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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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66 vote 0 2020.05.31 (18:20:07)

    교육의 목적은 집단적 자아실현에 있다 

    

    참교육으로 갈아타자


    우상을 깨지 않으면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대중에게 아부하지 말고 냉정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답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내기를 하면 어떨까?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언제나 이긴다. 왜? 정답이 있다면 그 정답을 제시해야 한다. 누군가 제시한 정답은 오답일 확률이 높다. 진지하게 정답을 논하면 진지충으로 몰리는 세태다. 정답의 존재를 부정하고 유쾌하게 살면 된다. 적당히 눈치를 보고 분위기 맞춰 주면 된다. 그런데 말이다. 누군가 진짜로 정답을 알아낸다면? 당황하게 된다. 그런 일은 30만 년에 한 번 정도 꼴로 드물게 일어난다. 대략 1만 5천년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다. 잠복해 있던 에너지가 격발된 것이다. 


    누군가 정답을 맞출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다. 그런데 인류 숫자는 70억이다. 주사위를 70억번 던지면 로또가 1천 번은 당첨된다. 상상력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70억이 사는 세상에는 1년에 5만 명이 로또에 당첨된다. 옹졸한 시골사람 마인드는 버려라. 개인의 기준으로 보지 말고 천하의 기준으로 보라. 21세기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남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 구체적인 학생 지도방법은 논하지 않겠다. 근본적인 자세와 철학이 중요한 것이다. 방향의 판단이 중요하다. 합리주의냐 실용주의냐, 절대주의냐 상대주의냐, 진보주의냐 보수주의냐, 일원론이냐 다원론이냐, 이념적 지향이냐 환경적 적응이냐, 공자의 권력의지냐 노자의 자연주의냐.


    룻소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있다. 교육하지 않는 것이 교육이다? 그냥 내버려두는 아프리카 방식이 좋은 교육이다? 그러다가 히피가 되고 펑크가 되니 교육실패다. 집단적 의사결정이라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가다. 집단이 의사결정을 하려면 일단 서로 간에 말이 통해야 한다. 프로토콜을 일치시켜야 한다. 대화가 되는 사람이 모여야 한다. 그런 구조의 건설이 교육이다. 그것은 지식의 공유 시스템이다. 


    집단의 구성원이 백명이라면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의 판단이 맞을 확률이 높다. 그 사람과 말이 통해야 한다. 메시에게 패스를 해줘야 한다. 한 명의 메시를 발굴하고 나머지 다수가 메시에게 패스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지식의 주입은 하급 실무자의 영역이다. 지식은 도서관에 두었다가 필요할 때 찾아보면 된다. 학원에서 단기간에 배워도 된다. 그것은 교육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말을 들어먹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일단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어야 한다.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하면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집단의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선수단을 소집하면 일단 그라운드에 모여야 한다. 거기까지 가기가 힘들다. 자연을 탐구하여 무언가를 알아내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집단의 의사결정그룹에 드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변방에서 깔짝대지 말고 용기있게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일단은 말이 통해야 한다.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대학교육의 의미는 무엇을 아는데 있지 않다. 대학 졸업자는 친구도 대졸자다. 그게 중요하다. 고졸은 개인이고 대졸은 집단이다. 보수는 개인이고 진보는 집단이다.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 백 퍼센트 보수로 가는 이유다. 도와주는 친구와 밀어주는 동료가 없어서 손해봤다는 피해의식에 쩔어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도와주려고 해도 프로토콜이 막혀서 방법이 없다. 


    고졸의 문제는 주변에 고졸만 있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자연히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무언가 얻어내려면 직접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삐딱한 자세로 시비를 걸어서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상대가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과정은 추하고 비굴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비뚤어지는 것이다. 자존감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교육의 의미는 부족민이 되는가, 문명인이 되는가에 있다. 본능대로 사는가, 이성으로 사는가다. 집단과 관계맺는 방식에 따라 나오는 호르몬이 달라진다. 병정개미 호르몬이 나오면 병정개미가 되고 일개미 호르몬이 나오면 일개미가 된다. 두목 침팬지와 졸개 침팬지는 호르몬이 다르다.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 지식은 도서관에서 빌리면 되고 구글에서 검색하면 된다. 문제는 근본적인 자세가 사회의 편인가 반사회적인가다. 진보와 보수는 나오는 호르몬이 다르다. 


