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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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291 vote 0 2018.06.21 (16:39:20)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연결이다. 사건은 자연의 본래모습이며 사물은 인간의 눈동자와 뇌구조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인간의 뇌가 자연의 사건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으므로 사물로 왜곡하여 인식하니 뇌가 편법을 쓰는 것이다. 21세기라지만 과학은 여전히 사물을 논할 뿐 사건의 연결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종교가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은 제자리에 서 있고 사건은 널리 전파된다. 세상은 사건에 의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의사결정은 그 연결의 중심에서 일어난다. 중력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돌멩이에서 일어나는게 아니라 멀리 지구 중심으로부터 작용해오는 것이다. 그 중심을 모르지만 짐작하는 데서 종교가 출발한다.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 유적에서 인간은 1만5천 년 전부터 종교를 신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아있는 유적이 그렇고 실제로는 3만 년 전부터일 수도 있다. 문명화된 인간이 종교를 발명해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종교가 인간을 문명으로 이끌었다는 말이다. 이는 거대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쯤 되면 종교행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래모습이라 하겠다. 알려진 4대종교든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든 부족민의 터부든 마찬가지다. 종교의 의미는 인간이 사회시스템 속의 존재인데 있다. 시스템과 개인을 연결하는 중간고리가 무엇인지가 철학의 근본문제다. 철학이 이에 답하지 못하므로 종교가 기능한다.


    인간은 공간 속에 내던져진 사물의 존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시간을 타고 가는 사건의 존재다. 공간의 일을 잘하려면 분별이 있어야 하고 시간의 일을 잘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공간은 쪼갤수록 답이 나오고 시간은 모을수록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건은 시간을 타고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의사결정은 사건의 이전단계와 다음 단계를 연결하는 중간고리로 기능한다. 갈림길에서 판단해야 하는게 아니라 열차와 같은 궤도 위에서 타이밍을 재야 한다. 사물의 판단을 위해서는 지식이 소용되고 사건의 연결을 위해서는 에너지가 소용된다. 지식은 학교에서 구하고 에너지는 어디서 얻지?


    사물의 판단은 지식을 쓰면 되지만 사건의 연결을 위한 타이밍 조절능력은 깨닫고 덕을 닦아야 얻어진다. 지식은 뇌에 축적하고 깨달음은 어디에 축적하지? 호르몬에 축적한다. 그래서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헷갈릴 수 있다. 돈오돈수냐 점오점수냐?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수행과 다르다. 점오점수의 수행은 지식을 축적하듯이 조금씩 모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기적에 대비하는 것이며 기적은 에너지의 활동에 의해 느닷없이 오는 것이며 그러므로 점오점수의 수행은 필요 없다. 


    도를 조금씩 닦아서 언젠가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 만남을 얻어 문득 깨닫고 그때부터 24시간 긴장된 상태로 대비하는 것이다. 24시간 대비해야 하므로 수행은 빨리 끝낼수록 좋다. 가능하면 3초 안에 깨달아버리는 것이 좋다. 깨달아 보겠다며 토굴에 들어가서 20년을 허비하고 있다면 남북통일의 기적도 문재인 승리의 기적도 지나간 후의 일이 된다.


    인간은 의사결정을 일으키는 구조 안에서 에너지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이며 누구라도 이러한 내막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으며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요구조건을 귀납적으로 수렴한 것이며 귀납의 방법이므로 종교의 내용은 오류이지만 사회적 실천을 앞두고 에너지의 증폭을 위해서 인간이 종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구조론이 나온 이상 종교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의사가 버젓이 있는데도 주술사의 도움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의사가 없으면 민간요법이라도 해봐야 하지만 의사가 있다면 당연히 민간요법을 버려야 한다.


    과학은 지식을 주지만 에너지를 주지 않는다. 공간에 대응할 뿐 시간에 대응하지 않는다. 종교는 에너지를 주되 거짓말을 한다. 좋은 것이 나오면 나쁜 것을 버려야 한다. 구조론이 나왔으니 종교를 버려야 한다. 구조론은 에너지를 증폭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그것은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기에 서는 것이며, 신과의 일대일에 도달하는 것이며,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는 것이며, 정상에서 전모를 보는 것이다. 


    개인이 집단을 대표하는 것이며, 상대성이 아니라 절대성을 얻는 것이며, 작용반작용이 아니라 관성의 법칙을 쓰는 것이며,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대응하는 것이며, 목적을 달성하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게임에서 이겨가는 것이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의 다음 계획을 가지는 것이며, 외부의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사건 자체의 치고 나가는 관성에 올라타는 것이며, 진리의 편, 역사의 편, 진보의 편, 문명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과 만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어 기어이 사건을 격발하며 전율하는 것이다. 과녁에 정확히 맞은 것을 확인할 때보다 처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 때 진정한 기쁨이 있다. 가을의 수확보다 봄의 파종에 진정한 기쁨이 있다.


    일대사건의 원인에 설 때 진정한 눈부심이 있다. 그것이 진짜다. 수확이 끝난 후에, 사건이 종결된 후에,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 나왔을 때 보상받고 귀염받고 인정받고 허락받고 칭찬받고 무언가를 받는 것은 가짜다. 왜 받으려고 하지? 그것은 어른에게 인정받으려는 어린이의 태도다. 주는 것이 진짜다. 인류에게 불을 안겨준 프로메테우스처럼. 낳는 것이 진짜다. 사건을 낳아서 다음 세대로 연결하여 간다. 그럴 때 태산 같은 허무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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