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read 15697 vote 0 2008.03.22 (15: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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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화두
대략 생각해 보고.. 두서없이 끄적끄적

노무현이 뜨니까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뜨고.. 인터넷이 뜨니까 또 소통이라는 단어가 뜨더라. 이명박이 앙시앙레짐을 부활시키고 있으니 개혁그룹의 자유주의 경향과 이명박류 썩은 실용주의를 구분하기 위해 ‘가치’라는 단어가 뜨고.. 요즘 노무현의 인기가 다시 올라간다 하니까 흩어졌던 노무현그룹이 다시 뭉치면서 구심점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사상’이라는 단어가 뜬다.

‘노무현 따라하기’가 유행할 때였다. 그런 좋은 시절이 있었다.(정동영, 손학규 그 같잖은 것들 지금은 이명박 따라하기에 열심이지만) 정동영이 카메라 불러놓고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운다. 쇼다. 손학규는 한술 더떠 민생투어라는 이름으로 삽질대장정을 시작한다. 그런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위해 진정성이라는 말이 그 시점에 소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또 웹 2.0이니 시민주권운동이니 개인주의니 하고 논의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노무현이 화두를 던진 것이다.

글 모두에 이런 말을 줏어섬기는 것은.. 그냥 생각나는데로 자판을 두들겨 대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의 대화’라는 관점에서.. 그 시대의 격랑과 맞서면서..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간다는.. 수순대로 간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다.

하여간 진정성≫소통≫가치≫사상으로 전개되는 개념의 흐름 안에서 이해해야 할 일이다. 노무현과 그의 시민주권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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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그게 심각해서 병이다. 어느 정도로 고질인가 하면 사람이 셋 이상 모인 곳에는 아주 가지를 않는다. 몰려다니기 잘 하는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억지 미소짓기 싫으니까.

인터넷 덕분에 나와 같은 군중혐오, 조직혐오, 집단혐오, 패거리혐오의 개인주의자들이 살 판이 났다.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개인주의의 득세가 시대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또 자유주의자이고 진보주의자이고 이상주의자이며 시장주의자(!)다.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자이고 세계주의자이기도 하다. (민족-세계 이 부분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민족 혹은 세계와 다른 것으로 설명이 필요하다.)

패권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저항적 민족주의다. 오늘날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한반도의 반 식민지적 현실과 일제식민지 피지배 경험 및 분단상황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의미에서의 민족주의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민족주의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그 민족주의가 아니다. 민족-국가 운운하면서 깃발들고 떼로 몰려다니는 인간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넷 리플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외국인혐오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쓰레기들과는 상종하지 않는다.

문제는.. 외국인혐오, 여성부혐오, 지역주의 조장의 그 병이 쉽게 낳을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는데 있다.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피식민지의 콤플렉스를 벗어던질 자부심이 필요하고.. 그래서 저항적 민족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저항적 의미에서의 민족주의를 일컫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없으므로..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빌려 쓰는 것이다.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단어를 만들고 개념을 정의하고 컨셉을 잡아주는 것이 지성의 역할이고 철학자의 역할인데 불행하게도 한국에는 그런 일을 해낼 한 명의 스승이 없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민족주의자(!)가 되었다.

나의 민족주의는 세계주의와 충돌하지 않는다. 나는 세계로 나아가기를 원하지만 나의 세계지향은 조중동의 막장 세계화주의와 다르다. 한국의 반식민지적 상황과 분단현실의 극복이 없는 조중동식 세계화주의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세계로 나아가되 빈 손으로 나아가면서 서구의 가치 (인류의 보편가치로 알려져 있지만 알고보면 게르만의 종사제도 전통에 기반한 특수가치이기 십상인 유목민 모델)를 학습하고 모방하고 추종하는 조중동식 세계화주의가 아니라, 민노당식 신사대주의가 아니라.. 먼저 우리의 가치를 찾아서 그것을 우리 안에서 완성하고.. 기어이 한국모델을 완성하고 그 한국적 가치의 주인으로서 서구와 대등한 위치에서 세계로 나아가자는 견해다.