    강자의 철학이냐 약자의 철학이냐다.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바꾸지 못한다. 괴력난신을 추구하고 음모론을 추종하며 외계인, 사차원, 초능력 따위 비루한 것에 관심이 간다면 호르몬이 썩은 거다. 마땅히 지사의 호르몬이 나와야 한다. 경험을 추구하고 실용을 추구한다면 호르몬이 썩은 것이다. 일개미가 된 것이다. 일을 잘 하면 부사관이 되고 말을 잘 하면 간부가 된다. 지식을 익히면 부사관이 되고 소통을 익히면 간부가 된다. 존 듀이는 사람을 실용적인 부사관과 하급 실무자를 양성하려고 했으니 교육붕괴다. 곧 죽어도 양반이 되어야 한다. 우수한 의사결정그룹에 들어야 한다. 리더의 호르몬이 나와야 한다. 호연지기를 길러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당당하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상하게 어그로를 끌어서 수작을 내보려고 하는 소인배가 되면 안 된다. 소인배는 절차가 복잡하다. 그들은 배척되고 차단되고 가로막혀 상처입은 경험이 있다. 그들은 말투부터 다르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고 '도와주면 안 돼?' 하고 부정어법으로 말한다. '사과를 먹겠다'가 아니라 '사과를 먹으면 안 돼?' 하고 부정어법으로 말한다. 상대가 자신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끔 판을 흔드는 너죽고 나죽자식 공갈수법을 쓴다. 그냥 도와달라 한 마디로 1분만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3개월 동안 뒷수작을 부리며 애를 먹인다.


    보수주의는 생각이 틀린게 아니고 호르몬이 썩은 것이다. 두목 자리에서 밀려난 늙은 침팬지의 호르몬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과 자세가 틀려먹었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그렇게 된다. 일원론적 사유로 돌아와야 한다. 짐승에서 탈출하여 인간이 되어야 한다. 소인배에서 탈출하여 군자가 되어야 한다. 지식 자영업자에서 탈출하여 지사가 되어야 한다. 아는게 많은 실무자가 되지 말고 참모진에 들어야 한다. 가장이 되고 팀장이 되고 족장이 되고 리더가 되어야 한다. 군대를 가도 한 번은 병장이 된다. 지휘관이 된다. 누구나 한 번은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어린이로 뻗대지 말고 모든 결과에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1초 만에 된다. 이 길과 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다.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중에서 선택하기다. 공자의 길과 노자의 길 중에서 선택하기다. 합리주의와 실용주의 중에서 선택하기다. 일원론과 다원론 중에서 선택하기다. 율곡과 퇴계 중에서 선택하기다. 대승과 소승 중에서 선택하기다. 거기서 호르몬이 바뀐다. 리더를 생산하지 못하는 교육은 망한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면 망한 것이다. 자연스러우면 망한 것이다. 골방에서 혼자 고뇌하는 창백한 지식인상은 망한 것이다. 큰 뜻을 품고 지사가 되어 천하를 경영하는 대업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진짜는 한 명이 앞에서 길을 열고 나머지는 한 명을 탄생시키는데 사용된다. 메시는 앞에서 길을 열고 나머지는 메시에게 패스를 전달하면 된다. 재능이 메시에 못 미쳐도 뜻이 메시와 통하면 메시급이다. 재능이 천재에 못 미쳐도 듯이 잡스와 통하면 잡스급이다. 굳이 천재가 될 필요는 없다. 천재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론 머스크 만큼은 못해도 일론 머스크의 약점을 메워줄 수는 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지식을 찾으려고 끙끙대지 말라. 그 한 명을 알아보는 눈을 얻고 그 한 명과 통하는 마음을 얻으면 된다.


    시골에서 도덕을 닦으며 노예 300명을 무리없이 관리하는 퇴계의 길은 망한 것이다. 70억이 경쟁하는 현대사회에서 혼자 골방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100명의 선비들이 서로 멱살을 잡으며 치열하게 토론하여 한 명의 리더를 발굴해내는 율곡의 길이 진정하다. 나머지 99명은 리더와 언어를 공유해야 한다. 그럴 때 불패의 팀이 탄생한다. 그것이 진짜 교육이다. 교육은 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케미가 맞는 하나의 팀을 건설하는 것이다. 문재인 만큼 못해도 문재인의 마음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만큼은 못해도 노무현의 길을 갈 수는 있어야 한다. 교육은 바로 거기에 있다.



    당신은 교육되었는가?


    교육은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수평적인 팀의 건설이다. 집단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당신은 교육된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한국어가 되어야 한다. 말이 통해야 한다. 프로토콜이 맞아야 한다. 예의와 상식을 갖추어야 한다. 팀과 호흡이 맞아야 한다. 당신은 대한민국 의사결정 중심의 좋은 팀원인가?


