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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027 vote 0 2009.03.25 (23:45:17)

구조적으로 생각하기

동영상강의를 하면서 새롭게 문제된 것은.. 우선 필자가 흔히 쓰는 익숙한 용어들 예컨대 ‘소실점’ 같은, 혹은 ‘엔트로피’나 ‘피드백’ 같은 기본적인 개념들을 모르는 분이 많을듯 하다는 점이다.

소실점을 모른다? 의외로 모르는 분이 많을 것 같다. 요 밑에 나오는.. 방정식 혹은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한 두번 들어서 피상적으로 알고있을 뿐, 그 중핵을 제대로 아는 분은 적을 것이다. 난감한 거다.

또 독자여러분과 필자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곤란에 부딪히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필자가 쉽게 생각해서 대충 넘어가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구조적으로 생각하라.’ 이 말을 하고 싶다.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그 안에 깊숙히 숨어 있는 방정식을 읽어서 아는 것이다. 인생의 방정식을 아는 것이 인생을 아는 것이다. 방정식은 메커니즘으로 발전한다.

사랑의 메커니즘을 아는 것이 사랑을 아는 것이다. 어떤 개념이든 그 안에 메커니즘이 있고 메커니즘 안에 방정식이 있다. 심 1과 날 2로 방정식은 세팅되어 있다. 어떤 개념이든 그러한 구조를 떠올려야 한다.

필자가 ‘사랑’이라는 개념을 썼다면 그냥 알콩달콩한 사랑, 로맨틱한 사랑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에너지가 입출력되는 메커니즘 구조, 사랑의 방정식이 세팅된 구조를 떠올려야 한다.

방정식은 ‘A면 B다’의 공식을 충족한다. 미지수가 두 개다. 두 미지수를 통일하는 제 3의 플러스 알파가 있다. 그렇게 심 1과 날 2로 세팅된 구조다. 그러한 구조를 아는 것이 꿰뚫어 아는 것이다.

사랑이면 남녀 두 미지수가 있고 또 그 둘을 통일하는 ‘가정’이라는 심 1이 전제되어 있다. 정치라면 국민의 민의라는 심 1이 ‘여야’라는 날 2를 제어하는 구조로 세팅되어 있다. 반드시 그것이 있다.

저울이 하나씩 들어있다. 그것이 방정식이다. 태엽시계에도 있고 모래시계에도 있고 어디에나 있다. 구체적인 물체에 저울이 있을 뿐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에도 반드시 저울이 있다. 그것이 없으면 가짜다.

막연히 안다고 믿어서 안 된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막연히 ‘뭐 때문이다’, 은 ‘쟤 때문이다,’ 하는 식으로 치부된다. ‘유령’ 때문이다거나, 기(氣)가 막혀서 그렇다거나, 무슨 약이 ‘몸에 좋다’거나 이런건 막연한 거다.

사회에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구조적으로 파악하기가 귀찮아서 ‘쟤 때문이다’는 식으로 남탓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생각을 그런 식으로 게으르게 한다면 ‘사과가 왜 떨어지지?’ ‘그야 무겁기 때문이지’ 식으로 된다.

이래서는 만유인력을 발견하지 못한다. 뭐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 안에 숨은 방정식과 에너지의 입출력 메커니즘을 완벽히 끌어내기까지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계속 생각하라. 멈춤없이 생각하라.

스님들이 화두를 들고 골똘히 생각한다지만 정말이지 그 화두 안에서 방정식을 찾고 에너지의 입출력 메커니즘을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생각에도 공식이 있다. 방정식과 메커니즘을 따라가는 것이 생각의 공식이다.

어쨌든 필자는 이 ‘생각의 공식’으로 재미를 봤다. 어떤 개념이 주어졌을 때 그냥 막연히 머리에 힘주어서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열배 이상의 효율로 생각을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인생이든, 사랑이든, 행복이든, 실존이든, 역사든, 진리든, 민족이든, 자동차든, 로봇이든, 어떤 단어를 주어도 짧은 시간 안에 거기서 깊숙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왜? 공식에 맞추어보면 답이 딱 나오니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면 다 알게 된다. 어디에든 숨은 방정식과 메커니즘 구조가 있다. 그대여! 바로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라.

