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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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92 vote 0 2017.05.20 (12:02:58)


    구조론은 쉽다. 어려운 부분도 물론 있는데 구조론은 수학이므로 얼마든지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깊이 파헤쳐서 어려워진 부분은 진리에 대한 필자의 욕심이고 독자 여러분은 몰라도 된다. 기본을 아는 게 중요하다. 세상이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구조가 아니면 뭐로 되어 있지? 구조론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지? 없다.


    아무것도 없다. 구조론은 기존의 견해를 뒤엎는 게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비슷한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브라흐마신의 입김? 돌턴의 원자설? 뉴턴의 기계론? 이런 건 옛날 이야기고 세상을 통째로 설명하는 근대의 관점은 없다. 고대에는 4원소설이니 음양오행설이니 하는 것이 있었다. 일전에 카오스이론이니 하는 것이 잠시 유행한 적도 있었다.


    상대성이론이나 불확정성의 원리를 잘 포장해서 세계를 설명하는 근거로 삼아보려는 모색도 있었으나 근래에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오직 모를 뿐.’으로 되었다. 양자역학이 뭔지는 물리학자도 설명하지 못한다. 실험결과는 명백하게 나오는데 확실한 이론적 모형이 없다. 갈수록 미궁이라서 아예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양자역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끝가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로는 구조론이 세계를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이다. 모든 것의 이론이라 하겠다. 구조론은 의심할 수는 없다. 구조론은 다른 이론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론적 모색은 서로 충돌한다. 이게 맞으면 저게 틀려야 한다. 구조론은 그런거 없다. 그냥 맞다. 과연 그럴 수가 있는가? 있다. 수학이 그렇다.


    수학은 의심할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왜? 복제하기 때문이다. 2는 의심할 수 없다. 2는 1의 복제이기 때문이다. 의심하려면 복제본이 아닌 원본을 의심해야 한다. 원본은 1이다. 1을 의심해야 한다. 그런데 1은 의심할 수 없다. 1은 서로간에 합의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사과 한 개를 갖고 와서 ‘이것을 1로 놓는다.’ 하고 동의를 구한다.


    1은 자신이 동의했으므로 의심할 수 없다. 내가 ‘이것은 사과다.’ 하고 말했다고 치자. 여러분은 내가 제시한 그것이 과연 사과인지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한국말로 말했다는 점이다. 언어는 의심하지 않는다. 언어는 쌍방간에 미리 합의되기 때문이다. 축구시합을 한다고 치자. 과연 내가 축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건 의심할 수 없다.


    축구를 하기로 사전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어떤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태우는 언어이므로 의심할 수 없다. 언어는 프로토콜을 서로 합의하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구조론은 A라고 말하지 않는다. 구조론은 ‘A면 B다’ 라는 식으로 반드시 조건을 건다. A나 B는 언어이므로 사전에 조건이 합의되어 있으니 절대 의심할 수 없다.


    A와 B 사이의 조건은 A와 B 둘이 공유하고 있으므로 역시 합의되어 있다. 구조론은 서로간에 이미 합의된 부분만 추적한다. 그러므로 오류가 없다. 두 사람이 고무보트를 타고 있다. 상대방이 보트를 펑크내면? 그 상대방도 죽는다. 나만 살자는 행동이 불능이므로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구속부분만 추적한다.


    수학이 이런 구조다. 구조론은 ‘이건 이렇다’가 아니라 ‘이게 이렇다면 저건 저렇다’이다. A와 B의 관계를 설명할 뿐, A나 B 자체는 논하지 않는다. 둘 사이의 관계는 A와 B 둘이 공유하므로 서로 합의된 부분이라 절대 의심할 수가 없다. 구조론은 알려진 어떤 이론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살펴보면 모든 이론에 구조론적 요소가 조금씩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조론은 홍길동이 범인이라고 지목하지 않는다. 만약 살인사건이라면 반드시 어딘가에 범인이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우발적 사고라면 범인이 없는 거다. 구조론은 세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어떤 구체적인 관측대상을 지목하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지목하지 않으므로 오류가능성이 없다. 어떤 사실이 아니라 관련된 룰을 건드려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룰은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관계다. 인간의 일상언어는 관측자 기준으로 되어 있다. 인간의 언어가 틀린 것이다. 구조론은 언어를 바로잡는다. 우리는 한국어를 배웠지만 똑똑한 박사에게 배우지 않고 부모에게 대충 배웠다. 제대로 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게 구조론이다. 눈으로 본다면 외력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다 반응하면 틀렸다.