    당신은 합리주의자인가, 실용주의자인가?
    당신은 절대주의자인가, 상대주의자인가?
    당신은 일원론자인가, 다원론자인가?
    당신은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
    당신은 공자의 제자인가, 노자의 추종자인가?
    당신은 말을 듣는 사람인가,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인가?
    당신은 이성을 따르는가, 본능을 따르는가?
    당신은 대한민국 민주시스템의 간부인가, 하급 실무자인가?
    당신은 리더인가, 졸개인가?
    당신은 대승인가, 소승인가?
    당신은 논쟁가 율곡인가, 도덕가 퇴계인가?
    당신은 천하인인가, 시골 샌님인가?
    당신은 팀의 일원인가, 고독한 떠돌이인가?
    당신은 문명인인가, 부족민인가?
    당신은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지사인가, 내 몫부터 챙기는 얌체인가?


    교육은 신분을 정하는 것이다. 집단의 의사결정그룹에 들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이 질문들에서 전자를 찍으면 교육된 것이고 후자를 찍으면 교육되지 않은 것이다. 간단하다. 다 연동되어 있으므로 하나만 잘 찍으면 나머지는 줄줄이 사탕으로 따라온다. 


    교육은 1초만에 가능하다.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지사의 호르몬이 나오면 교육된 것이며 다른 사람의 행동을 주시하다가 거기에 어떤 헛점을 포착하고 이를 공략하며 맞대응 하는 방법으로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식의 반사회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교육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그렇게 한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핑퐁식으로 떠넘기며 상대의 행동에 반격하는 방법으로 가담한다.


    존 듀이의 사상은 반교육 사상이다. 인간은 원래 부족민으로 태어난다. 12살에 가출하고 15살에 아기 낳고 서른살에 죽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여 무위자연하면 자연스럽게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교육은 극기복례하고 괴력난신을 물리쳐서 인간의 타고난 본능과 다른 길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집단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집단의 수평적 의사결정그룹에 드는 것이다.


    좋은 의사결정구조를 만든 다음 골치아픈 수학문제는 인도인에게 맡기고 기가 막힌 아이디어는 이스라엘인에게 얻고 힘든 것은 아웃소싱하면 된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낼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거절된다? 도처에서 거절되어 의사결정그룹에 들지 못하면 실패다. '나는 무슬림이니까' 하고 죽어도 터번을 쓰고 '나는 히잡을 쓰겠어' 하고 고집을 피우면 당연히 배척된다.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집단의 의사결정그룹에 들 수 없다. 


    재능이 있다면 괴퍅한 사람도 포용할 수 있어야 좋은 시스템이다. 그러나 일부러 괴퍅한 짓을 한다면 넌센스다. 튀는 행동을 하고 어그로를 끌고 눈치를 보고 상대의 카드를 본 후에 자기 패를 정하는 소인배짓은 배척된다. 간잽이짓 하는 안철수는 팀의 일원이 될 수 없다. 의료봉사나 계속하는게 맞다. 안철수는 교육되지 않은 사람이다. 남의 것을 빼먹기만 하고 자기 자산은 내놓지 않는 자와 지식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부담없이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교육이다.


    메이저리그는 코치도 선수에게 기술을 잘 전수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존 듀이가 교육을 망친 결과다. 일본은 바둑기사가 내제자를 받아도 세 번 밖에 두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제자를 받을 때 한 번, 중간평가로 한 번, 제자가 떠날 때 한 번이다. 일본에서 바둑을 배운 조훈현도 이를 본받아 이창호에게 바둑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예절을 알려주고 인맥을 소개시켜 주는게 전부다. 일본이 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열등해진 일본의 의사결정구조


