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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961 vote 1 2014.10.28 (18:17:37)

 

    김성근과 스파르타쿠스


    “안 따라오면 같이 안해." 8명의 코치를 단숨에 잘라버린 김성근 신임감독의 말이다. 그런데 노예들은 끝내 스파르타쿠스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망했다. 그들은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부리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롯데 프런트의 파벌놀음이 황당하지만 사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차지철과 김재규를 이간질하다가 죽은 박씨를 떠올려도 좋다. 일본 연고의 재벌기업 롯데가 소대끼리 갈라서 경쟁시키는 일본군에게 배운 기술이겠지만, 롯데 아니라도 다들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망한다. 이게 단지 프런트의 오판이 아니라, 배재후, 공필성, 권두조의 개인적 오판이 아니라,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바, 본능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이거 원래 해결이 잘 안 된다. 선수단 전체가 한 방향을 보고 가도록 하는 것은 사실 고급기술이다.


    양상문 감독도 10년 전 롯데에서 이걸로 망했다. 완전 판박이다. 양상문이 LG감독으로 선임되자 거품물고 반대하는 사람 많았다. 선수 편애하고 편가르기 하는 양상문이 LG에 오면 과거 롯데처럼 팀에 내분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잘 하고 있잖아.


    이순철도 마찬가지다. 해태시절 군기반장 하던 이순철이 LG에서 군기잡으려다가 망한 거다. 근데 김기태는 이순철도 못 잡은 군기를 잡았다. 그거 보고 반한 기아가 냉큼 데려갔다. 안치홍이 대놓고 선동렬에게 대들 정도로 군기빠진 기아팀 군기나 잡아달라고. 헛웃음 나온다.


    10년전 롯데에서 내분으로 망한 양상문과, 2014년 LG에서 단합으로 성공한 양상문은 무엇이 다른가? 사실 김성근도 옛날에는 말이 많았다. 지금은 카리스마가 되니까 다들 좋다고 만세부르는 거지. 하여간 인간은 원래 말을 안 듣는다. 이거 명심해야 오판을 막을 수 있다.


    나만 잘 하면 선수들도 당연히 말을 들을거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면 안 된다. 선수들이 당연히 말을 안 들을텐데,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갖추고 있어야 지도자다. 공필성은 이러한 본질을 도외시하고 선수탓 하는 거다. 선수들이 잘못했어도 그게 다 감독책임, 코치책임이다.


    처음 100여명의 노예 검투사가 베수비오산 기슭의 숲으로 탈주했다. 노략질이나 하며 세월 보내다가 뒤쫓아온 토벌대 3천명을 죽였다. 또다시 토벌대 4천명을 죽이고 로마군 군기까지 빼앗았다. 포위된 베수비오산을 탈출하여 양치기 노예들이 있는 남쪽지방으로 달아았다.


    소문듣고 이탈리아 전역에서 불량배와 탈주자가 모여들었다. 무리는 12만명까지 불어났다는데 과장이 아닐 거다. 숫자는 동학군이나 황건적처럼 삽시간에 불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가 다 로마군과 싸울 수 있는 군사는 아닐테고, 전성기때 병력이 5만명은 되었지 싶다.


    정예 군단병이 압박해오자 스파르타쿠스는 이탈리아를 벗어나 고향인 트라키아 지방으로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하들이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불하들의 항명은 탈주 초반부터 있었다. 배반에는 그의 동지였던 크릭수스가 앞장섰다. 그렇다면 크릭수스는 나쁜 놈일까?


    아니다. 나쁜 놈이면 스파르타쿠스의 동지가 될 수 없다. 급조된 조직은 원래 분열이 일어난다. 내부에 대칭구조가 생겨야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크릭수스가 반대파의 의견을 취합하는 역할을 맡은 거. 그렇다면? 당연히 분열하는게 오합지졸이다.


