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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030 vote 0 2011.10.21 (15:25:42)

 

"To Have or To Be“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생각할 수 있다. 어원으로 보면 have의 정확한 의미는 한자어 합(合)과 같다. 자기 자신과 합치는 것이 have다. 더 추구하여 들어가면 꿰다(get)는 뜻이 있다. 손가락에 꿰는 것이 갖는 것, 갖는 것이 잡는(capture) 것이다. cap-ture의 cap->have다. 몸에 꿰어서 자기와 합치는 것이 소유다. 결론적으로 플러스다. 그렇다면 be는 마이너스여야 한다.

 

be를 ‘존재’로 풀이하는 것이 틀린건 아니지만 부적절할 수 있다. be는 ‘있다’는 뜻보다 ‘되다’는 뜻으로 쓰일 때가 많다. be의 어원적 의미는 바(所)다. ‘아는 아는 바 없다’ 할 때의 ‘바’다. 바는 포지션을 나타낸다.

 

‘모른다’와 ‘아는 바 없다’는 차이가 있다. ‘모른다’는 것은 형식을 알되 내용을 모른다는 것이고, ‘아는 바 없다’는 아예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 나는 해당사항이 없으니 나한테 묻지 마라’ 이런 거다. 더 적극적인 부정이다.

 

한자어 소(所)는 흔히 공간적인 장소를 나타내므로 정확하지 않다. 바는 시간과 공간의 장소 뿐 아니라 기능적 장소, 역할의 장소를 뜻할 때가 많다.

 

‘to have or to be’는 자기 몸에 합쳐지는 어떤 물질적 이득을 꾀할 것이냐 아니면 추상적인 포지션, 역할, 기능, 권리를 떠맡을 것이냐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have는 사건의 결과, be는 원인이다. be는 존재, 대개 존재가 어떤 사건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 ‘소유냐 존재냐’라고 하면 이상하다. 존재가 소유의 반대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여야 대칭이 되는데 be는 have의 반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영어로 존재는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사건의 존재인 경우가 많다. ‘let it be’는 ‘있는데로 해라’가 아니라 ‘되는데로 해라’다. be는 사건의 원인이고 have는 사건의 결과이며 결과가 아니라 원인측을 공략하라는 말이다.

 

물론 에리히 프롬이 여기까지 생각했을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그는 구조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관할 수 있다. 직관은 모형을 사용하므로 통한다. be는 일이 되어가는 흐름이고, have는 일이 끝난 다음의 성과다. 결국 탑 포지션을 차지하라는 말이다.

 

어떤 일의 결과물을 획득하려들지 말고 일의 원인이 되는 권리, 지분, 주식, 계약서, 참여, 동맹, 기능, 역할, 포지션, 소속, 친구, 관계 이런걸 얻어야 한다.

 

전쟁이 끝났다. 전리품을 분배받고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전리품을 받지 못하는 대신 새 정부의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have는 전리품을 받아가고 be는 새 정부에 참여한다.

 

이익을 챙겨가지 말고 재투자하라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말 ‘존재’가 고정된 사물을 가리킬 때가 많다는 데 있다. 우리말 존재는 공간적 존재, 물질적 존재, 정(靜)적 존재이기 쉽다. have에 더 가깝다. 우리말에서는 존재가 소유로 될 때가 많다. 그 경우 소유냐 존재냐가 아니라 그냥 소유냐 존재의 소유냐가 된다.

 

구조론은 지식을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분류하고, 존재를 빛으로 치고 인식을 그림자로 친다. 에너지가 있는 존재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인식은 왜곡되기 쉬우므로 어떤 주장의 논거로 삼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존재론은 be다. 동적(動的) 존재다. 사건의 존재다. 일의 존재다. 영어의 being도 에너지가 작동하는 일의 진행을 뜻할 때가 많다. 그냥 우두커니 있는 것은 존재가 아니다. 어떤 전체, 통짜덩어리를 being이라 한다.

 

~ing는 현재진행이다. 영어로 존재는 살아서 현재 진행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존재는 바위나 건물과 같이 죽어있는 사물을 의미할 때가 많다. 구조론의 존재론은 being이며 현재 살아서 진행하는 사건이다.

 

have는 대개 상대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고 be는 대개 내가 상대쪽으로 가는 것이다. 식물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비가 오고, 바람이 오고, 햇볕이 오고, 농부가 온다. 뭔가 점점 내게로 와서 플러스가 된다.

 

be는 내가 상대쪽으로 간다. 동물과 같다. 머물러 있으면서 상대가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내가 적극적으로 상대를 찾아갈 것이냐다. 소유는 아기의 마음과 같고, 존재는 어른의 마음과 같다. 아기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서 돌봐주어야 한다. 어른이면 내가 찾아갈 수 있다.

