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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604 vote 0 2020.02.08 (09:29:09)

    신의 입장


    신이 있다. 답이 있다는 말이다. 인류가 답이 없는 문제를 헛되이 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신의 역할은 존재 그 자체다. 북극성이 인간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북극성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신의 존재 그 자체로 인간의 구원은 완성되었다. 


    정답은 나왔다. 대본이 나왔다. 이제부터 각자에게 주어진 대본대로 역할 하면 그만이다.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대본이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확률에 달렸고 운명의 갈림길에서 어떻게든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신의 존재 의미다. 신이 없다면 옳고 그름이란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삶의 일관성이 사라진다. 하던 일을 마저 끝낼 수 없게 된다. 무엇을 판단할 수도 없고 결정할 수도 없다. 길이 있다. 그 길을 가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다만 가려면 그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은 원래 없다. 가다 보면 결국 그 길로 가게 된다. 모든 길이 그 하나의 길로 합류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다 보면 어차피 그 길로 가게 되는데 길을 알고 가는 자는 편하다. 결국 갈 거면 알고 가기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길이 없다면 그 길을 가는 사람도 없다. 나는 과연 있는가? 주체를 의심해야 한다. 대상이 아닌 주체의 문제다. 길을 가는 동안 나는 존재하고 길을 가지 않을 때 나는 없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동지를 만날 때 나는 커지고 명백해진다. 동료와 헤어질 때 나는 작아지고 희미해진다. 나의 권력과 주도권과 의사결정영역이 사라진다. 노예에게도 나의 자아는 존재하는가? 여권도 없고 민증도 없고 친구도 없고 증언해 줄 그 무엇도 없다면 나는 존재하는가?


    결정론이 틀린 이유는 주체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데 무엇이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라는 것은 나의 권력이고 주도권이고 의사결정영역이다. 그것은 의사결정의 순간에 도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희미하다. 길이 아닌 곳으로 역주행하면 나는 치여 사라진다. 


    의사결정은 실패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신을 부정하면서 나의 존재를 믿고 있다면 터무니없는 것이다. 모두가 나의 방해자가 되고 나는 그 방해자들에 치인다. 세상의 편에 들어야 내 존재가 우뚝해진다. 노예는 증언해줄 내 편이 없기 때문에 벌레처럼 존재가 희미한 거다. 


    내 편이 없고, 내 땅이 없고, 내 권리가 없고, 내게 힘이 없어 의사결정할 수 없다면 나는 없는 것이다. 동료가 있고 역할이 있고 팀이 있기에 내가 있다. 길이 있으므로 그 길을 가는 내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길이 아니라 그냥 발자국들일지 모른다.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투명해진다. 나는 사라진다. 동료도 떠나고 권리도 떠나고 소유도 떠나고 모두가 내게서 등을 돌린다. 길을 가지 않으면서 무언가 해낼 수 없다. 무언가 이룰 수 없다. 무엇을 해내고 이룬다면 그것이 곧 길이다. 길은 다른 길과 합류해 간다.


    길은 결국 하나가 된다. 길을 통해서 나는 세상과 연결된다. 상호작용한다. 그것이 신의 의미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루려고 한다면 반드시 다른 것과 충돌한다. 충돌하면 실패한다. 좌절한다. 실패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거기에 길은 있는 것이다. 


    길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는 성공할 수 없다. 지구는 둥글고 세월은 흐르고 인간은 죽든가 아니면 그 길을 가든가뿐이다. 가면 길은 합류되고 더 많은 길이 합류되면 그 길의 끝에 신이 있다. 길을 알고 가면 편하게 간다. 인간의 미래는 세부적으로 낱낱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 


    산다는 것은 부단한 의사결정을 통하여 그것을 하나하나 확정해 가는 것이다. 점 두 개가 연결되면 선이다. 길은 선이다. 결정론은 점 하나만 갖고 나머지 점이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다. 아니다. 연결되어야 비로소 존재가 있다. 존재는 의사결정에 따른 두 점의 부단한 연결이다. 


    존재하는 자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그것이 존재다. 존재하는 것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그것이 존재다. 그러므로 결정론은 틀렸다. 결정해야 존재인 것이며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존재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것이 존재를 확정해 가는 것이 삶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르네

2020.02.08 (12:01:31)

나는 흑백처럼 명료하지 않다
나는 주위에 걸쳐져 있다

우주라는 거대한 닫힌계 안에
(단 우리 우주가 유일하다는 가정下)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없습니다
홀로 독, 있을 존이 아니라
천상천하 유아공존입니다

태양은 뭐가 태양인가?
태양이 태양인가?
태양의 중력이 미치는 범위까지가 태양인가요?

태양-태양계-은하-은하계-은하군-은하단-초은하단-우주거대구조

우주의 구조는 은하단과 초은하단이 그물 모양으로 연결된 구조입니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촘촘한 그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의 영향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모두의 변화를, 움직임을 감지하고 보고하고 반응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영향력의 행사 범위가 곧 나입니다

물질-에너지가 우주의 곡률을 결정하고 
우주의 곡률에 의해 천체의 움직임은 결정됩니다
그 움직임은 최소움직임이며 측지선을 따라 갑니다

물론 인간은 비효율적인 존재입니다
지름길(측지선) 나두고 에움길을 가기도 합니다

쓸데없는 짓도 많이 하고 깽판도 치고
부모 속도 썩이고 괜히 츤데레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우주안에 인간
에너지가 측지선을 만든다면 인간은 인간의 길을 만듭니다

나그네는 길을 만들며 그 길을 갑니다
나그네가 한발한발 내딛을때마다 길은 확장됩니다

보이저호에게 길은 미지의 길이며 
40년내내 한발한발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나그네는 결코 홀로 여행하지 않습니다
낮에는 태양을 의지하여
밤에는 북극성과 수많은 별과 달을 벗삼아

보이저호는 머나먼 인터스텔라를 홀로 가는 것 같지만
보이저호가 보내오는 신호를 기다리는 인류의 기대와 함께
가는 겁니다

혼자가는 듯 하지만 실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레벨:4]고향은

2020.02.08 (14:40:06)


내가 걷고 있는 시 공간에서


신과 우주를 연역하며 걸어갈 때


길이 나고.


우리는 동료를 만나며.


삶의 에너지 장에 휩싸인다.



신은 반짝이고  정다웁다

[레벨:11]큰바위

2020.02.09 (01:16:44)

세상의 모든 것은 있다에서 시작한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게 아니라, 있다에서 있다로 가는 거다. 

그게 존재론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2.09 (04:05:57)

"신의 역할은 존재 그 자체다. ~ 신의 존재 그 자체로 인간의 구원은 완성되었다."

http://gujoron.com/xe/116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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