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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8072 vote 0 2013.12.03 (23:28:26)

 


    진화에서 진보로


    의사결정은 일정한 형태의 의사결정모듈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을 깨는 비대칭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정의에 의문을 품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의사결정이라는 말과 대칭≫비대칭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같다. 모든 데이터는 0과 1로 표현된다. 반도체에 전기가 흐르거나 흐르지 않거나이며 그 외의 경우는 없다.


    어떤 것이든 결정한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 중에 선택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바보같은 시비다. 어쨌든 선택된 것과 선택되지 않는 것으로 나눠진다. 선택되지 않은 것이 몇이든 무방하다. 선택된 하나와 대칭을 이룬다는 본질은 같다. 그러므로 대칭≫비대칭에 예외는 없다. 객관식 시험문제라면 OX문제든 사지선다든 오지선다든 같다. 결국 답과 답 아닌 것의 대칭으로 간다.


    세상은 온통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후좌우로 대칭되고 고저장단으로 대칭되고 원근명암으로 대칭되고, 남녀노소로 대칭된다. 음악은 고저장단을 대칭시켜 악보를 만들고, 그림은 원근명암을 대칭시켜 구도를 잡는다. 정치는 여야상하를 대칭시켜 편을 짜고, 경제는 수요공급을 대칭시켜 성장을 이룬다. 사회는 남녀노소를 대칭시켜 질서를 잡고, 드라마는 선악대결 대칭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의사결정은 이러한 대칭성을 깨는 비대칭으로 일어난다. 예술에서 그것은 파격으로 연출된다. 음악은 일정한 고저장단의 대칭을 보인 후에 극적인 고음으로 파격을 이루어 객석에 긴장을 전달한다. 그림 역시 원근명암의 대칭으로 구도를 잡은 후에 극적인 파격으로 강렬한 인상을 달성한다. 정치 역시 여야의 대칭이 선거의 승패에 의해 집권의 비대칭으로 파격한다. 경제 역시 수요와 공급의 대칭을 신제품의 판쓸이로 파격하는데서 활로를 열어간다.


    대칭이 없으면 무질서의 수렁이다. 오합지졸과 같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이 우물쭈물 하며 시간만 보내는 상태이다. 의사결정을 못하고 허무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대칭으로 발달한다. 그 과정은 외부자극에 의한 에너지 응축에 따른 닫힌계의 형성이다. 의사결정을 이루는 장場을 세팅하는 절차다. 이 과정을 넘기면 대칭이 일어난다.


    대칭이 교착되면 팽팽한 긴장상태가 계속될 뿐 도무지 결론이 나와주지 않는다. 대혁명 후의 프랑스처럼 급진과 반동이 되풀이되며 기력을 소진하게 된다. 대칭은 반드시 있어야 하며, 내부에 강한 핵이 형성되어 대칭이 일의적으로 깨질 때 파격의 형태로 극적인 비약이 일어난다. 음악이면 멋진 화음이 만들어지고, 그림이면 멋진 인상이 만들어지고, 소설이면 멋진 반전이 주어진다.


    무엇보다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역사는 처음 평화롭던 나라가 이양선의 출현에 의해 우왕좌왕하는 혼돈상태로 된다. 이때 시골농부도 갑자기 곡괭이 내던지고 사또가 사는 동헌을 기웃거리게 된다. 뭔지 모르지만 뭔가 터질 것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불온한 공기가 감돌면 신분상승을 기대하며 흥분하여 날뛰는 무리가 나타난다. 이 상태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면 동학혁명운동이나 태평천국의 난처럼 무질서한 폭주가 된다. 그 끝은 깊은 허무의 수렁이다.


    이러한 혼돈은 이양선의 출현에 의해 내부에 강력한 동기가 부여되고 공기가 달아오를 뿐 실제로는 서양인을 접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핵을 형성하지 못하므로 문제를 풀어가는 절차가 세팅되지 않은 것이다. 태평천국의 홍수전이든 동학혁명의 최제우든 물적토대에 기반하지 않았으므로 핵을 형성하지 못했다. 핵은 구조를 복제한다. 복제하여 하부구조로 전달할 그 무엇이 없었다.


    총을 손에 쥐었다면 찾아온 무리에게 총을 나눠주는 방법으로 구조를 복제할 수 있다. 여단에서 대대를 거쳐 중대와 소대와 분대까지 조직해나갈 수 있다. 결정적으로 총이 없었다. 대대장과 중대장과 소대장을 할 사람들에게 나눠줄 무언가가 없었다. 주문을 암송하게 하였으나 그것으로는 왜 그 사람이 특별히 중대장이어야 하는지를 입증할만한 차별성이 없다.


