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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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206 vote 0 2017.10.09 (14:09:29)

     

    세종은 무엇이 다른가?


http://v.media.daum.net/v/20171009000047310?rcmd=rn <-안봐도 됨다.


    상식을 의심하라. 상식이 다 맞다면 세상이 이토록 개판일 리가 없다. 상식은 상식으로 포장하여 판매하는 중간자에 의해 왜곡된다. 빌어먹을 계몽주의다. 그들은 사실 속에 자기 말을 끼워넣는 수법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중앙일보 역시 기레기답게 거짓을 날조한다. 세종이 신하들과의 질문과 토론을 통해 공부했단다. 즉 세종은 신하에게 배웠다는 말이다.


    문재인은 내게 와서 배워라는 말이다. 이런 거짓말에 넘어가지 말자. 당연히 맞는듯이 보이는 말은 당연히 검증이 안 된 거짓말이다. 한때는 공부를 안 시키고 자유방임하면 저절로 공부가 된다는 엉터리 사상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공부를 해야 공부가 되지 질문하고 토론하면 저절로 공부 되나? 미친 거다. 분명히 말한다. 공부해야 공부된다.


    인도나 아랍은 회당에 모여 단체로 암기하는 독송공부법을 쓴다고 한다. 이런건 당연히 잘못된 공부법이다. 컴퓨터 시대에 응용하지 못하는 주입식 공부는 의미가 없다. 지식은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면 충분하다. 지식을 일일이 머리 속에 저장하려 한다면 미련한 짓이다. 진짜 지식은 복제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며 복제능력을 길러야 한다. 연역해야 복제된다.


    그냥 베끼는건 표절이지 지식의 복제가 아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아는게 지식의 복제다. 하나로부터 열을 복제해낸다. 그 하나는 원리여야 한다. 하나의 원리를 체득하면 지식은 무한복제되는 것이다. 세종은 그 하나를 알았다.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진짜 공부는 아랍식으로 암기하는 것도 아니고 중앙일보의 기레기들 방법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도 아니다.


    질문과 토론은 세종이 무식한 관료들을 가르치는 교수법이지 절대 세종의 공부법이 아니다. 세종이 2천여 회 했다는 경연은 왕이 된 다음의 일이고 공부는 왕이 되기 전의 소년기에 했다. 원래 인간의 뇌는 10대 소년기에 완성된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이후는 복제다. 소년기에 원리를 깨닫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안 된다. 아인슈타인도 소년기에 생각을 얻었다.


    세종의 질문과 토론은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의 산파법과 같은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산파법으로 공부한 게 아니라 세상에 제대로 아는 놈이 한 놈도 없더라는 사실을 검증한 거다. 질문과 토론 중심의 경연은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첨단 지식을 독점하던 세종이 신하 중에 뭔가 아는 넘이 한 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들을 제압하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고려는 송나라의 문치를 복제하다가 무신정권으로 박살났는데 세종의 관료들은 다수가 문신이라 무신정권의 최종버전인 이성계정권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조선이 건국한 후에도 한동안 민간에서 불리던 나라이름은 고려였다. 요즘도 조선팔도에 어쩌구 하는 사람이 있겠는데 당시는 고려천지에 이런 일이 하는 식이었다. 이씨왕조는 성공한 무신정권이었다.


    무신정권을 견제하는 문신세력과 그들을 지식으로 제압하려는 세종의 충돌이다. 당시만 해도 조선왕조는 정통성 없는 쿠데타집단이었다. 세종의 질문과 토론은 문신을 제압하여 문무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며 유교 대 불교+도교의 균형맞추기 노력이다. 선비들이 억불숭유를 외치지만, 그게 사실은 왕실을 때리는 거다. 사대주의 운운은 본질을 벗어난 거다.


    송나라의 찬란한 문화가 단번에 몽골 야만인들에게 짓밟히는걸 봤다. 당시 송은 산업혁명 직전까지 가서 주식회사도 있고 복잡한 금융제도나 근대식 분업체제로 작동하는 직물공장도 많았다. 소주에는 노동자를 수백 명 고용하는 전옥이 100개 이상 있었다. 대량생산체제가 작동했던 거다. 송의 철강생산량과 석탄생산량은 영국이 흥하기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송을 노리는 금과 거란을 견제하며 중간에서 꿀빨던 고려는 몽골 때문에 단번에 박살이 났다. 이성계는 몽골세력의 잔당이다. 장대한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초딩처럼 논하는 개들이 무려 지식인 행세를 하는게 비극이다. 빌어먹을 계몽주의 경계하라. 그들은 고정관념에 사실을 짜맞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떠들었다.


    산스크리트어와 파스파문자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자들의 주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개소리다. 왜? 문맹인 16세 소녀 잔다르크가 혼자 프랑스를 구했다는 건 계몽주의 사상과 맞지 않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런 식의 독주는 곤란하다. 팀플레이 해야지. 그러나 원래 팀플레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전쟁과 정치는 팀플레이가 맞다.


