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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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361 vote 0 2019.08.27 (13:32:22)

      
    조조와 원소의 대결

    
    삼국지의 중핵은 관도대전이다. 그 이후로도 싸움은 많았지만 잔적소탕이요 뒤설거지에 불과하다. 관도에서 한 번의 전투로 천하의 대세가 결정된 것이다. 싱겁게 끝나 버렸다. 너무 이른 종결에 아쉬움을 느낀 독자들의 희망사항이 제갈량을 데뷔시킨 것이며 그래도 아쉬운 사람들이 후삼국지를 만들었다.


    조조가 원소를 이겼다. 비결은? 보통은 조조가 인재를 차별 없이 등용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개소리다. 원래 그럴듯한 말은 다 개소리다. 그냥 갖다 붙인 말에 불과하다. 뭔가 설명할 말이 있긴 있어야 하니깐.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적재적소니 뭐니 이런 하나마나한 말을 붙여주면 다들 좋아하잖아.


    관도대전 당시 조조 휘하의 장수나 참모 중에 인재라고 할 만한 자가 있었는가? 없었다. 진짜 인재는 원소가 쓸어갔다. 역사를 판가름하는 본질은 에너지다. 결집된 힘이 흩어진 힘을 이긴다. 에너지의 출처를 말해줘야 한다. 역사의 본질은 의사결정구조 싸움이다. 민중의 역량을 끌어낸 자가 이긴다.


    물론 나중에 인재가 조조 휘하로 모여들긴 했지만 그것은 승자의 전리품에 불과하다. 당시 글줄이나 읽은 엘리트는 당연히 명문가의 자제인 원소 휘하로 들어갔다. 당시 원소 일가의 세력은 조조의 열 배에 달하였다. 조조는 원래 집안에서 일하는 하인들을 중심으로 고작 수천 명의 병사를 가졌을 뿐이다.


    전투를 거듭하면서 농민을 끌어모아 1만 명의 군세를 만들었지만 형양전투에서 동탁에게 궤멸되어 거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연주에서 생포한 황건적의 무리 중에서 정예를 가려 뽑은 청주병 3만으로 재기한다. 흔히 30만이라고들 하는데 과장이다. 관도전투까지 청주병이 전투의 주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청주병은 다르다. 황건적 출신이라 질의 균일이 담보되어 있다. 보통은 지휘관이 있고 그 밑에 직속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있다. 청주병은 그게 없다. 청주병은 조조와 일대일 관계를 맺는다. 조조는 둔전을 일구어 토지를 나눠주고 그 대가로 청주병을 고용한 것이며 아버지가 전사하면 자식이 복무해야 했다.


    토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원래 오갈 데 없는 떠돌이였기 때문에 토지를 얻어 정착하고자 했고 조조와 배짱이 맞은 것이다. 황건적은 떠도는 무리라서 위계질서가 없고 개판이지만 종교의 교리가 있으므로 때로 엄격한 군율로 통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보통이라면 황건적을 분산하여 배치한다.  


    모아놓으면 반역을 일으킬 집단이기 때문이다. 질의 균일은 위험하다. 중대마다 열 명씩 집어넣어 흩어놓는 방법으로 자기네들끼리 뭉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조조는 이들 골치 아픈 무리를 한곳에 모아놓는 겁대가리 없는 짓을 한 것이다. 이들을 통제할 수 있을까? 실패하면 망하고 성공하면 강력해진다. 


