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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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003 vote 0 2015.06.11 (19:11:25)

       

    문명의 핵심은 동원력이다


    우리나라는 상비군을 거의 두지 않았는데 대개 반란이 일어날까 두려워해서다. 조선이 망해도 해산시킬 군대가 없는 편이었다. 임오군란이 있었으나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당나라의 절도사 체제는 지방 실력자의 거듭된 반란을 막지 못했다. 송나라는 변방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았더니 외침을 막지 못했다.


    어떤 국가나 사회가 보다 진보한 시스템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 나라가 가진 역량의 최대한을 동원할 수 있느냐다. 군대가 그 동원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물론 필자가 논하려는 동원이 꼭 군사적 동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가진 다방면의 역량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집트의 맘루크는 노예병인데 유럽의 백인노예를 몽골군에게서 사들였다. 노예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맘루크 왕조를 열었으니 이는 국가 동원 시스템의 실패다. 오스만의 예니체리도 비슷하다. 백인 기독교도의 장남을 징집하여 군대를 편성하고 자신의 조국인 기독교국가를 치니 꿩 먹고 알먹고 수법이다.


    역시 결과는 좋지 않았다. 후반에는 예니체리가 군벌로 성장하여 왕권교체에 관여하여 국가를 주무르게 되었다. 청나라는 만족출신으로 된 기인을 산동에 두었는데 이들은 금방 몰락했다. 물정을 모르는 만족 기인들이 한족 상인들에게 전답을 팔아먹고 빈곤해진 것이다. 청조멸망과 함께 거지가 되었다.


    몽골군은 정예는 몽골족이 맡고, 피정복민을 총알받이로 동원하는 악랄한 전술을 썼다. 몽골 팽창기에는 이 수법이 먹혔으나 원래 이런 편법이나 꼼수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중세의 기사나 일본 사무라이는 개인적인 충성맹세로 상하관계가 조직된다. 왕이 기사를 임명하고 기사는 부하를 임명한다.


    이들은 자신이 맹세한 주군에게 충성할 뿐 국가관이 없으므로 끝없는 혼란이 계속된다. 유럽의 무수한 전쟁과 일본 전국시대 내전은 국가관이 없는 자들이 조폭의 의리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적인 충성과 복종은 국가의 혼란을 끝막지 못한다. 고려시대 무신집단의 대규모 가병도 이와 같다.


    이들은 오직 주군에게만 충성할 뿐 백성을 벌레보듯 해서 홍건적이 쳐들어와도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았다. 죄 없는 백성을 수백 명이나 죽여서 홍건적을 잡았노라며 개경에서 개선식을 하는 식이었다. 무신들의 가병은 국방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고려 후반기에 국가를 지킨 사람은 노예나 농민이었다.


    이들의 신분상승욕구가 국가관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삼별초도 집단의 성격이 가병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관은 신분상승욕구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병이나 기사, 용병, 노예병, 사무라이로는 한계가 있고 민중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혁명이다.


    근대의 엄청난 동원력은 나폴레옹의 혁명사상+민족주의로 인하여 촉발된 것이다. 보불전쟁, 크림전쟁, 양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전후로 엄청난 동원력의 과시가 있었다. 민중의 신분상승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동원력의 정답인데 신분상승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사회진보의 메커니즘적 엔진이다.


    임진왜란때 조선은 의병의 형태로 민중을 동원했는데 이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경이적인 성과였다. 그때는 유교라는 이데올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필적할만한 동원사례로 십자군이 있다. 십자군 역시 이념을 고리로 대규모 동원을 성공시켰는데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약탈과 내분으로 망가졌다.


    조선의 의병도 임진왜란때 한 번 성공했을 뿐이다. 이런거 원래 두 번은 잘 안 된다. 역시 신분상승의 한계 때문이다. 노예는 평민이 되려 하고, 평민은 양반이 되려 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보면 여전히 예전과 같은 위치에 있다. 이념적 선동은 모택동이 장개석을 쳐부술 때 쓰는 일회용 방법이다.


