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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68 vote 1 2020.10.05 (20:48:31)

      

    언제나 부재가 원인이다


    구조론은 새로운 언어다. 보다 진보된 언어이자 더 높은 차원의 언어다. 구조론은 어떤 사실을 주장하기 앞서 그 사실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는 언어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구조어는 절대어다. 상대어는 관측자가 기준이다. 왼쪽과 오른쪽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기준이다.


    구조론은 관측자의 입장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세운다. 그것은 완전성이다. 완전한 것이 기준이다.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이 완전하다. 모두 연결되어 있는 완전한 상태는 시스템이다. 오른쪽 왼쪽이라고 하지 말고 GPS 좌표를 쓰자. 좌표는 X축과 Y축이 연결되어 있다.


    언어를 바로잡으면 거의 모두 해결된다. 피리와 가야금과 북이 각자 알아서 연주하다가 근대사회에 와서 악보를 보게 된다. 악보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 약속되어 있다. 언어가 있는 것이다. 피리와 가야금과 북이 악보를 통해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림은 소실점이 언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된다. 축구는 포메이션 전술이 언어다. 야구는 수비전술이 언어다. 어느 분야이든 깊이 들어가면 그런 약속들이 존재한다. 갑자기 수준이 높아진다. 수학도 좌표 나오면 어렵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지도는 왜 북쪽이 위일까? 나라들이 북반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남반구 국가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다. 서쪽이 우도이고 동쪽이 좌도이다. 경상좌도, 경상우도, 전라좌도, 전라우도가 있었다. 북쪽을 기준 삼는 지도와 어긋난다. 


    항상 언어가 문제다. 말은 하는 자와 듣는 자가 있다. 정보의 송신자와 수신자가 있다. 반대쪽에서는 보면 좌우가 바뀐다. 거울은 앞뒤가 바뀌지만 좌우가 바뀐 것처럼 보인다. 내가 오른팔을 들면 거울 속의 내가 왼팔을 든다. 헷갈린다. 어쩔 것인가? 구조론은 사건으로 본다. 


    사건으로 보면 플러스 아니면 마이너스다. 모든 변화는 자리바꿈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간다는 말이다. 저쪽에서는 플러스고 이쪽에서는 마이너스다. 이쪽이 기준이므로 마이너스다. 에너지는 입력에서 출력으로 간다. 출력하면 감소한다. 그래서 세상은 마이너스다. 


    마이너스는 부재다. 세상은 부재로 설명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기준이어야 한다. 에너지는 마이너스 방향으로 작동한다. 전기는 음극에서 양극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음극관에 음극선이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막연히 무언가의 존재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틀렸다. 


    언제나 부재가 사건의 원인이다. 존재가 원인일 때도 있다. 그 경우에도 부재가 원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언어의 문제다. 언어는 미리 약속을 정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말하면 왼쪽과 오른쪽을 헷갈린다. 앞을 맡으라고 하면 뒤로 내빼고 뒤로 가라고 하면 앞으로 간다.


    내일이 앞날인지 뒷날인지 헷갈린다. 구조론은 객관적인 기준을 정한다. 사물은 앞뒤가 없으므로 기준을 정할 수 없다. 사건은 입력과 출력이 있으므로 객관적인 기준을 제안할 수 있다. 부재가 기준이다. 존재가 원인이면 그 존재를 연출한 더 높은 차원의 부재가 찾아진다. 


    2층의 부재가 1층의 존재로 된다.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진 거다. 1층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면 그 돌부리의 존재를 탓하지 말고 2층에서 부실공사 한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 언제나 부재가 원인이다. 정확히는 존재나 부재가 아니라 시스템의 완전성이 사건의 원인이다. 


    여기서 시스템은 자원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애초에 완전한 상태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의 모든 변화는 불완전이다. 자연에서 변화는 계가 안정될 때까지 계속 일어난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안정상태다. 


    안정된 상태는 시스템이 갖추어진 상태다. 거기서 변화가 있다.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변화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에 모순이 작동하여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불완전으로의 변화다. 모든 변화는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간다. 무언가 빠져나가는 결핍이 일어난다.


