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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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8571 vote 1 2009.01.05 (23:09:40)

오늘날 진보진영의 큰 잘못은 거짓말을 너무 쉽게 한다는 거다. 말로 이기고 논쟁으로 이기려 들 뿐, 상대방을 심복시키려고는 하지 않는다. 중간지대에서 관망하는 사람들은 ‘저 양반 말 잘하네’ 하고 웃을 뿐 공감하지 않고 동조하지 않는다. ‘그래 저런 사람도 있어야 돼.’ 하고 수긍할 뿐 적극적으로 진보에게 권력을 위임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왜? 진보가 본질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은 위임되는 것이다. 유권자가 ‘내 것’을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심판이 체조선수의 연기를 보고 점수를 주는 것은 내것을 주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는 무대 위에서 겨루는 여야 중의 어느 한 쪽에 점수를 매겨주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쥔 것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이건 차원이 다르다.

진보 쪽에 표를 주는 것은 자선사업 하는 거 같고, 보수 쪽에 표를 주는 것은 로또를 사는 느낌이다. 2007년 겨울 한국인들은 의심스러운 자선단체에 돈을 내느니 꽝이 확실한 로또를 산 것이다. 정동영의 자선사업은 믿기 어렵고, 비록 꽝일지언정 이명박의 로또는 진짜(?) 로또였기 때문이다. 그들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대중의 이기심은 인간의 본성이다. 긍정하고 풀어가야 한다.

세상사는 결국 포지셔닝 게임이다. 진보가 말은 잘하니 ‘앞에 나와서 말이나 하며 껍죽대는 역할’로 포지션이 한정되고 만다. 그 역할을 할 때 대중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귀염을 받지만,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려 하면 깊은 태클 들어온다. 대중은 결국 진보를 배반한다. 멍청한 대중을 나무랄 일인가? 아니다. 역시 긍정하고 풀어가야 한다. ‘대중은 언제나 옳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대중의 판단이 옳은 것은 전혀 아니다. 대중의 인간다운 본성을 긍정함이 중요하다.)

말로 이겨서는 필요없고 본질에서 이겨야 이긴 거다. 선거는 내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다. 유권자가 진보를 ‘내편’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심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위엄을 보여야 한다. 대담한 구상이 필요하다. 오바마의 담대한 구상도 결국 인종주의라는 본질을 건드린 것이다.

인종문제 나오면 당연히 공화당에 유리하다. 매케인은 악착같이 인종주의로 선거판을 가져가서 백인표를 싹쓸이했다. 전술만 본다면 비열하게 인종문제를 건드린 매케인이 이긴 거다. 그러나 그 인종문제라는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본질을 건드렸기 때문에 오바마는 대선에 이겼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역문제 나오면 당연히 한나라당에 유리하다. 그러나 DJ는 지역등권론으로 이겼고 노무현은 지역주의 해결을 내걸어 이겼다. 불리해도 정면승부 해야 한다.

진보가 생태를 이야기하고, 환경을 이야기하고 지구 온난화를 거론해봤자 그것으로 주목을 끌고 주의를 환기시킬지언정 위엄을 보일 수는 없다. 틈새시장 개척에 불과하니까. 변방에서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니까. 곧 죽어도 중앙으로 치고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본질인 지역문제를 정면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창원, 울산 등 공장이 많고 조직된 노동자 세력이 있는 경상도에 근거를 둔 민노당은 어느 면에서 지역문제의 수혜자(꼭 혜택을 보았다고 말하기는 그렇다 해도 민노당이 방관자 입장인 것은 사실이다.)다. 당연히 침묵이 맞고, 민주당은 호남당으로 주저앉아 확실한 지역당이 되었기 때문에 지역주의를 거론하기엔 민망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비겁은 계속된다. 죄악은 계속된다. 그들의 비겁한 침묵이 끝나기 전에 우리가 바라는 졿은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

본질은 뭘까? 본질은 경쟁력이다. 지금 무엇을 경쟁하고 있는가? 지역주의의 본질은 독재자 박정희의 지역 편중개발이다. 정치의 힘은 결국 돈이다. 돈을 한쪽에만 몰아준게 지역주의 본질이다. 어쨌든 김대중과 노무현은 지역주의라는 본질을 정면으로 건드려서 정권을 얻었다. 정치권을 떠나 더 큰 스케일로 보면 생산력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진보가 노상 혁명을 말하지만, 본질로 보면 ‘혁명의 시대’라 불리는 20세기에 진보가 한 일은 교육의 보급이었다. 교육이 가장 절실했던 중국과 러시아에서 가장 큰 변혁이 일어났다. 교육이 진보의 경쟁력이다. 진보는 교육을 ‘생산’한 것이며 자본가가 공장에서 생산한 신발보다, 진보가 학교에서 생산한 지식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 역사의 균형추가 진보쪽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계급이동이다. 신분상승이다. 사회가 배운 자와 못배운 자로 갈렸던 계급시대에 교육은 가장 큰 생산성이었다. 그러나 교육이 충분히 보급된 지금에 와서 교육은 더 이상 진보의 전매특허가 될 수 없게 되었다. 교육이 단지 취업기회를 보장하는 라이선스 장사에 불과한 형편으로 전락한 지금 황당하게도 보수가 더 교육문제에 목청을 높이게 되었다.

