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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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362 vote 0 2017.11.16 (16:45:52)

     

    권력을 조직하라


    필자의 언어습관이 상당히 전투적이라는 지적을 들은 적이 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생소한 군대용어 같은 말을 필자가 많이 쓴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전략, 전술 나오고 회피기동 나오면 여기가 무슨 전쟁터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구조라는 단어는 건축학적이다. 모르는 사람은 여기가 무슨 한강교량 건설하고 집 짓는 곳인가 하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지어도 건물이 아니라 사건을 짓는다. 전쟁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바둑용어도 많이 쓴다. 바둑 역시 전투로 시작해서 전투로 끝나는 사건이다. 


    무엇인가? 사건은 어떤 둘의 충돌에 의해 일어난다. 충돌하므로 전투다. 사건에는 반드시 작용측과 수용측이 있다. 때리는 쪽과 맞는 쪽이 있다. 에너지를 주는 마이너스 측과 받는 플러스측이 있다. 구조론은 권력의 철학이다. 언제라도 때리는 갑의 입장을 견지한다.


    사건의 작용측에서 본다. 그러나 우리는 능동보다 수동, 자동보다 피동, 작용보다 반작용, 갑보다는 을, 강자보다는 약자, 주는 쪽보다는 받는 쪽에 주목하도록 교육받아 왔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배우는 사람이고 배우는 사람은 대부분 약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현실에서 대개 약자이고, 을이며 또 노예이고, 패배자이며 에너지가 없는 사람일 터이다. 그렇다면 강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골프장 아니면 룸살롱에 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약자가 되기 위해서 혹은 패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현실사회에서 여러분이 약자이고 패배자라고 해서 언제나 패배자의 관점에 머물러 있다면 영원히 거기서 탈출하지 못한다. 말했듯이 노예는 해방된다 해도 원래부터 자유인이었던 사람이 가진 것을 온전히 갖지 못한다. 자유인에게는 노예에게 없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평등한 동료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가졌고 노무현은 문재인과 유시민을 가졌지만 고흐는 고갱을 잃었고 동생 태오도 매독이 3기였다. 이상에게는 꼽추 구본웅이 있었지만 그게 더 슬픈 거다. 여러분은 현실의 강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필자가 공자를 강조하는 게 그 때문이다. 공자에게는 제자가 있었는데 노자에게는 제자가 없었다. 공자는 약자였지만 강자를 지향했고 노자는 그러지 못했다. 친구가 없었다. 강자의 특별한 시선을 얻어야 한다. 석가는 왕자였다. 처음부터 구김살 없는 강자로 태어났다.


    알렉산더 역시 왕자로 태어났다. 곽거병은 황제의 조카였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엄마가 지켜 보는 시선 안에서 마음껏 장난치며 노는 어린아이처럼 그들은 신의 지켜보는 시선 안에서 한껏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에너지가 있었다. 약자출신은 에너지가 없다.


    관념어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예술사조는 질서, 균형, 절제, 논리, 정확성, 적합성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에서 이에 반대하는 낭만주의로 갔다가 다시 리얼리즘으로 정리된다. 변증법적 통합이다. 왜 이러한 전개로 가는가? 낭만주의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에너지다.


    질서, 균형, 절제, 논리, 정확, 적합은 안철수 같은 범생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오지만 그 에너지는 사실 남의 것이다. 그들은 에너지에 빨대를 꽂고 복종하지만 그래서 규격화된다. 틀에 갇혀서 점차 바보가 된다. 점차 안철수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에너지는 통제가능성이다. 그 통제가능성을 얻어야 하는데 거꾸로 통제되어 버린다. 기득권의 에너지에 길들여지고 마는 것이다. 고흐는 정념을 추구했다. 인상주의는 정열이다. 그것은 내면의 기운이다. 생명성에서 유도되는 거대한 에너지다. 그러나 온전하지 않다.


    이들은 고독한 개인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를 추구할 뿐 결정적으로 그 에너지를 담아가둘 주머니가 없었다. 전기가 노상 벼락을 쳐도 배터리에 잡아가두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낭만주의는 에너지를 건드렸지만, 그 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해서 노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들은 남의 에너지를 역이용하는 정도로 만족한다. 풍자하고 조소하며 신고전주의의 삽질에 반사이득을 얻지만 혼자 떠도는 김삿갓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결론은 허무주의다. 낭만주의는 에너지를 추구하지만 혼자서는 제 아무리 용을 써도 임신이 안되는 거다. 


    에너지의 자궁이 만들어지지 않아 실패다. 반항과 퇴폐와 광기의 끝은 허무다. 일본문학이 그렇다. 제법 에너지가 있는데 낭만주의로 출발해서 허무주의로 끝난다. 리얼리즘은 진짜다. 이들은 평등한 동료를 규합한다. 도원결의를 이룬다. 그렇다. 고흐는 동료를 원했다. 


