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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405 vote 0 2017.06.13 (00:51:18)

      

    왜 민족주의인가?


    민족주의는 근대의 산물이다. 민족주의 담론의 의미는 집단의 평판과 명성 그리고 미디어와 입소문의 위력이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로 사회가 진보했다는 데 있다. 잔 다르크가 처음 민족주의를 발명했고 나폴레옹이 이를 각국에 퍼뜨린 거다. 나폴레옹이 혁명을 수출하자 스페인과 이탈리아와 독일의 엘리트들은 쌍수를 들고 나폴레옹군을 환영했다. 


    나폴레옹 군대가 시민을 학살하자 지식인들은 졸지에 매국노로 몰렸다. 나폴레옹의 학살이 각국의 민족감정을 부채질한 것이다. 지식인이 외국의 힘을 빌리려다가 자국민의 저항을 불러 일으키는 패턴은 이후로도 계속 나타난다. 그러므로 지식인이라면 이러한 민중의 힘과 역량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민중은 본래 보수적이지만 조직하기에 달려 있다.


    왜 잔 다르크인가? 잔 다르크는 당연히 문맹이었다. 촌놈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입소문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천재적인 선동가였던 것이다. 샤를 7세가 궁지에 몰렸을 때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민중 뿐이었다. 민중을 동원하려면? 귀족의 혈통을 내세우는 방법으로는 민중의 반발심을 자극할 뿐이다. 봉건시대에 전쟁은 원래 귀족가문들의 집안싸움이었다. 


    영국왕과 프랑스왕은 결혼관계로 연결되어 있었으니 영국 누나와 프랑스 동생이 각자 상속권을 주장했다. 민중의 입장에서는 남의 집안 일이라 관심이 없다. 누가 왕이 되든 민중의 입장에서 달라질 것은 없는 것이다. 샤를 7세가 냉소적인 민중의 마음을 돌리려면 특별한 이벤트를 벌여야만 했다. 마침 잔 다르크가 적절한 때에 등장해 주었다. 그러나 위태롭다.


    잔 다르크는 복제능력이 탁월해 제 2, 제 3의 잔다르크가 속출하게 된다. 제 2의 잔 다르크는 원본 잔 다르크가 신성성 대결을 벌여 퇴치했는데 이번에는 남자 잔 다르크가 나타났고 다음에는 잔 다르크가 죽은 이후 죽은 잔 다르크는 가케무샤였다고 주장하며 나왔는데 남자 잔 다르크는 영국군에 잡혀 강물에 던져졌고 사후 잔 다르크는 샤를 7세가 퇴치했다. 


    더 많은 잔 다르크가 음지에서 무수히 암약했음은 물론이다. 민중에게 발언권을 주면 위태롭게 된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샤를 7세에게는 바이럴 마케팅이 필요했다. 연기력이 탁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잔 다르크는 궁예의 관심법과 신통력으로 무장하고 화려한 이벤트를 벌여서 단 번에 스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섯 차례의 연이은 혈전에서 모두 승리했다.  


    중요한 것은 잔 다르크가 주장한 생뚱맞은 논리였다. 샤를 7세가 정당한 왕위계승권을 가졌으므로 프랑스왕이 되는 게 아니라, 잔 다르크 한 사람에게만 특별히 전달된 신의 의사에 의해 샤를 7세가 프랑스왕으로 지목되었다는 게 잔 다르크의 논리였다. 샤를 7세에게는 이 논리가 아킬레스건이 된다. 교황이 해석권을 가진 신탁이 양치기 소녀에게 내려졌다?


    이는 민중이 입소문으로 왕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민중의 권력의지가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제 2, 제 3의 잔 다르크 속출에 골머리를 앓던 샤를 7세는 영국군에 사로잡힌 잔 다르크를 구하지 않았다. 잔다르크 덕에 이미 왕위에는 올랐고 영국군이 잔 다르크를 처리해 준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왕에게 민중은 껄끄러운 존재다.


