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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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426 vote 0 2018.04.22 (21:53:13)

 

    노자와 디오게네스


    일체의 희망과 야심을 버렸을 때 최후에 남는 것은 게임의 법칙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떤 일의 결과다. 행복이든 성공이든 명성이든 출세든 쾌락이든 그것은 결과다. 무언가를 해야 행복해지고 성공하고 명성을 얻고 출세하고 쾌락을 얻는다. 철학하자. 결과로 주어지는 것은 모두 가짜다. 유전자와 호르몬의 트릭에 불과하다.


    솔직해지자.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왕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노력해서 자기 힘으로 왕이 된다면 그것은 일의 결과다. 결과로 주어지는 것은 죄다 가짜다. 왕자라면 사건의 원인에 설 수 있다. 시작할 수 있다. 인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원하는 것이며 다만 그것을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의 법칙이다. 그것을 설명할 언어가 없으므로 필자가 만들어낸 말이다. 행복이나 성공이나 명성이나 출세나 쾌락 따위가 어떤 끝난 일의 결과라면 게임은 지금 현재진행형이다. 여러분은 도박판에서 큰돈을 딴 사람이 술집에서 돈을 뿌려대며 얻는 쾌락이 아니라 좋은 패를 손에 쥔 사람의 므흣한 미소를 원하는 것이다.


    노자와 디오게네스가 내심 말하고자 한 것은 그러한 게임이다. 알렉산더가 물었다. ‘디오게네스여! 나는 뭐든지 그대의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다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아 춥잖아! 비켜줘. 당신이 지금 커다란 망토자락으로 나의 햇볕을 가리고 있다고.’ 디오게네스는 적어도 말의 게임에서 이겼다.


    게임에서 이겨봤자 허무하지 않느냐고? 아니다. 게임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등장 이래로 게임은 한 번도 끝나지 않았다. 문명의 불은 계속 번져가고 있다. 인류의 게임은 계속 판을 키워간다. 허무한 것은 일이 끝났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고 게임은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허무를 극복하는 것이다. 노자가 이에 주목했다.


    노자는 공자의 무리를 조롱했다. ‘니들이 그렇게 패거리를 이루고 몰려다니면서 일을 벌여봤자 결국 일은 끝나고 만다네.’ 아니다. 개인의 일은 끝나도 인류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노자는 이겼지만 졌고 공자는 졌지만 이겼다. 공자가 추구하던 이상정치는 공자의 당대에 조금도 달성되지 않았다. 노무현의 이상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공자는 죽었지만 그가 벌여놓은 사업은 계속 간다. 노무현은 떠났지만 그가 질러놓은 불은 계속 번져간다. 디오게네스는 돈을, 성공을, 영광을, 명성을, 체면을 모두 버렸지만 한 뼘의 햇볕 앞에서는 졌다. 그것은 햇볕의 결정이지 디오게네스의 결정이 아니었다. 노자와 디오게네스가 중요한 것을 포착했지만 옳게 설명하지 못했다.


    인간은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모래알과 같은 존재다. 떠밀려 느닷없이 떨어지지 말고 자신의 뛰어내릴 시점을 느닷있게 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구의 중력부터 파악해야 한다. 다른 모래알이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중력이 잡아당기는 것이다. 중력은 지구 중심에 있다. 사건은 중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신의 완전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찾아야 할 당신의 이데아다. 플라톤은 개별적인 사물들에서 이데아를 찾았지만 사실이지 그것은 거기에 없다. 컵에는 컵의 이데아가 있다는 식이다. 디오네게스는 그런 플라톤을 조롱했다. 그러나 진실로 말하면 비웃는 디오게네스가 더 쓸쓸하다. 플라톤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기 때문이다.


    노자의 무리는 노상 유가를 조롱하고 놀리지만 그들의 모습이 더 쓸쓸하다. 왜? 역사가 공자의 무리를 돕기 때문이다. 개인의 입심 대결로 가면 노자가 이긴다. 소크라테스를 조롱하던 아리스토파네스가 이겼다. 그러나 시스템 대결로 가면 공자가 이기고 플라톤이 이기고 소크라테스가 이긴다. 제자들이 사건을 이어받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기려 하므로 이기지 못한다. 사건을 일으키면 이긴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사건은 환경이 개입한다. 외부에서 거들어주므로 이긴다. 그렇게 이겨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게 핵심이다.


    왜? 동적환경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니 결코 멈추지 않아서 쏜 화살이 중도에서 멈추지 않듯이 우리는 달리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것이다. 게임에서 누구도 이탈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신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그것이 근원의 완전성이다. 이기고 진다면 나와 타자가 있기 때문이다.


    동적환경에서는 나와 타자의 구분이 없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나무가 크게 자라듯이 서로 보태져서 사건은 계속 자란다. 멈출 수 없으며 누구도 거기서 이탈할 수 없다. 허무할 수 없고 조롱할 수 없고 야유할 수 없다. 그것이 완전성의 의미다. 신을 만난다는 것의 의미다. 서로 연결되어 크게 묶여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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