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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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494 vote 0 2018.02.11 (21:11:23)

     

    http://v.media.daum.net/v/20180209145937249


    서양철학사 2천 년은 플라톤의 저작에 각주를 단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정확히는 플라톤의 이상주의가 서구를 먹여살린 것이다. 그 이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각별하다. 이상주의를 사유했다는 사실이 의미있다. 모든 사유의 궁극적인 출발점이 되는 무언가다. 구조론은 그것을 완전성이라고 말한다.


    신이라고도 말한다. 신의 의미는 그 완전성이 수학기호와 같은 추상개념이 아니라 살아서 호흡하는 사건의 중심, 의사결정의 중심이라는데 있다. 기독교 신학은 플라톤의 이상주의를 적당히 베낀 것이다. 서구인들은 항상 이상적인 그 무엇을 찾아다녔다. 이상적인 비례는 황금비례다. 이상적인 수는 완전수, 이상적인 미인은 아프로디테 여신이다. 


    이상적인 사회라 주장되는 유토피아도 있다. 그 배경에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하나의 아이디어지만 태양처럼 높이 빛나면서 만물을 두루 비춘다. 이상주의는 끝까지 간다. 동양의 중용이나 중도는 왠지 중간까지 가다가 멈추는 느낌이다. 당시 현실에는 쓸모가 없었던 수학 따위를 연구하며 그들은 끝까지 간 거다.


    아마추어리즘도 거기서 나온 개념이다. 공리공론에 불과한 수학을 왜 하는가? 잘난체 하려는 것인가? 하는 힐난에 대한 변명이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모인 그들은 대개 귀족의 자제들이었고 그래서 여유가 있었고 그래서 아마추어리즘을 밀어붙여 끝까지 갔다. 가다 보니 뒤늦게 뒤패가 붙어 산업화에 성공했다. 이천오백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필자가 뜬금없이 공자를 강조하는게 아니다. 사실이지 공자는 한국인이 아닌 지구인들에게 필요하다. 서세동점은 옛말이고 동세서점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 서구가 아시아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배워야 한다면 우리가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그 답은 공자의 실천적 이상주의라는 말이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상상만 한 것이다. 


    공자는 실천했다는 점이 각별하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공자의 이상주의를 배워갔다. 그리하여 서구는 강해졌다. 서구는 플라톤과 공자로 강해졌는데 아시아는 플라톤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공자마저 버렸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지능지수는 같다. 실패한 북한과 성공한 한국의 차이는 의사결정구조 차이다. 서구도 한때는 기독교 때문에 망했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의사결정구조였다. 이를 해체한 것은 페스트다. 페스트로부터 몸을 지키려면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면 안 된다.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떠올려도 좋다. 그들은 산골로 피신하여 살아남았다. 산골에 숨어있다 보니 교회를 갈 수 없다. 유폐된 생활을 하느라 기독교 도덕을 어기고 점차 타락해갔다. 


    데카메론에 음탕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들은 적절히 기독교를 배반해서 흥한 것이다. 어떤 사유를 하는지에 따라 집단의 운명이 결정된다. 한국이 성공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유교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유교의 많은 단점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교의 단점으로 아는 것은 대부분 유교와 상관이 없는 봉건습속이다.


    우리는 상투를 잘랐고 이제는 제사도 버려야 한다. 중국과 북한은 유교를 너무 버려서 망가졌다. 일본과 베트남은 유교를 조금 배우다 말았으니 조금 흥하다가 말았다. 유교의 본질은 게르만의 종사제도와 같은 계급제도에 있다. 유교경전은 그냥 봉건시대의 아둔한 소리다. 본질은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다. 그것은 유목민 특유의 의사결정구조다. 


    한족 농경민의 의사결정구조는 노자의 사상이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약자의 방법이다. 처세술이다. 왜? 자체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 외부에너지를 역이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긍정보다 부정에 주목하게 된다. YES를 쓸 수 없고 NO로 의사소통해야 한다. 상대방의 제안을 반대한다.


    그 경우 일의 하부구조에 매몰된다. 공격은 못하고 방어만 한다. 상대방의 선택을 기다리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찾아올때까지 거절만 한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그래서 망했다. 약자의 철학을 배우므로 약해지는 것이다. 패배자의 철학을 배우므로 패배하는 것이다. 노자의 철학에 기초한 손자병법이 그렇다. 방어할 수는 있으나 정복할 수는 없다.