    역사는 의사결정구조의 대결장이다. 상대적으로 좋은 의사결정구조를 건설한 나라가 승리한다. 좋은 의사결정구조는 좋은 모방구조다. 집단의 존재 목적은 집단 중에서 우월한 자를 복제하는 데 있다. 노벨상 수상자나 다수의 위인이 있는 나라는 그 사람의 장점을 복제할 수 있다. 좋은 구조가 있어도 시대와 맞지 않아서 묻혀버릴 수 있고 반대로 신통찮은 의사결정구조가 시대와 맞아떨어져 과대평가되기도 한다. 일본이 과거에 잘한 것은 상대적으로 좋은 의사결정구조 덕분이다. 그러나 환경은 변하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낙후될 수 있다. 일본이 근래에 열등해진 것이 맞다. 과거의 의사결정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의 본질은 열등한 자가 우월한 자를 모방하는 구조다. 사회주의 곧 관료주의가 잘 복제하는가 아니면 자본주의 곧 경쟁구조가 잘 복제하는가다. 사회주의는 관료를 통해 강제로 복제하고 자본주의는 경쟁과정 중에 저절로 복제된다. 둘 다 장단점이 있다. 후진국이 선진국과의 격차를 때라잡을 때는 사회주의 방법 곧 전체주의가 먹힌다. 군사독재 시절때 한국도 이 방법을 썼고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진국이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바꿔야 한다. 더 이상 복제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왜 중국 고무술은 현대의 종합격투기에 깨질까? 프로권투도 백 년 전 챔피언과 지금 챔피언이 대결하면 압도적인 전력차이가 난다. 백 년 사이에 권투기술이 많이 발전한 것이다. 태극권, 팔괘장, 영춘권 따위 중국 고무술은 실전을 하지 않은 관료주의 무술이다. 공무원 무술이자 사회주의 무술이다. 지는게 당연하다. 상대를 이기는 실전기술이 아니라 넓은 운동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치기 좋은 쪽으로 발달시킨 것이다. 


    시합을 하다 보면 상대방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게 자본주의 방식이다. 바둑을 배워도 실제로 두어보는게 중요하다. 바둑을 책으로 배워서 얼마나 배우겠는가?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이 사회주의다. 교실에서 가르쳐야만 하는 과목도 있다. 


    정답을 말하자.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는 사회주의로 가면 초반에 좀 되다가 어떤 장벽을 만나 주저앉는다. 후진국에서 중진국까지 올라왔다가 정체된다. 실전 위주인 자본주의로 가면? 처음부터 수포자가 대량으로 발생한다. 그게 히피족이고 펑크족이다. 아예 창업을 하지 않는다. 경쟁 근처도 못 가는 것이다. 봉건왕조와 같은 계급사회라면 노예들은 처음부터 포기한다. 신분의 한계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 중학생이 입시를 포기하고 취업한다. 부모가 노동자면 자식도 노동자가 되려고 한다. 왜 유럽은 잘 나가다가 망했는가? 그들은 너무 일찍 사회에 진출하는 병폐가 있다. 열다섯이면 독립하고 스무살이 되면 결혼한다. 러시아는 19살에 결혼하고 스물두살이면 이혼하고 26살에 재혼하는게 보통이라는 말이 있었다. 요즘은 달라졌겠지만. 


    한국은 만인이 대통령 한 명을 모방하는데 일본은 가까운 가장, 족장, 사장, 선배를 모방하므로 한계가 있다. 그들의 리더는 세습정치인이라서 배울 것이 없다. 중국은 시진핑을 모방하고 북한은 김정은을 모방해서 한계가 분명하다.


    일본식 구조가 한때 전 국민의 상향평준화를 이끌었다. 1억 총 중산층을 표방하기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그치고 만다. 더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어렵게 건설한 복제구조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장점은 좋은 모방대상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것이다. 전체주의 장점은 단시간에 일정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국민의 수준이 높아졌으므로 전체주의는 용도폐기가 되었다. 일본은 여전히 군국주의 시절의 관습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나름 성공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화를 낼 이유는 없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대륙의 일부다. 한국을 인정하면 중국도 인정해야 한다. 애초에 대륙과는 선을 긋는게 낫다. 그게 섬나라의 사정이라면 받아들일 밖에. 


    서구는 학습을 부정하고 경쟁만 강조한다. 현대사회에 맞지 않은 게르만족들의 봉건 관습이다. 경쟁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유교의 학습이 가장 쉽게 지식을 복제한다. 중요한건 복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복제하는가 아니면 하다 보니 어쩌다 복제가 되어버렸는가다. 유교권은 복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르만족은 경쟁을 하다가 저절로 복제된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하면 다들 히피가 되고 펑크족이 된다. 


    유럽 기업은 대개 100년이 넘은 세습가문이고 새로 창업하지 않는다. 왜? 수포자들 때문이다. 빠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수학을 포기한다. 창업 근처까지 가보지 못하고 발달한 복지제도에 의지하여 안전한 공무원이 된다. 그게 원래 해결이 안 된다. 별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서구는 인간을 과대평가한다. 


