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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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934 vote 0 2018.04.10 (11:11:17)

 

    기억상실증인지도 모른다. 문득 눈을 뜨고 보니 나는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이것 저것 눌러봤더니 부르릉 하고 시동이 걸렸다. 바닥에 뭐가 있길래 밟아봤더니 차가 움직였다. 옆에 있는 것을 밟아봤더니 차가 멈추었다. 앞에 있는 것을 돌려봤니 차가 방향을 꺾었다. 얼떨결에 운전을 배워버렸다.


    인간은 그 자동차가 왜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동차가 움직인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자동차는 움직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식이다. 인간은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주는 움직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움직이려면 통제해야 한다.


    우주는 통제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딱 걸리는 지점이 있다. 길목과 같다. 그곳에 검문소를 세우면 생쥐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다 들키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대표성이다. 물체가 움직일 때는 외부와의 접점이 끊임없이 이동하게 된다. 그럴 때는 한 부분이 계 전체를 대표하게 된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알 수 있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구조론만으로는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운전해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은 애초에 통제가능하게 만들어졌다. 자동차는 애초에 굴러가도록 만들어졌다. 통제가능하다는 것은 계를 이루고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의사결정구조를 추적하여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과학은 자동차를 분해하여 그 쇳덩이와 고무제품과 가죽제품의 출처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벽에 막혀 있다. 구조론은 지름길로 우회한다. 그리고 많은 정보를 알아낸다. 움직여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고 치자. 


    나무를 분해해보고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1이라면 나무를 키워보고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10이다. 과학자들이 나무를 분해할 때 구조론은 나무를 길러본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다. 운전해보면 안다. 구조론은 세상이라는 자동차의 운전기술이다. 의사결정구조를 들여다 본다. 


    생명은 애초에 진화하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부터 집단을 대표하도록 만들어졌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자라듯이 생명은 진화를 통해 자라난다. 인간이 마음의 사회를 향해 자란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원래 통짜덩어리로 만들어졌다. 계를 이루고 있다. 그래야만 운전할 수 있다.


    자동차는 통일적으로 만들어졌다. 별도로 존재하는 핸들과 엔진과 바퀴와 의자 따위가 우연히 한 공간에 모이게 되었는데 인간이 손을 대서 문득 차가 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핸들과 엔진과 바퀴와 의자는 세트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타자가 아니다. 핸들과 의자와 바퀴는 남남이 아닌 것이다.


    구조론의 신에 대한 관점은 이와 같다. 인간은 대표성을 가진 존재다. 원래부터 세트로 짝지어 나왔기 때문이다.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룬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류라는 통짜덩어리로 나왔다. 예수가 사랑을 가르쳐서 사랑했더니 집단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친함이 있었는데 깨닫지 못한 거다.


    대표성에 의해 원래부터 인류는 모두 연결되어 하나로 있다.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러한 친함을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말이다. 우리가 사람의 인권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나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대표자의 위치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성은 집단으로부터 위임되는 것이다. 본인이 특별히 잘 나서 대통령이 되는게 아니라 국민이 권력을 위임하여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가 시동을 걸 때는 키가 권력을 가지고, 달릴 때는 엔진이 권력을 가지고, 멈출 때는 바퀴가 권력을 가지고, 방향을 꺾을 때는 핸들이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 권력은 애초에 자동차 전체의 통제가능성으로부터 위임되는 것이다. 핸들과 바퀴와 엔진과 좌석과 브레이크가 싸웠는데 핸들이 이겨서, 혹은 엔진이 이겨서, 혹은 바퀴가 이겨서 권력을 획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동차 전체의 의사결정중심으로부터 위임된 것이다. 때로 엔진이나 바퀴는 말한다. 


    '자동차 전체라는게 어딨어? 그런거 없다구. 내가 이겨서 내 맘대로 하는 거야. 내가 서고 싶어서 서는 거라고. 나는 브레이크야. 꽤 잘났지. 내가 얄미운 바퀴를 딱 깨물어버리니까 차가 딱 서버리잖아. 이것 좀 봐! 꼼짝 못하더라구. 내가 이긴 거지. 나 잘났지?' 틀렸다. 권력은 전체로부터 위임되는 거다.


    여러 바퀴들 중에 그 바퀴가 특별히 선택된 것은 싸워서 이겼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근본 자동차 안에서는 모두 위임된다. 자동차 부품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동차가 바퀴를 떼놓고 달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바퀴나 엔진이 신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있다. 


    운전사는 원래 있다. 한 번 신을 면회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된다. 운전사를 만나려면 대표성을 얻어야 한다. 자동차 전체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차는 달린다. 그 움직이는 톱니와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는 진보한다. 생명은 자라난다. 그 진보의 성장과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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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호흡

2018.04.10 (22:32:51)

정치는 권력의 획득이 아닌 위임..정치적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시스템의 관점에서 정치를 봐야 한다.
전율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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