    근대시민이냐 아니면 일베충이냐는 여기서 갈라지는 거다. ‘로마에 복수하자.’는게 크릭수스를 비롯한 부하들의 주장이다. 명분은 좋다. 그들은 스파르타쿠스 밑에서 로마군에 져본 적이 없다. 싸우면 이길텐데 왜 노예처럼 도망을 치지? 로마를 떠나서 어디로 간다는 거지?


    초원을 접수하고 국가를 세우자고? 말이 돼? 무엇인가? 장기전을 할 수 있느냐다. 국가를 세운다는건 너무 장기적인 계획이다. 10년 전 김성근 감독이 이런 목표를 제시해도 말을 안 듣는다. 그런데 지금은 말을 잘 듣는다. 카리스마의 차이다. 그 카리스마가 쉽게 되는거냐고.


    김대중 대통령도 금뺏지들이 말을 안 들어서 개고생 하다가 반란군 수괴 이기택을 제압한 다음에야 말을 듣게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도 후단협들에게 털리다가 몽 낚아서 수습했다. 한 번은 개고생을 해야 말을 듣는다. LG의 이순철도, 롯데의 양상문도 이걸로 망한 것이다.


    이순철, 양상문이 팀을 물갈이하는 큰 목표를 제시하니 선수들이 어이가 없어서 입이 한 발이나 튀어 나온 거. 탈주 노예들은 약탈과 살인, 강간을 멈추지 않았고 스파르타쿠스는 그들을 다스릴 장교단이 없었다. 장교는 사병 위에 군림하는 존재다. 노예 위의 주인과도 같다.


    탈주노예들은 자기 위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목숨걸고 탈주해서 겨우 자유민이 되었는데 이제부터 신나게 약탈이나 즐기면 되는 거지, 다시 로마군 백인대장 밑에서 노예가 되라고? 이게 말이나 돼? 이렇게 되면 사실 답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장교의 지배를 받기 싫다면 스스로 장교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장교인가? 그들은 탈주하고도 노예의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선수단은 프런트와 적대관계가 되어야만 의사결정이 되고, 노예는 주인과 대립관계가 되어야만 의사결정이 된다. 그게 노예의 마음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지도자인 스파르타쿠스와 대립관계가 되어 말 안 들었다.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원래 노예들은 말 안 듣는다. 스파르타쿠스는 일생일대의 실책을 저지른다. 알프스 산맥 기슭까지 갔다가 갑자기 회군하여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200년 전에 있었던 한니발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왜 스파르타쿠스는 이탈리아를 탈출하지 않았을까? 사가들은 시칠리아 섬을 노렸다가 해적들에게 배신당했다고 기록하지만 사실은 목표를 잃은 거. 만약 트라키아 지방으로 간다면 인원은 3천명 안팎이 적당하다.


    3만 이상의 대군이 움직이려면 보급이 되어야 한다. 수송대가 없는 판에 약탈에 의존해서는 3만대군이 크로아티아의 산악을 넘어 이동할 수 없다. 수송대를 조직하려고 해도 탈주노예들이 과거의 노예 일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트라키아 지방으로 간다고 해도 목적이 없다.


    약탈 외에 할줄 아는게 없는 탈주노예들을 데리고 국가를 건설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자유민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노예는 해방되는게 목적이다. 해방이 되었다. 그런데 반도에 갇혔다. 북으로는 알프스로 막히고, 남으로는 바다로 막혔다. 어쩔 것인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파르타쿠스를 영웅으로 떠받들지만 사실 허무한 거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해방 다음에는 건국까지 진도를 빼줘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해방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목표라면 그 다음 단계까지 가야 한다. 어떤 목표는 목표가 안 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밝혀야 겨우 충청남도지사가 되는 것이다. 안희정! 아시아를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밝혀야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실패. 원래 공표된 목표의 절반이 자신의 진짜 목표다. 그때 노예들은 도망가지 않고 장렬하게 싸우다 죽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죽었다. 한 명도 등돌리고 도망가지 않았다. 사로잡힌 6천명이 십자가형으로 죽으면서도 로마군을 비웃었다. 자유민이 되는데 만족한 거. 결론 내리자. 3천명 정도의 작은 무리를 지도했다면 쉽게 탈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만여명이 되자 탈출하는건 의미없게 되었다.