    과거 미국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사고력이 중요하지 문제풀이 교육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련이 우주를 정복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뒤늦게 문제풀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왜 미국은 문제풀이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진보 일각에서 자연과 친하다 보면 저절로 배우게 된다는 괴설을 퍼뜨려서 잘못된 교육사상이 퍼졌기 때문이다. 곧 서머힐 스쿨이다. 우리나라도 초등학교 미술수업 때 기술을 안 가르쳤다. 테크닉은 미술학원에서 배운다. 김만철 일가족이 귀순하면서 북한에서는 미술수업 시간에 데생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교육은 가르치지 않는 것이야.' 이런 괴상한 사상이 아직도 한국에 퍼져 있다. 곱게 미쳐야지. 서구는 가르치지 않는게 민주적이라는 비뚤어진 사상에 빠져 있다. 일본은 선배들에게 배우다가 딱 선배 수준에서 발전이 멈추었다. 한국인들은 대통령에게 배운다. 그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 가르칠건 가르쳐야 한다.


    존 듀이라는 한 명의 바보가 인류를 전체적으로 퇴행시켰다. 존 듀이는 바보가 맞다. 정치를 하지 않으면 저절로 정치가 된다는 안철수 사상이 존 듀이 등신교육이다. 2차대전에 대한 반성에서 스파르타식 교육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 교육이 흥했다. 낙관주의, 바보주의, 히피주의, 펑크주의로 발전한 것이다. 물론 스파르타식 교육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교사가 절대 부족하고 문맹이 다수이던 시절에 통했던 스파르타식 교육이 21세기에 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천재의 발굴과 복제가 중요하다. 스파르타 교육은 일정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나 천재를 만들지 못한다. 현대사회는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의 인재를 복제한다. 묻어가는 전략이 중요하다. 천재 주변에서 얼쩡거리다가 묻어가게 해야 한다. 스파르타식으로 가면 인문정신의 결여로 모든 학자가 서로 반목하고 자기 아이디어를 공개하지 않는다. 소련의 몰락이유다. 교육은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로 묻어가는 구조를 건설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훈련을 통해서 한 명이 옳은 말을 했을 때 다수가 이를 납득하고 수용하는 복제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구구단은 반드시 외어야 하고 수학은 공식을 익혀야 한다. 선배나 교사의 도움이 없으면 절대 뚫지 못하는 견고한 천장이 있다. 문제는 동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주입식 교육은 선배가 떠나고 교사가 떠나면 일제히 바보가 된다. 초반에는 선배나 교사에 의지하고 다음은 동료가 서로의 약점을 메우는 교육이 진짜다. 높은 레벨로 올라갈수록 그러한 경향은 강화된다. 


    교사가 스파르타식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것은 낮은 레벨이고 어느 사회든 정상급으로 가면 동료와의 토론과정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된다. 정상에서는 스승도 가르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단계에서 토론식 수업은 무의미할 때가 많다. 상대방 의견을 들어주는 인내심을 기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의 장점 - 선배나 교사의 도움을 받는다.
    일본의 단점 - 동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골방에서 연구한다.
    한국의 장점 - 수평적 팀플레이로 동료의 도움을 받는다. 한 명의 뛰어난 천재를 거국적으로 모방한다.
    한국의 단점 - 멍청한 애를 과잉교육으로 억지 하버드 보내놓고 노벨상이 안 나오니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한국의 교육방법이 잘못되었다고 개소리를 한다. 사실은 원래 멍청한 녀석이었다.
    서구의 장점 - 경쟁을 통해 서로 배운다.
    서구의 단점 - 너무 일찍 포기해서 히피가 된다.
    소련의 장점 - 한꺼번에 대량으로 가르친다.
    소련의 단점 – 좋은 것은 혼자만 알고 있고 절대 말 안 한다.



    집단의 권력과정power process이 교육의 정답이다


    존 듀이가 서구의 교육을 망쳐놓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공자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교육이 더 나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먹힌 것이다. 박정희도 변명거리는 있다. 이승만 시절보다 좋아졌잖아. 곤란하다. 과거와 비교하면 안 된다. 존 듀이 교육은 19세기보다 진보했을 뿐 21세기에는 맞지 않다. 


    공자의 가르침과 다른 모든 잡다한 사상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교육이다. 다른 사상은 적응이다. 교육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고 부족을 갈아타는 것이다. 적응은 고정된 환경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의 문제는 나를 바꿔서 될 문제가 아니고 세상을 바꿔야 해결된다. 


    교육이냐 적응이냐는 스크라테스의 철학과 소피스트들의 궤변만큼 차이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에 천착했고 소피스트는 재판에 이기려는 목적이 있다. 애초에 방향이 다르다. 군대라도 간부와 부사관은 방향이 다르다. 간부의 목적이 인원이 통솔에 있다면 부사관의 목적은 문제의 해결에 있다. 이건 다른 거다. 실용이나 경험은 문제해결에 소용되는 것이다.