    오늘날 지식인이 민중을 이용하는 패턴도 샤를 7세와 정확히 같다. 필요할 때는 손을 벌리고 상황이 종료되면 즉각 배신한다. 어쨌든 잔 다르크에 의해 민중은 역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봉건제도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귀족가문의 위신과 혈통과 권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민중의 잠재력을 동원하려는 시도는 이후로 계속 나타났다. 


    민중을 동원한다면 어떤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어쨌든 잔 다르크의 출신지인 동레미 마을은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얻었다. 민중은 평판공격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었다. 잔 다르크가 샤를 7세의 평판을 높여준 거다. 평판을 지키려면 민중에게 아부해야 한다. 그것이 민족주의다. 민족주의란 자신의 평판을 높이기 위해 민중에게 아부하는 책략인 것이다. 


    나폴레옹 역시 교활한 수법으로 민중을 동원하여 합스부르크가의 요란한 결혼동맹을 토막토막 끊어놓았다. 역시 평판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로지 결혼을 잘해서 평판을 높이는 방법으로 권력을 쥐었다. 문제는 영토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는 거. 부르봉 왕가와 나폴레옹이 합스부르크가의 약한 고리를 찌르고 들어간다. 민족주의란 평판공격이다. 


    ‘야 이 스페인 촌놈들아. 니들은 임금 구경이나 해봤니?’ 본 적도 없는, 어딘가에 있기는 있다는,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임금을 숭상하던 스페인 촌넘들은 뻘쭘해졌다. 이 수법 먹힌다. 잔 다르크 이후 언제든 민중을 동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프랑스 역대 왕들은 귀족의 특권을 사정없이 깎아버렸다. 귀족이란게 원래 전쟁에 군대를 동원하는 수단이다.


    국왕이 삼부회를 열어서 민중의 직접동원이 가능하므로 중간고리 역할인 귀족의 존재는 필요없게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민족주의를 발명한 사람은 주희다. 중화와 만이를 차별하여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던 한족을 구원하고자 고려에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한족+고려의 유교동맹을 만드는 논리가 주자학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민족주의는 당근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족이라는 것은 민족 정체성의 희미하다. 중국 산동지방 사람과 사천지방 사람의 차이는 북경사람과 서울사람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 북경사람 입장에서는 사천사람이나 상해사람보다 서울사람이 훨씬 친근한 것이다. 서울사람은 북경에 가서 3개월이면 적응하는데 귀주성이나 운남성 사람이면 3년이 가도 적응을 못한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문화혁명 이후 보통화가 보급되어 달라졌겠지만 19세기 기준으로 보면 그러하다. 주희의 민족주의 논리로 보면 고려도 유교를 배우면 중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송과 고려는 친해졌다. 어쨌든 몽골은 노골적으로 민족을 차별했다. 그들은 고려와 합작하여 거란의 씨를 말렸다. 이후 거란족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다음은 고려를 역사에서 지워버릴 차례다. 


    과연 몽골은 고려인을 모조리 죽여서 유전자를 없앨 것인가? 몽골은 고려를 없애지 않았다. 왜? 고려의 평판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평판이 높은 민족은 이용가치가 있다. 왕위계승전쟁 와중에 궁지에 몰린 쿠빌라이는 고려 사신을 우대하며 평판이 높았던 고려를 이용했다. 명성이 높은 고려가 쿠빌라이 편에 섰다는 사발통문이 뜨자 단번에 전세역전이다. 


    쿠빌라이의 입지는 탄탄해졌고 고려는 보답을 받았다. 고려는 높은 평판이야말로 민족의 생존을 담보하는 열쇠임을 깨달았다. 신부족의 지위를 중요시하는 유목민들의 전통과도 관계가 있다. 고구려의 왕족 소노부와 왕비족 절노부가 특수한 관계를 이룬 것과 같다. 말하자면 고려는 몽골의 절노부가 된 셈이다. 고려가 평판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자를 고리로 한족과 연대하여 문명국가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고, 하나는 단군을 발굴하여 민족 정통성을 주장하는 방법으로 북방 유목민과 대등해지는 것이다. 몽골은 푸른 늑대의 후손이자 황금씨족을 주장하므로 고려는 동굴에서 쑥버무리와 마늘빵을 먹고 곰이 인간이 되었다는둥 하며 하여간 이야기는 하나 건졌다. 뭐 필요하면 조달하는 거다. 