가치를 수출하지 못한다면 결코 존경받지 못한다. 존경받지 못한다면 결코 대등해질 수 없다. 들러리 역할이나 할 뿐이다.

완성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자기 포지션을 확보하지 못하고는 어디를 가도 들러리 신세다. 우리 세계로 가야하지만 남들이 가니까 묻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포지션을 들고 가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이러한 견해는 한국의 역사적 체험을 반영한 것이다. 예컨대 일본 지식인의 과거 역사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현실도피 수단으로서의 코스모폴리탄입네 하는 사이비스러운 태도와도 구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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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시장, 민족과 세계를 동시에 추구하는 나의 견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헛갈린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좌파와 우파의 주장이 뒤섞여 있어서 모순된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보기 때문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한다면 요즘 노무현그룹이 주장하고 있는 시민주권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평면의 버전 1.0으로 보면 모순되어 보이지만 입체의 버전 2.0을 넘어 밀도가 작용하는 장(場)으로서의 버전 3.0의 관점으로 보면 다른 지평이 보일 것이다.

개인주의, 이상주의, 자유주의, 진보주의에 대해서는 그동안 충분히 말했고 여기서는 시장주의에 대해서 대략 말하고자 한다.

나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시장은 아담 스미스의 시장 1.0이 아니다. 케인즈의 시장 2.0도 아니다. 이건 다른 거다. 조중동이 말하는 시장만능주의는 아담 스미스의 시장 1.0에 불과하다. 낡은 버전이다.

수요와 공급이 시장의 전부라고 믿는다면 유치하다. 나는 국가도, 정부도, 가계도, 시민사회도 시장의 중요한 주체라고 생각한다. 기업활동만이 시장의 전부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정말이지 초딩다운 사고방식이라 하겠다.

무엇이 시장인가? 시장은 시골의 5일장이 아니고, 남대문시장도 아니고, 명동의 백화점들도 아니고, 인터넷쇼핑몰도 아니고, 가리봉동 오거리의 인력시장도 아니고, 증권시장도 아니다. 시장은 그 모든 것이면서 오히려 그것을 넘어선다.

시장의 근본은 자연에 있다. 그것은 생태계의 시장이다. 시장원리는 본질에서 자연법칙이다. 그것은 검증된 진리다. 물리학과 수학에 토대를 둔다. 누구도 시장원리를 본질에서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이냐다. 조중동은 그것을 협소하게 해석한다. 그들은 말로는 시장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광고를 주는 대기업의 주도권을 의미한다.

대기업이야 말로 시장의 방해자다. 그들의 독점횡포는 시장기능을 마비시킨다. 보이지 않는 손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시장은 이상 속에나 있을 뿐 현실에는 없다. 시장을 교란하는 방해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자율에 맡기라는 말은 시장의 파괴자인 재벌, 언론, 투기꾼, 탈세범들에게 맡겨두라는 말과 같다.

조선시대에도 시장이 열리기를 학수고대하는 자들은 있었다. 그들은 산적이었다. 시장이 없으면 통행이 없고, 통행이 없으면 보부상을 등쳐먹는 산적도 굶주리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조중동이 하는 짓이 이와 같다. 시장자율은 시장방해의 자유, 시장에서 삥뜯기의 자유이기 십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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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들도 가만 놔두면 더 이상 해킹할 것이 없어져서 저절로 사라지고.. 도둑놈도 가만 놔두면 더 이상 훔칠 것이 없어져서 저절로 사라지고.. 침략해 오는 적들도 가만 놔두면 더 이상 침략할 데가 없어서 저절로 사라지고..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은 적극 관리되어야 한다. 문제는 시장을 관리할 정도로 우리가 현명하냐일 뿐이다. 한국에 그린스펀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시점도 있다. 93년 무렵 PC통신 초창기에 네티즌 숫자는 40만 안밖이었다. 인터넷이 등장하자 100만 200만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3백만, 6백만, 1200만, 2400만으로 증가했다. 그때가 좋았다. 그때는 해커들도 귀여웠다. 그때는 정부의 개입이 역효과를 내었다. 네티즌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시장의 팽창이 정지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초딩대란에 알바대란이 일어났다. 이제는 관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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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 공격과 수비가 마주치는 경쟁과 대결의 현장에서 1이 2를 통제하는 구조가 있다. 거기에 밸런스가 있다. 밸런스의 축과 날개가 있다. 그것이 시장이다. 시장원리는 밸런스의 원리다. 밸런스의 원리는 1이 2를 통제함으로서 1의 잉여를 성립시켜 효율을 낳는 원리다.