    반면 유목민은 자체에너지가 있다. 수시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농경민은 그냥 하던 것을 하면 되지만 유목민은 매년 봄에 목초지를 새로 분배해야 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당연히 충돌을 일으키고 전쟁을 해서 너죽고나죽고가 되거나 아니면 크게 단결하여 거대한 제국을 만든다. 흉노선우 묵특이래 늘 그래왔다. 


    중국의 이이제이 전술에 놀아나 서로 간에 죽고 죽이기를 거듭하거나 아니면 징기스칸의 제국을 만들거나다. 양극단을 오가는 패턴을 2천 년간 반복해 왔다. 주나라가 있는 태행산맥 서쪽은 원래 오랑캐의 땅이다. 중국지도를 펼쳐보자. 우리는 중국이라 하면 당연히 농경을 떠올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중국 한가운데 산시성부터 그 서쪽은 건조하다.


    구글 어스로 보면 파란부분과 누런 부분으로 색깔이 다르다. 비가 내리지 않으니 요나라와 금나라에 몽골까지 유목민의 땅이었다. 중국을 한족 농경민의 나라로 보는 것은 현대인의 착각이다. 한족 출신인 공자는 의사결정에 능한 유목민 문화에 감명받아 주나라를 숭상하며 유교를 주장한 거다. 원래 유목민들에게는 특별한 의사결정구조가 있다.


    게르만의 종사제도다. 신라의 골품제도다. 몽골에도 유사한 것이 있다. 유목민은 항상 역할분담을 해왔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이동하므로 필요한 물자를 자체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자를 얻으려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역할을 나누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여 무작정 차별하지는 않는 특이한 제도를 만든 것이다. 이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관계다. 


    고대 로마에도 특이한 제도가 있는데 세력이 있는 귀족이 젊은 야심가를 양자로 들이는 전통이다. 카이사르가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들인 것과 같다. 대부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흥하는 이유는 이 고대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이라는데 현대 이탈리아의 모든 부정부패가 이 제도 때문이라고도. 장점이 큰 만큼 단점도 있는 것이다.


    친자식을 제쳐놓고 유능한 청년을 양자로 들여 패트런과 클라이언트 관계를 맺는다. 이 제도로 로마는 막강해졌다. 그러나 이들이 가족도 아니면서 가문을 만들다 보니 의사결정구조가 부족 범위를 넘어나지 못해서 로마가 망한 것이다. 흥한 원인이나 망한 원인이나 같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어쨌든 2천 년 전 그 시대에는 그게 맞는 제도였던 거다. 


    이후 대제국이 들어서고 기독교가 흥해서 유럽 전체가 하나의 의사결정단위가 되자 오히려 그러한 부족주의가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일본인 특유의 끈끈한 단결력이 근대국가 일본을 좌초하게 한 원인이 된다. 일본인의 특징은 고향을 잘 떠나지 않는 거다. 말은 제주도로 가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하는데 일본인은 고향에 붙어있다.

    

    마을 공동체와의 끈끈한 관계 때문이다. 거기서 밀려나면 이지메를 당하여 히키코모리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끈끈한 정도 좋지 않다. 의사결정을 집단에 위임하면 망한다. 서구와 아랍은 의사결정을 교회에 의존하다가 망하고 일본은 부족에 의존하다가 망하고 한국은 가족에 의존하다가 망하고 이탈리아는 패트런에 의존하다 망한다.


    인도는 불교의 본산이지만 불교국가는 아니다. 중국은 유교의 본산이지만 유교국가는 아니고 도교국가다. 특히 한족 농경민이 그렇다. 그러나 중국사의 절반은 몽골과 청나라, 수나라, 당나라, 요나라, 금나라 등 유목민이 지배한 역사다. 불교는 유목민인 스키타이 곧 석가족이 만든 사상이다. 스키타이라는 명칭은 석가족의 그리스식 표기라고 한다.


   TilliaTepeCrown2.jpg

   스키타이 금관은 신라금관과 디자인이 같다.