    교육의 근본은 지식을 공유하는 시스템의 건설에 있다. 실용이나 경험을 들고 나오면 공유가 깨지고 시스템이 깨진다. 철학과 반철학은 다르다. 문명과 야만은 다르다. 문화와 반문화는 다르다. 교육과 적응은 다르다. 교육은 지식의 공유라는 목적이 있고 적응은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인류가 집단지성을 이루어 하나의 단일한 뇌처럼 움직이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처세나 적응이지 교육이 아니다. 


    실용주의나 경험주의는 지식의 공유를 방해하는 점에서 반교육이다.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하지만 보수는 원래 논하지 않는다. 진보는 인류가 힘을 합치는 문제를 다루고 보수는 개인이 각자 대응할 문제다. 진보가 잘 하면 보수는 저절로 소멸한다. 그러므로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 요령이나 꼼수도 마찬가지로 교과서에서 가르칠 수 없다.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다. 군에 입대하는 장정은 빠지기, 개기기, 짱박히기 요령을 배워놓는 것이 좋지만 그런 것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는 없다. 그것은 친구들을 통해 슬그머니 배우는 것이다. 실용이나 경험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신분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과 비학생은 신분이 다르다. 학교에 다니면 거리의 아이들과는 다른 존재다. 괴력난신을 거부하고 극기복례하여 인간의 길을 갈 것인가, 본능대로 생활하며 동물의 길을 갈 것인가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며 인간의 길을 가면 교육시스템의 제자가 되어야만 한다. 피아구분에서 타자가 아닌 아에 들어야 한다. 학교에 가는 목적은 동료를 얻는데 있다. 팀에 드는 것이다. 서머힐 스쿨이라면 초등학교 6년치를 1년 만에 다 배운다. 지식의 주입은 짧은 시간에 가능하다. 학원에서 배워도 된다. 교육은 다른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면 간부가 되고 학원에서 배우면 부사관이 된다. 신분이 다르다.


    적이라는 말은 들판을 돌아다니는 야인을 뜻한다. 성 안에 살면 국인이고 성 밖을 배회하면 야인이다. 야인이 국인을 만나면 곧 약탈하므로 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의복을 훔쳐가므로 도적이다. 그들과의 수평적인 대화가 불성립이다. 교육의 목적은 집단의 의사결정구조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의사결정권자가 되기다. 집단의 권력과정power process에 포함되는가다. 


    스무살 쯤 되는 청년이 백범 김구가 설립한 학교에 왔는데 부모에게 반말까고 주먹질을 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부터 존댓말을 하거라’. ‘네.’ 끝이다. 교육은 하루 만에 완성되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늘부터는 어엿한 사람이 되었다. 교육이란 그런 것이다. 그는 야인의 의사소통그룹에 들었다가 국인의 의사소통그룹으로 갈아탄 것이다. 교육은 인생을 갈아타는 것이다. 이 말을 타다가 저 말로 바꿔 타기다. 경험과 실용과 눈치와 요령과 꼼수와 생존과 적응과 환경의 짐승에서 어엿한 인간의 길로 바꾸는 것이 교육이다. 집단의 권력과정에 들어와야 한다.


    오늘날 서구가 밀리고 유교권이 앞서는 이유는 서구의 교육사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그 배경에 존 듀이라는 바보가 있다. 진보와 보수는 공존할 수 없고, 사람과 짐승은 공존할 수 없고, 국인과 야인은 공존할 수 없고, 군자의 교육과 소인배의 적응은 공존할 수 없다. 진리와 실용은 공존할 수 없다. 


    공자의 길에 있는 것이 존 듀이에게 없다. 그것은 집단의 권력과정이다. 집단이 목표를 세우고 역할을 나누고 상호작용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동물은 서열정리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알파독이 무리들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인간은 같은 가족이나 집단 안에서는 대략적인 서열이 정해져 있지만 피부색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면 서로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끈다. 서로 어색해 하고 불편해 한다. 냄새가 다르면 본능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지루한 과정을 자유와 민주로 미화하면 안 된다. 그것은 교육되지 않은 집단의 의사결정 난맥상이다. 기독교는 세례로 이 과정을 단축하고 불교는 수계로 해결한다. 하룻만에 다른 사람이 된다. 교사의 말 한 마디로 해결할 것을 몇 개월간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면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유대인이 흥하는 이유


    코엔형제는 3분짜리 트레일러를 촬영하고 고향의 유대인 단체 '허대서' 사무실로 가서 부자 100명의 명단을 구했다. 그들에게 트레일러를 보여주고, 모두 68명에게서 85만 5천 달러를 모아 8주 만에 영화 '블러드 심플'을 완성했다.[나무위키]


    코엔형제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대인 부자의 돈을 투자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에 흥하는 벤처가 많은 이유도 미국의 유대인 부자들 덕분이다. 코엔형제가 투자유치에 성공한 이유는 고향 미니애폴리스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그런 것이다. 시나고그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투자받을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운명의 저울추는 일순간에 기울어진다.