    과연 청주병은 여러 차례 말썽을 일으켰다. 관도대전 직후에 조조가 항복한 원소군을 학살한 것이나 그 외에도 여러 차례의 양민학살을 일으킨 것이 청주병의 폭주와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만약 조조 휘하에 적재적소로 발탁된 인재가 있었다면 조조가 그런 터무니 없는 실책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결구도를 보자. 엘리트 중심의 군율이 엄한 군대와 민중 중심의 창의적인 군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보통은 엘리트가 이긴다. 그러나 천재적인 지도자가 민중을 지휘하면? 그 천재가 하필 나폴레옹이라면? 게다가 어떤 이유로 질의 균일이 담보되어 있다면? 이 경우는 민중의 군대가 막강해지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소년병이 그랬다. 15세 꼬마들을 끌어모아 혁명교육을 시킨 다음 전장에 풀어놓는다. 그들은 무질서하게 움직인다. 보통은 흩어져서 각자 고향앞으로 직행하기 마련이지만 이들은 소년인 데다 혁명교육을 받았기에 다시 모여들어 전세를 바꿔놓는다. 이들은 선발대로 적군을 휘젓는 역할이다.


    적군이 이들을 추격하느라 분산되었을 때 본대가 들이친다. 무질서한 소년병과 대오를 잘 갖춘 본대가 망치와 모루를 이루고 협공하면 적군은 여지없이 궤멸되었다. 나폴레옹만 소년병을 써먹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거다. 천재적인 지휘관과 창의적인 민중은 언제나 궁합이 맞는 것이며 매번 기적을 일으킨다.


    신분이 낮은 롬멜이 그렇다. 역시 평민 출신인 히틀러는 평민출신 군대를 프로이센 귀족출신 융커들과 경쟁시켜 망치와 모루로 써먹은 것이다. 엘리트는 항상 민중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창의적인 전쟁을 하려고 하면 혼선이 일어나서 자멸한다. 고지식한 전투가 낫다. 그래서 찬스를 놓치게 된다.


    엘리트는 엄한 군율을 내세워 시스템 위주의 신중한 싸움을 하는 것이며 원소의 방법이 바로 그런 정공법이었다. 그러다가 망했다.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과 싸워 연패한 것이 그렇다. 히틀러와 싸워 연패한 영국군과 프랑스군도 같다. 특히 영국군은 육전에서 언제나 고지식한 전투를 하다가 망하곤 했다. 


    역사에 이와 유사한 패턴은 무수히 많다. 일본 세이난 전쟁이 그랬다. 사무라이와 농민이 붙으면 당연히 사무라이가 이긴다. 그런데 농민군이 이겼다. 유수와 왕망이 대결한 곤양전투도 비슷하다. 유수의 군대는 녹림병이니 신시병이니 적미병이니 평림병이니 하며 무수히 일어난 산적집단의 일종이었다. 


    보통은 정규군이 쉽게 이긴다. 그러나 산적들끼리 서로 싸우다 보면 상승부대가 출현하기 마련이다. 그 부대는 막강해진다. 농민군이 전국에서 100여 집단 봉기하면 그중에 하나는 엘리트의 전술을 배워 단번에 천하무적의 부대가 된다. 태평천국군이 대개 오합지졸이었지만 석달개의 부대가 강력했다. 


    천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19세에 봉기했는데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석달개가 있는 지역은 태평군이 이기고 그가 다른 곳으로 가면 지는 식이었다. 그는 무과에 급제한 정규군 출신이었기에 병법을 알고 있었다. 만약 태평천국군 지도부의 내분이 없었고 석달개가 태평군을 장악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엘리트 중심의 고도화된 시스템을 거느린 원소가 농민군 중심의 조조군을 보는 관점이다. 촛불민중은 그들 입장에서 혼란스러운 농민군 집단이다. 그러나 역사에 무수히 등장하는 영웅은 언제나 민중의 창의적인 에너지를 써먹은 사람들이었다. 에너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지도자의 지략과 민중의 창의성이 결합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영웅은

엘리트 위주의 고답적인 시스템을 개혁하여 민중의 역량을 남김없이 빼먹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이는 새로운 교육, 새로운 무기, 새로운 생산기술로 생산력의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어 나타나는 역사의 변증법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8.28 (08:47:03)

" 천재적인 지도자의 지략과 민중의 창의성이 결합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http://gujoron.com/xe/1118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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