    그것이 사건의 원인이 된다.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마을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무법자가 나타났다. 조용하던 마을에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이다. 불화가 촉발되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이게 다 동성애자 때문이다. 이게 다 흑인 때문이다. 불가촉천민들 때문이다.


    이게 다 좌빨 때문이다. 이게 다 문빠들 때문이다. 보통은 어떤 나쁜 것의 존재에서 원인을 찾는다. 틀렸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언어의 문제다. 상부구조로 올라가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른 언어 사용법이다. 존재가 관측되었다면 관측자가 기준인 만큼 언어실패다.


    뭐든 어떤 존재를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하면 잘못된 것이다. 비과학적인 것이다. 비구조적인 어법이다. 수준이 낮은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어느 부분이 결핍된 것이 원인이다. 무언가 빠져나갔다. 사회가 깨지고 나사가 빠져서 부재가 일어났다.


    자식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부모의 부재가 원인일 수 있다. 주변 환경에 무언가 결핍이 있다. 교육의 부재가 원인이다. 훈련의 부재가 원인이다. 관용의 부재가 원인이다. 부재가 원인일 때 인간은 좌절한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던 핑퐁의 랠리가 끊어질 때 인간은 행동을 바꾼다. 


    인간은 원래 동적 존재이며 시계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는 상태이며 물처럼 흐르는 상태이며 거기서 뭔가 막힌 것이 고장의 원인이다. 컴퓨터게임을 하던 사람이 뭔가 화를 낸다면? 무언가의 부재가 일어난 것이다. 누가 PC방에 불을 껐지? MBC 뉴스데스크의 폭력행동이다.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한다며 두꺼비집을 내려버렸다. 이런 식이다. 사람이 화가 났다면 잠금장치가 풀린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별로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부자들은 조금만 달라져도 화를 낸다. 왜? 가난한 사람은 더 부재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없으니 없어질게 없다. 


    부자들은 정권 바뀌었다고 매우 화를 내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것이 많아서 화를 낼 원인이 되는 부재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르주의가 변화를 주도한다. 그들이 부재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일기예보만 조금 틀려도 부르주아들은 기상청에 화를 낸다. 


    더 날씨에 민감한 농부들도 가만있는데 말이다. 언제나 가진 자들이 화를 내고 배운 자들이 화를 낸다. 새끼를 가진 엄마곰이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새끼곰이 보이지 않으면 갑자기 난폭해진다. 우리는 막연히 무언가의 플러스에서 답을 찾으려 든다. 


    잔소리를 추가해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용돈을 추가해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플러스로 사람을 바꿀 수 없다. 행동하게 할 수 없다. 잔소리와 회초리와 더 많은 용돈으로 인간을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밥을 끊으면 인간은 변한다. 대장이 없으면 용감한 군대도 붕괴한다.


    인터넷을 끊으면 히키코모리도 집에서 나온다. 개는 냄새 안에 머무르려고 한다. 냄새가 없으면 방향전환을 일으킨다. 개가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는게 아니라 무언가의 부재를 느낀 것이다. 개들은 동료가 눈앞에 부재하면 하울링을 한다. 동료를 찾고 세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아기는 엄마의 부재로 울음을 터뜨린다. 호르몬이 원인이다. 부재할 때 호르몬의 단절이 인간의 행동을 격발하는 진짜 원인이다. 어떤 둘의 연결이 원인이다. 자연의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연결을 끊으면 인간은 비로소 움직인다. 보통은 존재에서 답을 찾는다. 


    흥부의 행동은 선함이 가슴에 충만해 있기 때문이라네. 놀부의 행동은 마음속에 악이 가득하기 때문이라네. 이순신 장군은 용기가 있다네. 영웅들은 의도가 있고 목적이 있고 야망이 있다네. 개소리다. 그런거 없다. 그런 관념들은 남들에게 설명할 목적으로 둘러대는 소리다. 


