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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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556 vote 0 2013.02.06 (01: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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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자들의 실험입니다. 환자들은 고통스러운 2가지 내시경 진찰을 해야 하는데, 둘 다 최고 강도의 고통은 비슷하지만, A는 시간이 짧고, B는 고통의 시간이 2배 이상 길어집니다. 당연히 진찰 B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설문 조사를 하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간이 짧은 진찰 A 보다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진찰 B를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 비밀은 우리가 경험을 기억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기억할 때, 최고의 감정을 느꼈던 시점과 마지막 시점의 평균치로 판단하며 지속 시간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프의 진찰A와 진찰B는 둘다 최고강도의 고통은 비슷합니다. 차이는 마지막 시점에서 고통의 크기입니다. A는 시간이 짧아도 마지막이 고통스럽게 끝났고, B는 시간이 길었지만 마지막이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끝났습니다. 환자들은 비록 시간은 길었지만 끝이 편안했던 B를 선호했던 거죠. (대니얼 캐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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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과학적 연구성과를 시에도 대입해야 한다. 답은 인상주의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시는 인간을 긴장시키고 흥분시켜 강한 인상을 주는 테크닉이다.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의 재미 차이는 매우 크다. 똑같은 영화라도 완전히 상반된 평가가 나오곤 한다. 특히 마지막 반전이 중요하다. 초반에 재미있다가 결말이 흐지부지 하는 영화와 초반에 지루하다가 결말에 기가 막힌 반전이 있는 영화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잘못된 시는 결말을 알려주고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잘못된건 잘못되었다고 누가 말해줘야 한다. 지하철 시를 비판했는데 대개 결말을 알려주고 있었다. 자작 스포일러다. 이걸 시라고 할 수 있나? 아닌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특히 마지막 연에 전체 내용을 압축하여 해설해주는 산문구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구절이 있음으로 해서 시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거 절대로 빼야 한다.


    모든 예술의 기본전제는 서술이 아니라 묘사여야 한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서술이 들어가더라도 강한 임팩트를 주는 부분은 절대적으로 묘사여야 한다. 묘사가 뇌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는 반전이 없는 소설과 같다. 실패다.


    ◎ 라임과 리듬이 있어야 한다.(패턴의 반복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뇌를 흥분시킨다. 분명히 뇌가 물리적으로 반응한다.)


    ◎ 대칭구조가 있어야 한다. (대칭은 글자수의 대칭, 발음의 대칭, 의미의 대칭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대칭은 역시 긴장을 유발한다. 뇌를 흥분시킨다.)


    ◎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이미지는 시간을 공간화 하는 것이다. 길게 이어진 사건을 나열식으로 서술하는 대신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로 떠올리게 한다. 묘사가 시각화 되어야 한다.)


    ◎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개인적인 감상은 곤란하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출발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하고 공감할 내용이어야 한다.)


    ◎ 집단의 공분이 있어야 한다.(보편적 호소력이 이백의 시라면 집단의 공분은 두보의 시다. 시는 자기 감상을 전하는게 아니라 세상의 감상을 대신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시는 제사장의 신탁이어야 한다. 역사의 무게를 실어야 시다.)


    ◎ 비유, 은유 등은 절제되어야 한다.(억지 수사법 구사는 역겨울 뿐이다. 대개 삼류 시인이 자신이 그래도 무려 시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억지 은유를 남발하는데 때려죽일 행패다. 언어학대다. 언어가 운다. 제발 비유 좀 하지 마라. 요즘은 시크하게 가야 한다. 찌질이는 용서 안 된다. 건조하고 굵고 짧게.)


    ◎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구절이 없으면 시를 쓸 이유가 없다. 글자 한 자로 한놈씩 쏴죽인다는 결기가 보여야 한다. 헌걸찬 기개가 있어야 한다. 너죽고 나죽기다.)


    ◎ 뜻을 앞세우면 안 된다.(선전구호라면 곤란하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키면 시가 아니다. 메시지는 그냥 산문으로 전하는게 맞다. 메시지보다는 위트와 패러독스가 앞서야 한다. 말장난이 앞서고 메시지는 숨겨야 한다. 언중유골이다. 말장난인줄 알았는데 뼈가 숨겨져 있네..로 가야 한다. 뼈가 드러나보이면 안 된다.)


    ◎ 끝부분에 산문해설구가 있으면 곤란하다. (시의 자기부정이 된다. 잘 나가다가 막판에 불필요한 사족을 달아놓은 경우가 너무 많다. 알 듯 모를 듯 하고 끝내야 오히려 보편성이 있다. 해설하면 타겟이 되는 특정상황으로 좁혀진다. 시가 죽는다.)


    ◎ 왜 그 부분에서 끝나는지 납득되어야 한다.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대칭구조, 질문과 답변의 대칭구조, call과 why의 대칭구조, 명사와 동사의 대칭구조, 주어와 술어의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언어가 원래 대칭구조이므로 시 역시 대칭이 있어야 한다. 대칭에 의해 완결된다. 시는 타인에게 말을 거는 형식이므로 왜 말을 걸었는지 납득시켜야 한다. 의미의 대칭, 맥락의 대칭, 운율의 대칭, 지평의 대칭, 곧 관점의 확대에 의한 깨달음으로 완결시킬 수 있다. 이는 점에서 선, 선에서 면, 면에서 입체로 관점을 상승시켜서 완결시키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끝내기다.)


    ◎ 서술보다 묘사여야 한다. (시간을 따라가는 서술은 산문에 맞는 형식이다. 공간을 파헤치는 묘사는 운문에 맞는 형식이다. 서술로 가더라도 묘사로 끝내야 한다.)


    ◎ 어순이 바뀌어야 한다. (시는 혼자 떠드는게 아니라 타인에게 말을 거는 형식이므로 어순이 바뀌게 된다. 이는 말을 걸 때 ‘있잖아요.’하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술어가 앞에 온다. 문법을 바꾸라는게 아니라 보통의 진술과 차례가 달라야 한다는 거다. 가장 중요한게 맨 나중에 와야 한다. 그래야 임팩트가 있다.)


    산문 - 불장난 하면 산불이 난다.
    운문 - 산불났네. 불장난 때문에.


    산문 - 북과 장구가 깨졌다.
    운문 - 깨진 것은 북장구요.


    ◎ 한 편의 시에 하나의 대표 단어, 대표구절, 대표연이 있어야 한다.(지나치게 화려한 문장은 기억나는게 없게 한다. 찌질해진다. 건조하게 가야 한다. 임팩트를 줄 한 문장, 한 단어, 하나의 표현에 집중하게 하고 나머지는 되도록 비켜주어야 한다.)


    시를 잘 써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기교부린 것 보면 짜증난다. 다만 시여야 한다. 시가 아닌 것을 시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자작 스포일러 곤란하다. 일단 제목부터 스포일러다. 산이라는 제목을 걸고 산을 노래하면 그게 어찌 시냐? 미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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