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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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801 vote 0 2019.06.16 (14:16:28)


    홍상수와 행복추구권


    선진국은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유책주의를 채택한 우리 법원의 결정은 행복추구권을 인정하는 헌법과 불합치된다. 헌재의 판결을 구해볼 만하다. 예컨대 동성애자가 무슨 짓을 하든 제 3자가 참견할 수 없다. 동성애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동성애 반대 행동은 행복추구권을 침범하는 범죄행위다. 성소수자가 게이퍼레이드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행동은 범죄다. 집회방해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해치는 범죄행위다. 집회의 자유가 있으니까 집회방해 목적의 집회를 할 자유도 있다고 말하는 또라이들이 있다.


    무식이 통통 튀는 경우다. 집회의 자유와 집회방해 목적으로 집회할 자유가 동시에 인정될 수는 없다. 북한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동시에 인정하지만 이는 모순이다.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인정하는 곧 종교의 자유는 없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한다.


    한국 드라마에는 '이 결혼 반댈세' 하는 말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하는데 부모가 반대하면 범죄다. 바보들이 이걸 모르고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심한 일이다. 남의 결혼에 의견 표명을 할 권리는 없다. 남의 동성애 행동에 찬반의 의견을 말할 권리는 없다.


    말하면 바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범한다. 의견을 표명하는 그 자체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 사회가 이런 혼란에 빠져버렸는가? 봉건 가문주의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은 각자 노력해서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행복을 의존하면 안 된다.


    사회의 관습과 제도에 복종하고 안주하면 행복이 보장된다는 믿음은 봉건시대의 것이다. 봉건시대는 가문의 대표성에 의해 가문이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개념이 있다. 결혼을 하면 가문 안에서 일정한 지위를 획득하는데 이혼하면 그 가부장과 가모장의 지위를 상실한다.


    가문 중심으로 작동하는 사회시스템 안에서 본인이 피해를 입으므로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이 결혼 반댈세 혹은 이 이혼 반댈세 하는 권리가 있었지만 현대사회에 가문제도는 없어졌다. 개소리하면 안 된다. 의견표명은 범죄다. 결혼은 당사자가 하고 찬반을 말할 수 없다.


    남의 결혼이나 이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권력을 휘두를 수 없다. 대중은 홍상수의 행동에 대해 평판공격으로 분노를 표시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 현대사회가 그렇다. 갈수록 개인의 의무는 커진다. 더이상 사회 시스템과 관습의 보호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재벌은 쪼아야 열심히 하고 인간은 흔들어야 정신을 차린다. 영화 기생충의 부자들처럼 모든 것을 남에게 맡겨놓고 안주한다면 위험하다. 제도와 관습에 의지하면 편안히 살 수 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의 행복을 남에게 의지하면 비례하여 리스크는 커진다. 


    자기 행복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 이제는 결혼해도 가능하면 취업하고 사람을 사귀고 모임에 나가고 자기 행복을 찾아 열심히 해야 하며 가정주부의 역할을 지키고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가문이 행복을 보장해주기 바라면 안 된다. 신기루를 쫓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https://news.v.daum.net/v/20190615170639162?d=y


    예수 최후의 만찬에 여성은 없다며 망언을 일삼은 칠레 주교가 사임한 모양이다. 봉건사회란 것은 개인을 사회적 의사결정의 단위로 보지 않고 가문을 사회적 의사결정의 일 단위로 보는 사회다. 일부다처제 때문에 배다른 동생을 가문에 포함시키느냐가 중대한 문제였다.


    남자는 가문의 세력이 클수록 좋으므로 서자나 얼자를 가문에 포함시키고자 하지만 여자는 다른 사람의 자녀가 가문에 들어오면 가모장의 지위가 흔들리기 때문에 서자와 얼자를 가문에서 배제하려고 한다. 서얼차대법은 일부다처제와 일부일처제를 혼용하는 제도이다.


    일부다처제를 사실상 허용하면서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만 인정해서 재산의 상속과정에 일어나는 가문의 해체를 막는 수단이다. 다처의 자녀들에게 죄다 상속해 버리면 3대를 가지 않고 가문은 박살나고 만다. 재산상속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일부일처제로 가는게 맞다.


    일부다처제라면 가문의 대표자가 남자이므로 예수 최후의 만찬에 남자만 있는 것이 당연하다. 솔로몬은 부인과 첩이 1천 명이었고 유대인들이 일부일처제로 바꾼 것은 11세기 무렵이었다고 한다. 유교라도 마찬가지다. 공자가 남성우월주의로 여성을 차별한 것이 아니다.


