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read 19110 vote 0 2008.02.22 (21:10:36)

노무현이 그렇게 무섭나?
‘바보 노무현과 사상가 노무현’

진실로 말하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기록자의 기록이다.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이겼지만 스파르타에는 기록자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스파르타의 문화는 조금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단지 스파르타식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단어 하나를 남겼을 뿐이다. 반면 아테네의 꽃 피운 민주주의 문화는 로마문명으로 계승되어 무수히 전해지고 있다. 누가 역사를 기록하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면 우리가 승리자다.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기록자일 수 있는가이다. 답은 나와 있다. 우리가 우리시대 시대정신의 정수를 끌어내고 그것을 미학적 양식으로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가치와 모랄과 문화와 삶의 양식과 그 전범과 그 역할모델을 완성시켰을 때 비로소 우리는 기록자의 자격을 얻고 기록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 완성시킨 미학적 양식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 후손들에게 물려줄 무언가를 우리가, 우리내부에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낳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당당한 기록자가 된다.

조선 초기의 사육신은 비록 한 때 역사의 패배자가 되었지만 나중에 모두 복권되었다. 개혁가 조광조는 정치게임에서 패배했지만 훗날 역사의 평가에 의해 당당하게 부활했다. 왜 그들은 부활할 수 있었는가? 모든 역사의 패배자들이 부활한 것은 아니다. 부활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만 부활한 것이다. 그들이 계승할 가치가 있는 그 무언가를 남겼기 때문에 부활한 것이다. 그것을 남기지 못할 때 기록자가 되지 못한다. 기록하지 못하는 역사는 승자와 패자를 떠나서 실패다.

조조는 당대에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훗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역사의 기록자인 유생들이 문무를 겸비한 조조를 특히 질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업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바보 유비를 좋아했다. 유비는 적어도 그들 유생들의 밥그릇을 건드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조조는 어떠했는가? 건안칠자라 했다. 조조의 자식들인 조비, 조식과 더불어 일곱 지식인이 문학집단을 형성하고 작은 문예부흥기를 끌어낸 것이다. 그것이 결정적이다. 조조는 학문을 좋아해서 스스로 많은 글을 지었다. 무(武)로 흥한 조조가 문(文)을 넘본 것이 유생들에 밉보인 괘씸죄의 원인이다.

많은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바보 노무현을 좋아했다. 지금에 와서 노무현이 폄훼되고 있는 이유는 그가 정치가의 한계를 넘어 무려 사상가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유난히 싫어하는 것이 있다. 재벌이 정치를 겸해서 지배하려 들거나 혹은 정치가가 사상가를 겸해서 계몽하려 들면 모두가 싫어한다. 하나만 하라는 거다. 재벌은 욕을 먹어야 적당하고 정치는 나눠먹어야 적당하다는 거다. 그 넘어서 안 되는 금을 넘어가면 반드시 응징이 따른다.

그들이 한때 노무현을 좋아한 이유는 흥선대원군이 가문의 세가 빈약한 민씨 문중의 명성황후를 선택한 이유와 같다. 만만하니까 선택한 것이다. 노무현이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좋아한 것이다. 그러나 민비에게는 오빠들이 있었고 노무현에게는 노사모세력이 있었다. 그래서 다들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안동김씨들이 강화도령 철종을 선택한 것은 그가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놓고 배후에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고립된 바보 노무현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보 노무현이 1회용으로 써먹고 팽할 정도의 이용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했다. 지금은 태도를 바꾸었다. 모두가 사상가 노무현을 장애물로 여기고 있다. 왜? 그에게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골치아프게도 말이다.

사상은 큰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부지런히 싹을 잘라내도 봄이면 또 새순을 내밀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조중동과 오마이뉴스,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이 한 덩어리로 되어 고향으로 물러가는 노무현을 짓밟지 못해서 안달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게도 노무현이 무섭다는 말인가? 이를 갈 정도로? 학을 뗄 정도로? 물러가는 사람 뒤통수에 대고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추하다. 참으로 추하다. 오마이뉴스가 추하고 한겨레가 추하고 경향이 추하다. 잊지 않는다.

바보 노무현은 환영한다. 강화도령 노무현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고아 노무현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고립된 노무현은 언제라도 환영한다.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가만히 있어라. 내가 뒤에서 다 조정할테니. 다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마이뉴스도 그렇게 생각했고, 한겨레도 그렇게 생각했고, 추미애도, 조순형도, 김근태도, 정동영도, 천정배도, 박상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각자 자기방식대로 노무현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척박한 땅에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렸다. 당장의 평가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훗날 비단옷 입고 돌아올 근거 하나는 악착같이 남겨두었다. 업적 외에 따로 남겨놓았다. 그는 노무현의 가치를 남겨놓았다. 그러므로 그는 죽지 않는다.

조광조가 죽었을 때 선비들의 시대는 완전히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선조 대에 이르러 대궐을 가득채운 것은 조광조의 제자들이었다. 조광조가 사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사상이 조선왕조의 유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이명박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위기는 또 찾아온다. 급하면 해결사 노무현을 찾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노무현 세력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그것이 역사의 변증법이다.  

조조는 군사적 성공을 끌어내고, 경제개혁을 완수하고, 민생을 돌보아 인구를 몇 곱으로 늘리고, 문학적 성공까지 일구어 냈지만, 사상 하나를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의 기록자가 되지 못했다. 진수의 삼국지가 조조를 정통으로 세워 기록하고 있지만 그래도 유생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무수한 야사로 반격하여 조조를 승자의 위치에서 끌어내렸다. 왕조시대 역사의 평가로 말하면 조조는 부끄러운 패배자다. 유생들의 시대가 끝난 지금에 와서는 재평가 되어야 하겠지만.

지금 노무현의 위치도 이와 같다. 업적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상이 아니면 안 된다. 가치가 아니면 안 된다. 계승할 그 무엇이 아니면 안 된다. 우리가 횃불을 들어 노무현의 사상을 밝히고 그 기준에 맞추어 우리 시대의 모랄과 가치와 삶의 양식과 문화의 양식을 완성시켜 낼 때 그는 멋지게 부활한다. 만약 우리가 그러하지 못한다면 그는 죽는다.

그는 왜 고향으로 돌아가는가? 사상가 노무현의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2라운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노무현의 마지막 작은 싹 하나까지 밟아문질러 죽이고 그것도 부족하여 거듭 확인사살하려드는 비열한 한겨레, 더러운 오마이뉴스, 집요한 프레시안, 썩은 경향, 그리고 원래 아닌 조중동에 맞서 부단히 응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가 그들을 이기는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질투심을 느끼도록 유쾌해지는 것 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저 먼 곳으로 물러나고 있는데도 우리는 웃고 있다. 승자인 그들은 도리어 화를 낸다. 왜?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우리가 즐거워 하는 것을 보고 매우 불안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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