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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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855 vote 0 2017.10.12 (14:21:37)

    

    왜 한국은 노벨문학상을 못받는가? 상을 못 받는 정도가 아니라 언젠가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없다. 왜? 유교중독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한류가 뜨는 이유는 유교주의 때문이다. 유교주의는 강한 에너지가 있다. 근데 문학으로 보면 그게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다. 에너지가 있으면 쉽게 가려고 한다. 예컨대 복수극을 한다고 치자. 쉽잖아. 


    악당이 아버지를 죽인다. 주인공이 원수를 갚는다. 끝! 얼마나 쉬워? 이렇게 쉽게 가면 문학이 아닌 거다. 아멜리 노통브나 찰스 부코스키가 상을 못 받는 이유는 쉽게 가려는 의도를 들키기 때문이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 박정우 작가의 수법도 그렇다. 교착시켜놓고 도망친다. 이건 편법이다. 꼼수다. 


    문학은 인간을 탐구해야 한다. 인간성의 근원을 탐구하지 않고 사건의 전개에 매달리면 그게 드라마가 된다. 드라마는 문학이 아니다. 드라마는 행동을 따라간다. 수직으로 가지 않고 수평으로 샌다. 옆길로 빠지는 거다. 존재의 근원에서 비롯한 절대성이 아니라 행동의 상대성이 작용하게 된다. 니가 먼저 그랬으니 내가 이리 대응하잖아 하고 핑계댄다.


    독자와의 게임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추리소설과 같다.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도 문학이 될 수 있지만 안 쳐주는 거다. 조앤 롤링의 판타지가 문학이 될 수는 없다. 해리포터 시리즈 말이다. 좀비물이나 SF나 무협지는 당연히 문학성이 약하다. 전혀 없는건 아니지만. 인간을 닫힌 공간에 집어넣고 외부를 걸어잠가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지 보여주기다.


    노통브나 부코스키는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복수극이라 치자. 복수를 해야 한다. 이미 의사결정이 되어 있다. 이발소 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무협지는 문학이 아니다. 한류드라마가 뜨는 것은 역설적으로 문학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미드라도 마찬가지다.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을 제안했다면 그 감옥 안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실제로는 널널하게 열려 있다.


    감옥 안에 있거나 감옥 밖에 있거나 다를 바 없다. 그거 감옥 맞아? 감옥이라고 해놓고 사실은 감옥이 아니거든. 이거 반칙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다. 그거 탈출 맞아? 감옥에 갇혀서 주식투자도 하고 별 걸 다 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머피는 탈출하지 못했다. 거기서 죽어야 문학이 된다. 작가는 담담하게 의사결정을 보여줄 뿐이다.


    부코스키는 정면승부를 회피하고 나 지금 술에 취했는뎅 하면서 이상하게 틀어버린다. 노통브는 독자와의 교묘한 게임을 벌인다. 주인공의 문제를 비틀어 독자와의 게임으로 치환하는 꼼수.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원초적으로 답을 봉쇄해놓고 빠져나갈 구멍을 차단하고 독자를 괴롭혀야 진짜다. 사라마구는 독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정면승부한다.


    독자와 게임을 한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내가 이 골때리는 책을 끝까지 읽어버리고야 말겠다는 투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술술 읽히면 판타지다. 왜 무협지는 문학이 아닌가? 등장인물을 계속 추가하면서 옴니버스를 만들기 때문이다. 수호지와 같다. 양산박에 108 두령이니 일단 챕터가 108개다. 쉽게 가는 거다. 손오공은 교묘한 수법을 쓴다.


     걸핏하면 관음보살을 소환하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유교로 가면 김수현 드라마처럼 대가족을 이루고 있으니까 친척이 많아서 갈등이 증폭되는데 그 경우 사람탓을 하며 도망친다. 이게 다 시어머니 때문이야.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 남탓을 하는 순간 문학은 죽는다. 이문열은 남탓한다. 이게 다 엄석대 때문이야. 문학을 살해하고 문학을 논한다?


    곧 죽어도 시스템탓을 해야 한다. 정치는 권력이다. 빌어먹을 영조가 이조전랑의 인사권을 뺏은 순간 조선은 망했다. 시스템이 망했을 때 망한 거다. 정조가 일본과의 통신사 교류를 끊어 외교권을 버렸을 때 유교시스템은 망했다. 이게 다 고종 때문이야. 이게 다 명성황후 때문이야. 사람탓은 쉽게 가려는 거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기생충 서민 행동이다.