마호멧은 ‘내가 일생동안 돼지가 새끼를 치는 것은 봤어도 돈이 새끼를 치는 것은 못봤다’며 자본주의를 금지시켜 버렸다. 그래서 요즘도 아랍의 은행들은 이자를 받지 않고 대신 뒤로 뇌물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평형계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돈이 새끼를 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시장은 혼자서 수요와 공급의 양쪽을 동시에 통제하므로 잉여를 성립시킨다. 효율을 낳는다. 시장참여자 모두가 이익을 보게 된다.

시장은 어디에 있는가? 장터에 있지 않다. 시장은 정치에도 있고 경제에도 있고 사회에도 있고 자연에도 있다. 우주에 가득차 있다. 1이 2를 통제함으로써 잉여를 성립시키는 즉 밸런스의 원리가 작동하는 평형계가 있는 어디에나 있다.

왜 시장이 중요한가? 아담스미스의 시장 1.0은 평면 위에 있으므로 한 사람이 더 먹으면 다른 한 사람은 그만큼 굶어야 한다. 케인즈의 시장 2.0은 입체 위에 있으므로 하나가 커지면 다른 하나도 커진다.(시장은 밸런스다. 친칭 저울이 균형을 잡으려면 이쪽과 저쪽이 같이 커져야 한다)

밀도가 작용하는 시장 3.0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저울의 축이 움직인다면 친칭저울이 한쪽으로 기운다 해도 축을 움직여서 밸런스를 회복시킬 수가 있다. 더 많이 긴밀하게 상대와 맞물린 더 복잡한 구조가 있다.

평면의 시장 1.0이냐, 입체의 시장 2.0이냐, 밀도의 시장 3.0이냐는 상대와 몇 개의 변수로 맞물려 있느냐다. 살짝 걸쳐있느냐 더 많이 걸쳐있느냐다.

타인과는 살짝 걸쳐져 있으므로 내가 이익을 보면 너는 손해를 본다. 2명이 경쟁하는데 내가 승자면 너는 패자다. 그러나 가족이라면 다르다. 아버지가 이익이면 아들도 이익이다. 더 밀접하게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평면적 관계가 아니라 입체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에 두 식당이 같은 메뉴로 경쟁하고 있다고 치자. 한쪽이 장사가 잘 되면 다른 쪽은 파리를 날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될 수도 있다. 같은 식당이 여럿 몰려있으면 먹자골목으로 소문이 나서 더 장사가 번창할 수도 있다. 그래서 원조집들은 한 골목에 몰려있다. 장충동에는 족발집이 몰려있고 마포에는 주물럭집이 모여 있다. 1.0과 2.0의 차이다.

3.0은 무엇이 다른가?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가득 넣으면 더 넣을 수 없을 것이다. 속에 가득찼기 때문이다. 이게 입체의 사고다. 그러나 최홍만이 펌프질을 하면 얼마든지 더 넣을 수 있다. 거의 무한정 들어간다.

오렌지를 짜서 즙을 컵에 따른다면 어떨까? 오렌지의 부피보다 더 많은 즙이 생길 수는 없을 것이다. 최홍만이 그 악력으로 오렌지를 짜도 그렇다. 한계가 있다. 그러나 원자력은 다르다. 짜고 또 짜낼 수 있다. 오렌지를 손으로 짜서 한그릇의 국물을 받아내고 그 찌꺼기를 회수하여 한번 더 짜서 다시 한그릇을 받아낼 수 있다. 우라늄을 다 태우고 그 재를 회수해서 얻은 플로토늄을 다시 태울 수 있다. 그것이 밀도의 세계다. 3차원 입체 위에 4차원의 전혀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면이나 입체를 볼 뿐, 밀도의 세계가 존재함을 깨닫지 못한다. 평면이 상극의 세계라면 입체는 상생의 세계다. 밀도의 장(場)은 순환의 세계다.· 

우리는 물질이 딱딱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으므로 더 정밀항해가 필요한 고도의 경제원리가 작동하는 세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린스펀의 금리정책은 시장자율의 세계가 아니다. 시장간섭의 세계다.