    공자가 안회를 얻듯이, 석가가 가섭을 얻듯이,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얻듯이, 고흐는 고갱과 인상파 친구들을 얻으려 했지만 얻지 못했다. 노무현은 문재인을 얻었는데 고흐는 고갱을 잃었다. 약자 포지션에 머무르면 곤란하다. 세를 이루어 강자의 시선을 얻어야 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풍자하고 야유하고 조롱하고 대들고 반항하며 그렇게 김삿갓처럼 시작하지만 그러다가 매독에 걸려 죽으면 허무다.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왜 물랭루즈에 모여들었는가? 평등한 동료를 얻으려 한 것이다. 거기서 진정 만날 사람을 만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가 왜 학교를 가는가? 공부하기 위해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천만에. 평등한 동료를 얻기 위해서다. 왜? 매독 걸리면 안 되니까. 인상주의 화가들은 물랭루즈에 모여 압생트를 마시다가 뻗었다. 그러면 곤란하다. 사람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다가 매독 걸려 죽는다.


    우리가 대학에 가는 진짜 이유는 좋은 친구들은 다 대학에 가 있기 때문이다. 사법고시를 철폐해야 하는 이유와 같다. 혼자 골방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해봤자 우병우 되고 김기춘 된다. 그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그들은 착한 노예에 불과했다. 왜? 동료가 없으니까.


    그들은 패기가 없고 에너지가 없다. 조립식 인형에 불과했다. 노무현은 노가다를 뛰었고 문재인은 특전사를 뛰었는데 그들은 노무현과 문재인이 가진 살과 살을 부대껴서 얻는 특별한 그것을 얻지 못했다. 인간은 권력을 탐하는 존재이다. 권력이라는 단어는 마뜩치 않다.


    권력은 수평권력과 수직권력이 있는데 이런 내밀한 사정을 반영하지 못한다. 권력이라고 하면 독재자의 절대권력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필자가 적당한 어휘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권력으로 밀고갈 수밖에 없다. 리얼미터와 갤럽조사의 지지율은 제법 차이가 난다.


    선거 때는 리얼미터가 맞다. 투표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권력의지의 반영인 것이며 권력의지는 잠복해 있다가 선거 때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노인층과 시골사람들 그리고 기득권층에게 강하게 나타난다. 흩어져 있거나 무기력한 집단은 없다.


    젊은층에게는 권력의지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왜? 그들은 평등한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학우들은 경쟁자이며 거기서 추려서 남는 자가 도원결의를 이루어 진짜가 되는 것이다. 권력을 만져본 자가 더 권력에 민감한 것이며 권력근처에 못가본 사람은 권력의지가 없다.


    그래서 손해를 본다. 우리가 이기려면 모여서 세를 이루어야 한다. 그 방법은 SNS를 통해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큰 소리를 치는 이유는 촛불 때 동원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동원되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는 곤란하다. 적극 발언해야 한다.


    세과시해야 한다.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상비군이어야 한다. 소집하면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면 안 된다. 촛불은 24시간체제로 가야 한다. 관념어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무엇이 다른가? 관념어는 이원론이고 실재어는 일원론이다. 2원론이므로 일단 뭐가 많다.


    신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질서, 균형, 절제, 논리, 정확, 적합은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념어다. 관념으로 접근하므로 신고전주의는 망한다. 이 모든 개념을 합쳐서 필자는 권력 하나로 퉁친다. 그냥 권력이라고 하면 되는데 질서니 균형이니 절제니 말이 많다.


    왜 페미니즘은 평등이 아니고 권력인가? 평등은 나란하다는 것이다. 신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질서 개념이다. 망한다. 왜 나란할까? 누가 손봤기 때문이다. 즉 평등은 을의 관점이며 약자의 시선이며 패배자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가지런하게 줄을 맞추는게 평등이다.


    피지배자의 모습이다. 강자는 자유롭다. 줄을 맞추지 않는다. 나란하지 않다. 권력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평등이나 필자가 말하는 권력이나 본질은 같다. 보는 방향이 다르다. 필자는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을 보고 그들은 남이 심판 봐주기를 원한다. 그거 안 된다.


    아무리 평등하게 제도를 만들어봤자 인사권자가 남자면 망한다. 여자가 창업을 하든가 아니면 여자가 인사팀장을 해야 바로잡힌다. 남자는 절대로 여자를 이해 못하기 때문에 남자가 저울의 잣대를 쥐는 한 남자가 저울추를 틀어잡고 있는 한 절대로 평등하게 안 된다.


    권력의 권은 저울추다. 아무리 저울이 좋아도 저울추를 잡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이것이 권력의 논리다. 우리가 세력을 이루고 인사권을 가지고 이조전랑을 차지해야 뭐가 되어도 되는 것이다. 이조전랑 인사권 뺏긴 순간에 조선왕조는 이미 망했다.


    본질이 그것이다. 누가 이조전랑인가? 한경오인가? 우리는 평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권력을 요구한다.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을 추구한다. 우리가 가만이 엎드려 있는데 올바른 심판이 와서 평등하게 낙점해 주기를 기다리면 절대로 망한다. 헌법재판소를 믿을 수 있나?


    대법원을 믿을 수 있나? 조중동을 믿을 수 있나? 검찰을 믿을 수 있나? 내가 권력을 갖지 않으면 허당이다. 그것이 리얼리즘이다. 신고전주의는 저울이 틀어져서 망했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저울로 교체해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세상은 조금도 바로잡히지 않았다.


    낭만주의는 틀어진 저울을 깬다. 화풀이 한다. 허무해진다. 그들은 죽는다. 리얼리즘은 우리가 저울을 쟁취한다. 해방된 노예에게는 없는 원래부터 자유인이었던 사람만이 가지는 특별한 시선을 우리는 얻을 수 있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패기와 자신감과 추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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