    과학이나 예술은 혼자 하는 거다. 중국은 유별나서 과학도 팀플레이로 하기 때문에 노벨상을 못 받는다고 한다. 노벨상은 단체가 아닌 개인에게 주는 걸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체로 과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안 된다. 사회주의 이념에 맞춘다고 억지로 단체과학을 시켜서 성과가 나오겠는가? 소설도 집체창작으로 쓰고 그렇게 해서 그게 잘 되겠는가?


    계몽주의는 구조론이 말하는 질의 결합을 강조하여 팀플레이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자기네 신념에 꿰맞추면 안 된다. 계몽주의자는 말한다. 잔다르크는 그냥 마스코트에 불과하고 프랑스 민중이 단체로 열심히 해서 영국군을 물리쳤다고. 그래야 모양이 나니까. 근데 사실이 아니다. 책상머리에서 지어낸 거짓말이다. 잔다르크 혼자서 다 해냈다.


    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 혼자 다 만들었다. 아이폰은 잡스 혼자 만든 거다. 원래 한글을 단체로 만드는 건 가능하지 않다. 사공이 많으면 당연히 배가 산으로 간다. 구조론은 필자 혼자 만들었다. 팀플레이 중요성을 학습시키기 위해 뭐든 좋은 건 팀플레이 성과라고 우기는 게 계몽주의다. 성삼문은 뭐를 담당하고 하위지는 뭐를 담당하고 세종은 총지휘를 한다. 


    역할나눠먹기 멋지잖아. 그러나 구조론은 마이너스이니 하향평준화된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혼자 의사결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사대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최만리를 씹는다면 곤란하다. 최만리도 그럴만 해서 그런 말 했다. 거기서 왜 사대주의가 나오냐? 인종주의 역사관인 식민사관에 물들어 민족주의 주장할 의도의 거짓말이다.


    중국과 전쟁한 게 625다. 중국이 우리의 적국이니 중국글자 쓰자는 최만리는 욕을 먹어야 한다는 식이다. 배경을 봐야 한다. 고려이후 역사는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었다. 당시 송의 발전상을 지금 우리가 모르니까 몽골의 야만도 모르는 것이며 몽골의 야만을 모르니까 몽골의 방계세력인 청에 나라를 가져다바친 쳐죽일 배신자 광해군을 대놓고 찬양하는 거다.


    청을 견제할 목적으로 일본과 외교하던 관행을 끊고 청에 굴복한 개새끼 정조를 찬양하는 짓도 마찬가지다. 수원이 왜 화성인가? 찬란한 중국을 배우자는 의미의 이름이다. 정조가 오랑캐 청을 사대하면 칭찬하고 최만리가 명을 사대하면 욕을 먹어야 하나? 공정해야 한다. 하긴 정조 대에 청이 잘나가긴 했다. 뒤늦게 조선이 중국에 줄서자 바로 중국이 망했다.


    질문과 토론은 올바른 교수법이 될지언정 올바른 공부법은 아니다. 지식인들이 이런 소리 하는건 내한테 물어봐라 하는 거다. 자기가 지식인이니까 자기를 높이기 위해 아전인수를 구사한다. 세종의 질문과 토론은 무신정권 이성계왕조를 비하하는 신라귀족 잔당 문벌귀족들을 제압하는 세종의 기술이다. 최만리가 최씨인게 육부촌장에서부터 이어져 온 거다.


    최근 외국인 학자에 의해 밝혀졌지만 신진사대부는 개소리고 그 존재가 없었으며 신라 때부터 이어져온 문벌귀족이 조선왕조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며 왕은 과거제도를 이용해 귀족세력을 물타기 했다. 문벌귀족의 힘을 약화시켜 놓으려고 한 것이다. 조광조가 개혁을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무신세력을 친 것이며 역으로 무신들에게 박살났음은 물론이다.


     세종이 신하들과 토론해서 알아낸 지식은 없다. 한글은 음양의 이치로 만들어진 것인데 신하들과 그런 토론을 안했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는 원래는 태극의 원리에서 나왔다. 경연은 세종이 지식을 과시하여 신하들을 제압하는 용도다. 민중의 신분상승 에너지를 동원하여 문벌귀족을 제압하는게 한글창제의 진짜 목적이다. 조선왕조는 대단한 동원국가다.


    대부분 봉건영주가 중간에 끼어 동원이 안 된다. 조선은 봉건영주가 없는 대신 사림세력이 중간에 끼어 동원을 방해한다.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전쟁을 해야 하는데 사림들이 반발한다. 조광조가 여진족에게 편지를 보내서 잘 타이르면 되잖아 하고 주장한게 그 예다. '니들 지금 금밟았거든. 물러가.' 이러면 '아! 죄송합니다.' 하고 순순히 물러갈 줄로 아는 거다.