산은 아는데 강은 모른다면 실상 산도 강도 모르는 것이다. 산과 강을 통일하는 것은 대지다. 대지가 심 1이면 산과 강은 날 2다. 대지의 존재를 모르면서 산이나 강을 안다고 말해서 안 된다.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아직 읽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로미오도 줄리엣도 읽지 않은 사람이다. 방정식은 이와 같다. A와 B는 항상 같이 다니기 때문에 알면 동시에 알아야 하는 것이다.

춘향은 아는데 몽룡은 모른다거나, 방자는 아는데 향단은 모른다는 식으로 될 수가 없다. 두 미지수를 통일하는 제 3의 하나가 있다. 그걸 알아야 아는 것이다. 항상 짝이 있다. 파트너가 있다. 대칭구조가 있다.

이 점을 기억하라. 어떤 개념이든 그 안에 음과 양,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 플러스와 마이너스 둘이 대칭되어 있고 또 그 둘을 통일하는 제 3의 무엇까지 셋이서 저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두 파트너를 통일하는 것은 사랑이다. 왼팔과 오른팔을 통일하는 것은 몸통이다. 날 2를 통일하는 심이 있다. 국가에도 있고 인생에도 있고 사랑에도 있고 진리에도 있고 역사에도 있고 어디에나 다 있다.

메커니즘을 안다는 것은 거기에 더하여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을 안다는 것이다. 계에 걸려 있는 긴장의 존재를 안다는 것이다. 바람이 분다면 기압이 있고 전기가 흐르면 전압이 있다.

남녀간에도 사랑이라는 형태로 그것이 있고, 국가간에도 냉전이라는 형태로 그것이 있으며, 생태계에도 생존경쟁이라는 형태로 그것이 있고, 시장경제의 순환원리에도 그것이 있다. 무조건 있다.

그것을 마저 찾을때까지는 알아도 안 것이 아니다. 보통은 그 중에서 하나만 알면 다 아는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며 더 이상 파고들지 않는다. 왜? 시험문제는 보통 그 정도 수준에서 출제되니까.

산과 강은 대지에 비가 내려서 이루었다. 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강으로 간다. 그 과정에 산과 강을 만든다. 하늘, 비, 대지, 산과 강, 바다로 전개된다. 이러한 에너지 순환구조 전체를 알아야 한다.

인생이든 행복이든 성공이든 사랑이든 깨달음이든 무엇이든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알아야 하고 그 메커니즘 안에서 방정식으로 알아야 한다. 구조로 보아야 보인다. 애초에 그런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면의 메시지를 버려야 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은 그 메커니즘이고 방정식이며 심과 날의 구조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이 말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역시 구조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실존개념과 본질개념을 대칭시켰다는 점이 중요하다. 본질이라는 표현은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지만 적어도 실존과 대칭되었을 때는 그러한 포지션 구조에 의해 의미가 지정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시작은 끝에 앞선다. 원인은 결과에 앞선다. 작용은 반작용에 앞선다는 말과 같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고 결말도 중요하고 반작용도 중요하지만 시간적으로 뒤진다.

실존이라는 존재에서 그 구조-방정식-메커니즘 파악이다. 그것이 이성이나 행복이나 윤리나 도덕이나 애국이나 이런 본질적 관념들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행에서 원인측이 된다.

존재의 존은 명목이고 재는 포지션이다. 먼저 팀이 있고 다음 그라운드 혹은 시합이 있다. 그리고 선수의 자격이 있고, 거기서 포지션이 나오고, 최종적으로 임무가 나온다. 본질은 그 최종적인 임무다.

실존은 그 임무를 유도하는 절차다. 팀(축구)≫시합(그라운드)≫선수(자격)≫포지션(공격수)≫임무(골)의 구조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면 극단≫무대≫배우≫연기≫감동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축구시합은 골이 본질이고 연극이나 드라마는 감동이 본질이라면 실존은 그 이전에 내가 이 지구촌 인류문명이라는 그라운드에 설 선수로서의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다. 곧 '왜 사는가'다.