    야인의 길을 가려면 가는 것이다. 부족민의 길이다. 12살에 가출하고 15살에 아기 낳고 거침없이 살면 된다. 사실이지 옛날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잖아. 화랑도라는 것도 모여서 생활하는 가출소년 집단이었다. 오늘날의 가출팸이다. 게르만족에도 유사한 관습이 있고 로마인에게도 비슷한 청소년 집단이 있었다.


    중국인들에게도 좋은 관습이 있다. 칼 한 자루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어느 차이나타운을 가더라도 성씨별로 패방이 서 있다. 문중의 장로들 십 수 명이 모인 자리에서 신원조회를 하고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면 투자를 받아 중국음식점을 개업할 수 있다. 단 평판이 좋고 부잣집의 사위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까짓거 사위가 되면 된다. 교육이란 것은 이렇듯 시스템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평판이 나쁘면 가문에서 축출된다. 부자의 사위가 되지 못하면 음식점을 열 수 없다. 유대인 부자의 투자를 유치할 수 없다. 코엔형제는 쉽게 해냈는데 말이다.


    우리는 문명중독에 걸려 있기 때문에 교육의 이러한 본질을 간과한다. 왜 유대인 부자들은 코엔형제에게 투자했을까? 사실 1인당 1만 달러의 소액을 분산투자한 것이다. 100명의 부자들은 같은 그룹의 동료들이고 그 동료들 사이에 머무르려고 투자를 해준 것이다. 돈 벌어서 잘먹고 잘 살려고 투자를 한 것이 아니다.


    실무를 배우면 부사관이고 이러한 의사결정그룹에 들어야 간부가 된다. 교육의 목적은 우수한 그룹에 드는 것이다. 그룹의 질이 나쁜데 뭐 배울 것이 있겠는가? 서울대의 질이 떨어지는데 무슨 교육이란 말인가?


    진리는 절대적이다. 교육은 절대적이다. 그룹 안에 들든 그룹 바깥으로 나가든 운명은 결정된다. 공부를 하면 하사관이 되고 우수한 그룹에 들면 간부가 된다. 하사관은 배워서 아는 지식으로 해결하고 무식한 간부는 동료와 회의해서 결정한다. 아는 사람은 부사관으로 끝나고 실무를 모르는 사람이 간부로 출세한다. 지식보다 동료가 중요하다. 문제해결보다 인원통솔이 중요하다. 그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이게 지나쳐서 청담사상이 유행하던 남북조 시절에는 진짜 아무 것도 모르는 문벌귀족이 순전히 인맥의 힘으로 고관대작이 되어 출세했다. 그래서 중국은 망했다. 일베가 진보 지식인을 혐오하는 이유도 사실 이와 같다. 부대에 20년이나 근무해서 실무를 잘 아는 부사관이 방금 파견 와서 실무를 하나도 모르는 간부를 혐오하는 것이 일베정신이다. 그런데 교육의 본질은 간부의 양성에 있지 부사관의 실무에 있지 않다. 유대인이 뜨는 것도 실무지식 덕분이 아니다. 실무는 인도인이 도맡아 한다. 교육은 유대인처럼 해야 한다. 무얼 배우고 가르치는게 아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그게 진짜다.



    박정희 50년 대 노무현 50년


    우리는 비전을 봤고 새로운 목표를 얻었고 길을 찾았다. 일본과 다르게 하면 된다.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나라가 다 먹게 되어 있다. 리더를 잘 모방하는 나라가 이긴다. 일본은 리더가 세습하므로 반짝 하다가 끝난다. 선배 한 명에게 배우는 일본을 동료 수십여 명이 지식을 공유하는 한국이 이긴다. 


    일본이 한국과 다른 점은 수평적 구조가 막혀 있다는 점이다. 소대가 다르면 경쟁하고 협력하지 않는다. 이차대전 시기 육군과 해군이 서로 적대한 것과 같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 표현되듯이 다른 부서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면 안 된다. 무조건 선배에게 복종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부서에서 신기술을 도입한다 해도 다른 부서와 협조가 안 되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본은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명령하지 않으면 개혁이 안 된다. 후쿠시마 사태가 터지면 우왕좌왕 하는게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라 명령권자가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도쿄전력 사장과 총리가 서로 눈치를 보는 식이다.


