붙은 말은 전부 허경영이다.

상대성의 세계를 떠나 절대성의 세계에서 말해야 한다. 그것은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2002년의 인터넷돌풍이 그렇다. 이전에 없던 것이 새로이 창조된 것이다.

스스로의 자궁에서 낳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방의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을 노려서는 안 된다. 전임자의 유산을 물려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서 가난하다는 식의 어리광이다.

왜 제 힘으로 도전하려 들지 않는가?

지난 10년은 성공이면서 실패다. 성공은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이 그르친 것을 바로잡아 놓은 것이다. 전문 위장업자가 대통령을 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을 정도의 토대는 다져두었다. 위기에 악역을 맡아서 궂은 일을 해치운 것이다.

실패한 것은 진보가 가진 자체의 역량을 충분히 뽑아쓰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밝혀진 사실은 그 뽑아쓸 역량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금의 진보의 분열상과 더러운 책임회피가 증명한다. 오죽 못났으면 남의 탓 할까?

자칭 진보들이여! 왜 단 한 사람도 이 황금같은 기회를 자신의 기획안을 주장할 찬스로 활용하지 않는가?

위기는 기회다. 제후연합군의 선봉이 화웅에게 패하여 어쩔줄 모르고 있을때가 유비, 관우, 장비 등의 무명인물이 자기 재주를 자랑할 찬스인 것이다.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그 어떤 아이디어도 정책도 말하는 자가 없다.  

지난 10년간 그들은 김대중, 노무현을 위하여 그 어떤 가치있는 제안도 내놓지 않았다. 뇌가 썩었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다듬어지지 않은, 요리되지 않은 서양의 것을 들고 와서 장난치는 정도에 불과했다.

‘진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줄, 그것으로 국민을 설득할만한, 그 무언가를 스스로의 자궁으로 낳아내기 전에는.. 감히 정권을 달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이명박이 5년을 죽쑨다면 ‘명박보다는 낫다’는 비교우위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해서는 의미가 없다.

왜 진보는 스스로의 힘으로 낳지 못하는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교육분야이고 하나는 문화분야다. 교육분야는 가능성 있다. 문화분야는 한국인 특유의 후진국 콤플렉스에 막혀 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이 있어야 한다. 자칭 진보라는 자들이.. 서구와 비교하면서 ‘한국인 너희는 안돼’ 하고 열등감이나 부채질 할 뿐 그 문제를 정면으로 치고 나가지 못한다.

유럽이 진보하는 이유는 앞서가는 자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서있기 때문에 온갖 실험할 수 있다. 문화적인 사치도 가능하다. 식민지와 분단과 독재와 후진의 콤플렉스에 찌든 한국인들에게 문화적인 접근은 사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80년대를 풍미했던 노래패와 그림패와 탈춤패들의 활약과 우리것찾기 붐과 그에 따른 자주노선과 민중노선의 대두는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진보가 탈엘리트 하고 탈사대주의 할 때 분명 가능성은 있다.

진보가 엘리트 위주로 가고 서구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할 때 민중의 마음과 멀어진다. 진보가 똘레랑스가 어떻고 랑그가 어떻고 빠롤이 어떻고 설레발이 치며 외래어 장사에나 탐닉할 때 민중의 자부심을 꺾어버린다. 민초들을 기죽인다. 그럴 때 민중은 진보를 사치로 여긴다. 진보가 된장녀의 스타벅스로 각인된다.

오늘날 진보의 실패는 민중의 관점에서 볼때 진보의 주장이 잘 나가는 북유럽의 사치로 보였기 때문이다. 진보가 민중을 모욕하고 그들의 자부심을 억누를 때, 민중은 ‘명박따라 삽질해서 개처럼 벌어보세’하는 자기비하에 빠져버린다.

결국 이 나라에는 두 가지가 필요한 거다. 진보의 장점을 백프로 빼 쓸 수 있는 교육대국의 비전과 문화적인 욕구를 일으키고 동기부여 하여 진보를 사치로 여기지 않도록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자주의 철학인 거다.

철학이 없으므로 줏대가 없고, 줏대가 없으므로 남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니 비굴해져서 자존심을 잃어버리고, 자존심이 없다보니 개처럼 벌어보자는 조중동의 천민이데올로기에 포섭되고 마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를 방치한 진보는 자격이 없다. 원래 집권해서 안 되는 애들이었다. 지금 진보는 분열하고 있다. 더 분열해야 한다. 하나의 진짜가 찾아질 때 까지 열두벌 껍데기를 다 벗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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