뭔가 교훈을 얻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교훈이나 감동, 주제의식 따위는 관객을 극장으로 유인하는 미끼다. 골이 축구의 목적은 아니다. 점수가 시험의 목적은 아니다.

감동이 소설의 목적은 아니다. 극장에서 눈물 훔치며 ‘엄마 나 감동먹었어.’ 이런 소리 하는 애들과는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 감동은 헐리우드에서 관습화된 몇 가지 간단한 테크닉으로 얼마든지 넣어줄 수 있다.

헐리우드에는 감동전문가들이 수 백명 있다. 이들은 원작자나 감독이 들고온 대본을 뜯어고쳐서 5분 단위로 웃음 넣고 하며, 시트콤에 웃음소리 효과넣고 무한도전에 자막넣듯이 감동을 무제한 넣어준다.

“이봐 감독! 그 대본 일루 가져와봐! 감동 얼마치 넣어줄까? 손수건 석장? 넉장? 다섯장? 뭐 간단하지. 고춧가루 최루탄 조금 쓰고 MSG 양념 조금 넣어주고 겨자탄 두어발에 고추냉이로 살짝 버무려주면.”

이건 요리가 아니다. 가짜다. 구조는 계의 붕괴 형태로 사건을 진행시킨다. 실존은 그 구조의 세팅이 시작됨이며 본질은 그 구조의 붕괴에 따른 사건의 진행결과다. 시작은 많은 주변과 정밀하게 물려있다.

그러므로 시작부분은 속일 수 없다. 그러나 결말에 가까울수록 등장인물은 하나씩 빠져나가고 구조가 단순화 된다. 주변과의 관계는 엷어진다. 결말은 속일 수 있다. 실존을 파악함은 세팅된 시작부분을 보라는 거다.

결말은 그래서 성공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래서 잘먹고 잘살았다. 이런 거고 시작은 너 어느별에서 왔니? 너 지구에 왜 왔니? 너 누구니? 너 뭐야? 너 왜 그라운드에 난입했지? 너 왜 무대에 올라왔지? 이런 거다.

시작이 끝에 앞서고 원인이 결과에 앞서듯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구조의 메커니즘과 메커니즘 안의 방정식이 실존이다. 존재의 명목과 포지션이다. 명목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를 성립시키고 포지션은 주변과 관계를 맺는다.

산에 있는 흙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산의 일부다. 명목을 얻지 못했을 때 인간은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익명의 군중에 불과하다. 개미전쟁에서 죽어가는 개미떼처럼 왜 사는지 모르고 휩쓸려 몰려다니다가 죽는다.

과학이 연금술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이런 저런 과학들이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의 입출력 메커니즘 구조를 얻어 뉴튼 이래 근대의 진짜 과학이 성립되자 이런저런 연금술은 과학에 들지 못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현대성'이라는 의미에 충실한 진정한 철학은 실존주의가 있을 뿐이며 종교나 마르크스주의는 진짜가 아니다. 종교는 철학이 없던 시대에 철학을 대체했을 뿐이며 마르크스주의는 삶의 양식이라는 알맹이가 없다.

근대의학이 성립하기 전에는 샤먼의 주술도 의학이었다. 그러나 근대의학이 도입되지 주술은 의학 안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철학들은 설자리가 사라진다. 최후에는 깨달음이 남는다.

생의 철학-실존주의-깨달음-미학적 양식의 구조로 세팅되어 있다. 최후에는 삶의 양식을 끌어낸다. 그것이 문명의 완성이다. 그 외에는 철학이 없다. 다양한 철학이 존재한다 함은 철학이 아직 맹아단계임을 역설할 뿐이다. 갈 길은 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팀(신의 완전성)≫그라운드(진리)≫선수(역사)≫포지션(진보)≫임무(문명)의 세팅으로 실존을 얻어 각자 자기 아이디어로, 자기 자신의, 자기다운 삶의 양식을 디자인하고 연출하기에 성공할 때 철학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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