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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723 vote 0 2021.04.05 (18:29:09)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황새가 물어다 줬다고 말하는 방법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대꾸하는 방법이 있다.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진화론이 맞는 답을 제시한다. 반대편에 창조설`이 있다. 그런데 창조설은 내막을 설명하지 않는다. 생명의 근간이라 할 DNA와 호흡과 에너지대사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창조설은 이론이 아니다. 잘 모르겠으니까 신에게 물어보라는 식의 회피기동이다. 도망치는 것이다.


    '1+2는 얼마지?' '수학자에게 물어보셔.' 이건 답변이 아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거나 황새가 물어다 주었다는 말이나 매한가지다. 답변이 곤란할 때 둘러대는 말이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생물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거기에 무생물을 포함하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막연히 얼버무리는 주장은 있다. 원자설이 그것이다. 역시 이론이 아니다.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줬다는 말과 같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의 한 장면이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양은 상자 안에 들어있어.' 역시 얼렁뚱땅 둘러대기 기술이다.


    원자는 쪼갤 수 없다. 내부를 열어볼 수 없는 상자와 같다. 그거 편리하네. 내막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데 꼼수다. 우리는 용감하게 어린왕자의 상자를 열어버려야 한다. 원자라고 불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깨뜨려야 한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네.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준다네. ‘청다리 밑에서 주워왔지.’ 양은 상자 속에 있다니깐. ‘원자는 쪼갤 수 없다네.’ ‘스토리가 막혀서 곤란할 때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출동.’ 다 같은 패턴이다. 손오공이 관세음보살의 힘을 빌려 요괴를 퇴치하는 식으로 얼렁뚱땅 빠져나가면 안 된다.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눈속임에 말장난이다. 세상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액션이다. 액션은 움직인다. 움직이면 멀어진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액션을 쫓아갈 수 없다. 액션을 추적할 방법이 없을까? 액션의 최초 탄생지점을 조사해보면 된다.


    날아가는 화살을 쫓아갈 수 없다. 화살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화살이 날아간 방향의 반대편에서 활을 쏜 궁수를 조사하면 된다. 액션은 어디에서 왔는가? 구조에서 왔다. 구조는 어디에서 왔는가? 메커니즘에서 나왔다. 메커니즘은 어디에서 왔는가? 시스템에서 왔다.


    시스템은 사건의 단위를 이루니 복제된다. 복제되면 망라된다. 비로소 천하는 이루어졌다. 원자의 쪼갤 수 없음과 같고 어린왕자의 상자와 같은 그것은 사건의 완전성이다. 쪼갤 수 없는게 아니라 완전성을 쪼개면 안 된다. 쪼갤 수는 있는데 쪼개면 시스템이 깨지고, 메커니즘이 깨지고, 구조가 깨지고, 액션이 깨지고, 코드가 깨진다. 사건의 진행이 중단된다. 어린왕자의 상자를 열어보면 안 된다. 아니다. 열어볼 수 있다. 상자를 열어보면 사건을 진행하거나 중단하는 것을 결정하는 스위치가 들어있다. 사건의 스위치는 다섯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시스템, 메커니즘, 스트럭쳐, 액션, 코드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건의 연결에서 왔다. 인간에게는 어떻게 왔는가? 정보로 왔다. 구체적으로는 촉각, 시각, 청각, 미각, 후각이다. 감각이 코드다. 코드 위에 액션, 액션 위에 구조, 구조 위에 메커니즘, 메커니즘 위에 시스템이 있으니 다 합쳐서 사건의 완전성을 이룬다.


    하나의 사건은 완전성을 이루는 다섯 차례의 단계적인 의사결정에 의해 에너지의 회로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사건을 쪼개보면 시스템 내부에 이런 회로들이 있어서 스위치가 꺼지고 사건의 진행이 중단된다. 그런 것을 체험한 사람이 직관적인 판단으로 원자는 쪼갤 수 없다고 표현해 본 것이다.


    구조는 만유의 일어나고 쓰러지는 단위, 일의 맺고 끊는 단위, 의사결정의 단위다. 숫자는 1이 단위고 나머지는 1의 복제다. 구조는 패턴을 무한히 복제한다는 특징이 있다. 나뭇가지가 Y자 모양으로 갈라지는게 구조다. 철도의 연결처럼 분기가 계속 일어난다. 손가락의 구조가 손목의 구조, 팔꿈치의 구조, 어깨의 구조로 계속 복제된다. 넓은 세상을 거뜬히 담아낼 수 있다.