    유교는 쉽게 간다. 가족이 많으니 스토리가 쉽다. 신경질적인 시어머니 가운데 앉혀놓고, 푼수 며느리 옆에 붙어주시고. 재벌 사위 들어와주시고. 쉽잖아. 인물이 많으니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시청률은 오르는데 사회의 소통지능은 떨어진다. 김수현 바보가 제 바보를 무한복제하여 국민을 바보로 만든다. 하루키도 쉽게 간다. 미녀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일본은 원래 그런가? 일본만화도 같다. 가만있는 초식남인데 여자들이 육탄공세를 벌인다. 솔로탈출 너무 쉽잖아. 쉽게 가면 곤란하다. 사람탓 하지말고 우리가 잘못된 시스템에 갇혀 있음을 폭로해야 한다. 인간은 뻐꾸기 둥지 속에 갇혀 있는 존재다. 고립된 공간에서 닫아걸고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다. 천일야화는 옴니버스라서 문학성이 없다.


    3일치의 원칙을 어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말하는 것은 완전성이다. 셰익스피어는 3일치를 어겼지만 완전성을 지켰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이야기가 완결되어야 한다. 김성모 만화처럼 새 인물이 계속 등장하면 불일치다. 하나의 장소에서 하루 안에 이야기를 끝낼 필요는 없지만, 절대적으로 닫아걸어야 한다. 하나의 사건에 인간은 갇혀야 한다.


    인간을 가두는 것은 시스템이다. 무엇인가? 에너지의 근원이다. 시스템은 에너지다. 인간이 신분상승을 꾀한다면 결국 신분상승시스템에 갇히는 거다. 시스템을 깨고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몽테크리스토백작은 복수를 성공했지만 그게 돈지랄이다. 소설의 교훈은 보물을 찾아 횡재해야 한다는 거다. 복수 성공이 아니라 돈의 성공이니 돈에 갇혔다.


    돈을 깨야 깨는 거다. 스탕달의 적과 흑은 앙시앙레짐을 친다. 야심만만한 쥴리앙은 적과 흑 곧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번뇌한다. 권력과 신분과 돈과 여자를 모두 손에 쥐는 순간 죽는다. 이 문학의 거대한 점은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로 만든 거다. 주인공은 가슴에 큰 에너지를 품고 끝없이 위험한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인간이다.


    나폴레옹 3세가 지배하던 왕정복고기의 엄숙주의로 보면 천벌받을 짓을 태연하게 한다. 방자하게 마광수 행동을 한다. 문제는 주인공이 나쁜 남자라는 점. 보통은 주인공이 악역을 응징하는데 적과흑은 치명적이게도 주인공이 악당이다. 인간의 위태로운 권력욕을 긍정했다.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장발장은 착한 사람이다.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았다.


    선과 악의 문제로 보는건 사람탓 하는 것이다. 위고는 드라마를 쓸 줄 안다. 적과흑은 드라마가 아니다. 드라마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만 스탕달은 봉쇄해놓고 시작한다. 사실 장발장은 재수없게 자베르에게 걸렸을 뿐 얼마든지 잠적할 수 있었다. 하필 이상한 넘에게 걸린 거. 그러나 쥴리앙 소렐은 폭탄 같은 남자라 결국 노무현처럼 된통 사고칠 넘이다.


    운좋게 단두대의 칼날을 피했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걸리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내면에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으니까. 촌놈정신을 버리지 못하니까. 나폴레옹도 그런 인간이다. 폭주한다. 시스템을 쳐야 치는 거다. 선악구도로 되어 있는 사회의 의사결정구조를 에너지구도로 재편한다. 에너지가 센 쪽이 이긴다. 쥴리앙 이기고 나폴레옹 이긴다.


    왜냐하면 멈추지 않기 때문에. 단두대에 목이 짤리지만,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마지막 장면처럼 라스티냐크는 파리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대가리가 깨질 때까지 붙어보자는 거다. 발자크는 시스템과 싸우다가 커피를 너무 마셔서 죽었다. 죽어도 간다. 왜? 에너지가 있으니깐. 에너지를 만드는 시스템이 이긴다. 파리의 사교계가 촌놈에너지를 빨아들였다.


    인간을 닫힌공간에 가둬놓고 조이면 죽는다. 그러나 에너지가 있으므로 죽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죽거나 까무러치거나 시스템을 해체하거나.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에너지 대결구도로 바꿔놓는게 문학의 임무다. 에너지가 강한 자가 이겨야 한다. 젊은이가 이겨야 한다. 왜? 에너지 세니까. 사랑이 이겨야 한다. 왜? 사랑은 돈보다 에너지가 세다.


    돈으로 복수한 몬테크리스토백작은 가짜다. 로또 됐다는 말과 같다. 선은 개인의 선이고 에너지는 집단의 에너지다. 혼자로는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시대의 분위기가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이명박근혜가 촛불에너지를 점화시켰다. 한 개인의 품성에서 에너지가 나온다는 주사파 논리는 거짓이다. 노무현은 품성이 뛰어났나? 문재인 품성이 높나?