    중국사에는 석륵이라든가 안록산(실명은 알렉산더라고)의 난을 일으킨 가 유명한 스키타이족이니 곧 소그드인이다. 신라의 석씨왕들도 소그드 출신으로 볼 수 있다. 스키타이 금관 디자인이 신라금관 디자인과 같기 때문이다. 농경민이 먼저 등장했고 유목민은 나중에 등장했다. 유목민의 이동은 기원전 16세기경 수레의 발명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유목민은 더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더 늦게 등장하여 철기문명을 전파시켰다. 무슨 말이냐 하면 중국 하고도 서쪽 주나라에 전해진 서구 유목민의 계급제도를 중국식으로 변화시킨 것이 유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체질적으로 유교는 북방 유목민과 맞고 한족 농경민과 맞지 않다. 그리고 중국사의 절반은 유목민의 역사다. 한국도 유목민과 더 가깝다.


    공자는 경, 대부, 사, 민으로 나누어진 계급제도를 한족에 정착시키려 했는데 유목민은 원래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사제, 기사, 평민, 농노로 이루어진 중세 유럽의 계급제도다. 이것이 그리스나 이집트에는 없다. 게르만족이 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그리스인이나 로마인, 아랍인들보다 의사결정을 더 잘했기 때문에 흥한 거다.


    한반도인은 원래 수렵민이었는데 돌궐과 접촉하여 철기기술을 넘겨받아 유목민 기술로 국가를 만들었다. 한족기술을 받아들인 증거는 없다. 이는 필자가 과거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낙랑유물전시회에서 보고 깨달은 바다. 한족무기를 대표하는 것이 낙랑의 청동제 쇠뇌인데 무지하게 많다. 신라 고분에는 요즘 석궁이라 불리는 청동제 쇠뇌가 잘 없다.


    한국인이 더 유교의 어떤 본질과 체질적으로 맞는데 한국의 유교는 중국한족 유교가 아니라 유목민식으로 바뀐 유교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이 맞다는 증거가 있느냐? 유태인을 보면 알수 있다. 인간의 사상과 종교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유태인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태인이다. 돌궐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투르크다.


    핵심은 의사결정구조다. 인종 간의 우열은 없지만 의사결정구조의 우열은 분명히 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의사결정구조다. 더 동원력이 높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국민의 잠재역량을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느냐다. 동원의 그물망을 촘촘하게 짜놓은 나라가 이긴다. 조선시대도 단순 행정 동원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 훌륭한 동원력이 교육동원으로 나타나자 한국인의 잠재력이 폭발한 것이다. 한국이 교육 덕분에 발전한 것은 맞는데 일본은 교육을 안 하고 베트남은 교육을 안 하고 북한은 안 하는가? 교육은 다 한다. 북한은 유교교육을 버렸다. 유교식 의사결정구조를 버린 것이다. 유교란 간단히 ‘말 좀 들어라 인간들아.’ 이거다. 한국인이 가장 말을 잘 듣는다.


    물론 단점도 있다. 그러나 일단 동원이 되어야 뭐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인은 패트런 제도로 동원했다. 그리스인은 민주주의로 동원했다. 게르만은 종사제도로 동원했다. 돈 키호테가 산초를 꼬시는데 산초가 말을 듣는게 신기하다. '야 가자!' 하고 부르면 와야 하는데 지독하게 안 온다. 어느 나라든 인간들이 원래 말 절대로 안 듣는다. 


    왜? 부족은 있는데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부족이 있기 때문에 축제를 잘한다. 일본도 마쓰리는 잘한다. 그런데 가족이 깨져 있다. 부부가 각방 쓴다. 그러니 자녀가 원조교제를 한다. 부모 말을 안 듣는다. 대학진학도 안 한다. 성인식을 마치면 부모에게 월세를 지불한다. 가족이 깨진 것이 일본의 발전이 정체한 원인이다. 부자유친을 안 배운 거다. 


    일본도 19세기에 퇴계유교로 떴지만 21세기에 부족주의는 한계가 있다. 유태인의 의사결정구조에 지독한 데가 있다. 그러니 그들은 2천 년 전의 관습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깔때기처럼 에너지를 쥐어짜는 의사결정구조다. 유태인의 가족관계가 긴밀하다는 말이다. 인종의 우월성이 아니라 의사결정구조의 독특한 점이다.


    어떻게 에너지를 쥐어짜는가? 공자의 인지의신예다. 인류의 사상가는 둘뿐이니 플라톤과 공자다. 플라톤과 공자에게 이상주의가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은 차별주의로 흐른다. 이상은 하늘에 있고 인간은 땅에 있으니 서로 만나지 못한다. 둘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사람은 니체와 공자다. 