    스탈린은 이념적 선전을 통한 대규모 동원에 실패하자 민족주의를 일으켜 성공했다. 스탈린이 ‘공산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나라’고 외쳤더니 300만 소련군이 번개같이 독일군에 항복해 버렸다. 이때 히틀러가 실수를 했다. 항복한 300만 소련군을 죽여버린 것이다. 안되니까 스탈린이 수법을 바꾸었다.


    ‘원수 독일을 약탈하자’고 외쳤더니 단숨에 1천만 군대가 동원되었다. 이념으로 실패한 것을 민족으로 살려냈다. 공산국가는 원래 동원이 잘 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강제로 인원을 끌어모을 수는 있지만 순식간에 도망쳐 버린다. 사실은 스탈린의 눈부신 외교활동이 먹힌 것이다.


    그냥 독일을 박살내자며 애국심을 부추기는건 민족주의가 아니다. ‘미국이 우리를 돕고 있다. 미국이 스팸과 트럭을 보내주고 있다.’ 이게 먹힌 것이다. 외부에서 누가 지켜보며 응원한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미쳐서 열심히 하는게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족주의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민족주의는 방향을 살짝 틀어주면 세계주의가 된다. 잘못된 배타적 민족주의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올바른 세계주의가 된다. 민족주의 본질은 세계의 시선을 의식하고 세계인 앞에서 잘난척 하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러시아 촌놈이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외국구경 한 번 해보려는 것이다.


    이념적 신분상승은 한계가 있다. 내가 위로 올라가려면 누군가는 내 밑으로 들어와야 한다. 누가 내 밑으로 순순히 들어와 주겠는가? 반면 민족적 신분상승은 쉽다. 외국여행 가서 돈 펑펑 쓰며 잘난척 하고 우쭐대면 된다. 천하를 발견하면 인간은 흥분한다. 인류의 중심에서 신을 면회하고 싶은 심리다.


    일본은 청일전쟁때부터 집요하게 ‘중국인은 개돼지다’ 하고 선전했다. 15년간 중일전쟁에 동원했다. 외부를 바라보게 하면 인간은 열정적으로 변한다. 구조론의 답이 외부에 있다는 사실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가장 성공적인 동원은 그리스의 민주정치에서 발견된다. 최대한의 동원이다.


    스파르타는 시민만 동원했는데 사실상 귀족에 가까웠다. 아테네는 광범위하게 민중을 동원했다. 시민계급 중에서도 하층민까지 동원한 것이다. 그들에게 신분상승의 기회를 준 것이다. 스파르타도 밀릴때는 하층민과 노예들에게 약속하고 동원했지만 곧 배반하고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린 민중을 죽였다.


    민중의 신분상승은 국가시스템의 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로 진보한 국가는 대규모 동원과 신분상승이 가능하다. 그래도 국가는 파멸되지 않는다. 문화로의 출구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상승해도 또 상승이 가능하다. 김기덕감독은 평범한 하층민이었으나 영화감독이 되어 신분이 상승했다.


    영화는 한 편 만들고 끝나는게 아니다. 계속 만들어야 한다. 계속 상승할 수 있다. 문화의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러므로 계속 새로운 권세가 창출된다. 여기서 신분상승의 개념을 권세획득으로 바꿔야 한다. 신분상승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봉건시대에 상승할 신분이 많지 않다. 권세창출이 상승의 본질이다.


    가장 성공적인 동원은 유교국가에서 발견된다. 유교국가의 막대한 동원력의 핵심은 문명인과 야만인의 대결구도로 보는 초민족적 이념전선이다. 기독교의 이교도에 대한 태도와 같다. 단 유교가 더 정밀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기독교는 예배만 보면 되지만 유교는 다양한 형태의 양반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예배보다 유교의 제사가 더 세련된 동원구조다. 기독교는 목사 아니면 신도이지만 유교는 장유유서를 낱낱이 따지기 때문이다. 더 긴밀하게 권세를 조직한다. 특히 유교의 예법은 문화적인 디자인이 섬세하다. 유교의 이념미가 있다. 관우의 충성이나, 조선왕조의 효자비, 열녀문 소동이 그렇다.


