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점심시간에 4~5학년 남자애 둘이서 언쟁을 벌이고 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 아이 하는 말이 골키퍼는 골 넣는 사람이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다른 애가 와서 골키퍼 하겠다고 해서 그런단다. 골키퍼하던 애 말이 맞긴 한데 언성이 좀 과하다. 골키퍼 하러 왔다가 박힌 돌이 뭐라고 하니까 얘도 당황스러우니 같은 톤으로 대거리하다가 내가 오니 어찌할 줄 모른다. 주변 애들에게 너희들이 도와주면 어떠냐고 하는데 애들도 그냥 지켜볼 뿐이다. 나는 비폭력대화 방식으로 했다. 서로 상황을 잘 모를 수도 있겠다. 한친구는 골키퍼가 하고 싶고, 한 아이는 갑작스레 다른 친구가 자기가 하던 것을 하겠다고 하니 당황스럽겠다고 공감해줬다. 결국 둘다 원하는 것은 축구이고 축구는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재밌는데 너희는 다섯명 밖에 안되니 한명 더하면 어떠냐고. 애들도 동의를 해서 같이 하라고 했더니 굴러온 돌인 친구는 기분이 상했는지 안한다고 한다. 그래, 하고 싶을 때 하면 되지. 두 아이 등을 톡톡 두드려줘고 놀이터로 해서 운동장 한바퀴를 돌았다. 아까 애들이 축구하던 스탠드 근처로 와보니 같이 어울려서 축구하고 있다. 그럼 그렇지. 애들이 어른보다 더 금방 마음이 풀리지. 따로 무슨 말 하지 않고 그냥 몇 초간 애들 더 바라보다가 지나쳤다. 선악의 구도, 잘못한 사람 탓하는 형태로는 애들이 나아지기 어렵다. 진정 애들이 원하는 것이 각자 원하는 것을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지, 누굴 혼내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놀 시간만 줄어든다. 이 간단한 원리만 알아도 애들싸움이 반의 반으로 줄어든다. 근데 이거 하나 모르면, 교사든 부모든 자신이 애들 싸움을 크게 만들고 다시 싸움을 반복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공지 구조론 매월 1만원 정기 후원 회원 모집 image 29 오리 2020-06-05 79875
2145 이소룡과 이연걸 image 3 김동렬 2017-03-27 67308
2144 생명로드56 - 새 국회의 탄생과 주요행사안내 image 수원나그네 2020-04-16 50051
2143 남자들이 버섯머리를 싫어하는 이유 image 7 김동렬 2014-07-13 41081
2142 흑인 부부가 백인 아기 낳아 image 15 김동렬 2010-07-20 25713
2141 적정기술의 실패 4 김동렬 2016-07-24 25606
2140 쿠르베, 성기의 근원 image 16 김동렬 2014-06-09 23019
2139 625때 중공군 사상자 숫자 7 김동렬 2013-07-15 22909
2138 양직공도 신라사신 image 9 김동렬 2013-02-06 21612
2137 독수리 오형제의 실패 image 김동렬 2013-07-15 21111
2136 세잔의 사과 image 3 양을 쫓는 모험 2009-05-08 20884
2135 창의적 사고의 단계들 lpet 2011-02-27 19641
2134 이방인, 이정서가 틀렸다. image 8 김동렬 2014-04-29 19081
2133 뜨거운 물이 찬물보다 빨리 언다. 13 김동렬 2011-01-04 18804
2132 이영애는 백인 유전자를 가졌을까? image 2 김동렬 2016-08-30 15938
2131 개인용 컴을 만든다면, 이 정도가 기본. 4 ░담 2010-02-19 15661
2130 진화의 오류? image 10 김동렬 2012-06-06 15213
2129 사람은 왜 눈썹이 있는가? image 2 김동렬 2018-04-19 15175
2128 눈동자의 크기 image 18 김동렬 2014-04-11 14915
2127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 image 5 김동렬 2013-10-02 14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