    니체가 질문했고 공자가 답했으니 거꾸로 되었다. 2천5백 년 전에 답이 나왔다. 우습게도 질문은 2천5백 년 후에 나왔다. 플라톤이 뭐라고 말했는지 혹은 공자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논어를 읽을 필요는 없다. 이데아는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다. 보석의 원석과 같다. 그것을 가공하여 차례차례 조각하는 것은 공자의 인지의신예다. 


    인지의신예는 권력이 진행하여 가는 루트다. 천상의 이데아가 공자의 인지의신예를 거치면 지상에서 권력이 된다. 권력은 칼과 같다. 공자는 그 칼을 익혀서 날랜 무사가 되었고 노자는 그 위험한 칼로부터 도망쳐 숨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은 권력의지다. 구조론은 다섯가지 권력 곧 광장권력,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 도덕권력을 말한다. 


    이들이 사건 안에서 순서대로 전개한다. 그 흐름을 따르면 흥하고 어기면 망한다. 왜 특별히 한국이 흥하는가? 한국인의 권력집착증 때문이다. 즐거운 축제와 오만한 권력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일본인은 축제를 선택한다. 마쓰리는 즐겁다. 한국인은 곧 죽어도 권력을 선택한다. 그게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흥한다. 왜? 21세기다. 


    인터넷 신대륙의 등장이다. 신대륙으로 이주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교회를 세운다. 권력의 집을 건축한다. 먹는게 중요한가 권력이 중요한가? 권력이 중요하다. 굶으면 한 사람이 죽지만 권력이 없으면 의사결정을 못하므로 남의 땅 신대륙에서 다 죽는다. 처음에는 광장권력이 출현한다. 많은 사람이 모일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부터 짓는 것이다. 교회공간이 꽤 넓기 때문이다. 그 교회의 공간에 남녀구분이 없고 노소구분이 없고 피부색 구분이 없어야 하는 것이 공자의 인이다. 이것부터 배워야 한다. 한국은 배웠고 일본은 배우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돼.' 하면서 본보기 삼아 누군가를 배척한다. 불인이다. 그들은 공자를 배우지 못했다. 


    다음 정치권력이 등장하니 지도자를 세우고, 또 경제권력이 등장하니 실무자에게 권한을 넘기고, 또 문화권력이 등장하니 무리 지어 나아가고, 마지막에 도덕권력이 등장하여 오버하는 자를 처분한다. 인, 지, 의, 신, 예다. 권력을 찾은 자는 흥하고 쾌락을 찾은 자는 망한다. 운명이다. 정치권력만 추종하면 망하고 다섯 권력이 균형을 이루면 흥한다.


    우리가 의사결정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노상 이 길을 선택하라거니 이 길 만이 살길이라거니 하고 외치지만 틀렸다. 운전을 잘해야 한다. 노무현의 인은 비엘리트들을 결집시켜 엘리트를 바라보게 하는 방법으로 깔때기를 만들어서 에너지를 유도하니 우리가 바른길을 찾았고 문재인은 유능한 운전기사라 할 것이니 지智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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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미욱

2018.02.11 (22:24:16)

5연 6행 의사결정굳조→ 구조

마지막연 마지막줄- 지니 ??? 간다 혹은 질주한다---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솔숲길

2018.02.11 (22:29:15)

마지막 줄 => 운전기사이니 지(知)다.

노무현은 인仁

문재인은 지知 

[레벨:3]김미욱

2018.02.11 (22:59:18)

'바른 길을 찾았고' 와 댓구를 이루어야 글이 자연스럽습니다.
6연의 마지막 행, 흥한 것이다 → 망한 것이다 가 아닌가요? 최악의 의사결정구조인 기독교를 망하게 했다가 다시 해체되는 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페스트를 예로 들었으니...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2.11 (23:12:54)

아닙니다.

[레벨:3]김미욱

2018.02.11 (23:23:21)

자세히 보니 제가 틀렸네요. 노무현의 인은~ 으로 시작했으니 리듬이 맞네요. 죄송~.
그리고 기독교의 모든 도덕을 어기고 타락했어도 그 사실이 의사결정구조를 해친 건 아니니 문맥상 틀리진 않네요. 주의력 부족으로 일어난 불찰, 부끄럽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2.12 (00:16:31)

긴 글을 짧은 시간에 급하게 쓰다 보니 어색한 부분이 많습니다만 귀찮아서 다듬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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