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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461 vote 0 2016.02.10 (12:54:07)

     

    21세기에 다시 공자를 생각한다.


    중세 유럽은 가난했다. 갑자기 강해졌다. 비결은 계몽주의다. 지리상의 발견이 계몽주의를 촉발했다.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 카톨릭의 지배가 있었다. 카톨릭은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유럽인의 관심은 오직 하나, 천국에 가는 것이었다. 약속된 날자는 내일 아니면 모레다.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면 천국에 갈텐데 일은 왜 하는가? 소용없다.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해졌다. 페스트로 죽어나간데다, 백년전쟁, 30년전쟁으로 죽어나가고, 소빙하기까지 덥쳐서 최악으로 몰려버렸다. 안에는 답이 없으니 밖으로 눈을 돌렸다. 지리상의 발견이 유럽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탐험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말했다. ‘내가 아프리카 가봤는데 말야. 그곳에 야만인이 살더라고.’ ‘야만인이 뭐지?’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 야만인이지.’ ‘나도 글자를 모르는데 그럼 나도 야만인인가?’ ‘엥? 네가 그 유명한 반평균 까먹는 녀석이구나. 당장 공부하지 못할까!’ 이래서 계몽주의다.


    그렇다. 미개한 유럽이 지리상의 발견으로 눈을 떴다. 그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부족민을 발견하였다. 부족민을 ‘야만인’으로 규정하자 졸지에 그들은 ‘문명인’이 되었다.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규정하자 증거가 필요해졌다. ‘우리가 왜 저들보다 나은 문명인이지?’ ‘글자를 아니까 우월하지.’


    계몽주의가 공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실은 알려져 있다. 먼저 징기스칸이 잠든 유럽을 깨웠다. 기독교라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믿음은 칼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계몽주의가 대두했다. 믿음에 충실한 착한 신앙인이기만 하면 다 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말이다.


    공자가 다시 한 번 유럽을 깨웠다. 당시만 해도 유럽은 가난하고 중국은 부유했다. 차와 비단과 도자기를 비롯하여 좋은 것은 모두 동방에서 들어왔다. 중국은 관료제도를 중심으로 사회가 시스템에 의해서 작동하는데, 혹은 유럽에 그렇게 선전되었는데, 유럽은 오랫동안 종교에 푹 담가져 있었다.


    정치는 임금이 면접을 해서 벼슬을 주는 원시적인 방식이었다. 체계가 없었다. 학교를 짓고, 백과사전을 편찬하고, 왕립학회를 만들어 표준화를 시도한 것은 계몽주의 덕이다. 나폴레옹이 법전을 만들고 도량형을 통일한 것은 2천년 전에 진시황이 했던 일이다. 그들은 계몽주의로 단번에 강해졌다. 


    국가와 개인을 결속시키는 여러 장치들에 의해 비로소 농노가 아닌 국민이 만들어졌고 그래서 강해진 것이다. 


    계몽주의 실체는 우월주의다. 자존감이 인간을 강하게 한다. 맹목적인 우월주의는 물론 좋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집단의 의사결정이 가능한 방향으로, 사회관계가 말단부까지 정밀하게 세팅되느냐다. 궁수가 활을 당겨서 화살을 쏘아보내듯이 안에서 밖으로 뻗어나가는 심리구조가 세팅되어야 한다.


    후진국은 대부분 외부세계에 관심이 없다. 인도인들은 현세보다 내세에 관심이 있다. 카스트라는 이름의 내부차별에만 골몰한다. 성차별이나 남북대결, 지역주의처럼 내부차별에 골몰하면 당연히 망가지게 된다. 중국 역시 300년간 만주족의 식민지가 되어 자존감을 잃고 외부세계에 무관심해졌다.


    공자는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하여 동기를 부여하였다. 유럽이 문명인과 미개인으로 차별하며 강해진 것과 같다. 군자라는 긍지를 가지게 한 것이다. 자존감이 본질이다. 개인이 각자 자기 삶의 주인이 됨으로써 가능하다. 개인주의가 자존감을 세운다. 자기 스스로 의사결정하는 것이 개인주의다.