    갑자기 전국에 효자찾기 운동, 열녀찾기 운동이 벌어졌다. 30년이나 보쌈되기 기다렸으나 실패한 못생긴 과부도 열녀로또에 당첨되어 만세 불렀다. 노인찾기 운동도 있었는데 임금이 백세 이상의 할배를 초청하여 잔치를 벌였다. 얼떨결에 심청 아버지가 눈을 떴으니 소설이지만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외국 기독교에 비해 더 세밀하게 인원을 동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벽기도니 뭐니 해서 더 긴밀하게 조직한다. 이는 유교의 동원수법을 기독교가 참고한 것이다. 퇴계유교가 일본으로 수출되어 근대 일본이 국가의 전체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로 바뀐 것도 주목할만 하다.


    원래는 사무라이와 농민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지금도 부라쿠민이라 하여 차별하는 습속이 있는데 일본은 농민이 이웃고장에도 갈 수 없을 정도로 동원이 막혀 있었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무라이도 자기 고장을 떠날 수 없는 신세였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배경이 된 세이난 전쟁 때만 해도 농민은 병사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사무라이와 농민이 싸우면 당연히 백 대 일로 사무라이가 이기는 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농민이 사무라이를 이겼다. 영화는 보나마나 역사의 사실을 정반대로 해석한 수구꼴통 일베영화다.


    최후의 사무라이가 아니라 최초의 농민병이다. 놀랍게도 농민이 사무라이를 이긴 것이며 이는 거대한 전복이다. 큰 충격을 주었다. 그 배경에는 유교주의에 기초한 민중의 신분상승열망이 있다. 그러나 일본도 가병동원체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일본은 부대가 출신지역에 따라 편성되어 있었다.


    육군과 해군이 별도로 공군을 두는가 하면 서로 정보교환을 하지 않는 등 사실상 내전 비슷한 분열된 구조로 전쟁을 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구조다. 일본의 동원체제는 가짜였던 것이다. 일본의 성공은 인종주의에 기초한 일시적 성공이었을 뿐이다. 카미카제라는 것도 선전일 뿐 상당부분 환상이다.


    독일 역시 루마니아 군대 외에는 동원하지 못했다. 혁명을 하지 않으면 나폴레옹처럼 착실하게 동원하지 못한다. 맥아더는 중국의 참전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는데 이는 인민군과 팔로군의 연합작전이 쉽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차대전때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실제로 연합공격은 잘 안 된다.


    동탁을 토벌하려 한 16로 제후군이 흩어진 것과 같다. 보급문제 등 시시한 걸로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 히틀러가 많은 작전에 실패한 이유도 ‘영국군과 미국군이 합동작전을 한다고? 그거 절대 안 된다네.’ 이러다 망한 것이다. 몽고메리가 미군에게 상당한 권한을 넘겼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게 안 하는데.


    벌지전투에서 히틀러의 삽질은 ‘영국군과 미국군이 박근혜 내각처럼 하루종일 회의만 하고 대책팀만 편설하다가 끝날걸.’ 이렇게 안이한 판단의 후과다. 패튼의 쾌속진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미군에 유능한 장군이 있다 해도 권한문제 때문에 발목잡혀서 못 하는게 현실이지.’ 이러다가 망했다.


    박근혜 하는 꼴 보면 알 수 있다. 메르스가 침투한지 한달이 걸려 겨우 대책회의 한 번 열었다. 그러나 전쟁도 하다보면 경험이 늘어나기 마련이라 초반에 삽질을 하다가도 상승장군이 나타나면 새로이 질서가 형성되어 곧 유능해지는 것이다. 임진왜란도 초반에 밀렸을 뿐 후반에는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우리는 흔히 이탈리아군의 한심함을 비웃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가 18개 민족으로 군대를 편성한 것을 보고 좌절했다. 영장을 받고도 입대를 포기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는 여전히 국가가 덜 만들어져 있다. 억지로 인원을 동원할 수는 있지만 대가리 숫자나 겨우 맞출 뿐이다.