    졸지에 고려는 공자도 한 수 접어주었다는 기자의 후예가 되었는가 하면 단군의 후손이 되었다. 근거는 중요하지 않다. 맞대응이 중요하다. 중국 한족이 공자로 연대가능성을 타진하면 기자로 받고, 몽골이 황금씨족을 강조하면 단군으로 받는다. 기자가 한족인지 조선족인지는 상관없는 거다. 연대가 본질이다. 무너지는 북원에 붙을까 새로 뜨는 명에 붙을까?


    명에 붙어야 한다는건 결과론이다. 페스트가 유행하자 몽골이 고원으로 잠시 후퇴했을 뿐 그때까지 한족이 몽골을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전투력 있는 북원에 붙어야 한다는 최영의 판단이 틀린게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명이 이겼다. 명에 붙자는 이성계의 판단도 틀린게 아니다.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이 강성하면 기자가 뜬다. 


    북원이 강성하면 단군이 뜬다. 두 개의 카드로 적절히 균형을 유지한다. 어쨌든 정통성이 있어야 평판이 높아지고 평판이 높아져야 민족의 생존이 담보된다. 이후 명과 사이가 나빠지고 좋아지는 정도에 따라 단군이 떴다가 기자가 떴다가 결국 청이 득세하면서 둘다 흐지부지해졌다. 실학은 고증을 중요시하는데 단군이고 기자고 간에 무슨 근거가 있겠는가?


    중요한 건 집단의 평판이다. 그 평판에 민중의 바이럴마케팅 역량이 기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민족주의는 인류의 이동기술, 전쟁의 양상, 민중의 동원가능성, 종교의 흥망에 따라 대두되고 사그러졌다. 어쨌든 민족은 하나의 집단적 의사결정단위로 기능했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민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들어 새삼스레 민족이 뜨고 있다. 


    민중의 동원가능성은 여전히 핫한 이슈가 된다. 특히 페북족의 득세는 괄목상대할 만하다. 전통의 구글족과 아마존족도 무시할 수 없다. IT족으로 인류는 새롭게 뭉치며 재편되고 있다. 영국은 엉뚱하게도 브렉시트를 터뜨려 제국에서 민족으로 퇴행하는 중이다. 제국은 민족을 넘어서는 대규모 의사결정단위다. 그런데 도로 민족으로 쪼그라들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자동이탈이다. 이제 영연방이라는 타이틀을 고수할 근거를 상실한 셈이다. 이에 반해 마크롱은 EU민족 깃발을 세워 부흥을 꾀하고 있다. 영국이 떨어져 나가자 EU를 프랑스가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은 전범국가라서 평판이 낮다. 국제사회 평판이라면 아무래도 영국과 프랑스인데 영국이 빠지면 프랑스 독주다. 


    민족이 유전자에 근거한다는 믿음은 넌센스다. 분명히 민족은 있다. 인도는 종교나 언어가 아니라 관습이 민족을 규정한다. 카스트는 힌두교를 넘고 있다. 기독교를 믿는 인도인도 카스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언어를 쓰든 상관없이 인도인의 관습을 따르면 곧 인도인이 되는 것이다. 인도의 공용언어가 18개인데도 말이다. 


    무슬림도 그 자체로 민족 역할을 한다. 세분하면 수십 개 민족으로 갈리지만 투르크족, 이란족, 아랍족이 유명하다. 시아파 수니파가 민족이 된다. 시아민족, 수니민족으로 불러야 할 판이다. 민족은 민중을 정치에 동원하는 장치다. 종교든 파벌이든 민중을 동원하면 민족이다. 그러나 반드시 반대급부를 지불해야 한다. 얻는 게 있으면 그만큼 잃는 게 있는 거다. 