    한국인은 남의 눈치를 보고 남들이 입는 패딩을 입고 등산복을 입는다. 남이 보는 영화를 보니 천만관객을 쉽게 채운다. 자기 판단을 버리고 남의 판단을 따른다. 한국의 작가는 독자에게 아부한다. 노벨상은 당연히 없는 거다. 한국의 예술가는 관객에게 아부하고,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아부한다.


    개인주의는 개인이 각자 평가되고 개인에게 각자 기회를 준다. 족벌, 학연, 성별, 지역으로 금수저 물기 없이 각자 평가되어야 한다. 공자는 예악禮樂이라는 이름의 개인주의를 만들어냈다. 예악은 문文이니 현대의 개념으로는 문화예술이다.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 임무를 수행해내는 사람이 군자다. 


    임금을 대리하므로 군君이다. 군자는 왕의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 더 나아가 ‘신과의 일대일’까지 가야 한다는 것은 필자의 언어다. 더 밀어붙여서 70억 인류의 대표성까지 가야 한다. 당시에는 영토가 50리만 되어도 국國으로 쳐줬다. 봉건시대 일본에 300여개 국國이 있었다. 대국 속에 소국이 있다. 


    당시 중국에 수천 개의 국國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국 하나에 10명의 군자가 있다고 보면 수만명의 군자, 혹은 후보생들이 있는 거다. 진시황이 국을 없애니 군자도 사라졌다. 이후 중국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계몽주의는 지식인을 양성한다. 단순히 ‘미개인’과 구분되는 ‘문명인’ 개념으로는 부족하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천하인의 호연지기를 얻어, 적국의 왕과 대담하게 맞서는 배포를 가져야 한다. 그 수준은 예禮에서 드러난다. 예禮는 궁중생활에서 통하는 교양이자 에티켓이다. 예를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할 수 있다. 군자의 관점으로 볼때 가장 극적인 인물은 조나라 재상 ‘인상여’다. 


    정복왕이었던 진나라 소양왕에게서 화씨지벽을 돌려받아 완벽이라는 말이 생기게 했다. 소양왕의 코앞에서 칼로 위협하여 굴복시키기도 했다. 조나라 명장 염파와의 문경지교도 유명하다. 이 정도의 인격은 훈련을 통해 달성된다. 답은 의사결정능력이다. 철학은 의사결정능력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궁중문화가 사라진 지금 그 시대의 엄격한 예가 필요없으니 현대인의 교양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평가된다는 것이다. 악樂은 미학적 스타일이다. 음악 뿐이겠는가? 공자는 옷도 깔맞춤으로 입었다. 음식도 가려서 먹었다. 의자도 똑바로 놓고 앉았다. 이는 미학적 삶의 스타일이다. 


    예禮는 개인을 각자 평가하고, 악은樂 개인에게 각자 기회를 준다. 현대사회라면 음악, 미술, 건축, 패션, 취미 따위가 예악에 속한다. 공자는 개인이 각자 평가되는 사회를 만들어 전쟁을 막으려고 했다. 개인주의다. 왜인가? 집단이 평가되는 사회로 가면 곧 부족주의로 치달아 전쟁을 하기 때문이다. 


    독일과 일본의 침략전쟁은 집단적 우월주의 때문이다. 집단을 평가하므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다. 유럽의 문명인 개념은 집단적 우월주의 곧 인종주의다. 위태롭다. 계몽주의가 낳은 최악의 비극이 양차 세계대전이다. 마녀사냥도 계몽주의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과거에 여러번 말한바 있다.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카톨릭을 치기 위해 마녀문제도 해결못하는 무능한 교회를 성토한 것이다. 그들은 계몽주의로 강해졌지만 그것은 19세기 방식이다. 21세기는 달라야 한다. 개인이 각자 평가되면 금수저도 기를 못 편다. 아비 덕에, 형님 덕에, 학벌 덕에, 출신 덕에, 성별 덕에 묻어가지 못한다. 


    교양과 예술로 개인을 갈궈서 인간 아닌 것들을 인간 만들어야 한다.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인격체로 유도해야 한다. 강한 개인을 연출해야 한다. 전국시대 조나라 인상여가 강한 개인의 모범이다. 페북에 각자의 수준이 다 드러나는 세상이다. 안그래도 사회가 점차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인류사는 통째로 하나의 ‘일’이다. 일은 복제, 조합, 연출된다. 복제는 종교가 맡고, 조합은 정치가 맡고, 연출은 문화가 맡는다. 종교로 가면 부족주의가 되고, 정치로 가면 가족주의가 되고, 문화로 가면 개인주의가 된다. 일은 기승전결로 계속 진도를 빼줘야 한다. 계속 복제단계에 머무른다면?


