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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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503 vote 0 2018.01.25 (18:27:01)

    

    말할 줄 아는게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말할 줄 모른다. 언어는 사건을 반영하지만 인간은 사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국가가 뭐든 그 이전에 뭐가 뭔데? 무엇은 존재다. 존재란 무엇인가? 이 대답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 이전에 언어란 무엇인지가 선결되어야 한다. 뭐가 뭐냐다. 언어는 복제다. 복제를 모르면 그 어떤 대화도 허무하다.


    인간은 엄마의 행동을 모방하여 복제하려고 하지만 개는 인간의 행동을 복제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언어를 깨치지 못하는 것이다. 복제는 사건의 복제다. 세상이 곧 사건이고 사건이 의사결정의 연결이고 그것을 추동하는 것이 에너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설명도 의미가 없다. 완전한 언어의 획득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어떤 주어진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깨닫든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그 사실을 운용하는 주체인 언어가 완전해져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자동차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그 자동차가 좋은 차여야 한다. 지도를 펼쳐놓고 열심히 길을 찾으면 그것이 깨달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식 베이비토크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언어는 둘 사이에서 주고받는 거다. 틀렸다.


    언어는 스스로 복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무언가를 알았다며 무언가를 제시하면 안 된다. 일의 다음 단계를 제시해야 대화가 되는 것이다. 내가 산은 높다고 운을 떼면 ‘아냐. 그 산은 낮아.’ 하고 상대방에게 토스하는 사람이 99퍼센트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낮잖아.’ 이렇게 말하면 ‘아냐 높은데. 여론조사가 잘못되었어.’ 이렇게 받아친다면 대화가 안 되는 거다.


    ‘산이 높다’고 말하면 ‘물이 깊다’로 복제해야 한다. 댓구를 치는 방법이 그렇다. ‘아냐. 그 산은 낮아.’ 이렇게 말하는건 말대꾸다. 말대꾸 한다면 대화가 안 되는 거다. 술어를 반대로 트는게 보통이다. ‘높다’고 하면 ‘아냐. 낮아.’ 하고 반대말을 들이대는 것이다. 왜 술어를 건드리냐고? 쪽팔리는 줄 알아야 한다. 주어를 건드려도 좋지 않다. 전제를 쳐야 한다. 숨은 전제 찾기다. 


    하수는 술어를 치고 중수는 주어를 치고 고수는 전제를 친다. 어떤 존재이든 자궁이 있다. 그 자궁을 건드려야 한다. 언어는 단어의 집합이 아니다. 사건의 복제다. 공자가 인을 말하면 ‘아, 인이구나. 인이야.’ 이런다. 멍청한 소리다. 증자는 효라고 하고 자사는 성이라고 한다. 공자가 인을 말했으니 나도 하나 주워 섬겨야지. 답은 성이라고. 성. 치성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라고.


    각자 단어 하나씩 들고 나온다. 퇴계는 경을 들고 나왔다. 소수서원 바위에 써놨다. 퇴계가 찐따인 증거가 거기에 있다. 그런 쪽팔리는 짓을 하면 안 된다. 초딩이냐? 그런 유치짬뽕이나 흉내내고 앉았으니 점점 코미디가 되어가는 것이다. 인을 말하면 지로 받고 의로 연결하고 신으로 전개하고 예로 마무리해야 기승전결이 갖추어져 하나의 사건이 된다.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예수가 사랑하라고 하니 아 사랑해야 하는구나 하면 초딩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말이고 이는 대집단을 조직한다는 말이며 결국 인류의 팀에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족민 근성을 버리고 근대인으로 거듭나라는 말이다. 사랑은 동사다. 동사로 알아들으면 초딩, 명사로 알아들으면 중딩, 예수가 미처 말하지 않은 전제를 찾아내면 말귀가 트인 사람이다.


    예수가 말하기 전에 사건이 있었고 예수는 그 사건을 복제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지혜도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아는게 없다고 하니 아 나도 아는게 없는데 나랑 똑같네. 이러면 곤란하다. 사람들은 안다는 말을 동사로 쓰고 있다. 명사는 앞에 온다. 나는 그것을 안다는 식이다. 이런 식의 태도가 제대로 된 앎이 아니라는 사실을 소크라테스는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그것을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앎의 자궁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건의 복제요 그 복제과정에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거기까지 진도를 빼지 못하고 죽었다. 사건은 크고 그 사건의 이름은 인류문명의 진보이며 우리의 앎은 그 커다란 문명의 진보 안에서 기능하는 작은 부스러기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라 하겠다.


    인류문명의 진보라는 일대사건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면 알아도 아는게 아니다. 석가는 해탈운운 별소리를 다 늘어놓았지만 쓸데없는 소리다. 번뇌에서 벗어나든 말든 그건 석가 개인 사정이고 윤회를 거듭하든 말든 그건 각자 알아서 할 일이고 깨달음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며 어떤 이득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다. 깨달음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영토다.


    토끼는 태어날 때부터 지구의 산천초목이 영토로 주어진 것이며 하루에 풀을 몇 킬로를 먹든 상관없다. 그것은 주어진 자원이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은 원래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것을 찾아먹는지는 각자 능력에 달린 것이다. 인간이 지구에 초대될 때부터 지구에는 많은 황금이 주어져 있었다. 그것을 캐는 것은 각자 판단할 요량이다. 황금을 보고 외면하는 사람 많다.


    깨달음을 보고도 못본 체하는 자들 많다. 그러나 한 사람이 황금을 캐기 시작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황금을 캐게 된다. 그러나 한 사람이 깨달음을 쓰게 되면 결국 모든 사람이 그것을 쓰게 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은 쉽게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먼저 바꾸고 바꾸는 사람이 다수가 되면 모두가 가담하게 된다. 내 안에 제대로 된 언어를 갖추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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