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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의 목적은 집단적 자아실현에 있다


    교육의 목적은 집단적 자아실현에 있다. 개인적 자아가 있는가 하면 집단적 자아도 있다. 둘은 같다. 사이즈가 다를 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무의식적으로 집단을 자기와 동일시하게 된다. 문제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 자신이 집단에 소속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점이다.


    노예주는 노예끼리 싸우게 만든다. 적은 외부에 있는데 노예는 동료를 공격하는 실패를 저지른다. 착취구조를 깨닫고 동료와 연대하여 왜곡된 구조에 맞서야 한다. 교육받지 못하면 집단적 자아가 왜곡되어 피아구분을 잘못하게 된다. 적을 동료로 착각하고 동료를 적대하게 된다.


    피부색과 성별과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라는 장벽에 막혀 동료를 적대하고 지배자에게 복종하는 실패를 저지른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지배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는 동물의 생존본능이며 자아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아는 곧 자기 통제권이다.


    자아가 약하면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없고, 자기감정을 통제할 수 없고, 자신의 버릇을 통제할 수 없다. 자기 가족과 동료와 이웃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럴수록 힘을 가진 자에게 복종하게 된다. 나쁜 짓을 그만두면 되는데 꼭 형님에게 깐죽대다 매를 벌어 한 대 맞고 그만두는 식이다.


    ‘아버지는 그때 왜 나를 주먹으로 바로잡아주지 않았나?’ 하고 항의하는 일도 있다. 매를 맞아야 소속감을 느낀다. 이는 동물의 본능이다. 불안해하며 자신이 집단의 일원인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강자의 철학을 가져야 자존감을 얻는다. 자신의 몸과 감정과 습관을 통제할 수 있다.


    가족과 동료와 팀과 국가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다. 힘이 없으면 나쁜 짓으로 어그로를 끌어 상대가 먼저 자신에게 개입하도록 유도한 다음 발언권을 행사하는 이상한 짓을 한다. 자존감이 낮으면 그게 습관이 된다. 그게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그게 바로 보수꼴통이다.


    약자의 전략을 쓰는 것이 보수다. 약자는 에너지가 없으므로 직접 발언하지 못하고 관심 있는 이성을 괴롭힌다든가 하는 식으로 한 바퀴 꼬아서 행동한다. 사귀자는 말을 직접 못하고 깐죽대다가 한 대 맞고 두 대 맞고 상대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그제서야 할 말을 한다.


    자존감을 얻게 하는 강자의 철학이 필요하다. 절대강자는 신과 진리다. 신의 편에 서고 진리의 편에 설 때 자신이 천하와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럴 때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파악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을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받아들이게 된다.


    개인이 무언가를 좋아해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고 행복감을 얻는 것이 개인의 권력과정이라면 집단이 무언가를 지향하고 역할을 나누고 실현하는 것이 집단적 권력과정이다. 존 듀이 교육은 개인적인 권력과정에 천착해 있다. 개인의 행복감은 무의미하고 동료의식이 중요하다.


    오늘날 철 지난 종교가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진보 지식인들이 개인의 감정에 천착해서 인류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루소나 소로가 전원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냥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유나바머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도 대단한 자연주의 철학이 아니다.


    그게 아스퍼거인의 자기소개다. 칸트의 규칙적인 생활도 마찬가지다. 헌신적인 진보 활동가들은 자기만 할 수 있는 일을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끊임없이 설득하고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은 지극히 인내심이 강한 즉 성격이 특이한 극소수의 지식인에게만 가능하다.


    그게 다수에게는 지나친 참견과 극성으로 보인다. 좌파의 두 가지 오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자연주의자 행세로 커버하는 것과 지독한 인내심을 가진 이상성격자가 그것을 성품론으로 포장하여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주사파의 성품론이다. 이석기는 인내심이 대단하다.


    그것이 비판되어야 할 퇴계병이다. 개인의 도덕성은 중요하지 않다. 집단 내부에서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서로의 방귀를 먹는 평등한 그룹에 물리적으로 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 성취보다 자식의 성공, 동료의 성공, 국가의 성공이 유의미하다. 성공한 그룹에 들어야 한다.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강자의 그룹에 속하는 것이다. 이기는 팀에 들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자존감을 주고 집단적 자아실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지는 팀에 들어서 반복적으로 패배를 맛보면 퇴행한다. 모두가 이기는 팀에 들 수 있도록 사회를 정밀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진보가 비현실적인 도덕가나 무절제한 히피를 지향한다면 좋지 않다. 고립을 낳기 때문이다. 도덕가도 고립되고 히피도 고립된다. 반복적으로 이겨갈 때 인류는 하나가 된다. 하나의 게임을 깨고 다음 스테이지로 올라서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문제해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환경문제든 빈부격차 문제든 노동문제든 보안법이든 교육개혁이든 성과주의 집착은 좋지 않다. 문제해결 보다 싸워서 이겨본 경험이 중요하다. 연대하여 싸움판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우리가 더 단단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편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kilian

2020.05.22 (04:39:49)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강자의 그룹에 속하는 것이다. 이기는 팀에 들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자존감을 주고 집단적 자아실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http://gujoron.com/xe/1204205

프로필 이미지 [레벨:19]수원나그네

2020.05.22 (11:04:01)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우리가 더 단단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사이' 혹은 '관계'의 방향성과 크기라는 의미로 수학용어로 '벡터'라는 게 연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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