    그 시대는 일부다처제가 작동하는 가문의 시대다. 그것이 봉건사회의 작동원리이며 현대사회는 개인을 의사결정 단위로 보고 가문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이혼하면 가문에서 얻은 우월적 지위를 잃는다는 개념도 부정되어야 한다. 얻는 게 없으므로 잃는 것도 없어야 한다.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아니라 봉건시대냐 현대사회냐이며 개인이냐 가문이냐다. 봉건사회에 왕이나 귀족이 있는 이유는 가문의 대표자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계사회라면 어머니를 중심으로 집단이 갈린다. 징기스칸이 형 벡테르를 죽였듯이 배다른 형제는 죽인다.


    아버지 예수게이가 살아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살인이다. 가장이 배다른 형제를 죽이지 못하게 막았을 때 동시에 모계사회 여성의 권리를 뺏겼다. 모계사회는 징기스칸이 벡테르를 죽이므로 부족의 규모가 커지지 않는다. 부계사회는 이복형제간의 살인을 막는 장치다. 


    일부다처제로 큰 집단을 구성해서 부족전쟁에 이긴다. 솔로몬이 부인을 1천 명이나 둔 것이나 태조 왕건이 부인을 29명이나 둔 것은 결혼외교로 영토를 넓혀 대집단을 만들려는 행동이었다. 성공한 전략이다. 일본에서 왕을 국가통합의 상징이라고 하는 말이 그런 뜻이다. 


    미국은 인디언의 모계 부족연맹인 다코다를 본받아 왕을 없앴지만 남미는 혼란했다. 왕을 유럽에서 구해와야 한다는 왕당파 세력과 왕이 필요없다는 시몬 볼리바르가 대결한 것이다. 왕을 없앤 결과 부작용은 노예제도로 나타났다. 당시에는 왕도 필요해서 있는 제도다. 


    왕은 결혼을 통해 중재하는데 중재자가 사라진 것이다. 왕이 없는 미국은 폭주하여 거대제국으로 발전했다. 만약 왕이 없었다면 유럽은 중국처럼 통합되었을 것이다. 반면 미국은 몇 개 소왕국으로 분열되었을 것이다. 리어왕이 딸들을 시집보내면 왕국이 잘게 쪼개진다.


    유럽은 왕과 귀족이 각자 자기 영지를 지켰기 때문에 중국화를 막은 것이다. 반대로 중국의 황제는 왕의 기능을 상당부분 버렸다. 국가 간 중재도 사라지고 외교도 사라졌다. 일방적인 독재정치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중국을 견제할 이웃나라가 없어져서 폭주한 것이다. 


    봉건 가문주의는 가문전쟁을 중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역으로 가문전쟁을 일부 용인한다는 말이 된다. 장점이 있지만 단점이 더 크다. 마찬가지로 재벌가나 조중동은 은밀히 가문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가문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평등하지만 가문은 평등하지 않다. 명문거족의 대성이냐 각성받이냐 하는 게 있다. 귀천이라는 말은 희귀하다는 말이 아니라 가문의 적자가 명문거족의 대표성을 가진다는 말이다. 세력있는 집안의 도련님이 귀한 것이다. 가문의 세력이 클수록 우대받는 시대다. 


    봉건 가문주의 차별논리는 아직도 우리사회에 은밀히 활동하고 있다. 말로는 평등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초등학교에서 아파트 단지만 달라도 위화감을 느낀다. 뒤로 따돌리려 한다. 그런 심리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들추어야 한다. 


    세력을 끼고 놀면 약자를 억압해도 된다는 심리다. 중국인의 갑질행동은 유난하다. 주성치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을이다 싶으면 바로 숙이고 갑이다 싶으면 바로 짓밟는다. 큰 세력에 끼어 있으면 힘을 휘둘러도 되고 세력이 약하면 당연히 숙이는게 맞다 하고 체념한다. 


    그들은 정의감과 도덕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기준을 세운다. 천안문 시즌이다. 중국인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때가 되었느냐 때가 아니냐로 판단한다. 천안문은 너무 이르다. 아니다. 지금 미국을 눌러야 한다. 아니다. 지금은 도광양회의 시기다. 아냐. 유소작위가 맞지.


    이런 식으로 판단한다. 도광양회는 상대가 강하므로 숙이는게 맞다는 뜻이고 유소작위는 이제 덩치가 커졌으므로 권력을 휘둘러야 한다는 말이다. 일본이라도 지하철에서 힘센 젊은이가 약한 노인에게 눈알을 부라리곤 한다. 세력을 이루면 이지메를 해도 된다는 식이다. 


    개신교 일부가 성소자를 핍박하는 이유도 같다. 당연히 다수자들은 소수자 위에 올라서야 한다고 여긴다. 그들은 미개하다. 세력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정조를 지켜서 가문 안에서 평판을 높이고 권력을 얻는다는 망상을 버리고 환경과 긴밀한 상호작용을 노력해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6.17 (07:46:35)

"제도와 관습에 의지하면 편안히 살 수 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의 행복을 남에게 의지하면 비례하여 리스크는 커진다. 자기 행복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

http://gujoron.com/xe/1097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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