그린스펀은 시장자율에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시장을 통제한다. 금리의 느슨함과 조임이 밀도가 작용하는 세계이다. 이는 종래의 시장주의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돈이 1원이나 2원의 갯수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사람은 돈이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밀도차를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돈의 밀도는 금리나 환율의 형태로 존재한다. 상품에도 밀도가 있다.

농산물의 경우 신선도가 밀도다. 공산품의 경우 품질 혹은 브랜드의 형태로 밀도가 존재한다. 밀도가 작용하는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시하는 전혀 다른 법칙이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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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밀도는 개개인의 역량으로 존재한다. 노무현 그룹의 시민주권 운동이 과거의 진보와 다른 점은 개인을 앞세우는데 있다. 군중이 아닌 개인이다. 그러므로 개인주의고 자유주의고 이상주의다. 개인에게도 밀도가 있다.  

금리가 5프로인 돈과 1프로인 돈은 같은 돈이되 같은 돈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상주의를 품은 인간과 맹탕인 인간은 같은 인간이되 같은 인간이 아니다.

밀도란 무엇인가?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 그 전체의 밸런스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밸런스가 이쪽으로 기울면 노무현이 당선되고 저쪽으로 기울면 이명박이 당선된다. 개인의 전투력은 소용없다. 숫자만 많으면 이기는게 선거다. 이에 집단의 조직력만 강조된다. 리더에 대한 충성심만 있으면 된다. 오늘날 좌파들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는 블로그와 리플이 중요하다. 구성원 개개인의 자질이 중요하다. 물론 아직도 대선은 숫자싸움으로 결판나고 있다. 그러나 5년후, 10년후라도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2002년의 승리는 인터넷에 의해 이루어졌다. 2007년에 인터넷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무엇인가? 이쪽과 저쪽이 팽팽할 때 나비 한 마리가 어디에 내려 앉느냐에 따라 천칭이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질 수 있다. 2002년에 인터넷은 실로 한 마리 나비에 지나지 않았다. 나비 한 마리 덕분에 이겼으니 나비만 모아서 이길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진 것이다.

2012년은 다르다. 2017년도 있다. 2002년에 인터넷은 플러스 알파의 역할이었다. 2007년에 인터넷은 몸통 역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역량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다르다. 인터넷이 몸통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집단지성을 형성하는데 성공한다면.. 금리 1프로의 돈과 금리 5프로의 돈이 같은 돈이되 실로 같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는데 성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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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의 세계는 각 부분에 저울이 있다. 전체의 밸런스 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의 밸런스가 있다. 과거의 대중은 미디어에 의해 통제되는 다수였다. 그 경우 오직 숫자만이 유의미하며 숫자를 끌어내는 데는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원된 군중에 불과하다.

시민은 강한 개인이다. 이들은 미디어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 이심전심에 의해 움직인다. 명령이나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포지셔닝에 따라 움직인다. 마침 골키퍼가 자리를 비우고 없다면 명령받지 않은 누구라도 즉시 그 자리를 채워주는 식이다.

지금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안에서 극소수다.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을 역량을 갖출 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개인의 역량과 수준이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 병사처럼 스스로 무장하고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 바닥인 채로 신분상승을 위해 싸우는 노예나 혹은 빈손인 채로 전리품을 위해 싸우는 용병이 아니라.. 이미 상승해 있으면서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질이 다르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좌파의 반시장정책도 아니고 수구떼의 시장만능 정책도 아니고.. 적극적 시장관리의 실험이 필요하다. 이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의 그린스펀을 탄생시켜야 한다. 기존의 수요공급 이론을 무색게 하는 밀도의 장(場)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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