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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736 vote 0 2021.10.15 (10:09:10)

    생각은 그냥 하는게 아니다. 머리에 힘 주고 앉아있어봤자 두통을 앓을 뿐이다. 방법적 사유가 아니면 안 된다. 사유는 모형을 사용한다. 모형을 복제하여 빈칸에 채워 넣는다. 고도의 논리적 추론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수가 있다. 뇌 안에서 우연히 모형의 빈칸에 채워진 것이다. 의식적으로 모형을 사용하면 깨달음이다.


    근대과학의 기반은 수학이고 수학은 연역이다. 연역은 사건의 완전성을 반영하는 모형을 사용한다. 1이 자연수의 모형이고 2와 3은 복제된 것이다. 3은 2를 본다. 2는 1을 본다. 1은 그 숫자를 가리키는 사람을 본다. 이건 다른 것이다. 2가 1을 보는 시선과 1이 사람을 보는 시선은 다르다. 1이 원형이다. 1은 비교된 크기가 아니고 크기를 재는 자다. 


    자는 사람이 쥐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보는 것이다. 1은 그 숫자를 가리키는 사람과 연결하는 하나의 라인이다. 거기에 모형이 있다. 사람이 움직이면 숫자도 움직인다. A가 변하면 B도 변한다. 그 둘을 연결하는 라인 C를 바꾸면 자연수가 정수로 바뀐다. A, B, C를 알면 다 아는 것이다.


    다양한 모형의 모색이 있어 왔다. 플라톤의 이데아,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유교의 사단칠정, 도교의 음양오행, 헤겔의 변증법 모형이 알려져 있다. 조악하지만 나름대로 모형을 만들어본 것이다.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유클리드의 원론과 석가의 연기설이 그럴듯하고 나머지는 허당이다.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마르크스의 혁명이론도 모형으로 기능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엉터리다. 공리주의가 말하는 최대다수 최대행복, 아담 스미스와 케인즈의 경제학, 노이만과 내쉬의 게임이론도 일정부분 사유의 모형이 될 수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뉴턴의 기계론, 결정론적 사유도 있다.


    사유는 연역한다. 귀납은 통밥인데 안 쳐준다. 통밥은 같은 일이 반복될 때 쓰는 것이다. 새로운 분야를 탐구할 때는 반드시 모형을 써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연역을 통 못한다. 원래 연역은 자동으로 된다. 아기가 문법을 터득하듯이 그냥 된다. 단, 옹알이는 열심히 해야 한다. 옹알이를 하지 않고 영어 배우려니 안 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연역하는 것이 직관이다. 뇌 안에서 프로그램을 돌려서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뇌가 패턴을 읽어서 구조를 복제한 것이다.


    천재는 골똘히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조립하는게 아니라 그냥 아이디어가 갑툭튀 한다. 뇌가 프로그램을 돌려서 패턴이 맞는 것을 추출한다. 꿈을 꾸는 것도 그렇다. 그냥 이미지가 떠오른다. 촉이 좋은 예술가는 왠지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해본다. 해보니까 느낌이 좋아서 계속한다. 천재도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떠오른 아이디어를 해석하는 것이다.


    생각의 결과로 아이디어가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적용하려고 생각을 한다. 일반인은 책장을 덮고 그냥 잊어버리지만 천재는 자신이 읽은 소설이나 극장에서 본 영화에서 얻은 미세한 느낌을 잡으려고 백 번쯤 그것을 반추한다. 아기가 옹알이를 하다가 문법을 깨닫듯이 개가 배회하다가 집을 찾듯이 천재도 그 사유 안에 머물러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다음은 그 아이디어를 복제하고 변주하는 자기표절의 반복이다. 열여섯 때 떠올린 아이디어 하나로 평생 우려먹는다.


    인간의 사유란 것이 대개 추론이 아니라 경험을 떠올리는 것이다. 경험은 귀납이며 귀납은 학습이 아니면 통밥이다. 넘겨짚기다. 개는 추론하지 않는다. 그냥 이전에 했던 행동을 단순히 반복한다. 왜 그러는가 하면 전에도 그랬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개가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게 실패다. 단순히 새로운 행동을 훈련시켜 주면 태도를 바꾼다. 대부분 훈련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게 문제다. 주인이 서면 개도 서고 주인이 가면 개도 가는 한 가지 훈련만 시키면 나머지는 자동이다.


    인간은 많은 경험 중에서 공통요소를 뽑아낼 수 있다. 추상화다. 서로 다른 경험들에서 공통요소를 추출하여 같은 사건으로 간주하는게 추론이다. 이걸 의식적으로 못하고 직관적으로는 한다. 무의식적으로 공통요소를 뽑아낸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패턴이 느껴진다. 감이 온다. 촉이 좋은 사람은 패턴을 추출하여 경마장에서 우승마를 맞추고 증권시장에서 오를 종목을 찾아내고 카지노에서는 돈을 딴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촉으로 맞추는게 한 번은 잘 되는데 두 번은 안 되는 이유는 에너지를 그만큼 끌어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고도의 집중을 하지 않고 촉이 오지 않았는데도 온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첫 키스만 전율하고 두 번째부터는 시들해진다. 뇌가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사가 빠지는 것이다.


    구조론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패턴을 찾아내지만,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설명한다. 뇌간지럼증 탓이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감이 왔는데, 입이 근질근질 한데, 적당한 단어가 있을 텐데. 그것은 방향성이다. A의 변화가 B의 변화와 나란할 때 둘을 통일하는 C와 그 변화를 찾아내는 것이 방향성이다. 이 느낌 하나에 50년을 매달렸다.


    아이디어의 구조는 같다. 불빛이 피사체를 비추면 스크린에 그림자가 생긴다. 이것이 움직이면 저것이 움직인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그것은 동시에 움직인다. 필름이 움직이면 영상이 움직인다. 다만 둘의 관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영상이 움직인다고 해서 필름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불변의 관계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탈로 변해버렸다. 이 하나의 모형을 다양하게 적용하여 구조론의 컨텐츠를 채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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