    서구는 경쟁하다가 적에게서 배운다. 이 방법은 프리미어리거쯤 되는 고수들에게난 먹힐 뿐 런던의 하층민은 초딩때 수포자가 되어 노동계급으로 떨어진다. 인간의 문제는 문명중독에 걸려 이러한 본질을 잊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원래 12살이면 독립하고 15살이면 출산하고 40살이면 인생 끝낸다. 이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좋지 않다. 교육에 의해 야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게르만족은 부족민의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존 듀이의 비뚤어진 교육사상이다. 경험주의나 실용주의는 그냥 부족민 관습이다. 치고받고 싸우다 배운다. 프리미어리거라면 확실히 실전경험이 중요하다. 시합에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는 교육의 본질과 멀다. 많은 경우 쓸데없는 서열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윗사람의 지시로 1초만에 될 것을 3개월간 관할권을 두고 신경전을 버린다. 625때 국군이 고전한 이유도 미군과의 관할권 마찰 때문이다. 국군은 원래 다른 부대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는데 미군은 관할권을 엄격하게 따진다. 그 약점을 중공군이 알고 미군 관할지역으로 야간에 침투하여 국군 관할지역의 배후를 공격한 것이다.


    교육은 부족민이냐 문명인이냐, 소인배의 삶이냐 군자의 삷이냐, 리더의 인격이냐 대중의 처세술이냐를 가르는 것이다. 여기서 피아구분 들어가준다. 한 번 신분이 결정되면 벗어나지 못한다. 운명이 결정된다. 병정개미가 될지 일개미가 될지 스스로 정하는 것이며 길을 잘못 정하면 호르몬이 잘못 나와서 스스로 자신을 일개미로 한정시킨다. 리더의 호르몬이 나와야 교육의 성공이다. 진보와 보수는 자신을 병정개미로 보는가 일개미로 보는가의 차이다. 호르몬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고 인생이 다르다. 공자의 길은 일개미 호르몬을 버리고 병정개미 호르몬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인류의 리더가 되어야 병정개미 호르몬이 계속 나와준다.


    나이가 들면 집단 안에서의 위상이 주변적 역할로 밀리면서 일개미 호르몬이 나와서 보수꼴통이 된다. 어떻게든 역할을 지켜야 병정개미 호르몬이 나온다. 진보와 보수는 호르몬의 차이다. 머리 속에 무엇을 주입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지식은 도서관에 있어도 좋다. 머리 속에 넣어서 짊어지고 다닐 이유가 없다. 네트워크 안에 있으면 된다. 대학생은 모르는 것을 물어볼 동료가 있고 고졸은 그 동료가 없다. 네트워크가 없다. 거기서 신분이 갈리고 삶이 갈리고 운명이 갈리고 호르몬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 무엇을 배우는 것은 교육이 아니고 자기 신분을 정하는게 교육이다.


    진보와 보수는 신분이 다르다. 집단 안에서 역할이 다르다. 절대성을 따르면 진보가 되고 상대성을 따르면 보수가 된다. 집단 전체의 방향을 따르면 진보이고, 구석에서 자기 터전을 닦으면 보수다. 내비게이션 상단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면 진보이고, 상대적으로 왔다갔다 하면 보수다. 


    교육이 아닌 것을 교육이라 우기면 안 된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필요는 없다.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으면 답답한 학생이 되고 교실 밖을 뛰쳐나가면 자유로운 부족민이 된다. 말을 듣느냐 말을 듣지 않느냐댜. 인간은 원래 오십 명 이하의 소집단으로 살아왔다. 경상도 꼴통은 2천만이 수도권에 몰려 산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경상도 지형은 허파꽈리처럼 생겨서 구석구석 짱박혀 숨어살기에 좋다. 삐딱한 태도로 등 돌리고 말끝마다 ‘난 반댈세’ 하는 버릇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그들은 부족민의 본능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자연스러우면 보수다.


    절대진리를 부정하는 존 듀이의 교육사상은 보수 그 자체다. 2차대전 시기에 비해 상대적인 진보로 기능했을 뿐 문명단위로 보면 부족민의 서열본능을 교육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오늘날 노자의 썩은 무리가 천하에 가득 들어찬 이유는 노자의 사상이 부족민의 본능을 반영하므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12살에 가출하고 15살에 아기를 낳는 자연스러운 히피족과 펑크족의 삶 말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살아왔다. 계속 그러고 살 것인가? 문명세계로 들어가서 행복 끝 불행시작의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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