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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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524 vote 1 2018.03.11 (20:45:30)

 

    말하기를 배우자


    3초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3초 정도 훑어보고 이건 언어가 아니다 싶으면 읽지 않는다. 그러므로 칼럼을 쓸 때는 글의 모두에 무슨 숫자나 주소나 이름과 같은 딱딱한 것이 들어가면 안 된다. 영화도 초반 5분 안에 관객의 시선을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기본이 되어야 한다. 내용을 떠나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이다.


    구조론은 형식이 내용에 앞선다고 말한다. 형식은 카피되기 때문에 가짜가 있지만, 이는 인간세상의 속임수이고 자연의 법칙에는 언제라도 형식이 먼저 와야 하는 것이다. 구조론은 그러한 사건의 시초를 논하는 것이다. 아직 자동차가 발명되지 않았는데 내가 운전기술을 발명했다고 자랑하면 안 된다. 수순이 있는 거다.


    내용을 떠나 형식이 어수선하면 일단 발언권이 없다. 그런건 안쳐주는 거다. 반대로 존재의 형식을 연구하면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가리켜지는 달을 보지 말고 가리키는 손가락도 보지 말고 둘을 연결하는 구조를 보아야 한다.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는 것은 언어다. 노자는 말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 


    도를 도에 담을 수 없고 언어에 언어를 담을 수 없으니 도를 담는 도가 진정한 도요 언어를 담는 언어가 진정한 언어라 도 안에 무언가를 담으려 하고 언어 안에 무언가를 채우려는 자는 모두 적이라 그런 허접데기들은 쓸어버려야 한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이 들어가지 않으니 그릇에 사과를 담지 말고 그릇을 담을 일이다.


    언어가 곧 도라 도가 곧 언어라 진정한 언어를 알면 깨달음에 이르렀다 할 것이니 먼저 자신의 언어를 제출한 다음에 마이크 잡을 일이다. 노자든 공자든 석가든 플라톤이든 각자 제출한 논리구조가 있다. 탈레스가 세상은 물이라 하니 물속을 들여다보는 자는 쳐죽일 일이다. 천하를 통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음을 보였다.


    노자가 이미 명가명 비상명이라 했는데 물을 물이라고 하니 환장할 일이 아닌가? 물이 어찌 물인가? 장난하나? 탈레스는 천하 대 인간의 일대일 대결구도를 제안한 것이다. 그 관점과 논리구조를 제출한 거다. 플라톤의 이상주의도 마찬가지다. 나는 한 넘만 팬다면 그 넘은 대가리다. 공자의 중용이든 석가의 중도든 같다.


    이상주의를 각자 다르게 표현해 보였다. 자기 생각을 제출하면 곤란하고 그 생각을 담는 그릇을 제출해야 한다.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이걸 알아두었다가 써먹을 데가 있느니라. 이렇게 가야 맞다. 망원경으로 봤더니 이것이 보였다고 말하지 말고 그 망원경을 제출하라.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목성을 봤다.


    그래서 어쩌라고? 목성은 이미 갈릴레이가 해먹은 것이다. 먼저 침 발라 놓고 자랑하기냐? 망원경을 제출해야 그 망원경으로 토성도 보고 천왕성도 보고 해왕성도 볼 것이 아닌가? 남들에게도 해먹을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다. 먹어버린 음식이 맛있다고 자랑하지 말고 레시피를 제출해야 남들도 해먹을 것이 있는 것이다.


    환빠들은 황당한게 고조선이 제국이라고 주장하면서 제국이 뭔지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제국이 뭔데? 주로 철을 장악한 집단이 종주국이 되고 위성국은 소금이나 모피나 기타 특산물을 가져오는 걸로 대규모 동맹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조선을 제국이라 주장하려면 먼저 고조선이 어디에 철광을 열었는지 말해야 한다.


    중국은 은나라가 태행산맥의 구리광산을 장악하고 제사에 쓰이는 솥을 만들어 제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 주고받기 구조가 있다. 고조선이 제국이면 제후국들 이름부터 말해야 한다. 그런 배경설명 없이 그냥 제국이라는 단어를 투척하면 곤란하다. 언어는 연결이다. 연결에 순서가 있다. 두서가 있고 조리가 있다.