지금 학교는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전락했고 교장은 공장장이 되었다. 학교를 공장으로 보는 것이 딴나라의 교육이념이다. 이 나라에 진보의 진정한 스승이 없다보니 교육이 이렇게까지 몰락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세기다.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교육만으로 부족하고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진보는 무엇보다 도덕적 우위, 지적인 우위, 생산력의 우위라는 세가지 지점에서 저들보다 우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시대에 진보는 세 가지 지점에서 확실히 우위에 서 있었다. 인터넷 선점이 컸다. 인터넷의 생산성이 진보의 생산성이었고 인터넷의 희망이 진보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거품이 꺼진 지금 우리는 세 지점에서 저들보다 우위에 서 있지 않다.

서구라면 모든 면에서 첨단에 이르러 있으므로 생산현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진보의 편이다. 왜인가? 머리 나쁜 사람은 생산력 경쟁에서 당연히 뒤지게 되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경쟁하면 당연히 머리좋은 진보가 이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후진국은 다르다. 생산성이 학문에서 나오지 않는다. 후진국에서는 생산력이 독재자의 지령, 관료의 밀실에서 나온다. 연고와 정실, 부패와 뇌물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후진국의 진보는 생산력에서 우위에 설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무기, 곧 생산력을 당연한듯이 적들에게 내주고 자청해서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되었다. 후진국의 관습에 익숙해 진 나머지 생산력은 당연히 보수의 몫으로 돌리고 감히 그 안으로 치고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길 수 있겠는가?

작금의 경제난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경제가 보수의 독점영역일 이유는 없다는 거다. 미네르바의 활약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제는 미네르바가 확실히 우리편인가이다. 미네르바가 강만수를 반대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민노당과 미네르바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네르바가 오늘 스스로 고백했듯이 미네르바야말로 좌파가 노상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의 첨병이 아니었던가? 대중이 지지하는 미네르바를 우리편으로 붙잡아놓기 위해서는 우리가 변해야 한다.

2002년에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원인은? 당시 인터넷은 처음 생겨난 것이었다. 다른건 몰라도 인터넷 분야에서는 세계와 같은 출발선상에 나란히 섰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었다. 공정하게 경쟁하면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진보가 일정부분 선점할 수 있었다.

필자가 구조론을 말하는 이유도 그렇다. 생산성 면에서 우리가 앞설 수 있다. 우리가 더 똑똑하기 때문이다. 창의를 통하여 지식이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대담한 구상이 필요한 때다.

부동산 폭락을 두고 좌파들은 제철 만난듯이 떠들어댄다. ‘보라! 저것이 바로 우리가 진작에 예고한 신자유주의의 최후다!’ 하고. 그러나 몇 십년 만에 겨우 한 번 맞춘 거다. 그동안 계속 틀려왔다.

진보는 진실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가 하는 말은 다 맞아야 한다. 그러나 소련몰락-냉전해체 이후 진행된 변화의 흐름을 하나도 예측하지 못했다. 모든 환경이 진보가 주장하는 반대로만 흘러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집사면 거지된다'고 진실을 말하자 오히려 부동산이 폭등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는 그만큼 신용을 잃은 것이다. 왜? 그동안 예상이 계속 틀려서다. 참여정부 들어서면 당연히 집값 떨어질줄 알았는데 유동성 과잉에 치여서 실물에서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물에서 강하지 못했던 거다. ‘경제는 당연히 저쪽이니까 우린 그딴거 몰라도 돼.’ 그러면 안 된다. 우리도 실물을 알아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진보는 학계를 끼고 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그 똑똑하다는 진보가 왜 초등학교 학력의 정주영 보다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느냐다. 정주영의 많은 현찰은 그의 판단이 상당히 옳았음을 증거한다. 미네르바도 예상이 맞았기 때문에 발언권을 가지는 거다. 한 번 옳아서 안 되고 계속 옳아야 한다. 그러려면 진보의 본래인 과학성-합리주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합리주의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합리주의란 문명을 인류의 공동작업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그냥 ‘내 말이 옳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선은 곤란하다. 제자백가가 백화제방으로 제각기 목청을 높이는 것은 합리주의가 아니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지 말고 인류 지혜의 총화로 나아가야 한다. 인류의 집단지능을 긍정하고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흐름을 일구어야 한다. 위대한 소통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녹색이니, 생태니, 생명이니, 대안 공동체운동이니 하는 일각의 각개약진들은 합리주의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 변방에서 기묘한 짓으로 시선을 끄는 거다. 재주를 부리며, 구색을 맞추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일단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 비난받지도 않지만 결정적으로 위엄을 얻지 못한다. 그들이 탄 배는 대승의 큰 배가 아니라 소승의 작은 배이기 때문이다. 합리주의는 대승이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합리주의-과학성에 기반한 대담하고 큰 구상을 본 적이 없다. 과학의 밝은 빛으로 나와야 한다. 인류의 공동작업 개념이 아니면 안 된다. 밑바닥에서 시스템의 건설이 아니면 안 된다. 구석에서 주저앉아 틈새시장 모색하고 작은 점방 열지 말자는 거다. 당차고 대범한 구상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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