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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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255 vote 1 2018.04.29 (18:09:19)

 

    햇볕정책에서 동반정책으로


    김정은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언론공개를 약속했다. 무슨 생각일까? 결혼식에 하객들이 모이는 이유는 보증을 서고 증인을 서기 위해서다. 하객들은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증언해줘야 한다. 요즘은 혼인신고가 효력을 갖지만 과거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또 주변 친지들이 부부를 보증해줘야 한다.


    하객들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는 거다. 요즘은 직장만 번듯하면 믿을 수 있지만 봉건사회라면 하객들의 수준을 보고 상대쪽 집안을 믿는 것이다. 신랑쪽 하객들이 산적차림으로 와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는가 하면 멱살 잡고 싸우며 난장판을 벌인다면 믿을 수 없다. 이후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게 된다. 


    신랑과 신부 및 양가 집안은 하객들의 체면을 위해 결혼생활을 성공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김정은이 언론인을 초청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객 역할이다. 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는 김정은도 알고 있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상부구조의 개입이다. 남과 남이 만나서 남남을 극복하고 한 가족이 되는게 결혼이다.


    그렇다면 남이 아닌 우리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하객이 필요하다. 김정은이 뭔가를 안다. 충격요법이라는 미명아래 옐친의 대책 없는 경제개혁으로 쓰러진 러시아와 비교하면 김정은이 야무진 데가 있다. 옐친의 충격요법은 충격적으로 실패했고 구소련 시절에 구축한 러시아의 경제기반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망해 먹을 충격요법을 미국은 이라크에서 써먹었다. 이라크 전쟁 직후 임시행정관 폴 브레머가 총독행세를 하며 터무니없는 짓을 벌여 이미 거덜 난 이라크 경제를 완전히 파괴해버린 것이다. 이에 생계형 테러집단 ISIL이 탄생하게 된다. 폴 브레머는 억압받던 시아파 입장에서 수니파에게 철저한 복수극을 벌였다. 


    역사공부를 해야 한다. 이와 비슷한 실패는 역사에 무수히 많다. 자치통감만 읽었어도 이런 삽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숙종은 안사의 난 시절에 눈치를 보던 지방 절도사들을 회유하지 않았다. 토사구팽의 조짐을 보이자 불안해진 절도사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고 당나라는 황소의 난을 겪으면서 완전히 멸망했다.


    그냥 망한 정도가 아니라 이후 5대 10국을 거치며 송나라가 들어설 때까지 철저하게 망해 먹었다. 호적상 인구가 5천만에서 1600만으로 줄어들었을 정도로 당나라는 피폐해졌다. 이라크의 왕이 된 폴 브레머가 수니파 바트당 중심의 이라크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철저하게 파괴하자 수니파 관료와 기술자는 잠적했다.


    이라크는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지하로 잠적했던 관료와 기술자들은 생존을 위해 ISIL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오십보백보의 원리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줄 때는 다음 단계를 대비해야 한다. 구해주고 땡이 아니고 보따리 찾아주기는 물론 취직시켜 주고 결혼해줘야 한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피아구분 들어간다. 피가 아니라 아라는 확인이 필요하다. 남을 돕는 것은 진정으로 돕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남이 아니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돕는 것은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여기서 운명이 갈린다. 이라크를 접수하러 온 미국 관료들은 철저히 이라크를 남으로 보았다. 


    그걸로 끝난 거다. 해방 직후의 한국도 그랬다. 미군정은 한국을 일본의 변방지역으로 착각했다. 미군에 일본어 통역은 있어도 한국어 통역은 없었을 정도이다. 미군이 일본어로만 대화하려고 했기 때문에 국군에 갑자기 일본군 출신이 중용되었는데 그래서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대장도 있었다. 친일 유재흥이다.


    현리전투에서 중공군에게 참패한 유재흥 말이다. 이 자가 비행기 타고 혼자 도주하는 바람에 전작권을 미군에 뺏겼는데 그 장본인이 나중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고 나선 악질 친일파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리비아와 한국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놓고 합당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동안 북한이 남한의 햇볕에 옳게 응답하지 않은 이유는 중국과 미국의 방해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햇볕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해주고 생색내는 것은 구조론과 맞지 않다. 물론 사회의 도덕논리로 보면 누가 도움을 주면 마땅히 감사해야 하지만 자연의 생존논리로 보면 이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도움을 받고 감사한다면 남남관계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하고 엄마의 젖을 먹는 아기는 없다. 아기에게 엄마는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북한은 남이 아니라야 한다. 문제는 의사결정구조다. 시스템이다. 자연에서 위기에 처한 동물을 인간이 구해주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지 못한다. 


    산에서 죽어가는 새끼 곰을 구했다면 다시 풀어주면 안 되고 죽을 때까지 동물원에서 키워줘야 한다. 한번 인간사회에 적응한 동물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건 시스템 문제이므로 도덕을 떠나 어쩔 수 없다. 내가 도와줄 테니 감사해라는 식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자생력을 빼앗는 고약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햇볕정책이라는 용어 자체를 반대했다. 우리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20년 전과 달리 남한도 중국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게다가 트럼프까지 돕고 있으므로 환경이 달라졌다. 우리가 이제부터 운전을 잘해야 한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 북한은 결정적 위기였다. 


    그때 김영삼이 대처를 잘못해서 북한이 남한을 불신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근혜까지 난리를 쳤다. 도덕의 논리를 떠나 이걸로 북한 내부에서 군부의 힘이 세졌기 때문에 김정일이 핵폐기를 하고 싶어도 군부가 뒤에서 틀면 안 되는 거다. 남한은 자유한국당이 방해를 하고 있고 북한은 군부가 야당역할을 한다. 


    지난 6년간 김정은이 선당정치로 군부를 제압해서 이제 대화로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북한이 기운을 차린 거다. 그러나 여전히 위태롭다. 김정은이 언제 암살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목숨을 걸고 나온 거다. 연착륙을 시켜야 한다. 북한은 남이 아니다. 남으로 보는 시선을 들키면 안 된다. 눈빛 하나로 천 냥 빚을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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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8.04.29 (18:44:50)

"여전히 위태롭다. 김정은이 언제 암살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목숨을 걸고 나온 거다. 연착륙을 시켜야 한다. 북한은 남이 아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사발

2018.04.29 (18:49:34)

김정은이 그토록 긴장했던 이유가 한국에서 총알이 날라올까봐서가 아니었구려~

앞으로 군부를 완전히 제압할 때까지 절대 비행기 타면 안 되고 어디 자주 가서도 안 되겠소.

내년 봄에 서울에 올 때는 예외로 하고....

[레벨:10]다원이

2018.04.29 (19:05:28)

요 며칠 사이 심장이 벌렁거려 죽을 뻔...
아직도 평화의 여정은 진행 중이네요...
[레벨:3]파아자자발

2018.04.30 (18:23:31)

옳은 말씀입니다.

북한을 책임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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