    세상에 한 방 먹이는게 더 중요한 일로 되었다. 이탈리아를 떠나서 도망치는건 노예나 하는 짓이다. 그렇다면? 로마에 복수할 밖에. 그들은 ‘나는 자유민이다’를 계속 외치다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죽었다. 결국 스파르타쿠스는 동료들과의 의리 때문에 죽은 것이다.


    무엇인가?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그거 절대 안 바뀌는 거다. 모세를 따르던 무리들도 끝까지 모세의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라는 제 1의 목표에 안주하여, ‘건국’이라는 제 2의 목표로 나아가려 들지 않았다.


    결국 이집트를 떠난 무리들 중에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은 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원래 말을 안듣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말을 듣게 만들 수가 있다. ‘너희가 잠자코 내 말을 들으면 되잖아.’ 하는건 자격없는 지도자의 헛소리다. 주로 새누리들이 하는 소리다.


    http://www.instiz.net/bbs/list.php?id=pt&no=1317986


    제이미 올리버의 급식개혁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문제는 아이들이 제이미 올리버의 맛있는 요리를 거부하여 데모를 했다는 거다. 밭에서 딴 딸기를 주자 이런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제이미 올리버의 고급요리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조미료 범벅 쓰레기 음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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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급식운동을 하다가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닥친 미셸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이거 원래 잘 안 된다. 바뀌는 데는 한 세대가 걸린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영국인들 스스로도 포기했다. 심지어 영국인의 유전인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화해 버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


    노예가 해방되면 곧바로 자유민이 되는가? 천만에. 진보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은 시스템연구소의 꼴통 지만원 박사가 주장하는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적인 시스템이다. 우리는 장교가 되어야 한다. 문제를 처음 포착한 사람이 곧바로 명령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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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12년’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장면을 본 사람은 필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의미를 알 것이다. 해방은 노예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반드시 다음 단계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인류를 대표하는 의사결정권자가 되어야만 한다.


http://media.daum.net/culture/health/newsview?newsid=20141028020614195&RIGHT_REPLY=R2


    무리들 중에 누가 모세조차 밟지 못한 가나안 땅을 밟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겠다는 소박한 자유주의로는 부족하다. 내가 인류를 대표하여 이 도시를 새로 디자인하겠다는 적극적인 의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시민’과 새누리가 말하는 ‘국민’의 차이다.


     P.S.


    옛날에 여러번 했던 이야기다. 궁지에 몰린 유방이 유생 역이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몰락한 6국의 후예들을 찾아 왕을 시켜주겠다고 도장까지 새긴 일이 있다. 장량이 듣고 깜짝 놀라 당장 취소하게 만들었다. 유방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왕이 되는데 관심이 있었던 거다.

 

    항우토벌은 1차목표다. 2차 목표가 있어야 한다. 조지 워싱턴을 따라다닌 자칭 독립군 농부들도 사실 미국의 독립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워싱턴을 황제로 옹립하고, 자기들은 왕이 되려고 했다. 문재인 캠프도 이런건 좀 생각해봐야 한다. 순진한 아마추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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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이 될 것인가 국민이 될 것인가는 본인이 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시민이 못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승적 태도를 버리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나서야 합니다. 인류가 해결될 때 개인은 그 과정에서 이미 해결되어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id: 우야산인

2014.10.29 (14:21:21)

"그들은 워싱턴을 황제로 옹립하고, 자기들은 왕이 되려고 했다문재인 캠프도 이런건 좀 생각해봐야 한다.순진한 아마추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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