    거울에 비친 상처럼 바뀌어 있다. 물物 자체의 내재한 논리로 봐야 한다. 그게 연역이다. 관측자 기준으로 보면 귀납이다. 우리는 산이 우뚝하니 무겁다고 여긴다. 틀렸다. 무거운 부분은 지구중심으로 가라앉았다. 가벼운 부분이 떠올라 산을 이루었다. 연역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우리는 돌이 무겁다고 믿지만 사실은 반대로 중력이 무거운 거다.


    우주정거장에서 무게를 달아보면 돌이 가볍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빛이 빠르다고 여기지만 블랙홀에서는 빛이 느리다. 무엇인가? 매개하는 것에 의해 온통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A와 B가 공유하는 관계에 의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도장을 쓰는 이유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도장은 패턴을 복제하므로 오류가 없다.


    비트코인이 쓰는 블록체인도 오류가 없다. 역시 복제를 쓰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지 검증하는 것은 그것이 과연 복제되었는지 아니면 조합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복제가 옳다. 자연의 복제인지 인위적 조합인지만 보면 참과 거짓을 판명할 수 있다. 우리는 산의 이마를 본다. 산의 발밑은 지구 중심에 닿아있다. 가볍기 때문에 떠오른 부분을 보는 것이다.


    무겁기 때문에 지구 중심으로 가라앉은 산의 발바닥은 보지 못한다. 사건의 전모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전모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A와 B의 연결지점을 포착해야 한다. 매개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 안 된다. 그 대상의 발생과정을 추적해야 한다. 에너지의 작동에 의해 어떤 그것은 발생된다. 에너지의 진행경로를 추적해야 바르다.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거기에 있기까지 과정을 추적해야 한다. 우리가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관측자의 관점으로 곧 귀납으로 보기 때문이다. 관측값은 관측자 위치에 따라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은 진실을 추적하는 단서가 될 뿐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봐야 한다. 대상을 보지 말고 관계를 봐야 한다. 관계는 엮여있다. 그 엮여있음을 봐야 한다. 구조론은 세상은 이렇다고 말하지 않는다. 앞이 이러면 뒤는 이렇다고 말한다. 이게 이렇게 되려면 저건 저렇게 되어야 하는 당위를 말한다. 앞과 뒤는 복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항상 옳으며 오류가 없다. 오류 가능성을 제거하고 시작한다.


    이러한 구조론의 관점획득이 중요하다. 공자의 예로 말한다면 우리는 공자의 잡다한 사상을 낱낱이 주워섬길 필요가 없다. 공자는 활쏘기나 마차몰기, 한시암송, 음악연주, 예절공부, 붓글씨 따위를 했는데 우리가 지금 활쏘기나 마차몰기를 공부할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충이니 효니 하는건 중국의 전통관습일 뿐 공자사상과 상관없다. 본질은 따로 있다.


    공자사상의 본질은 권력발명이다. 공자는 군주의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다양한 권력을 만들었다. 가부장은 공자에 힘입어 목에 힘을 준다. 어머니는 공자의 권력에 힘입어 자녀를 통제한다. 스승은 제자를 통제하고 임금은 신하를 통제한다. 선비는 의리를 내세워 친구를 통제한다. 인지의신예는 서로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여 사람이 사람을 통제하는 논리장치다.


    인지의신예는 복제다. 인은 두 사람이 하나의 공간에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1인용 침대를 쓴다고 치자. A가 왼쪽으로 가려면 B는 오른쪽으로 와야 한다. B의 동의없이 A는 제자리에서 돌아눕기도 어렵다. 침대가 비좁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이다. 즉 토대의 공유에 의해 곧 침대의 공유에 의해 두 사람의 행동이 복제되는 것이다. A가 왼쪽으로 갔다고?