    청나라 강희제도 같은데 주역을 공부하여 널리 세상의 이치에 통달하였다. 세종도 주역을 공부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이며 이는 공자 이래의 전통이다. 세상을 밸런스로 보는 눈을 얻어서 확철대오한다. 그렇다고 지금 주역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세상이 대칭과 호응의 에너지 균형에 의해 작동한다는 본질이 씌어있을 뿐 나머지는 챙길만한 게 주역에 없더라.


    원리를 터득했다면 스스로 사물을 관찰하여 깨달아야 한다. 하나를 깨달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알게 된다. 계몽주의는 지식인이 대중에게 아부하는 수단이다. 이스터섬은 거석상 만들다 망한 게 아니고 사실은 그 반대다. 이집트가 피라밋 만들다 망한게 아니고 그때가 전성기였다. 미국이 항공모함 만들다 국력을 소진하여 망한게 아니고 사실은 그 반대이다.


    세종이 많은 책을 독서하여 똑똑해진 게 아니고 음양의 이치를 깨달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책을 읽는다. 왜? 자기가 아는 밸런스 개념이 과연 맞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 예상에 의하면 이것도 밸런스여야 하는데? 어 이것도 밸런스 맞네? 그렇다면 이것도 밸런스일걸? 어 역시 이것도 밸런스 맞잖아! 재밌잖아. 멈출 수단이 없다.


    예측을 적중시키는 재미 때문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필자 역시 왕권과 신권의 대결이라는 고루한 한국사 패러다임을 쳐부수고 문벌귀족과 무신세력의 대결구도로 보는 새로운 역사 패러다임으로 한국사를 대체하는 재미로 이런 기사를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다. 왕권신권 나오면 다 개소리다. 음양의 이치를 깨달으면 모든 책이 다르게 보인다.


    무엇이든 예측할 수 있고 예측을 적중시키는 재미 때문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다. 예측능력이 없으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다. 왜? 뇌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르몬이 나와줘야 한다. 뇌가 계속 반응하기 때문에 중도에 멈추지 못한다. 화장실에서 똥 싸다가 중간에 끊고 나오지 못하잖아. 아이디어가 하루종일 머리 속을 맴도는데 중간에 어떻게 끊겠는가?


    책이 손에 붙어서 안떨어지는 것이며 책 한 권을 세 시간 이상 붙들고있는 사람은 책 읽는 게 아니다. 닥치는대로 읽어야 읽는 거다. 양서를 골라 읽는다는 식은 책읽는게 아니다. 초딩이라면 교과서 받은 날 다 읽고 다음날부터 교과서 안보는게 정상이다. 음양의 이치를 알면 예측능력이 생기고 예측이 적중하면 뇌가 쾌감을 느껴 공부중독에서 탈출 못한다.


    프랑스가 내분으로 약해져 영국과 백년전쟁 하는 동안 백 년을 두들겨맞아 망했다고 말하면 계몽주의다. 분열멸망 단결필승. 근데 사실은 다르다. 영국군은 프랑스에서 약탈한 물건을 프랑스에서 팔았다. 그 덕분에 시장이 들어서고 상공이 발전하여 중세의 암흑에서 벗어나니 프랑스가 강해졌다. 생산력의 증가다. 항상 예상과 반대로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항상 반대쪽을 생각하라는 게 주역의 가르침이다. 분열멸망 단결필승은 일베국뽕이나 하는 짓이다. 유럽은 분열하여 흥했고 중국은 단결하다 망했다. 반대로 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책을 읽어도 다른 것이 보인다. 다른게 보여야 뇌가 흥분하고 호르몬이 나와줘야 지식이 복제된다. 임금이라면 언제라도 대립하는 신하들 사이에서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 


    임금의 생각을 얻어야 진짜가 보인다. 호연지기다. 그것을 얻은 사람이 군자다. 니체의 초인이다. 필자는 촌놈사상이라고 한다. 균형자는 쉽게 싸움판에 끼어들지 않고 한 발을 빼고 관망하며 새롭게 판을 짠다. 촌놈은 예비병력이다. 예비자원은 판에 끼지 않고 역할과 포지션을 얻지 않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도시인은 텃세부리고 제 나와바리를 관리한다.


    자신을 예비자원에 두어야 한다. 세종은 한글을 보급해 시스템 바깥의 예비자원인 민중을 동원한 것이다. 동원력 높은 나라가 흥한다. 취직해 있고 결혼해 있고 기득권 되어 있더라도 마음만은 예비자원으로 있어야 한다. 언제든 모두 버리고 백지상태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소속집단과 안맞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데서 쾌감을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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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2017.10.09 (21:42:08)

바깥에서 안으로 쳐들어가는 촌놈정신이야말로 구조론 회원들의 멤버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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