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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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271 vote 0 2010.12.28 (15:53:36)

 


  안타까운 천정배


  천정배가 이번에 속 시원한 말을 해주었다.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정치인이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지면, 실수를 저질러 욕을 먹든 혹은 잘해서 칭찬을 받든 무조건 이익을 보는 경우가 있다.


  감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런거 본능적으로 안다. 한나라당이 천정배의 발언을 트집잡아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지금은 결국 천정배의 이득으로 된다. 그런 포인트가 있다. 먹어주는 지점이 있다.


  유권자는 기본적으로 거르기 모드와, 키우기 모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거르기 모드가 작동할 시점에는 작은 실수로도 노인발언의 정동영처럼 아웃되고, 키우기 모드가 작동할 때는 BBK의 이명박처럼 뺀질뺀질 살아남는다. 


  이런건 말 안 해도 척 보면 아는 거다.


  ###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크게 망가진 정치인이 천정배다. 구조론적인 센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구조를 읽을줄 알아야 한다. 정치판에서는 김영삼처럼 무뇌임에도 불구하고 감으로 정치해서 성공한 경우가 많다. 반면 천정배처럼 좋은 머리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도 많다. 구조의 역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건 뭐 뻔히 알고도 당하는 거다. 늘 하는 말이지만 역설은 드물게 나타나는 특이현상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상식이다. 정치판에서는 특히 역설이 크게 작동한다. 정치판에서는 늘 새옹지마가 일어난다. 화가 굴러서 복이 되고, 복이 굴러서 화가 된다.


  그러므로 일정한 포지션의 우위를 이룬 다음에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도 대박을 맞는다. 단지 주워먹기만 해도 성공할 수 있다. 그건 너무나 쉬운 거다. 그런데 이 쉬운 것을 해내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다.


  천정배는 진작에 좋은 포지션을 차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계승자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 그냥 입만 벌리고 있어도 노다지가 굴러들어올 판인데도 요리조리 빠지며 찾아오는 대박을 잘도 피하고 있다. 답답해서 미칠 일이다.


 천정배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다. 지금 이 상황 1년 전, 혹은 2년 전에는 예측 못했느냐고? 나는 예측했는데 당신은 왜 예측 못했느냐고. 이거 쉬운 거다.


  천정배는 일찍이 노무현 대통령을 발굴해서 떴다. 좋은 포지션을 차지한 거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말고 기다리기만 하면 대권이 굴러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신경증이 있는 사람처럼 불안해 하며, 찾아오는 복을 요리조리 피해다녔다. 왜? 무엇이 그리 초조하단 말인가?


  최근에는 진보 이미지 얻겠다고 FTA 반대하고 그러는데 이거 최악이다. 천정배는 이미 진보표를 얻었는데, 그걸 더 얻어서 어디에 쓰겠다는 말인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보완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바보인가? 얻은 것은 놔두고 없는 것을 챙겨라! 이건 1+1=2와 같은 초보적 상식이다. 그것도 못하나?


  단지 경쟁자가 스스로 몰락해버렸다는 이유만으로 뜨는 데가 정치판이다. 보라! 한나라당은 지금 스스로의 힘으로 망했고, 민주당 고참들은 세월이 흘러 삭았고, 친노는 지자체로 대거 들어갔고, 지금 무주공산이다. 그냥 숟가락만 들어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천정배는 정동영 가방들이나 하고 있는가?


   ###


  전투에서는 곧 죽어도 자신이 유리한 지점에서 싸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적지에서 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조임금의 추궁을 받아 백의종군을 당했다. 원균은 권율장군에 곤장 50대 맞고 무리하게 적지에서 싸우다 전멸했다.


  이순신 장군은 다시 3도수군통제사가 되었지만, 무리하게 싸우지 않고, 적을 유인하며 계속 후퇴하여 울돌목까지 물러갔다. 여수에서 울돌목까지 계속 후퇴해온 것이다. 울돌목은 13척의 배로 싸울 수 있는 유리한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유리한 지형에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한 것이다.


  전쟁은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보통은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에라이 너죽고 나죽자’ 하고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여 용감하게 전사하고 만다. 그거 자랑이 아니다. 그 스트레스 이겨내야 한다.


  일부러 사지에 들어가서 싸우는 바보짓을 할 필요는 없다. 좋은 지형을 선점한 다음에는 적이 그 포위망 안으로 들어올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적이 제 발로 찾아온다. 그때 격파하면 된다. 대권을 잡는데 10년인들, 20년인들 못 기다리겠는가?