    시스템은 에너지 입출력을 담당하므로 복제가 쉽지 않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입구와 출구가 겹치면 안 되기 때문에 설계를 잘해야 한다. 메커니즘도 대칭이 축을 공유하므로 복제가 쉽지 않다. 하나를 움직이면 대칭되는 다른 것도 연쇄적으로 움직여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스트럭쳐를 복제하기가 쉽다. 액션은 복제가 쉽지만 확산되어 흩어지므로 통제하기가 어렵다. 코드 역시 계에서 이탈하는 특징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코드, 액션, 스트럭쳐, 메커니즘, 시스템을 모두 구조라고 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세 번째가 구조다. 우리는 주로 액션을 눈으로 보고 액션의 원인을 구조에서 찾기 때문이다. 처음 접촉하는 것은 코드다. 코드는 냄새, 소리, 맛, 색깔, 촉감인데 그 냄새의 구조, 소리의 구조, 맛의 구조를 찾는 사람은 없다. 자동차가 달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뭔가 액션이 보이면 구조를 찾는다.



    언어의 구조


    언어는 주어와 동사로 조직된다. 자연에 실재하는 것은 액션이다. 그런데 액션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액션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실재는 동사다. 그것을 전달할 수 없으므로 어린왕자의 상자가 소용된다. 운반자로는 황새가 필요하다. 다리가 필요하다. 원자가 필요하다. 신이 필요하다. 택배는 박스가 필요하다. 그것이 주어다. 우리는 주어라는 박스에 액션이라는 내용을 담아 전달한다.


    주어는 액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동작이다. 세상은 사건의 연결이다. 그런데 사건을 직접 가리킬 수 없다. 돌을 가리킬 수 있지만 사랑을 가리킬 수 없다. 사랑은 여러 가지 액션의 집합이다. 세상은 사건인데 사건은 변화를 반영하고 변화는 움직이기 때문에 가리킬 수 없다. 낮을 가리키면 어느새 밤이 되어 있다. 물을 가리키면 어느새 바다로 흘러가 있다. 곤란하다. 인간의 언어는 자연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우므로 전달자가 필요하다. 액션이라는 동사를 주어라는 택배상자에 담아서 전달하는 것이다.


    원자도 일종의 박스고, 황새도 일종의 박스고, 신도 하나의 박스다. 신은 사건의 완전성이라는 개념을 전달하는 박스다. 그것은 운반자다. 실제로 배달하는 것은 박스가 아니라 내용물이다. 언어는 명사에 담아 동사를 전달한다. 명사는 포장지고 동사가 진짜다.


    세상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일단 구조를 분석한다. 건물을 모르면 건축구조를 조사한다. 인체를 모르면 신체구조를 조사한다. 자동차를 모르면 엔진을 뜯어 내부구조를 조사한다. 4기통이 어떻고 6기통이 어떻고 하며 말한다. 구조가 답이라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구조의 구조를 조사하지 않을까? 현대문명의 맹점이라 하겠다.


    바람이 부는게 아니라 부는 그것이 바람이다. 물이 흐르는게 아니라 흐르는 구조 그것이 바로 물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게 아니라 운전이 곧 자동차다. 어떤 것의 구조가 아니라 구조가 어떤 것이다. 명사에 동사가 따르는게 아니라 동사가 존재고 명사는 포장재다. 동사라는 아기를 주어라는 황새가 물어다 준다.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존재하고 존재하는 그것이 운동하는게 아니라 운동하는 그것이 존재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법을 다 바꿔야 한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 주어를 보지 말고 동사를 보라. 존재는 액션이다. 단, 그 액션은 스트럭쳐에 갇혀 있고, 스트럭쳐는 메커니즘에 갇혀 있고, 메커니즘은 시스템에 갇혀 있으며 우리 앞에는 사건으로 나타난다. 존재는 계를 중심으로 다섯 차례의 연속적인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처음 우리가 입수하는 것은 정보다. 정보는 Code다. Code는 약속이다. 태초에 약속이 있었다. 그것은 공유다. 약속한다는 것은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축과 대칭의 구조를 만들고 축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약속한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정보다. 정보는 눈과 귀와 코와 입과 혀로 들어온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다. 그것은 약속이다. 프로토콜이다.


    약속을 깨면 의사소통이 안 되므로 원자론의 원자는 깨지지 않는 걸로 설정하는 것이다. 숫자로 치면 1은 약속이고 나머지는 죄다 1의 복제다. Code의 어미는 액션이고, 액션의 어미는 스트럭쳐, 구조의 어미는 매커니즘, 매커니즘의 어미는 시스템이다. 합쳐서 사건의 완전성을 성립시킨다.