    그게 타파되어야 할 부족주의다. 종교를 새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심리다. 후진국과 선진국이 여기서 갈라진다. 후진국 부자가 돈을 벌면 기업에 재투자하지 않고 곧 정치를 겸하려고 한다. 바로 이명박과 안철수가 하는 짓이다. 불필요하게 하인을 여럿 몰고 다니며 지역사회에서 위세를 부린다. 


    거기서 더 오버하여 종교의 교주와 같은 카리스마를 만들려고 한다. 소동을 일으켜서 집단을 긴장시킨다. 롯데 창업주 신격호가 벌이고 있는 소동이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24시간 내내 자신을 주목하도록 한다.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게 만든다. 정경유착을 넘어 경제정치종교 유착이다. 


    이는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원초적 본능이다. 관심종자병이다. 마녀사냥, 일베행동, 매카시즘, 땅굴소동 등 관심끌기 행동으로 나타난다. 종교의 순기능은 이들을 교회에 모아서 목사를 쳐다보게 유도하여 증세를 완화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본능이 무의식 형태로 집단에 의지하게 한다. 


    보통은 귀신으로 이를 표현한다. 왜 귀신이 무서울까? 고립공포다. 혼자 있기가 싫은 거다. 밤에 혼자 외부 화장실 못가겠으니 지어낸 핑계가 귀신이다. 무의식이 사람을 집단의 중심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므로 귀신이 무서운 것이다. 사실은 혼자 있는게 무서운 거다. 거짓 마녀소동을 연출한다.


    사람들이 몰려드니 무섭지 않다. 종교가 이 병을 막지만, 이번에는 종교몰입 때문에 후진국이 가난을 면치 못한다. 지나치게 축제에 몰입하는 나라도 사람 모아놓다가 망한다. 공산주의도 사람 모아놓다가 망한다. 부족주의가 곧 집단주의다. 이를 정당화 하는 논리를 개발하면 그게 전체주의다. 


    일은 복제≫조합≫연출로 진도를 나가야 한다. 종교를 대체할 올바른 이념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가족주의를 대체할 발달된 정치가 필요하다. 뒤로 빼돌려서 가족끼리 나눠먹지 말고 인류가 함께 나눠먹어야 바른 정치다. 가족이나 패거리 같은 소집단 안에서 위세를 부리려고 빼돌리는 것이다.


    재벌이 회사의 이윤을 빼돌려서 주주의 이익을 가로채는 것과 같다. 삼성과 현대가 늘 하는 짓이다. 공공재산을 빼돌리면 가족이나 패거리 안에서 영웅이 된다. 대한민국의 재산을 경상도로 빼돌리는 박정희짓이다. 이러한 가족주의, 패거리주의, 소집단 이기주의를 바로잡는게 정치의 민주주의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개나 소와 다를 바 없는 짐승으로 태어난다. 두 번은 교육을 받아 인간으로 태어난다. 인간구실 하려면 종교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부족주의 관심종자병 극복해야 한다. 귀신이 무섭지 않아야 한다. 부족주의는 부족의 내부의 결속력을 높인다. 그 방법은 차별이다. 


    북한을 미워하고, 여성 혹은 남성을 혐오하고, 지역이 다르면 차별한다. 그래야 안심된다. 그래야 귀신이 물러간다. 그 병을 치료해야 한다. 카스트는 차별을 통해 내부결속을 다진다. 그러다 망한다. 열등한 종교적 부족주의에서 벗어나 정치적 가족주의로 나아가서 새누리당을 박살내야 한다. 


    가족주의는 민주주의로 해결하고. 더 나아가 개인주의로 진도나가야 한다. 남이 보는 영화 안 보고, 남이 입는 옷 안 입고, 남이 먹는 음식 안 먹어야 한다. 관객에게 아부하는 영화 안 만들고, 독자에게 아부하는 소설 안 쓰고, 유권자에게 아부하는 정치 안 해야 한다. 개인주의가 공자의 예악禮樂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깨달음이다. 곧 ‘일이관지’다. 그러나 안회는 죽었고, 자공은 정치를 했고, 공자의 깨달음은 전수되지 않았다. 공자가 무엇으로 일이관지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21세기 하고도 스마트 시대다. 전선은 그만치 넓어졌다. 이제는 인류 단위로 사유해야 하고 인류 단위로 승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해답은? 깨달음의 미학이다.


