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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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0154 vote 0 2009.01.13 (22:16:01)

신자유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진보는 비겁하고 보수는 야비하다’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다’는 식의 환원주의 논법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과거 참여정부 때의 딴나라 악플과 마찬가지로 비이성적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그런 구호를 써먹을 수는 있겠지만, 진지하게 그런 착각에 빠져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희망은 없다.

지금 상황은 교착되어 있다. 그 따위 비겁하고 무책임한, 어리광 가득한 사고방식으로 난국의 타개는 없다. 활로의 개척은 없다. 비전의 제시도, 대안의 강구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도 불가능이다. 그저 뒤에서 구시렁거릴 뿐. 언제까지 그 따위로 살텐가? 투덜이 스머프는 이제 졸업하자.

문명의 본질은 생산력이다.

인류의 모든 전쟁, 모든 마찰, 모든 변동이 거시적으로 보면 생산력 향상 사이클과 일치한다. 문명의 본질은 생산력이며 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거기에 연동되어 일어난다. 종속변수다. 그러므로 생산력이라는 본질을 논해야한다.

구조론의 관점에서 보면 문명은 거시적으로 보아서 다섯 가지 큰 사이클이 존재한다. 몇 천년 단위의 큰 주기와, 몇 십년 단위의 짧은 주기가 공존하며 이토록 복잡한 역사의 흐름을 연출해낸다.

첫째는 발견시대다. 18세기 지리상의 발견을 예로 들 수 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거기서 금을 발견하고, 전기의 원리를 발견한다. 발견이 가장 큰 생산력의 혁신을 가져온다. 그 다음은 발명시대다.

앞서간 맥스웰과 패러데이가 전기의 원리를 발견하면, 뒤에온 에디슨과 테슬라가 그 전기의 원리를 활용하는 전구와 변압기를 발명하는 식이다. 중요한 것은 이 순서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앞에서 발견해줘야 누가 뒤에서 발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흐름이 있다. 일정한 법칙이 있다.

시대정신이 있고 그 시대의 트렌드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지만, 너의 의견과 나의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집을 피울 일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가 시대의 흐름과 맞는지 살펴야 한다.

19세기는 발명의 시대였다. ‘발명될 것은 다 발명되어버려서 이제 더 발명될 것이 없다’는 푸념도 그때 나왔다. 너도나도 발명에 혈안이 되어서 미국에서는 망치로 박는 못 하나만으로 3000가지가 넘는 특허가 나왔을 정도였다.

발명특허 한 두개는 가지고 있어야 신사대접을 받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발명이라는 로또에 집착해선 안된다. 시대가 바뀌었다. 발명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물론 지금도 삼성이나 LG에서 신제품 휴대폰이 발명되고 있지만 이건 다른 거다. 소발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20세기에 두각을 보인 일본과 독일의 제조업은 무엇인가? 세 번째 단계는 극대화 단계다. 이 시기에는 기존에 발명되어 있는 것을 어떤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방법으로 생산력을 창출한다. 미국은 거대주의를 숭상하니 우주로 로켓을 보낸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멀리 보낸다.

일본은 작은 것을 숭상하니 작은 워크맨을 만들고, 독일은 장인정신을 숭상하니 금속가공에 골몰한다. 스위스의 정밀공업이나 프랑스의 패션산업이나 다 자기 방식의 어떤 주제가 있고 타이틀이 있다. 각자 자기위치에서 나름대로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중국은 안 되니 인해전술로 밀어붙인다.

20세기는 그런 시대였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이미 극한에 도달해 버리면 더 나아갈 수 없다. 독일은 아우토반을 잘 달리는 가장 좋은 차를 만들었고, 일본은 가장 작은 전자제품을 만들었고, 미국은 가장 멀리까지 우주선을 보냈고, 각자 해볼거 다 해봤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극점을 찍어버렸다. 끝났다.

네 번째 단계는 구조화의 단계다. 구조화 한다는 것은 밖으로 이미 극점을 찍어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으니 아래를 쥐어짜는 것이다. 대기업은 중견기업을 쥐어짜고 중견기업은 하청업체를 쥐어짠다. 이런 구조가 피라미드처럼 계속 내려간다. 다단계 사업과 비슷하다.

문제는 이런 쥐어짜기가 생각보다 많은 생산력의 향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예상 외로 더 많이 착취할 수 있다. 이게 문제다. 착취가 불가능해야 착취를 안할텐데 그게 가능하니까 문제다. 이런 유머가 있다. 손으로 오렌지 짜기 대회에서 한 거인이 오렌지를 쥐어 짜서 한 그릇의 즙을 너끈히 받아내었다.

그런데 체구가 마른 한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그 쥐어짜고 남은 바싹 마른 찌꺼기를 가지고 조막만한 손으로 쥐어짜는데 다시 한 그릇의 즙이 너끈히 나왔다. 그가 챔피언이 되었다. 그 사람의 직업은 세무서에서 일하는 세리였다고 한다.

그런 식이다. 농부가 500평을 경작하면 다섯 식구를 먹일 수 있다. 대기업은 하청기업에 요구한다. 혼자서 5000평을 경작하라. 대신 경운기를 지원하겠다. 이번에는 한술 더 뜬다. 혼자 5만평을 경작하라. 대신 트랙터를 지원하겠다. 아니 50만평을 경작하라 대신 종자를 뿌릴 비행기를 지원하겠다.

