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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째다. 남자와 헤어진 후에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여자. 좋지 않게 끝냈어도 ‘어쩌다 우리가 원수가 되었나’ 싶고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연민이 들어. 헤어짐은 어색하고 어렵기만 해. 그런데 남자는 이런 나를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여자로 생각하는가 본데. 어떻게 하면 이별을 잘 할 수 있을까? 듣고보니 한심한 질문이다.


    이별할 생각이면 그냥 이별하면 된다. 이별을 잘하는 기술 따위는 없다. 이에 대한 강신주 답변은 나쁘지 않다. 남자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말라. ‘야 이새끼야!’ 하고 전화 끊으면 된단다. 맞는 말이다.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주면 된다. 과거의 남자에게 좋은 여자로 기억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이것이 내담자가 원하는 답변일까?


    강신주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자신의 판타지를 청중에게 강요한다. 서로 숨기는 것 없이 완전히 털어놓고 동화같은 사랑을 하자는 것이다. 미쳤다. 초딩이냐? 현실은 냉정하다. 인간은 절대 호르몬에 지배되는 존재다. 사소한 걸로 한번 각이 틀어지면 그게 평생 간다. 인정할건 인정하자. 사랑은 서로 감출 것은 감추고 받아줄건 받아주는 것이다.


    강신주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고 한다. 나쁘지 않다. 이왕이면 주인공 좋잖아. 그런데 헤어진 남자를 다시 받아주는 여자는 문경새재를 지키는 기생이란다. 허 참! 이런 표현 써도 되나? 오버하고 있네. 기생이라니? 기생이면 어때서? 기생이 뭐 잘못한거 있나? 강신주가 마초근성을 들켰다. 이건 여성비하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드라마의 규칙은 남자가 여자를 버리고 떠나지만 여자는 아이를 키우며 남자를 기다린다는 거다. 남자는 몇십 년 만에 돌아와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받아주길 간청한다. 그 순간 여자는 게임의 승리자가 된다. 어쨌든 남자를 무릎꿇렸으니까. 한류드라마만 이런게 아니고 남미의 텔레노벨라도 똑같다. 세계적으로 패턴이 비슷하다.


    그런데 작가는 여자다. 한류드라마라도 남자는 재벌이거나 왕이거나 도깨비거나 신이다. 여자는 그냥 신데렐라다. 하녀신분이다. 남자는 왕자거나 혹은 미래에서 왔거나 외계인이다. 언제나 남자의 신분이 여자보다 높다. 그 드라마를 쓰는 작가는 여자다. 시청자도 여자다. 여성은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여성 시청자들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왜 온달을 키워주는 평강공주를 좋아하지 않고 신데렐라를 구원하는 왕자를 좋아할까? 하여간 조선시대 고담소설은 여자를 능동적인 존재로 그렸다. 도술로 오랑캐를 물리치는 박씨부인전이 아니라도 대개 중국 송나라에 진출하여 남만 오랑캐를 토벌하고 장군이 된다. 말하자면 뮬란 조선시대 버전이다. 현대소설이 더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린다.


    그러므로 작가가 독자에게 아부하면 안 된다. 독자가 원하는게 수동적인 여성상이기 때문에 작가가 독자에게 맞추는 건데 이건 독자의 잘못이다. 주인공은 여고생이고 가만 있어도 도깨비가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식이다. 이런거 먹힌다. 신분이 고착된 조선시대 여성은 갇혀 있었기에 탈출을 꿈 꾸었다. 현대여성은? 신분상승을 꿈 꾸는 거다.


    봉건시대와 달리 신분질서가 깨졌기에 상승을 꿈 꿀 수 있게 되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하지 않다. 이게 본질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결합은 환상이다. 강신주식 사랑은 가짜다. 남자가 여자에게 구하는 것과 여자가 남자에게 구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다.


    여자는 신분상승을 원한다. 재벌이나 왕자나 도깨비나 외계인이나 미래인이나 신이 나타나서 신분상승을 시켜준다. 텔레노벨라로 보자. 남자가 여자를 버리고 떠난다. 여자는 자녀를 키우고 하인을 다스린다. 남자가 다시 찾아와서 무릎을 꿇는다. 지조를 지켜서 신분상승했다. 반대로 남자가 떠났다고 자신도 떠나면? 평판이 나빠져 신분하락이다.