    그렇다면 B는 오른쪽으로 간 것이다. 이건 안 봐도 비디오다. 그것이 복제다. 물론 킹사이즈 침대라면 달라진다. 좁은 공간에 가두어야 패턴복제가 가능하다. 그 가두는 순서는 인지의신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이 창출된다. A가 왼쪽으로 가면 B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야하므로 A가 B를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권력이다. 일의 우선순위에 따른 권력이다.


    기승전결의 기에 서면 뒤따르는 승과 전과 결을 지배할 수 있으니 그것이 권력의 근거다. 이것이 공자사상의 본질이다. 권력이 만들어지자 서로가 서로를 통제할 수단이 생겨서 비로소 전쟁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본질이다. 지나치게 정치권력의 통제에만 집착하여 황제가 출현한 것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다. 기승이발일도설 이런건 몰라도 된다.


    곡례삼천이라고 하는데 그 3천 가지 예절을 우리가 공부할 필요가 없다. 본질은 권력이니 사람을 통제하는 기술이다. 종교는 목사가 신도를 통제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공자는 만인이 만인을 서로 견제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그것이 공자의 예다. 예로 시비를 걸어서 ‘무례하다.’ 하고 평판공격을 가하면 임금도 납작 엎드려야 한다. 요즘 한경오가 매우 무례하다.


    당신이 폭력이나 금력이 아닌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공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의 흐름에 태우는 것이다. 일을 벌이고 사람들에게 역할을 나눠주면 이미 권력이 순조롭게 작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공자에게서 권력의 메커니즘을 배우면 그뿐 주역의 점을 치는 방법 따위는 안 배워도 된다.


    산대를 놓고 괘효를 해석하는 방법은 배울 필요가 없다. 육십갑자 낱낱이 암기하지 않아도 된다. 어렵게 들어가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구조론의 기본은 세상이 곧 구조라는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구조는 엮임이니 시공간의 엮임 곧 대칭과 호응이다. 세상은 오직 엮여있음이 풀리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니 곧 마이너스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엮으려고 하면 안 되고 이미 엮여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엮으려면 에너지가 소용되므로 엔트로피의 법칙에 어긋난다. 만유는 사물이 아니라 사건으로 되어 있으며 사건의 진행에는 반드시 비용이 청구된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균형상태이고 따라서 비용이 없으므로 엔트로피에 지배된다. 엮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닫힌계를 넘어가면 된다.


    구조는 닫힌계 안에서 작동하므로 닫힌계를 넘을 수는 없지만, 그것은 닫힌계라는 이론공간 안에서 그렇다는 말이고 현실에서는 여러 사건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으므로 닫힌계를 무시한다. 그러나 그 또한 상부구조로 올라가서 상부구조의 엮임을 풀어서 하부구조에서 엮이게 하니 이론을 적용하여 보면 역시 풀어내는 것이다. 이론으로는 오직 풀 수만 있다.


    우리는 현실에서 엮기도 하고 풀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고 자연에서는 오직 풀기만 한다. 그러므로 법칙을 구할 때는 풀기만 추적해야 한다. 세상은 마이너스로만 통제가 가능하다. 플러스도 있지만 그것은 통제가 안 되는 부분이다. 만약 통제된다면 비용이 청구된 것이다. 그 비용을 조달하는 과정은 역시 풀기로 가능하다.


    넣을 수는 없고 뺄 수만 있으며 만약 넣는다면 그 또한 한 단계 위로 올라가서 빼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아래에 넣어지는 결과로 되는 것이니 인간은 오직 빼는 부분만 조작이 가능하다. 그것이 엔트로피의 방향성이다. 이런 본질을 이해하는게 중요하지 나머지는 그냥 구조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구조론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으니 무한히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더 복잡한 엮임을 발굴하면 된다. 한 번 엮인 것을 두 번 엮고, 세 번 엮고, 네 번 엮으면 더 복잡해진다. 그것을 어렵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건 몰라도 되니까. 구조론은 의사결정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를 다룬다. 의사결정은 매개변수에 의해 일어난다. 매개변수는 하나의 사건 안에 다섯 개가 있다. 대칭과 호응에 축을 더하면 다섯이다. 이건 수학이다.


