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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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이금재.
read 2770 vote 0 2021.10.11 (13:11:40)

이야기가 끝이 나려면 감독은 뭘 보여줘야 할까? 오징어게임은 의리를 강조하지만, 우리 좀 더 건조하고 시크하게 말해보자. 의리라고 하면 왠지 사람 사이의 일만 생각이 난다. 자꾸만 도원결의가 떠오르고 김보성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 그런가? 이래 가지고는 다른 분야에 써먹을 수 있는 통합된 지식이 되질 않는다. 좀 더 일반적인 용어를 써보자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의 끝은 대개 두 사람이 맺어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왜에? 헤어지는 걸로 끝나면 안 되남? 헤어지는 드라마라면 신선할 것 같잖아. 영화 '최악의 하루'의 결말에서 여주와 남주가 같은 처지를 공유하여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둘이 뽀뽀는 안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결말이라고 느낀다. 왜에?


영화 '라라랜드'에서 막판에 두 주인공은 헤어지는 걸로 끝난다. 어? 근데 헤어져도 영화가 잘 매조지 됐다고 느껴지네. 왜에? 사실 둘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뭘로? 처지를 공유한다. 둘은 현실과 이상의 타협이라는 컨셉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연결이 있다. 관객이 그것을 수긍하는 것이다. 제3의 연결이다.


왜 이어져야 이야기가 끝나는 걸까? 깨달음의 구조가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에 보는 어떤 것은 죄다 이어진 것이다. 인간의 DNA, 세포, 장난감, 자동차, 비행기, 노트북 등. 연결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분리되어 있어야 분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연결되어야 존재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결과 분리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끝이되 끝이 아니어야 우리는 무엇이 있다고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연결이다. 우리가 지식을 통합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개별적인 지식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할 뿐 보편적이지 않다. 특수한 지식을 암기하면 남의 팔로워가 될 수 있을 뿐, 보편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리더는 될 수 없다.


지식이나 영화나 이런 컨셉으로 보면 서로 이어진다. 그래 내가 당신과 이을라고 이 짓을 하는 것이다. 피곤해 죽겠는데 핫식스 먹고 열일하는 것이다. 당신이 뭔가를 봤다면 나는 사람을 잇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 가서, 다른 사람은 결혼을 해서, 구조론 회원은 파편화 된 지식을 이어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공유하여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그런데 미국의 히어로물과 일본의 허무물은 인간을 떼어놓는다. 히어로는 연결된 척 하지만 실제로는 끊어지고 허무물은 대놓고 끊어놓는다. 히어로가 끊어지는 이유는 애당초 신과 인간을 분리하는 시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은 연결될 수 없다. 애당초 끊어놓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쟤는 초능력을 가졌는데, 나는 그딴 거 없잖아. 초능력이 아니라면 이성을 꼬실 수 없다는 말인가? 


영화 '매트릭스'의 평범한 인간들은 여전히 신을 기다릴 뿐, 스스로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동굴에서 춤이나 추고 있냐고. 허무물은 또 다르게 끊어진다. 히어로물이 끊어진 것을 이어진 거라고 우기는 반면, 얘네들은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끊어진 거라고 강변한다. 


물론 깨달음의 직전에는 허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허무는 마중물일뿐, 그것이 이야기의 결론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걸로 끝나면 진짜로 끝나버리니깐. 우리가 원하는 결말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거라니깐. 결국 일본이나 미국이나 그게 그거다. 그들은 추종자가 되어 나를 이어줄 신을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이라면 결말이 이들과 다르다. 평범한 사람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량 성기훈과 엘리트 조상우는 현실에서는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히려 한량이 엘리트를 구원하네? 왜?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깐. 한량이야 원래 망한 놈이고, 엘리트는 어쩌다 망한 놈이다. 


둘 다 망했으므로 마지막 오징어게임의 링 위에 섰다. 계급장 떼고 한판 붙는다. 그리고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고, 져도 진 것 같지 않은 결말이 이어진다. 이겨도 허무하고 져도 이어진다. 성기훈은 폐인이 되었고 조상우의 모친과 강새벽의 동생은 성기훈의 지원으로 이어진다. 이거는 좀 그럴듯하네. 자기는 끊어졌지만 남은 이어부렀어.


흑과 백이 따로 없다더니, 한국인은 이런 거를 미일과 달리 특별히 잘 보는 건가? 사실 한국인이 미일과 달리 연결을 볼 수 있는 것은 잘나가기 때문이다. 망하는 가게와 흥하는 가게 모두에서 알바를 해보면 알게 된다. 망하고 있으면 뭔 짓을 해도 벌어지고, 잘나가고 있으면 쌍욕을 해도 가까워진다. 