    실질적으로는 동원이 불가능하다. 말을 안 듣는다. 원래 안 된다. 지휘관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부적인 소통실패로 유능한 지휘관이 나타날 수 없는 구조다. 그 이탈리아군도 롬멜이 지휘하면 무적함대가 된다. 히딩크가 지휘하면 한국팀도 이기는 것과 같다. 언어가 달라 내부적으로 깨져 있다.


    차라리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이 지휘하면 매뉴얼대로 작동한다. 경상도 병사가 전라도 병사를 지휘하면 반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지만 외국인이 영어로 지휘하면 최소한 그런 불상사는 없는 것이다. 최고의 동원시스템은 로마군이 만들었다. 매뉴얼이 갖춰졌다. 그리고 프러시아가 이 구조를 본받았다.


    나폴레옹이 이데올로기를 전파했고 민족주의+식민지붐이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여전히 유럽은 백퍼센트 동원이 안 되는 구조다. 하층민과 귀족이 심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한국처럼 쓰레기 분리수거 못한다. 귀족과 하층민 사이에 어깃장을 놓는 문화가 있다. 미국경찰의 폭력만 봐도 알 수 있다.


    ◎ 혁명.. 국민개병제.. 신분상승을 앞세운 이념적 동원.
    ◎ 민족.. 몽골, 그리스 시민계급.. 기득권과 특혜로 동원.
    ◎ 봉건.. 기사, 가신, 무신정권.. 다단계로 동원.
    ◎ 용병.. 예니체리, 맘루크.. 돈과 꼼수로 동원.
    ◎ 산적.. 바이킹, 해적, 인디언.. 약탈로 동원.


    완전한 동원은 이념+미학에 의해 가능하다. 전쟁을 떠나 국가자원을 총동원하려면 미학적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중국도 옛날에는 초가집에 살았다. 임금이 기와집에 산 것은 춘추시대다. 한국도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대개 북방식 움집과 동남아의 거상식 주거였는데 불교문화의 미학에 압도당했다.


    신라의 완벽주의 석탑, 석굴암의 완벽주의 미학은 임금이 백성의 자원을 총동원하기 위한 설득력을 얻는데 목적이 있다. 고려의 기형적인 불상으로는 설득되지 않는다. 미학만이 진실하다. 고구려 벽화의 그림은 조잡한데 중국 한나라것을 베낀 것이다. 한나라의 미학은 조잡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송나라때 와서 중국의 미학이 발전했으며 비로소 동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송나라가 몽골에 대항하여 수십년을 완강하게 저항한 것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틈에 눈치보며 고려도 40년을 버틴 것이다. 금나라가 일찍 망한 것과는 동원력 차이가 확실하다. 문화의 힘이다.


    유럽의 동원력은 르네상스 이후 미학의 발전 때문이다. 로마는 그리스를 복제했을 뿐 미학적 성취가 없었기에 남은 것이 없이 철저히 망했다. 로마의 몰락후 유럽은 1천년간 아랍에 밀렸는데 그 이유는 동원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에 겨우 동원력이 살아나서 비엔나에서 술탄을 이겼다.


    중국은 송나라 이후 미학이 쇠퇴했다. 명나라 그림은 송나라를 넘지 못하고, 청나라는 조잡해져서 어린이 그림이 되어 있다. 일부 괜찮은 것도 있으나 중요한건 황실의 태도다. 황실이 잘못된 유행을 만들어서 조잡해진 것이다. 청나라 자기가 색깔이 화려하고 기교가 공교로우나 그게 바로 매너리즘이다.


    청의 동원력은 멸망한 것이다. 청나라 민중은 만만디 전략으로 동원을 거부하고 버텼다. 장개석 역시 동원에 실패했다. 마적연합이라서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예비군 동원도 사실 쉽지 않다. 미학이 아니고는 절대 온전히 동원하지 못한다.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굴복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칠종칠금으로 남만을 제압했으나 서촉멸망과 동시에 오랑캐 땅으로 되돌아갔다. 중국의 영역이 축소된 거다. 문화적으로 오랑캐를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만이 제갈량에게 굴복해도 정규군을 일사불란하게 운용하는 한족의 군사교범에 넘어갔을 뿐 한족문화의 우월성에 넘어간건 아니다.