 

물론 에리히 프롬이 여기까지 생각하고 쓴 말은 아니지만 직관은 통한다. 사실 에리히 프롬은 존재를 ‘불개입’ 정도의 소극적인 의미로 썼다. 내버려 두라, 지켜보라는 정도의 의미다. 이는 에리히 프롬의 깨달음이 가진 한계다. 존재는 절벽에 매달린 꽃처럼 가만이 붙어있는게 아니라 벌떡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be-ing의 현재 진행이기 때문이다.

 

선택해야 한다. 당장 득점을 올릴 것이냐 아니면 좋은 장소를 선택할 것이냐다. 물고기 한 마리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물고기가 잘 낚이는 좋은 장소를 선택할 것이냐다. 눈앞의 물고기를 쫓아가다가 목 좋은 장소를 빼앗기는 상황은 많다. 물고기를 얻는 것은 have고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be다.

 

존재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포지션의 존재, 역할의 존재, 기능의 존재, 흐름의 존재, 에너지의 존재다. 그렇다. 에리히 프롬은 플러스를 포기하고 마이너스를 행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한 장소를 차지하고 관계를 맺어라. 그러려면 지금 손에 쥔 것을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 이런 일은 인생에서 무수히 벌어진다.

 

테무친을 처음 만났을 때 보오르추는 15세 소년이었다. 양젖을 짜고 있던 보오르추 앞에 몇 살 더 먹은 소년 테무친이 나타났다. 테무친이 말했다. “혹시 거세마 8마리를 몰고 가는 일행을 보았나? 그들은 말도둑이다. 나의 거세마를 훔쳐갔다.” 보오르추가 말했다. “그들의 일행은 넷이고 무장해 있다. 그런데 너는 혼자다. 어쩌려고 그러느냐?” 보오르추는 즉시 테무친을 따라나섰다. 도적이 넷인데 테무친을 혼자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으면서 말이다.

 

짜고 있던 양젖은 have고 처음 만난 테무친은 be다. 양젖을 플러스 할 것인가 아니면 양젖을 마이너스 하고 테무친을 따라나설 것인가이다. 보오르추는 양젖을 짜다가 실종되었고 며칠 후 테무친과 함께 말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버지에게 뒈지도록 매를 맞았음은 물론이다.

 

인생에 이런 일은 무수히 있다. 플러스는 기승전결의 결이고 마이너스는 기승전결의 기다. 플러스냐 마이너스냐가 아니라 원인측에 설 것인가 결과측에 설 것인가다. 이미 완수한 일의 결과물을 취할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밑천으로 새로운 사업에 착수할 것이냐다. 결과물을 취하면 플러스가 되지만 새로 사업에 착수하면 마이너스가 된다. 자본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존재는 마이너스다. 존재는 액션이다. 존재는 동(動)이다. 존재는 사건이다. 존재는 기승전결이다. 존재는 포지션이다. 존재는 기능이다. 존재는 역할이다. 존재는 관계다. 존재는 지분이다. 존재는 투자다. 존재는 권리다. 존재는 친구다. 존재는 동료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은 존재다. 착각하지 말라. 남편이나 아내냐 자식이 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편의 관계, 나와 아내의 관계, 나와 자식의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는 팀이다.

 

‘당신 남편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당신의 남편 아무개 씨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한 것이 아니라, 당신은 팀의 일원으로 존재하는가 하고 당신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다. 질문한 사람은 당신의 남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부인이 있습니까?’ 부인에게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 남자가 결혼했는지 궁금한 것이다.

 

그렇다. 존재는 그 존재하는 대상인 산이나 들이나 집이나 재산이나 직책이나 이런게 아니다. 그 존재하는 대상인 산이나 들이나 집이나 재산의 관리자인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떤 포지션의 존재인지가 주목되는 것이다.

 

‘돈 있냐?’ ‘돈은 은행에 많잖아.’ 이건 아니다. 돈이 궁금한게 아니라 그 사람이 돈을 가진 부유한 사람인지가 궁금한 것이다. 있다는 하다를 지배하며 뭔가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자격을 갖추고 있다.

 

현찰을 원하는가 자격증을 원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언설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방향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이다. 결과를 수확하는 보수의 방향으로 갈 것인가 원인에 착수하는 진보의 방향으로 갈 것인가이다. 전자는 have 후자는 be다.

 

방향만 잘 정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무조건 be를 찍어야 한다. be는 관계를 맺고, 권리를 얻고, 지분을 챙기고, 영토를 얻고, 소속을 얻고, 동료를 얻고, 직업을 얻고, 자격을 얻고, 역할을 얻고, 영향력을 얻고, 기능을 얻고, 포지션을 얻는다. 그러나 다 추상적인 가치에 불과한 것이고 당장 손에는 아무 것도 쥐어지지 않는다. 마이너스다. have는? 거지처럼 몇 푼 얻는다. 대신 따뜻한 현찰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소비되어 사라진다. be는 사라지지 않고 언제라도 곁을 따라다닌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오랫동안 후광을 비춘다.

 

 


http://gujoron.com




[레벨:3]금란초

2011.10.22 (10:00:47)

좋은글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1.10.24 (06:55:45)

to be or not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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