    수학은 다 맞다. 틀린 수학은 없다. 계산이 틀린건 계산이 틀린 거지 수학이 틀린게 아니다. 틀리는건 수학공식에 값을 잘못 대입하는 것이다. 귀납은 관측에 근거하므로 오류가 있지만 연역은 복제에 근거하므로 오류가 없다. 2는 1의 복제다. 그러므로 1은 맞는데 2가 틀렸다는건 있을 수 없다. 1도 틀릴 수 없다. 1은 각자 눈금을 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막대자든 피트자든 미터법이든 파운드법이든 자의 눈금 1은 각자 정하기 나름이므로 오류가 없다. 1은 서로간에 사전합의되므로 오류가 있을 수 없고 2는 1의 복제이므로 역시 오류가 있을 수 없으니 수학은 원래 오류가 없다. 컴퓨터가 틀린 계산을 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반도체라는게 복제이기 때문이다. 처음 한 개를 만들고 다음은 기계가 복제한다.


    잘못되면 그건 컴퓨터 잘못이 아니고 프로그램을 깔아놓은 인간 잘못이다. 수학은 죄가 없는데 인간이 미터법과 파운드법을 헷갈려서 미터로 써야할 것을 야드로 써버린 것이다. 유전자의 복제도 오류가 없다. 대량으로 찍어내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복제의 방법으로 오류의 여지를 원천차단한다. 필자가 틀린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구조론의 오류는 아니다.


    구조론에 대입을 잘못한 것이다. 정리하자. 세계를 통째로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세계는 사물이 아니고 사건이므로 세계를 설명하려면 사물을 관측할 것이 아니라 사건의 진행을 추적해야 한다. 사건은 에너지를 타고 기승전결로 전개한다. 기에 서서 결을 바라보아야 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자연의 사건은 복제의 방법을 사용하므로 인간도 복제를 써야 한다.


    복제는 연역이고 관측은 귀납이다. 인간은 관측귀납하므로 오류가 있고 자연은 복제연역하므로 오류가 없다. 복제는 사전에 합의하므로 오류가 없고 관측은 일방작용하므로 오류가 있다. 서로 합의하는 것은 언어다. 이것은 사과다 하고 말하면 과연 사과가 맞는지 의심할 수 있으나 그게 한국어인지는 의심할 수 없다. 한국인 아니면 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사전에 프로토콜을 교환하므로 오류가 없다. 병사들이 미리 암호를 정해놓고 확인하는 것과 같다. 암호는 복제한다. 비트코인도 복제를 쓰므로 오류가 없다. 사전에 서로 합의하고 공유하는 부분만 추적해 가면 오류가 없다. 그것은 매개변수다. 사건은 반드시 대칭과 호응이라는 매개변수가 있으므로 에너지 진행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


    자연의 모든 의사결정은 오직 이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진보니 보수니 선이니 악이니 잔뜩 논쟁해놓고 실제로는 프로토콜을 따라가 버린다. 합의된 것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논쟁한 진보니 보수니 선이니 악이니 옳으니 그르니는 뭐지? 그건 추임새여! 왜 박근혜가 되었을까? 프로토콜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왜 문재인이 되었을까? 역시 프로토콜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왜 안철수는 망가졌을까? 돌출행동으로 프로토콜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사전에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 예측이 맞는지 맞춰보며 맞으면 합격 틀리면 불합격시킨다. 프로토콜이 안 맞으면 절대 찍어주지 않는다. 젊은이는 노무현의 행동이 예측가능하므로 프로토콜이 맞는데 노인은 안 맞다.