    오스만제국은 이름만 제국일 뿐 제국의 자원을 동원하지 못했다. 지방의 토후들이 왕노릇하며 버텼기 때문에 영국의 침략 이후 80여개의 나라로 쪼개졌다. 중국이 재통일된 것과 비교하면 아랍은 동원의 관점에서 볼때 철저하게 실패한 문명인 것이다. 불교의 화려함과 유교예절의 이념미가 중요하다.


    오랑캐의 눈으로 볼 때 중국의 부는 하찮아 보이지만 엄격한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모습은 감탄이 나올만한 것이다. 시골의 무질서에 스트레스 받은 민중이 뻑가게 하기에 충분하다. 비로소 동원이 가능하다. 인도의 경우는 무굴제국이 회교로 미는데 반해 민중은 힌두교를 믿었으니 제대로 동원되지 않았다.


    겨우 집이나 예쁜거 한 채 지었을 뿐이다. 타지마할 묘당이 그렇다. 인도와 아랍의 미술수준은 르네상스 이전의 수준이다. 색깔은 예쁜데 잘 보면 그게 어린이 동화책 삽화그림체다. 특히 아랍은 우상숭배를 금지시켜서 성자를 그릴 수 없게 했으므로 미학이 퇴행했다. 건축만 발전해서 알 함브라 궁전이다.


    일본미술도 김홍도의 사실주의에 미치지 못한다. 김홍도의 그림은 왕이 보라고 그린 것이다. 일본의 우끼요에는 민중의 엽기취향을 따라갔으니 이발소그림의 흔적이 배어 있다. 미학이 낙후하면 풍속이 지저분해지고 그럴 때 사람은 동원되지 않는다. 예비군을 소집해도 시간맞춰 나오는 자가 하나 없다.


    일본미학은 민중지향적이고 엽기지향적이라 한류에 밀린다. 물론 장점도 있다. 너무 한국식으로 왕의 미학을 따르면 답답해져서 창의적이지 못하다. 민족주의는 흔히 권력측이 쓰는 나쁜 의미에서의 동원을 의미하나 사실은 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민족주의는 민중이 세계로 나아가 우쭐대려는 것이다.


    일종의 신분상승 효과다. 이거 먹힌다. 커다란 에너지가 있다. 방향만 살짝 바꿔주면 세계시민의식이 된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진취적 세계주의로 바꿔치기하는게 지식인의 역할이다. 거기서 막강한 동원력이 얻어지는 것이다. 지식인은 자신들이 민중을 세계주의로 유인하지 못했음을 비판해야 한다.


    DSC01488.JPG


    동원개념을 꼭 전쟁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집단의 의사결정이며, 집단 상층부에서 결정된 사항에 민중이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실천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능력이 있느냐입니다. 비상계엄으로 강제동원은 물론 가능합니다. 북한의 김정은이면 전 국민을 동원할 수 있죠. 이는 가짜입니다. 자의에 의한 지속가능한 동원구조는 의사결정권의 적극적인 위임으로 가능합니다. 권세를 민중에게 줘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줄 권세가 있느냐입니다. 약탈한 보물을 주겠다는 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념과 미학이 답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좀 아는 사람들의 높은 의사소통그룹에 드는 것입니다. 즉 인류최고의 문화 엘리트집단과 직접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들 저커버그 이름만 알고 있을 뿐 그들과 소통할 수는 없지요. 최고 엘리트 집단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들이 민중과 직접 소통하게 하는 구조가 정답입니다. 그 엘리트는 연예인일 수도 있고, 정치인, 혹은 박사일 수도 있고, 과학자,모험가, 탐험가, 스포츠맨 부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격리되고, 유폐되고, 침묵하면 나라는 망하고 그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서면 국가는 흥합니다. 지금 한국은 글자 아는 사람이 모두 침묵하고 귀양보내지고 유폐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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