  사마의는 제갈량의 거듭된 유인에도 불구하고 말려들지 않았다. 적지에 뛰어들면 질 것이 뻔한데 거기 왜 제 발로 들어가는가 말이다. 이 정도는 초딩도 할 수 있다. 천정배는? 초딩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했다.


  정동영을 보라. 2007년에 부동산 폭등으로 경제가 주목을 받으니 이명박 따라하기로 성장타령 하다가, 최근에 역풍이 일어나 복지가 뜨니까 진보를 외치며 왔다리 갔다리 한다. 자신의 유리한 지형을 모두 적에게 내주고 불리한 지형에서 싸우고 있다. 이게 망가지는 공식이다.


  정동영도 2007년에 뻘짓 하지 않고 의리만 지켰으면 지금 유력하다. 그냥 가만이 있기만 해도 되는데 그걸 못 참는 거다.


  공식은 나와 있다. 호남표 지키고 영남표 가르면 된다. 쉽다. 2002년에 천정배는 이 두가지를 차지했다. 대권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이 상황에서 버티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그건 정동영, 추미애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정동영, 추미애, 천정배 세 사람 중 버티는 사람이 먹는 상황이었다.


  현실은 어떻게 되었는가? 추미애가 먼저 조급증을 드러냈다. 자멸을 선택한 것이다. 정동영 역시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며 매를 벌었다. 지금 개성공단 방문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조급증이다. 그냥 가만 있으면 되는데 그것도 못하나? 정동영은 끝났다고 본다. 그 이유는 가만있으면 되는데, 저 위인이 결코 가만있을 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어코 매를 벌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정동영이 지금이라도 가만있기 초식을 터득한다면 20년 안에 기회가 있다.


  유권자는 2002년에 개혁을 선택했고, 2007년에 성장을 선택했지만 실제로 유권자가 변한 것은 아니다. 요즘 복지가 뜬다고 박근혜처럼 달아서 호들갑을 떨면 2년 후엔 또 ‘앗 이 산이 아닌게벼’ 이렇게 된다. 진중해야 한다.


  유권자는 변하지 않았다. 2년 후에도 변하지 않는다. 2002년에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지만 표를 주었을 뿐, 마음은 주지 않았다. 2007년에 이명박을 찍었지만, 역시 ‘저 인간이 어쩌나 보자’고 준 것이지, 완전히 속아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아닌 것들을 걸러내려는 것이다.


  좋은 포지션을 차지하고도 유권자의 변덕에 속아서 스스로 걸러져 버리는 실패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역설이 이상한 현상이 아니고 당연한 역사의 귀결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건 물리학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진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가 가는 방향성이 있다. 물은 결국 바다로 가게 되어 있다.

 

  차기든 차차기든, 혹은 유시민이든, 한명숙이든, 김두관이든, 이해찬이든, 천정배든 된다면 그 사람이 뭐를 잘해서 된 것이 아니고, 뭐 기상천외한 어떤 대단한 이벤트를 벌여서 되는 것이 아니고, 유권자들 사이에 '저 사람 이번에 되겠네' 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되는 것이다.  

 

  그 공감대는 호남표 지키고 영남표 가르는 기본에서 나온다. 진보니, 보수니, 중도니, FTA니, 복지니, 교육이니, 정책이니 하는 이런 기발한데서는 안 나온다. 이번에는 뭐가 먹힐거야 하며 이리저리 쫓아다니다가는 신뢰를 잃어서 '저 사람 안 되겠네' 이렇게 되어버린다. 공감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유권자는 정치인의 기이한 공약에 홀려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고, 정치인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실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


  구조론으로 보면.. 자신이 어떤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해서 그것이 달성되어 자가발전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건 뭐 스티브 잡스 급이나 되어야 꿈 꿀 일이고.


  대부분 막연하게 어떤 방향성을 보고 쫓아가는 것이며, 흐름을 따라가며 조금씩 성공의 확률을 높여가는 것이며, 판을 닦아놓고 기다리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쪽에서 뒷패가 붙어 여불때기로 대박이 난다. 그러므로 애초에 방향선택을 잘해서 에너지가 가는 쪽에 포지션을 정한 다음 끈기있게 기다려야 한다.


  2007년에 대선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하신 말씀이.. 내가 호남을 지키고 노무현이 영남을 맡으면, 그 표가 다 어디로 가겠나 하셨던 말씀.. 그 표가 어디 안 가고 그대로 있다. 역사 공부 좀 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12.29 (04:01:04)

추미애, 정동영, 천정배

왠지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다가 참지 못하고 나가버린 곰 같소.

사람되긴 늦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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