    세월이 흐르면 점차 서양인과 접촉하는 자가 나타난다. 어떤 경로로 서양인의 무기를 입수한 자가 나타나면 그들이 주도권을 잡는다. 핵이 구조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한발이라도 먼저 핵에 접근한 자가 주도권을 잡고 구조를 복제하여 하부구조를 종속시킨다. 이러한 전개는 조직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혼돈은 명확한 대칭의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내 큰 바다의 거대한 열대성 저기압이 태풍이 회오리 모양을 갖추고 점차 핵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팽팽하게 대치한다. 개혁파와 수구파로 진영이 정돈된다. 막연히 장터를 기웃거리며 서성대던 농부들이 백범 김구 선생의 환등기 앞에 모여서 신학문을 배울 것을 결의하게 된다. 반대파들도 모여서 힘을 결집한다. 이쪽의 힘이 결집되는 만큼 저쪽의 힘도 결집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건곤일척의 큰 승부가 벌어진다.


    ◎ 혼돈상태에서 에너지응축≫대칭형성≫핵의 발달≫비대칭으로 도약≫구조의 복제와 전파


    마침내 큰 싸움판이 벌어지면 새질서를 결정하는 역사의 큰 승부가 나면서 상황이 정리된다. 핵을 중심으로 새로운 의사결정구조가 세팅된다. 역사에서 이는 주로 신분질서의 변화, 제도의 변화, 체제의 변경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때 완성된 의사결정구조는 널리 복제되어 시골 구석구석까지 보급된다.


    신라는 원래 몽골의 쿠릴타이와 유사한 합의제로 시작했다. 영일 냉수리비에 나타나 있는 화백회의다. 대왕과 갈문왕에 6부왕을 더한 8왕이 합의하여 절거리에게 재물을 주도록 결의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적 시스템으로 대국의 통치는 불가능하다. 신라의 영토가 늘어남에 따라 재판에 참여하는 6부왕의 권력은 깎이고 전쟁을 지휘하는 대왕의 권한은 늘어났다. 잦아진 전쟁에 맞는 새로운 의사결정시스템이 요청된 것이다. 신라는 불교를 수입하여 종교의 의사결정시스템을 왕실에까지 도입했다. 왕이 스님 흉내를 내더니 심지어 석가가족을 흉내내기도 했다.


    궁예 역시 승려로 자칭하며 불경을 지었을 정도이다. 조선은 학교시스템을 도입했다. 임금 역시 학교를 본받아 조정의 경연은 성균관의 강의실 분위기가 되었다. 몽골은 쿠릴타이 구조를 제국 전역에 보급했다. 몽골의 쿠릴타이가 신라의 화백회의와 다른 점은 작은 마을까지 시스템을 복제했다는 점이다. 작은 시골마을에도 5, 6인의 임원이 참여하는 소규모 쿠릴타이가 개설되었으며 쿠릴타이는 일종의 법인처럼 행세하여 민간인이 쿠릴타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도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제법 체계적인 제도가 갖추어진 것이다. 이를 역으로 유추하면 신라도 마을마다 작은 화백회의 시스템이 있었을 수 있다.


    중국은 공산당의 의사결정 구조가 지방까지 복제되어 전인대의 분위기를 시골의 지역당이 흉내낸다. 공산당 원로들이 해마다 한 차례씩 중남해에 모여 막후협상을 하듯이 같은 구조를 복제하고 있다. 한국의 통반장이나 이장과 같은 제도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다. 없어져야 하는데 아직 일제잔재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중국도 문화혁명 이후까지 일부 지방에 일본식 이장제도가 존속했다는 점이다.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면서 마을마다 이장을 임명했는데 어쨌든 의사결정구조는 있어야 하고 공산당은 무능하니 이장제도가 관습으로 굳어져서 자생적인 조직처럼 한동안 이어져온 것이다.


   


[레벨:10]다원이

2013.12.04 (00:10:47)

문단 문단이 줄 나누기로 분리되어 있네요. 그러니 매 문단의 첫 줄을 원고지 쓰듯 들여쓸 필요가 없을 듯 하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12.04 (00:43:58)

제가 쓰기 편하려고 하는 겁니다. 아래한글 B5지에 쓸때 이 정도 띄우면 딱 기분이 좋습니다. 쓰면서 여러번 다시 읽어봐야 하니까요. 한글에 쓸 때는 줄을 띄우지 않으니까.

[레벨:10]다원이

2013.12.04 (11:19:09)

글쿤요...
늘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글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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