미국과 일본이 저따구로 결말을 내는 이유는 그들이 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잘나갈 때는 연결하는 영화를 만들곤 했다. 7인의 사무라이는 전형적인 연결 영화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미일은 차별이 성행한다. 집단에 차별이 성행하면 뭐다? 가게가 망하고 있다는 신호다. 


인간 사이에서 쓰이는 허무라는 말과 대응되는 물리학 용어는 척력이다. 근데 척력을 인력으로 바꾸려면? 척력을 상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은? 제3의 척력에 갖히면 된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인력이 작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척력에 의해 중력은 상대적으로 성립한다.


물에 나뭇잎을 여러 개 띄워보면 중력이 왜 생기는 지 이해할 수 있다. 나뭇잎과 물은 밀도가 다르므로 척력이 작용하고 나뭇잎이나 물은 상대적으로 인력이 작용한다. 그래서 나뭇잎은 뭉쳐진다. 물론 그 전에 둘은 중력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겨있다. 성기훈과 조상우도 마찬가지다. 둘은 쫄딱 망했다는 바구니에 담겨버렸다. 둘이 싸우는 거 아니냐고?


왜 내 눈에는 둘이 칼로 사랑 싸움 하는 것 처럼 보일까? 정말 연인들이 싸우는 게 싸우는 거라고 여전히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세상에는 싸우는 게 없다. 싸우는 척 하지만 사실은 한 바구니에 담겼을 뿐이다. 그냥 상호작용의 밀도가 높아진 것뿐이다. 그런데 세상 독고다이라는 게 보인다면 당신은 척력을 본 것이다. 


사람 사이에 서로 잡아먹으려는 게 보이는가? 당신은 망하고 있는 가게에서 알바를 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잘해줘야 친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봤자 헛수고다. 나이 40이 넘었다면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는 봐야지 어른이 되는 거지. 인간이 친해지려면 같은 상황을 공유해야 한다. 빠져나올 수 없게 되어 둘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면 친해진다. 물론 싸우는 것도 친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링 위에 올라선 두 권투선수가 아니던가.


끝내려고 애쓰지 말라. 이으면 알아서 끝난다. 여친이랑 헤어졌다고? 뻥치지 말라. 당신은 무언가와 이어진 것이다. 대개 돈 많은 부부가 헤어지더만.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붙어있는데, 돈 많으면 쿨하게 헤어져. 돈이 있으면 다른 것과 연결이 쉽기 때문이지. 제프베조스 봐봐. 쿨하게 각자 갈 길 가잖아. 거지 됐어봐. 백년해로 했을껄.


미국과 일본 애들은 끝내는 방법을 잊은 거야. 한물 간 노인이 돼버렸으니깐. 사실은 시작하는 방법을 잊은 거지. 한국은 알 수밖에 없는 거고, 한창 때잖아. 오징어게임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야 끝이 나는 거. 뭐 일본은 사람과 음식을 연결시킨다고. 미국은 사람에 초능력을 입히고. 안 끝내고 계속 쓰니깐 이상하지? 이게 끝난 거야.

Drop here!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21.10.12 (01:09:13)

오징어 게임에는 빈부격차라는 에너지의 낙차가 있다.

가장 역동적 나라가 한국인데, 반대로 부의 세습이 가장 심한 곳이 한국이 아니던가?

남들 3백년 동안 할 일을 70년안에 속전속결로 했으니 

그 안에서 치고 받는 인간군상들이 3세대에 걸쳐 온갖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에너지가 만땅이니 이야기가 안나올 수 밖에 없다. 

그동안은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부족, 작곡능력 부족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니까 에너지를 요리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고.

수많은 역설이 존재하는 것도 보는 묘미.

(이하 스포일러 있음)


죽은 줄 알았던 형이 게임을 진행하고 있고, 가장 힘없는 자가 게임의 설계자라니.

경마 노름에 미친 놈이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잘나가던 엘리트가 나락으로 떨어져 범죄자로 집안을 말아먹고 있었다니.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 믿음을 주고, 

아니 내가 믿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 상대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먼저 믿음의 증표를 보여준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반응하는 후수가 아닌 스스로 판을 개척하는 선수효과. 


살아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상호작용의 질이 고퀄이니 대사 하나 하나가 마음에 박힌다.

어른들이 애들 게임하는 거며, 일상에서 통할 수 없다고 상상속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현실감있게 재현되니 몰입이 안될 수 없다. 


스토리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간단하면서도 순간 순간 예측을 뛰어넘으니 끝까지 안 볼 수 없다.

주인공이 오징어 게임 끝나고 나서도 한 25분을 이어봐도 지루하지가 않네. 

가장 리얼한 밑바닥 인생들이 가장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징어 게임, 한마디로..  그냥 재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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