    깨달음과 미학만이 서구문명에 비교우위를 이룬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양식은 중국양식이 전해진 것이다. 화려하지만 유치하다. 중국이 망쳐놓았고, 망친 중국문화를 수입한 유럽은 더 망쳐놓았다. 예술로 치면 베르사이유는 미개한 예술이다. 현대예술 경향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조선시대 한국의 건축과 인테리어와 의상에 반영된 미학이 공자의 가르침에 가깝다. 현대의 건축과 그림과 패션이 왜 점점 심플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연못을 파도 사각형으로 팠다. 심플하다. 왜? 복잡하고 현란한 것은 소인배 특유의 시선끌기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게 부족주의다. 왜 현대미술이 점점 한국의 선비문화를 닮는지 생각하자.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 잘하는 종목으로 이겨야 한다. 깨달음으로 이길 수 있고 미학으로 이길 수 있다. 깨달음은 ‘일’이다. 앎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요, 깨달음은 문제를 새로 일으키는 것이다. 큰 일을 벌이기다.


    앎과 깨달음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방향이 반대다. 깨달음은 불을 지르고 앎은 불을 끈다. 서구의 지식은 불을 끄는 기술일 뿐, 불을 지르는 기술이 아니다. 21세기는 불을 질러야 사는 시대다. 페이스북을 통하여 변방에서 한 사람의 외침이 동시에 70억 인류에게 전달된다. 불지르기다.


    이 기술을 익혀야 한다. 어쨌든 싸이는 20억뷰의 불을 질렀다. 예술가는 불을 지른다. 사람의 가슴에 불은 옮겨붙는다. 음악도 회화도 건축도 디자인도 패션도 스타일도 불을 옮겨붙이는 방법이다. 어떻게 사람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는가? 어떻게 타인을 전율하게 할 수 있는가? 만남으로 가능하다.


   
    ◎ 강해지는 방법은 ‘세련된 우월주의’로 자존감을 얻는 것이다.
    ◎ 세련된 우월주의는 ‘부족주의≫가족주의≫개인주의’로 진도를 나간다.
    ◎ 부족주의 단계에 머무르면 전체주의적 시선끌기용 퇴행행동을 저지른다.
    ◎ 가족주의에 머무르면 공공이익을 빼돌려 소집단 안에서 위세행동을 한다.
    ◎ 종교적 부족주의는 이념으로, 정치적 가족주의는 민주주의로 해결한다.


    ◎ 개인주의는 개인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 철학은 개인과 집단의 의사결정능력을 키우는데 목적이 있다.
    ◎ 현대인의 교양과 미학적 스타일로 강한 개인에 도달할 수 있다.
    ◎ 공자의 예악은 개인을 각자 평가하고 개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 깨달음과 미학은 일의 시초단계에 섬으로써 개인을 부각한다.
   

    ◎ 서구의 지식은 일의 결말단계에서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춘다.
    ◎ 동양의 깨달음은 일의 시작단계에서 일벌이기에 초점을 맞춘다. 


    심플해야 만날 수 있다. 복잡하면 길 잃는다. 정신 사나워서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없다. 어떤 일의 시초단계에 서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 결론을 내리자. 정밀하게 세팅된 자존감, 곧 세련된 우월주의로 인간은 강해질 수 있다. 그 세련된 우월주의는 교양과 예술로 조달된다. 차별하지 않고 차별한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수준을 차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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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이 개인을 기준으로 개인을 평가하여 개인을 차별하는 것을 보고 세련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주의는 각자 자기 기준이 있으므로 남의 판단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모든 악은 집단차별에 있습니다. 집단을 차별하는 이유는 강한 집단에 묻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이 노력하지 않고 편하게 무임승차 하려는 것입니다. 금수저 혜택을 보려는 것입니다. 보통 이 공식으로 무임승차하다가 망합니다. 

   


[레벨:14]해안

2016.02.10 (21:26:06)

감사

[레벨:3]호롱

2016.02.10 (23:45:09)

그렇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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