    인간은 의도나 목적이나 야망의 동물이 아니고 쾌락과 명성과 성공과 출세와 행복의 동물도 아니다. 플러스는 인간을 움직일 수 없다. 부모의 부재가 일탈의 원인이다. 사춘기에 아버지와 어색해지면서 공부를 한다. 배움의 부재가 일베와 국힘당들이 버티는 원인이다. 


    관용의 부재가 보수꼴통의 원인이다. 인간은 메커니즘에 지배되는 동물이다. 메커니즘의 동적상태가 끊어질 때 움직인다. 인간은 원래 동적 상태다. 원래 사회와 한배를 타고 있다. 원래 주변과 상호작용 한다. 인간은 연결되어 주고받는 상호작용 상태 계속 머무르려고 한다.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게 아니라 그저 이어져 있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끊긴다. 나이가 들면 끊긴다. 친구들은 취직해서 연락이 끊긴다. 결혼해서 연락을 끊는다. 하나씩 서울로 가더니 연락이 없다. 대칭되는 둘 중의 선택이 아니라 외부 연결라인을 추가하는게 문제 해답이다.


    우리는 선택하려고 한다. 서울대냐 지방대냐.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미녀와의 결혼이냐 그렇지 않은 결혼이냐. 틀렸다. 그것은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헛된 관념이다. 우리는 의사결정의 중심과 연결된 상태에서 끊기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출세하고 성공하고 명성을 얻고 잘 나가면 정보와 에너지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게 된다. 돈이나 명성이나 성공은 그런 라인을 연결시키고 지키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뿐 본질이 아니다.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연결된 상태가 중요하다.


    On air 상태, live상태에 머무르려고 한다. 무언가 연결의 흐름이 끊어질 때 인간은 행동한다. 많은 경우 인구가 늘면 문제가 해결된다. 연결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연결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자를 배우기 어려워서 지식인 숫자가 적은 것이 아시아가 뒤처진 원인이다.


    섬과 같이 고립된 나라는 에너지를 쥐어짜기 쉽다. 끊기가 쉽다. 대륙은 이곳을 끊어도 저곳이 연결되지만 섬은 이곳을 끊으면 바로 고립된다. 도시의 공기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 있는 이유다. 궁벽한 시골은 사람을 엿먹이기 쉽다. 왕래를 끊는 방법으로 통제한다.


    귀농한 사람과는 일단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진보하려면 끊을 수 있는 라인이 많아야 한다. 유럽에서 문명이 일어난 이유다. 유럽은 지중해로, 아프리카로, 인도로, 아시아로, 중동, 시베리아로 두루 연결할 수 있다. 끊을 수도 있다. 아시아는 대략 전방위로 고립되어져 있다.


    히말라야산맥과 고비사막이 라인을 차단해 버렸다. 끊어야 발전하는데 이미 끊겨서 끊을 수 없다. 네거리가 땅값이 비싸다. 더 많은 루트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연결을 끊는 방법으로 의사결정할 수 있으므로 끊을 라인이 없으면 망한다. 끊는 과정에서 흥한다.


    다 끊어지면 망한다. 유럽이 낙후하는 이유는 다 끊어먹고 이제 끊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일본을 끊을 수 있다. 끊는 카드를 쥐고 있다는 말이다. 너무 쉽게 끊어버리면 안 된다. 그 카드를 잃는다. 끊고 난 다음에는 더 끊을 것이 없다. 조중동을 끊는게 급선무다.


    검사와 의사와 목사의 비대해진 권력도 끊어야 한다. 끊는게 진보다.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끊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끊을 건수가 많기 때문이다. 끊을 카드를 확보하면서 하나씩 끊어야 한다. 세상은 부재의 연출을 통해 다스려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사실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논의다. 절대어를 쓰라는 말이다. 관측자 기준으로 말하지 말라. 송신자와 수신자는 방향이 반대여서 언어의 혼선이 일어난다. 존재가 보이면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서 그 존재를 연출한 시스템을 찾아내야 한다.




[레벨:30]솔숲길

2020.10.06 (10:53:01)

인간의 행동을 촐발하는 진짜 원인이다.=> 촉발하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0.10.06 (11:27:07)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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