    남자는 동기부여를 원하고 여자는 신분상승을 원한다는 본질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자가 헤어진 남자와 다시 만난다 해서 잘못일까? 그렇지 않다. 문제는 제 3자의 시점으로 봤을 때 그게 신분하락이라는 점이다. 평판이 나빠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평판에 신경쓰지? 우리나라가 남미인가? 브라질 텔레노벨라는 농촌사회라서 평판이 중요하다.


    한국인은 90퍼센트 이상 도시에 산다. 왜 평판에 신경을 쓰냐고? 남자가 여자를 통해서 신분상승한다면 데릴사위제라 할 것인데 온달장군 외에 성공사례가 잘 없다. 여성이라도 자력으로 신분상승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여성의 신분상승 욕구를 부정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여성이 헤어진 남자와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은 그게 신분하락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분하락을 경계하는 여성의 태도가 옳을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가부장제 유산이다. 신분상승은 여자가 자력으로 하면 된다. 남자를 통해서 신분상승을 해야한다는건 봉건시대 관념이다. 헤어진 남자와 만나도 된다. 평판에 신경쓰지 말자. 왜 헤어진 남자를 만날까? 의사결정능력이 약해서?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강신주의 방법이 맞다.


    ‘꺼져. 이새끼야!’ 한 마디로 정리하라. 그러나 신분상승 콤플렉스가 없는 자유로운 여성이라면? 헤어진 남자를 다시 만나도 된다. 주변의 평판은 무시하면 된다. 남자는 부담없이 과거의 여자를 만나는데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렇다면 남자는 왜 과거의 여자를 다시 만나려고 할까? 남자는 여자로부터 신분상승을 구하지 않는다.


    서울대출신이나 판검사들 빼놓고. 신부측 집안에 열쇠 세 개를 요구하는 것은 여성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하는 거다. 우병우 말이다. 사법고시 패스하면 단 번에 상류사회 진입이다. 상류사회 진입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이는 명문대 나온 5퍼센트의 남자에게만 해당된다. 대부분의 남자에게 여성은 신분상승의 수단이 아니라 동기부여 수단인 것이다.


    여성과의 만남을 운명적인 만남으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남자에게 여자는 종교다. 신앙이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대접한다. 허세를 부리고 싶어하는 거다. 남자는 남자의 허세를 안받아주니깐. 친구 앞에서 허세부리다간 면박 당하니깐. 여자가 허세를 받아주니까 연락한다. 냉정하게 ‘넌 미래가 안보여.’ 하면 남자 도망친다.


    나는 내담자가 과거의 남자를 반드시 끊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끊으려면 ‘꺼져. 이새끼야! 너는 미래가 안 보여. 아주 깜깜해.’ 이 한 마디가 소용된다. 강신주가 꿈꾸는 동화같은 사랑은 없다. 사랑이 여성의 신분상승 수단이어야 하는건 아니다. 허세부리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남자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거다.


    문경새재를 지키는 기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고약한 거다. 기생이면 어때서? 남자를 신분상승 시켜주는 평강공주형 사랑도 있고, 남자에게 신분상승을 구하는 신데렐라형 사랑도 있고, 문경새재를 지키는 기생형 사랑도 있다. 어느 쪽도 나쁘지 않다. 신데렐라형 하나로만 몰고가는 한류드라마가 문제다. 신분상승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초능력을 가진 슈퍼맨 여자주인공을 한류드라마는 제출할 때가 되었다. 남주인공은 바보 온달이라도 나쁘지 않다. 조선시대라도 박씨부인처럼 도술 정도는 가볍게 부렸는데 왜 현대드라마 도사는 죄다 남자냐고? 작가는 독자의 수준에 맞추지 말고 독자를 끌고가야 하는 것이다. 여자도사, 여자초능력자, 미래에서 온 여자, 외계에서 온 여자 막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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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평판에 신경쓰지 않는데 왜 여자만 평판이라는 덫에 갇혀있어야 합니까? 왜 여자만 문경새재를 지키는 기생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합니까? 사슬은 스스로 끊어내야 합니다. 과거의 남자를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끊고 싶으면 끊고 내키는대로 하세요. 어느 쪽이든 남의 이목에 신경쓰는게 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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