    천만에. 에너지는 노빠가 만든다. 문재인은 노빠에너지에 올라탄 운전기사에 불과하다. 우리는 문재인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에너지를 증폭하는 거다. 에너지는 의리에서 나온다. 그 의를 복제하기다. 한 사람의 의가 만인의 의가 된다. 노무현이 확실한 종로 놔두고 부산을 쳤을 때 에너지는 증폭되었다. 김영삼 버리고 김대중 선택했을 때 점화되었다.


    문재인이 변호사 99명을 불러 노무현을 옹호했을 때 에너지 나왔다. 그 순간 문재인 운명은 결정되었다. 시스템에 올라타면 끝까지 간다. 왜 한국문학은 안 되는가? 가둬놓지 않고 남탓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름은 병태다. 이름만 들어봐도 에너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든 명태에 무슨 에너지가 있겠나? 야심이 없다. 촌놈이 아니기 때문이다.


    쥴리앙 소렐은 촌놈이다. 끝까지 간다. 라스티냐크는 촌놈이다. 끝까지 간다. 고리오영감도 촌놈이다. 멈추지 못했다. 영화든 게임이든 드라마든 막판까지 가면 클랜을 만들기 마련이다. 아이디어 고갈 때문이다. 드라마는 소재가 고갈되지 않는다. 왜? 인물을 추가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돈 나와주시고 팔촌 나와주시고 무려 16촌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유교는 쉽게 에너지를 끌어내므로 쉽게 가고 쉽게 가므로 문학이 망한다. 대신 에너지가 있으므로 제대로 완전성을 끌어내는 이가 있으면 거대하게 된다. 시시한 일본식 허무주의 샛길로 빠지지 않는다. 도전해야 한다. 사람탓 하지 말고 시스템탓 해야 한다. 인간은 가둬진 존재다. 에너지가 있어야 깨닫는다. 병태 나오고 은수 나오면 문학은 망한다.


    금이 있는데 왜 은이냐? 은수는 좋지 않다. 갑태 을태 다 놔두고 왜 병태냐? 병태도 좋지 않다. 주인공 이름을 매가리없이 짓는 자의 글은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작가 자신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시시한 자다. 결론을 내리자. 문학은 에너지다. 문학은 시스템 건설이다. 문학은 닫힌 공간이다. 의사결정 깔때기 속에 인간을 밀어넣는다.


    죽거나 아니면 깔때기가 깨지거나. 사람탓 하는 이문열은 쳐죽여야 한다. 의사결정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김훈도 패대기가 답이다. 꼼수 쓰는 하루키도 시시하기는 마찬가지. 눈먼자들의 도시에 출구는 없다. 쥴리앙 소렐도 죽고 라스티냐크도 죽고 고리오영감도 죽는다. 궤도 속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비극적 운명 앞에서 담대하게 싸움을 걸어가기다.


    기본 에너지 조달문제가 해결되어 있으므로 쉽게 가다가 망하는게 유교문학이지만, 깨닫는 자 있어 사람탓 병폐를 극복한다면 그 에너지로 거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게 유교문화의 자원이다. 유교는 권력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니까. 권력이 근본 사람에게서 나오는게 아니라 닫힌공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뻐꾸기 둥지를 깨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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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미호

2017.10.12 (18:17:38)

노벨문학상에 대해서라면 저도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문 여리때문에....
노벨문학상을 타야 하는것은 아니지만 만약 받아야 한다면 아마도 이땅에 새로운 인간이 탄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동양과 서양은 사람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고, 노벨상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인간을 성찰해야 합니다.
내용은 동렬님이 말하셨구요.
小说은 일본인이 만든 단어로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동북아 3국의 기본정서입니다.

Novel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을 이야기 형태로 만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을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글을 쓰고 이러한 작품이 단 한편이 아닌 다작을 한 사람에게 상이 수여되죠.

그리고 이문열의 문제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 없습니다. 김훈은 관심이 없어서 생각도 안합니다만.
[레벨:3]부루

2017.10.17 (01:17:21)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보다 더 숨막히는 것이 눈 뜬 자들의 도시입니다..

허연색 커버의 눈 먼 자들 그 후 4년 같은 도시의 눈 뜬 자들의 도시


눈이 먼 도시보다 더욱 질식할 것 같았습니다.

분량은 짧지만 죽음의 중지도 나름 숨 막힐 것 같습니다.


노벨 문학상이 안 나오는 이유

아직까지 관계와 상황에 있어서 이러한 연을 다 끊어버리지 않고

나 자신과 세상

나 자신과 사건 사이의 완벽한 1:1대결대결구도를 만들지 못한 문제점

그러나 저는 머지 않아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노벨 문학상이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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