    이 정도면 구조론이 매우 쉽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합의된 것만 합의하기 쉽잖아. TV광고를 한다고 치자.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을 쓰면 매출이 는다. 프로토콜이 합의된 것이다. 쉽잖아. 일상적으로는 인사다. 내가 눈인사를 했는데 상대방이 딴전을 피운다면? 프로토콜이 안 맞는 거다. 피디가 큐사인을 냈는데 방송출연자가 먼 산을 보고 있다면?


    프로토콜이 안 맞다. 옳고 그르고 자시고 간에 프로토콜을 따라가는게 인간이다. 이는 물리적 조건이다. 엄마는 아기에게 말한다. 낯선 사람 절대 따라가지 마. 아기는 고개를 끄떡인다. 몇 번씩 확인하고 다짐받는다. 그러나 강아지를 안고온 방송국의 실험맨이 아기에게 강아지를 만져보게 한 다음 ‘우리 더 많은 강아지 보러 갈래.’ 이러면 거의 따라나선다.


    공원에서 놀고있는 아이들 열명을 테스트하면 열명이 다 낯선 아저씨를 따라간다. 왜? 낯선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즉 프로토콜이 안 맞는 사람이라고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안고 와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면 자연스럽다. 프로토콜이 맞다. 당연히 따라가는 것이다. 낯선사람이라는 말을 다르게 이해한다.


    정치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거짓말에 능숙한 바람잡이들이 프로토콜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라는 프로토콜로 바람을 잡으면 죄다 안철수를 따라간다. 새정치가 뭐지? 뭘 어떻게 한다는 거야? 그딴거 없다. 그건 프로토콜이라고. 그건 그냥 국제호출부호 같은 거야. 안철수는 그냥 호출해봤을 뿐이라고. 호출에 응답하는 재미지.


    박근혜 4년간 호출만 계속 한거야. 오늘은 빨간옷으로 한 번 내일은 노란 옷으로 한 번 호출신호만 계속 날린 거지. 박빠들은 호출신호에 응답만 계속 한 거지. 그 다음은? 없어. 그게 다야. 박근혜가 ‘하우아유.’ 하고 호출하면 박빠들이 ‘아임파인땡큐. 앤드 유.’ 이것만 계속 반복한 거지. 선악이니 옳고 그름이니 하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연의 결이 있다.


    결따라 가는 거다. 자연은 의사결정하기 쉬운 방향으로 의사결정한다. 인간은 합의하기 쉬운대로 합의한다. 아무 것도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하는게 가장 쉽다. 보통 그렇게 된다. 정치가 망하는 원인이다. 합의는 어렵고 발목잡기는 쉽다. 한겨레가 발목잡는 이유는 그게 가장 쉽기 때문이다. 팀플레이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판을 깨는건 그냥 깨면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선악의 논리를 떠나, 자연의 전개원리를 먼저 파악하고 그 자연의 에너지 흐름에 올라탄 다음에 옳고 그름을 논해야 한다. 먼저 밥을 먹고 다음 의복을 챙기고 다음 공자왈 맹자왈 찾는 것이 순서다. 이는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하지 외출을 마친 다음에 신발을 신는게 아닌 것과 같다. 이것이 옳다고 말하면 안 되고 이것이 먼저다가 맞다.


    전략과 전술이 있는 것이며 선전략 후전술이다.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작은 것을 주장해야 한다. 작은 것을 앞세우면 그게 한경오의 발목잡기다. 외교에서 승부를 내는게 전략의 큰 그림이고 내치로 국민통합을 끌어내는 것은 전술의 기교다. 밖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게 먼저고 안에서 실무를 해치우는건 다음이다. 이러한 큰 틀에서의 방향성만 논하는게 구조론이다.


    왜 구조론은 쉬운가? 쉬운 부분만 건드리기 때문이다. 합의된 부분만 논한다. 오류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다. 맞는 말만 하므로 구조론이 맞다. 틀린 말은 하지 않는다. 왜? 구조론은 언어에 대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잘못 전달할 수는 있어도 말을 똑바로 하기는 쉽다. 말은 사전에 말을 맞추기 때문이다. 영어만 아는 사람에게 한국말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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