이런 식으로 터무니없이 착취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신 그만큼 많은 농부는 땅을 잃고 고향에서 쫓겨난다.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인류의 생산력이 구조론의 다섯 단계 중 네번째 단계에 도달한 결과로 나타나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생산력의 혁신을 가져올 발견도 발명도 극대화도 없으니 구조화로 몰리는 것이다. 구조화로 인한 생산력의 향상이 분명히 있다. 무엇인가? 신자유주의가 나타난 것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효율성이 일정부분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오렌지 짜기 시합에서 그 짜고남은 찌꺼기에서 즙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의 생산력 향상에 실패한 미국의 거대자본이, 발견과 발명, 극대화에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손쉬운 방법인 구조화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착취피라미드를 가동한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고약하다.

필자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인간의 이기심에서 나온 약은 수가 아니라 인간의 무능에서 나온 실패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사악함이 아니라 무능의 결과다. 그리고 역사는 필연적으로 이 단계로 가게 되어 있다. 왜? 더 이상 발견, 발명이 나오지 않으니까.

이미 경작할 토지는 바닥났고 인구는 늘대로 늘었다. 신대륙은 없다. 신발명은 없다. 인류는 더 나아갈 곳이 없다. 최근에 발명된 신통한 물건은 세그웨이 뿐이다. 그거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대박 아니었다. 이런 식이다. 19세기처럼 자고 나면 새로운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에디슨 혼자 다 만들어내는 그런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인정해야 한다. 겸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촌 인류는 이만치 실패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불행한 것은 악한 마음을 품고 신자유주의로 나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이 문명이 더 이상 갈 길이 없으니 신자유주의라는 벼랑끝에 몰려서 우왕좌왕하게 된 결과다. 그 벼랑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무리가 길을 간다. 앞에 큰 강이 길을 가로막는다. 강을 건널 배가 없으니 강변에 몰려서 와글와글 떠들어댄다. ‘이게 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강 때문이다’고 외치며 화를 낸다. 그런 다고 답이 나오겠는가? 오직 생산력 향상이라는 돌파구로만이 그 강을 건널 수 있다.

냉전시대에는 차라리 좋았다. 소련이라는 큰 적이 있으니 함부로 밑에 있는 식구를 쥐어짜지 못한다. 그러나 냉전해소로 적이 없어지니 마음놓고 쥐어짠다. 미국은 일본을 짜고, 일본은 한국을 짜고, 한국은 중국을 쥐어짠다.

무엇인가? 이 비극적인 구조화의 시대에 그 착취피라미드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향한 폭주를 멈추게 하려면 가장 위에 있는 대기업을 말려야 한다. 재벌이 하청기업을 착취하니, 그 하청기업이 다시 재하청기업을 착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맨 앞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누가 있는가? 그 자가 가장 나쁘다. 미국이다. 미국이 모든 재앙의 주범이다. 그렇다면 말려도 미국을 말려야 한다. 그런데 미국을 갈구기는 엄두가 나지 않고, 미국에게 쥐어짜임을 당해서 손에 쥔 사탕마저 빼앗긴, 만만한 김대중과 노무현을 나무란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보수는 야비하고 진보는 비겁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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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있다. 희망은 있다.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 난국의 타개는 가능하다. 꿈꾸기를 멈추어선 안 된다. 그러나 우리 과학정신으로 무장하고 합리주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어리광 가득한 ‘이게 다 누구 때문이야’라는 주술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문제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덤태기 씌우기 환원주의 논법 버려야 한다.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조화로 인하여 착취가 일어났으므로 구조적 접근으로 풀어야 한다. 또다른 생산력의 혁신을 끌어내야 한다.

18세기 발견의 시대, 19세기 발명의 시대, 20세기 극대화의 시대, 21세기 구조화의 시대, 그리고 다음에 올 또다른 시대가 있다. 다른 시대에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대응해야 한다. 구조화의 시대에는 거기에 맞는 구조화된 형태의 최적화된 사회구조가 있는 것이며 그 방법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좌파들은 어떤가? 그들이 말하는 혁명은 19세기 발명 아이디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좋은 세상을 ‘발명’하려고 한다. 에디슨이 전구 만들듯이 신통한 물건을 혼자서 뚝닥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발명의 시대는 끝났다고. 지금은 구조화 시대이므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역사의 필연에서 비롯된 이 문명차원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사회 시스템의 최적화 방법으로 그 압박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몰리게 되어 있는 그 압박을 고루 분산시켜낼 수 있다고. 모두가 행복하게는 할 수 없지만 모두가 불행해지지는 않게 할 수 있다고.

선과 악의 논리, 감정을 자극하고 동정심에 호소하는 수법, 구세주를 기다리고 기적을 바라듯이 혁명적인 한 가지 신통한 방법에 골몰하는 태도를 버리는 대신, 인내심을 가지고 끈덕지게 대응하며 조금씩 구조를 개선하며 전 인류가 참여하는 집단지능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과학이고 합리주의다.

왜 포기하는가? 왜 과학을, 합리주의를, 시스템을, 전략을, 최적화를 포기하고 무모하기 단기돌진 하여 역사의 격랑에 치어 희생되려고만 하는가?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노무현이 포기하지 않고 있듯이.

http://www.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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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13]길리안

2009.02.10 (12:58:12)

과학-기술적으로 본다면 바이오(생물) 쪽에서 돌파구를,
사회-문명적으로 본다면 교육을 통한 사회-문명 효율의 향상 및 분배의 합리화 등이 일단 시급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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