    나폴레옹은 민중을 동원했지만 되레 각국의 민족주의만 자극했다. 나폴레옹이 민중을 동원하자 다른 나라도 맞대응을 해서 민중을 동원한 것이다. 혁명은 어디가고 민족주의가 대세로 되어버렸으니 역사의 퇴행이다. 중요한 건 집단의 평판이다. 철 지난 민족주의는 극복해야 하지만 한국인의 평판은 높여가야 한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면 평판이 낮아진다. 


    민족주의를 억누르면 평판이 높아진다. 한국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면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진다. 외국신문에다 한국을 홍보하면 되레 한국의 이미지가 추락한다. 이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오세훈의 '하이서울.' 이런거 창피한 거다. 쪽팔리는 줄 알아야지. 수준을 들키는 거다. 그러나 너무 민족 정체성을 잃어도 곤란하다. 그 경우에는 남들이 우습게 본다. 


    자기통제가 안 되면 외부에서 비웃는다. 한중일이 서로 으르릉대고 있으면 평판이 낮아진다. 평판을 높여야 집단이 살 수있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민족을 앞세운 영국의 평판은 망했고 민족을 억누른 프랑스의 평판은 높아졌다. 촛불과 문재인이 한국의 평판을 높이자 일본, 중국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민족을 눌러 민족의 체면을 세워야 한다.


    양반은 자기 자식을 '돈아'라고 부른다. 돼지라는 말이다. 자기 자식을 옥동자라고 부르면 안 된다. 민족을 낮추는게 제대로 된 민족주의다. 문재인의 가야사 부활 의제에 도종환의 환빠논란까지 겹쳐 민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타이밍이 되었다. 신라 때까지만 해도 민족개념은 없었다. 낙랑은 중국과 모피를 거래할 무역거점으로 고구려도 필요로 했던 거다.


    가야는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했다. 고대국가의 국가정체 유지수단은 무역이었던 것이다. 화폐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관리파견과 조세제도를 통한 국가유지는 기술적으로 무리였다. 위진남북조 혼란기에 국제무역망이 깨져 낙랑과 가야가 망하자 왕들은 관리를 파견해 영토를 직접 지배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가야가 신라에 비해 낙후했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땅덩이가 커야 좋다거나 제국이 좋다는 건 환상이다. 관료제도가 좋은 제도인 것은 전혀 아니다. 제국은 덜 만들어진 국가체제다. 전쟁 때 군대를 보내도록 조약을 맺는게 제국이다. 오스만제국은 예니체리를 이용하여 헝가리와 러시아와 그리스를 털어먹는 방법으로 국가정체를 유지했다.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이 안 되면 유지가 안 되는게 제국 시스템이다. 


    청나라 말기에도 세수의 절반은 운반도중에 사라졌다. 봉건시대에 관리를 파견하여 세금을 받는다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무역을 통해 항구가 없는 내륙지방에 하사품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연맹을 지배하는 가야의 도시국가 체제도 나름 진보한 방법이다. 가야의 쇠퇴는 국제무역망이 깨진 결과라는 점에서 역사 퇴보이다. 


    물론 곧 대체재를 찾게 되지만 말이다. 어떻든 적의 침략에 민중을 동원할 수요가 생기고 그 경우 평판을 고리로 해서 민족은 등장하게 되어 있다. 민중은 입소문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민중은 그 방법으로 궁물의당을 매우 공격하고 있다. 이는 민중의 권력의지다. 엘리트 한경오가 그러한 민중의 권력의지를 비난한다면 졸렬한 짓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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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 담론의 요체는 잠재한 민중의 역량을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민중동원 필요없어!' 하는 식이라면 엘리트의 오만입니다. 동원할 수 있으면 최대한 동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민중들에게 아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중들에게 아부하면 환빠가 되고, 민중을 경멸하면 지식인의 독선이 됩니다.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은 가난한 민중이 세금을 낼 돈도 없지만 그래도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으니 나름 애국자라는 말입니다. 민중은 평판과 명성의 방법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가 좌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레벨:3]공감

2017.06.13 (09:15:26)

민족이란 개념이 재정립 하게 되었읍니다.  숲을 보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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