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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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849 vote 0 2018.02.14 (19:30:48)


    철학의 목적은 이데아의 발견에 있다. 모든 사유와 행동에 있어서의 최종근거다. 회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짓 이데아를 버리고 진짜 이데아를 찾아야 한다. 무신론자의 관점으로 시작하기다. 진정한 무신론자라면 핵버튼을 눌러 지구 70억 인류를 죽이는데 아무런 죄책감이 없어야 한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정의도 없고 불의도 없다. 생존? 그것은 결과론이다.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다.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다. 행복도 없고 비참도 없다. 행복이니 쾌락이니 하는 것들은 유전자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가해진 설정에 불과한 거다.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거다. 


    내일 죽는다 해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 철학자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철저하게 자신을 지우고 의식을 비운다. 의식의 표백. 순수한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신 게임이 있다. 당신이 어떻게 하든 상대가 거기 맞대응 한다. 그것이 구조론의 게임이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태산같은 허무에 질식당하는 것은 정해진 것이며 피해갈 수 없다. 다만 유일하게 걸리는 것은 상대방의 대응이다. 이건 확실히 이유가 된다. 그 게임에 이겨야 한다. 그것이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패배해도 상관없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게임의 승리는 사건의 주도권을 말한다.


    무엇인가? 여기서 게임의 의미는 앞의 행동이 다음 행동을 구속하는 것이다.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도덕도 없고 윤리도 없고 정의도 없고 불의도 없을 때, 아무것도 없을 때 유일하게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는 것은 일의 일관성과 연속성이다. 게임에 이긴다는 것은 주도권을 잡고 다음 단계로 연결시킨다는 거다. 


    당신은 달리는 차에 올라타 있다. 그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문득 깨닫는다. 처음 당신은 그 차의 행선지에 관심이 있었다. 이 차는 서울 가는 차인가 부산 가는 차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행선지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그 차가 시속 100킬로의 속도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게임에 이긴다는 것은 당신이 그 차의 속도를 조금 더 가속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합리성이다. 우리는 목적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목적이 없다. 인생의 목적은 원래 없는 것이다. 출세니 명성이니 돈이니 하는 것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부질없다. 차의 행선지는 상관없다.


    목적은 고스톱에서 쓰리고에 피박을 씌워 몇 백점을 났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격이니 아무 의미 없다. 희망을 버리고 꿈을 버리고 모두 버렸을 때 최후에 남는 것은?사건의 연속성뿐이다. 그 연속성이 그 차의 속도다. 차는 100킬로다. 당신은 내리지 못한다. 상대방이 어떻든 맞대응을 하므로 헤어나지를 못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도덕도 없고 윤리도 없고 선도 없고 정의도 없고 불의도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을 것은 게임에 이기는 것이며 방법은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이며 이를 위해 승은 기를 따르고 전은 승을 따르고 결은 전을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사건의 불이 꺼지면 게임이 곧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도박판에서 판돈을 잃으면 게임에서 빠져야 한다. 그 불을 꺼트릴 수 없다. 기승전결로 가는 사건이라는 이름의 달리는 차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은 사건의 기에 서서 승과 전과 결로 이어가는 것이며 곧 사건의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것이며 그러려면 기에 서야 하며 그러려면 에너지를 얻어 가속해야 한다.


    가속하려면 곧 사건의 주도권을 쥐려면 곧 상대방의 맞대응에 이기려면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야 하며 그 방법은 합리성을 달성하여 에너지의 효율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당신이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옳고 그름도 없고 선악도 없고 정의와 불의도 없고 승패도 없지만 에너지의 우위를 잃을 수는 없다. 


    맞대응하는 상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취하려면 그 연속성을 성립시키는 사건의 출발점에 서야 한다. 그 사건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신이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주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게 맞대응을 하므로 에너지의 우위에 서려면 상대와 내가 공유하는 토대를 얻어야 한다.


    서로가 공유하는 토대를 계속 추구해 들어가면 최초의 사건에 이른다. 의사결정의 중심에 이른다. 그것은 신이다. 사건은 원래 있었다. 문명의 불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타오르고 있었다. 당신의 탄생과 상관없이 게임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거다. 당신이 탑승하기 전에 차의 속도는 충분히 올라가 있었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임금과 사자와의 관계다. 인간은 임무를 받아 태어나지만 자신이 무슨 임무를 받았는지 모른다. 집배원은 편지를 배달해야 한다. 자신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지 나쁜 소식을 전하는지 모른다. 적국에 파견된 사자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최후에 결정하는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음 그 자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상대가 맞대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은 나에게 있다. 인간은 도덕을 윤리를 선을 악을 정의를 불의를 행복을 쾌락을 성공을 돈을 명성을 모두 버릴 수 있지만 그것은 나의 도덕, 나의 윤리, 나의 선, 나의 악, 나의 불의, 나의 행복, 나의 성공, 나의 돈, 나의 명성이다. 


    그 '나의'를 뗄 수 없다. 극복해야 한다. 나를 버렸을 때 타가 남는다. 인간은 오직 자기 한 사람을 말소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엮여있음이 구조다. 인간의 행위를 최종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만유의 엮여있음 그 자체다. 관성의 법칙과 같다.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있음이다. 철학자는 모든 거짓을 버려야 한다. 


    최후에 나를 버리게 된다. 그럴 때 엮여있음이 드러난다. 공유하는 토대가 드러난다. 에너지가 드러난다. 이데아가 드러난다. 한 덩어리로 엮여서 에너지 흐름에 휩쓸려 있음이 드러난다. 상대의 맞대응이 드러난다. 모래시계의 모래알은 한 알씩 떨어지지만 그 한 알의 운명은 모래시계 전체의 질량이 결정한다.


    그 엮여있음에 등떠밀려 인간은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떨어지는 모래알처럼 하루씩 하루씩 인생을 떨구고 있다. 그래서 신이다. 최후의 이데아는 신이다. 그것은 상대의 쉬지 않는 맞대응이며 서로간에 토대의 공유이며 그러므로 모두 연결되어 있음이며 거센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있음이다.


    시속 100킬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 승객으로 타고 있음이며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음이며 사건의 다음단계가 기다리고 있음이며 누구도 결코 거기서 빠져나갈 수 없음이다. 철학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를 버리면 엮임이 드러난다. 에너지가 드러난다. 그 에너지의 중심이 드러난다. 신이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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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김미욱

2018.02.14 (22:12:42)

인류를 대표하는 마음에서 나온 신이라는 관념이 아닌 바에야 그 어떤 목적성을 띤 이데아는 그 자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합니다.

나른한 꿈같은 이상세계는 없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현실의 이상 세계는 있다라는 구조론교과서의 글을 인용해봅니다. 게임 체인지, 유일한 신의 유희
[레벨:4]김미욱

2018.02.14 (22:17:02)

.
프로필 이미지 [레벨:7]아제

2018.02.15 (09:49:35)

새해 덕담으로 최고요~

올해엔 복 받으소..

수고했소.. 

[레벨:7]Quantum

2018.02.15 (12:35:50)

그 방법은 합리성을 달성하여 에너지의 효율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당신이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옳고 그름도 없고 선악도 없고 정의와 불의도 없고 승패도 없지만 에너지의 우위를 잃을 수는 없다.


맞대응하는 상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취하려면 그 연속성을 성립시키는 사건의 출발점에 서야 한다. 그 사건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신이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주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게 맞대응을 하므로 에너지의 우위에 서려면 상대와 내가 공유하는 토대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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