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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652 vote 0 2021.04.05 (20:50:20)

    윤석열이 정치판에 기어나온 이유
   

    전사가 싸우는 이유는 직업이 전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혁을 추구하는 이유는 가슴에 뜻을 품은 지사이기 때문이다. 전사가 강적을 만나면 엔돌핀이 솟구치고 도파민이 쏟아지고 아드레날린이 흘러나올 뿐이다.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무슨 말인가?


    보통은 상대방에게서 이유를 찾는다. 보수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기득권이 어떻게 했기 때문에. 이명박근혜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한다는 식이다. 틀렸다. 자기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민주당을 미는 이유는 나의 계획과 맞기 때문이다.


    말이 잘 달려도 기수는 말을 채찍질한다. 자동차가 잘 달려도 레이서는 엑셀레이터 페달을 밟는다. 못하면 잘하게 하고 잘하면 더 잘하게 한다. 악단이 연주를 잘하면 지휘자는 더 힘차게 팔을 휘둘러 열정적으로 지휘한다. 한국은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해야 한다.


    고수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카드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쉬운 상대 홍준표를 만나 편히 가다가 나사가 풀려서 아웃되거나 뜻밖의 강적 윤석열을 만나 치고받으며 단련되어 더 강해지거나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윤석열의 활약에 기대하고 있다. 안철수 같은 인간이 정치혐오를 퍼뜨리는게 더 고약하다. 윤석열이 '장모는 건드리지 마' 하고 엄호사격을 하러 나온 사람인지 아니면 대권에 뜻을 품은 돈키호테인지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현재로는 전자다.


    윤석열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화풀이로 정치기동을 하는 것이다. 주변에 부추기는 사람은 있지만 행동은 즉흥적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없고 보복을 하겠다는 앙심이 있다. 앙심이 있으니 화풀이는 하겠지만 장기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윤석열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맹주로 뿌리를 내리면 골치가 아파지는데 말이다. 서울태생 윤석열을 지지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지지를 철회하기에 부담이 없다. 민주당을 경고하는 용도로 써먹고 버리는 조연으로는 안성맞춤이다. 


    긴장이 풀려 있는 민주당에 경고할 타이밍은 맞다. 대선을 앞두고 이런 악재가 터지면 곤란해지는데 말이다. 솔직히 우리도 화풀이를 좀 했고. 기득권 입장에서 진보진영의 화풀이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략이 없는 화풀이 정치가 오래는 못 간다.


    윤석열 전술은 팃포탯이다. 장모를 때리면 보복한다는 식이다. 팃포탯은 도둑들의 단기적인 배반게임일 뿐 져주고 이기는 정치가의 원대한 포석은 아니다. 팃포탯으로 나오는 하수는 외곽세력이 뺑뺑이를 돌리는 방법으로 진을 빼서 녹초를 만들어주면 된다.


    우리가 때로 몰리고 때로 이기지만 세상은 원래 이렇게 삐꺽거리면서 굴러가는 것이다. 일본처럼 조용하게 가라앉는 것보다 한국처럼 시끌벅적하게 싸우는게 낫다. 전사가 전장을 두려워하랴? 스트레스 못 참고 발끈하면 진다. 윤석열은 발끈했다.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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