    약속의 탄생


    세상을 그린다면 크레파스로 그릴 것인가? 붓으로 그릴 것인가? 연필로 그릴 것인가? 그것이 약속이다. 초딩이 크레파스로 그리면 크레파스의 논리를 따라야 하고, 중딩이 붓으로 그리면 붓의 논리를 따라야 하고, 입시 때 연필로 그리면 연필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채점관의 판단기준도 거기에 연동된다.


    외계인과 처음 대화한다면 손짓발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림을 그려 보이는게 빠르다. 외계인에게도 사람과 같은 눈이 있다면 말이다. 외계인이 눈과 귀가 없다면 어쩔 것인가? 곤란하다.


    처음에는 어떤 기본적인 모형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전에 약속되어야 한다. 해석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알파벳은 글자이기 전에 그림이다. 그림은 무조건 암기되어야 한다.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문장은 해석할 수 있는데 알파벳은 암기해야 한다. 거기에 소리를 붙이고 의미를 붙인다. 언어는 미리 약속해야 한다. 아기는 엄마의 행동을 흉내내며 숨은 약속을 알아낸다. 개는 알아내지 못한다.


    숫자는 기본적인 것을 약속하면 패턴이 같은 것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다. 최초에 미리 약속해야 하는 것이 최소 하나는 반드시 있다. 다른 모든 숫자는 복제되지만 1은 약속된다. 그것이 구조다. 하나를 약속하면 패턴이 같은 것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지만 최초의 것은 직접 만나서 약속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한 번은 반드시 직접 만나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관문이 있다.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인간이 의사전달을 고민하듯이 자연도 사건의 연결을 고민한다. 약속장소와 약속시간과 약속인물은 특정된다. 많은 장소 중에서 하나의 장소, 많은 시간 중에서 하나의 시각,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의 사람을 특정해야 약속할 수 있다.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 그것은 이기는 것이다. 축이 대칭된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승패를 결정한다.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가 특정된다. 암컷은 여러 마리의 수컷 중에 하나를 특정한다. 물은 여러 방향 중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흐른다. 선수는 여럿 중에서 하나가 선발된다.


    자연은 우연히 특정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기세다. 사건을 다음 단계로 연결하는 기세가 척력을 인력으로 바꾼다. 그럴 때 특정된다. 대칭을 비대칭으로 바꾸는 지점이 있다. 물리학자는 그것을 집합이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린다. 사람이 모여서 집단이 만들어진게 아니고 두목이 특정되어 집단이 탄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살았는데 충돌이 일어난다. 그럴 때 의사결정하는 우두머리가 특정되면서 집단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 명뿐이라도 그 한 명이 특정된다. 그냥 흙이거나 암석인데 외력의 작용을 받아 반작용을 시작하는 특이점이 형성되며 그것이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은 무게중심이 특정된다. 


    변화는 특정한 지점에서 일어난다. 그 특이점을 어떻게 도출하는가다. 그것은 일치다. 자연은 최초의 약속을 대칭의 일치와 코어의 공유를 통해 얻어낸다. 일치에 실패하면 일치될 때까지 전개한다. 우연히 혹은 수학적 일치에 의해 특정된다. 주로 공간의 방향성에 따른 효율성에 의해 일치가 도출된다. 중심이 주변보다 효율적이다. 대개 중심에 코어가 형성된다. 에너지가 비효율적인 확산방향에서 효율적인 수렴방향으로 바뀔 때 코어가 성립한다. 


    일치가 곧 약속이며 정보를 이루는 Code다. 인간은 말로 약속해서 일치시키지만 자연은 수학적 원리로 일치를 도출해낸다. 그것이 자연의 조절장치다. 생물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게 아니라 조절장치에 의해 일방향적으로 조절된 것이다. 엔트로피에 의해 한 방향으로만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나무는 햇볕과의 일치를 조달하는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인간은 상호작용을 조달할 수 있는 일방향으로 기동한다. 그것은 진보의 방향이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반드시 있다. 일치를 끌어내는 조절장치가 있다. 하나의 일치가 획득되면 패턴이 무한히 복제된다. 시스템과 메커니즘과 구조와 액션과 코드는 그 일치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일치와 일치의 일치, 일치의 일치의 일치, 일치의 일치의 일치의 일치로 올라간다. 일치가 코드, 일치의 일치가 액션, 일치의 일치의 일치가 구조다. 같은 방식으로 메커니즘과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사건 속에는 질의 일치, 입자의 일치, 힘의 일치, 운동의 일치, 량의 일치가 있다. 다섯 가지 일치가 조직될 때 사건은 일어난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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