    맥락이 있는 것이다. 그냥 마구잡이 선언하면 안 된다. 갑자기 필자에게 누구처럼 프랙탈을 툭 던지고 또 누구처럼 클라인의 병 툭 던지고 이러면 안 된다. 뜬금없는 자와 대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례하고 성의없고 못돼먹은 행동이다. 배우지 못한 자의 행태라 하겠다. 일단 국어가 되어야 한다. 연애편지라도 써보자.


    첫 머리에 뭐라고 쓸 것인가? 소설을 써도 도입부 첫 페이지를 쓰면 반은 쓴 거다. 글은 써봐야 는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그 따위로 쓰는지 궁금하다. 남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봐가면서 글을 연습하자. 유딩들은 그런거 없다. 갑자기 확 쳐들어온다. '엄마 나 이거 알아.' 선언이다. 누가 물어봤냐고? 엄마니까 괜찮다. 


    구조론연구소에서 다섯 살 꼬마가 엄마한테 말하듯이 말하면 안 된다. 말부터 배우자. 인지의신예다. 먼저 의리를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로 나를 믿으라고 하면 믿는 사람이 있겠는가? 도원결의가 있어야 한다. 토대의 공유다. 둘이 한 배를 탄 거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말로 전쟁을 했지만 누가 쇼에 넘어가겠는가?


    의리가 있어야 한다. 문재인이 그 의리를 조직했다. 그러자 말에 무게가 실렸다. 언어가 묵직해졌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악담배틀은 보증인이 없으니 책임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긴밀한 관계로 엮여 있는 제 3자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 언어는 어떻든 상관이 없는 거다. 필자에게 쓸데없는 메일 보내오는 분도 마찬가지다.


    나를 말로 어째보시겠다? 사람의 행동거지는 오프모임에서 3분만 지켜보면 견적 나온다. 뒤에서 눈치보고 우물쭈물하고 있는지 아니면 앞에서 솔선수범하여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지다. 얼굴표정만 봐도 본질을 들킨다. 말로 나를 설득하여 나를 움직일 사람은 지구 안에 없다. 나는 상대의 눈빛을 본다. 눈이 살아야 한다.


    모건 프리먼의 눈빛에 힘이 있으면 가석방은 절대로 없다. 눈에 힘이 없어졌을 때 가석방은 허락된다. 이런 절대성 원리를 문재인과 트럼프와 김정은이 알더라. 언어는 상대적이나 에너지는 절대적이다. 대부분 정치인은 상대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들은 선악의 논리나 혹은 옳고 그름의 논리와 같은 상대어를 쓴다.


    내가 선하다거나 혹은 내가 옳다거나 그런 말을 필자에게 해봤자 소용없다. 전제를 찾아야 한다. 너와 내가 같은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점을 드러내야 한다. 의리로 엮여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려면 필자가 상대방에게 뭔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나도 남는 것이 있어야 하니깐. 이유없는 퍼주기는 당연히 없는 거다.


    필자의 글쓰기는 필자가 배우는 방법이다. 글쓰기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는 의도가 들어가면 추해진다. 내가 전에 쓴 글과 다음에 쓸 글들 사이에 이 글이 있는 것이다. 언어는 연결이며 연결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언어의 첫 단추는 모름지기 천하와의 대결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논어의 첫 마디든 도덕경의 첫 줄이든 그런 힘이 있다. 도는 연결이니 너와 나의 연결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언어로 가능하나 언어로 불가능하니 그 언어의 언어로만 가능하다는 말이 도덕경의 첫 머리다. 배우고 때로 익히며 언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데서 유붕이 자원방래하는 기쁨이 있으니 학이할 수 있다.


    그런 강력한 언어를 생각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이 구멍난 그릇에 무언가 담으려 할 때 노자가 말렸다. 먼저 그릇바닥을 살펴라. 공자가 구멍을 메웠다. 그러자 유붕이 자원방래하여 천하는 다스려졌다. 비로소 시작과 끝이 일치하여 에너지가 순환하니 구조가 널리 복제되었다. 뾰족한 정상의 풍경이니 이상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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