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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56 vote 0 2019.11.26 (21:33:38)


    소속감이 에너지다


    생각을 하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이전에 에너지가 필요하다. 도구가 없으면 생각을 못 하지만 에너지가 없으면 생각할 생각도 못 한다. 도구가 없으면 생각하다가 두통을 앓고 포기하지만 에너지가 없으면 생각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분노에서 나온다. 분노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소속에서 나온다. 집단에서 나온다.


    어린이의 에너지는 호기심에서 나온다. 젊은이의 에너지는 분노에서 나온다. 기성세대의 에너지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어린이의 호기심은 자신의 소속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집단에 속하고 환경에 속한다. 그 집단과 긴밀해지고 그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려는 것이 어린이의 호기심이다. 


    청년의 분노는 그 소속집단과 겉도는 것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디를 가도 환영받는다. '너 여기 왜 왔니?' 하고 다그쳐 묻는 사람이 없다. 만약 곤란한 처지가 되면 울어버리면 된다. 청년은 어색해진다. 너 여기 왜 왔니? 하고 묻는다. 넌 떨어졌잖아. 넌 아웃이잖아. 넌 죽었어. 넌 나머지야. 넌 저쪽 동네로 가라고. 넌 불합격인데?


    분노할 수밖에 없다. 집단 안에서 확실한 역할을 얻을 때까지 시달림을 계속된다. 시험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파트너를 얻어 결혼에 골인할 때까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된다. 기성세대의 에너지는 반대로 자녀가 이탈하려는 데서 촉발된다. 집단을 책임져야 한다. 그들은 이웃을 감시하고 소수자를 억압하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어린이의 집단을 찾아 소속하려는 에너지든, 젊은이의 떠밀리며 분노하는 에너지든, 기성세대의 집단을 책임지려는 에너지든, 본질은 집단과의 관계이며 소외를 극복하게 하는 소속문제라는 데 있다. 타자성의 극복이다. 대상화되고 타자화되고 객체화되므로 주체를 잃고 주도권을 잃고 타인의 의사결정에 내 운명이 휘둘리게 되는 것이다. 


    주체를 다지고, 주도권을 잡고,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서 집단과의 관계가 긴밀하고 견고할 때 그리고 의사소통과 감정의 교류가 활발해질 때 호르몬은 안정되고 인간은 편안함을 느낀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이는 고양이가 노리개에 달려드는 것과 같은 단순 반응이다.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닌 주체다.


    자신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통제가능성이 답이다. 집단에 소속되고 환경과 긴밀할 때 주도권을 얻는다. 주체가 명확해진다. 역할이 분명해진다. 자동차는 핸들링 된다. 커브를 무리 없이 돌아가고 과속방지턱을 가볍게 넘는다. 어린이는 집단 속에 뛰어들고자 하고, 청년은 집단에서 자기 역할을 찾고자 하고, 어른은 집단을 책임지려고 한다.


    균형감각을 발휘하고자 한다. 어릴 때다.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 집은 너무 번쩍거렸다. 잘 닦은 바닥이 번쩍거렸고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자개장이 번쩍거렸다. 3개월 동안 씻지 않아 까만 내 발을 들이밀 수가 없었다. 문간에서 쭈뼛거린다. 진퇴양난이다. 발을 씻고 올 수 없다. 비누가 없다. 양말로 감추면 되지만 양말이 없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트라우마다. 콤플렉스다. 분노의 원천이다. 세상에 초대받았지만 들어갈 수가 없다. 세상과는 겉도는 사이가 된다. 상대는 내게 호감을 보이는 눈치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다. 1미터 안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면 일단 양치질을 해야지. 그러려면 칫솔과 치약을 사야지. 그런데 칫솔질을 해 본 적이 없잖아. 소금으로 안 될까?


    체념하게 된다. 이방인은 분노가 없다. 그러나 어떤 이방인은 근원의 분노가 있다. 집시는 분노가 없다. 원래 겉도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소속감이 없다. 어느 나라의 국민도 아니다. 까뮈는 프랑스인일까? 그냥 지구인일까? 지구를 초극하여 우주인으로 설정할까? 신을 때려주는 방법뿐이다. 이번 생은 망한 거다. 지구 안에서는 해결책이 없다.


    사소한 것에 분노할 수 없다. 근원에 분노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뒤틀려 있다. 작은 집단에 소속이 망하면 큰 집단에 소속되어야 한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민족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예수처럼 고향마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유태민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 인류에 받아들여져야 한다. 소속을 더 큰 대집단으로 갈아타야만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1.27 (06:38:12)

"주체를 다지고, 주도권을 잡고,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서 집단과의 관계가 긴밀하고 견고할 때 그리고 의사소통과 감정의 교류가 활발해질 때 호르몬은 안정되고 인간은 편안함을 느낀다."

http://gujoron.com/xe/1144097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1.27 (09:09:45)

일반적으로 보통의 사람들은 집단과의 소속에 문제가 발생하면, 현 집단을 해코지 하던가, 더 작은 집단으로 갈아타는, 쉬운 의사결정이 필요한 쪽으로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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