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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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81 vote 0 2020.01.06 (16:53:34)


    목적이냐, 상호작용이냐?


    “아들러의 목적론은 프로이트의 원인론과 반대되는 견해다. 인간의 행동은 원인과 결과가 아닌 자신이 행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된다는 견해가 목적론이다. 즉, 원인론에서 제시하는 행동의 인과관계를 부정한다. 예를 들면, 엄마가 아이를 나무라는 도중 전화가 오자 화가 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건 상대방이 선생님임을 알아차리자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끝내고는 다시 화난 목소리로 아이를 나무라는 상황에서 '분노'라는 감정은 아이에게 화를 냄으로써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나무위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럴듯하면 허튼소리다. 아이를 굴복시키기 위하여? '위하여' 들어가면 거짓말이다. 목적론적인 어법을 많이 쓰는 분야가 진화생물학이다. 생물의 진화는 어떤 목적 때문이 아니고 단순히 유전자 때문이다. 유전체계 안에 진화 담당 유전자가 숨어 있다.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기계적으로 간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위는 단순히 호르몬 때문이다. 화가 나게 하는 것도 호르몬이고 화를 가라앉히는 것도 호르몬이다. 호르몬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다. 인간은 목적의 동물이 아니라 관성의 동물이다. 목적 없이 그냥 하던 짓을 계속한다는 말이다. 이전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또 하는 것이다.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다.


    '세나개'를 비롯해서 강형욱이 출연하는 TV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행동을 한 번 하게 되면 그것이 각인되어 두 번 반복하게 되고 결국 습관으로 굳어진다. 말하자면 나쁜 개가 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새로운 행동의 반복과 각인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주변환경과의 관계에서 조달된다. 


    관성적 행동은 이미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는 경우다. 학습되고 훈련된 것이다. 각인된 것이다. 상호작용을 바꾸는 방법으로 관성을 극복하는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다. 습관의 극복이다. 여기서 사건의 귀결점을 보느냐 출발점을 보느냐다.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봐야 한다. 목적론은 어디로 가는지를 보는 것이다. 


    원인론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상호작용은 그 출발점이 원자론과 같은 눈에 보이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공간의 에너지 방향성에 있다는 말이다. 출발점은 입자 형태가 아니다. 개인이 아니다. 상호작용 범위가 출발점이다. 그것은 개인의 트라우마나 콤플렉스일 수 있고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억압일 수도 있다.


    민족의식이나 세계관일 수도 있다. 미국이라면 복음주의 기독교 세계관일 수도 있고 이스라엘이라면 유태인의 집단적 체험에 기초한 민족성일 수도 있다. 그 출발점을 스스로 정할 수도 있다는 점이 각별하다. 되도록이면 상호작용의 범위를 크게 잡아야 한다. 커다란 사건의 흐름에 자신을 태워야 한다. 등 떠밀려 가는 것이어야 한다. 


    총알은 표적을 죽이기 위하여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노리쇠의 격발에 의하여 날아가는 것이다. 표적은 멀리 있어 공허하지만 노리쇠는 가까이 있어 현실적이다. 가까이에서 나의 호르몬을 끌어내는 것에 의지해야 한다. 작게 개인의 상처나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계기로 삼으면 좋지 않다. 천하의 대의명분이 노리쇠 역할을 해야 한다. 


    출발점은 신과의 상호작용이라야 한다. 그것을 어느 정도 내면화하는지는 교육과 훈련에 달려 있다. 스스로 각인해야 한다. 집단의 의지가 개인의 목적이 된다. 히틀러처럼 말이다. 히틀러의 목적은 무엇일까? 세계지배? 유태인 학살? 독일민족의 패권? 그런 것은 관념에 불과하다. 목적은 가짜다. 히틀러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단지 주변의 공기를 읽고 거기에 적응했을 뿐이다. 주변환경에 맞게 행동한 것이다. 독일식 펍에서 맥주나 마시고 마구 떠들어대는 노동자들의 눈빛을 읽고 거기에 화려한 레토릭으로 맞춰준 것뿐이다. 물론 직접 물어보면 어디서 주워들은 거창한 목적을 말할 것이다. 허세일 뿐이다. 나폴레옹은 세계정복이라는 야망이 있었을까?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그를 따르는 부하들의 눈빛을 읽고 거기에 맞춰준 것이다. 조지 워싱턴은 탁월하다. 부하들은 워싱턴을 황제로 모시고 자기들은 왕이 되려고 했다. 부하들이 친위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 듣도 보도 못한 공화정 실험을 때려치우고 다른 나라와 같은 제정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워싱턴은 황제가 될 야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영국신사의 체면 때문에 참은 것이다. 그는 부하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고 역사의 눈빛을 읽었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하다. 히틀러나 나폴레옹은 추종자의 눈빛에 갇혀버렸다. 목적 따위는 하루에 백 개도 만들어낸다. 야망이 어쩌고 하지만 그냥 허세이거나 너스레일 뿐이다. 


    문제는 확증편향으로 한 가지 방향의 공기만 읽는 점이다. 진보는 진보방향에 맞는 뉴스만 읽고, 보수는 보수방향에 맞는 뉴스만 읽는다. 그 눈빛만 받아들인다. 그쪽 분위기에 맞게 행동한다. 대립각을 세워야 아이디어가 나와서 뭐라도 의사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르몬이 결정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이 원하는 행동을 한다. 


    흔히 욕망이니 성욕이니 식욕이니 하지만 가짜다. 욕망은 이미 격발된 행동을 가속화 시킨다. 순항미사일은 총이나 활처럼 한 번 추진하고 끝나는게 아니고 중간에 궤도를 바꿔가며 표적이 움직이면 쫓아간다. 욕망은 중간에 조절하는 역할이다. 최초에 호르몬으로 행동을 격발하는 원인이 진짜다. 진짜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움직인다.


    목적은 허세 부릴 때 써먹는 것이다. 남들이 질문하면 둘러대는데 써먹는다. 물론 목적의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욕망이 중간단계에 조절하듯이 목적의식은 낮은 단계에서 작용한다. 목적은 질, 입자, 힘을 넘어 운동단계의 것이다. 무의식이 군중의 눈빛을 읽고 에너지 흐름에 휩쓸리는 것이 질, 군중의 중심을 파악하는 것이 입자다.


    에너지 흐름에 뛰어들어 주도하는 것이 욕망이라면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인간이 어떤 목적을 바라보는 것은 방향이 정해지고 진로가 결정된 다음 거기서 이탈하지 않게 하는 의미가 있다. 명문대에 붙겠다거나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다른 유혹이 들어와도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목적론은 틀렸고 원인론이 맞다. 그런데 원인이 여럿이다. 목적도 여러 원인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따라 행위동기를 상호작용론, 권력론, 욕망론, 목적론, 보상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섯이 모두 행위동기가 되지만 순서대로 작용하므로 앞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멈춘 사람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게 진짜다. 


    가는 사람을 그 상태로 묶어두는 것이 욕망이나 목적이나 보상이다. 강아지도 먹이로 보상하면 훈련되지만 늑대는 주인과의 관계설정이 안 되므로 백날 먹이를 줘도 말을 듣지 않는다. 상호작용이 안 된다. 새끼 때는 조금 훈련이 되다가도 생후 1년이 되면 주인을 거역한다. 몽골인들은 늑대 새끼를 주워와서 키우다가 1년이 되면 죽인다.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늑대가 주인에게 덤빌 때 맞대응해서 제압해야 한다. 그러려면 인간이 늑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은 계 안에서 균일해지는 것이다. 늑대와 같아져야 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진짜 원인은 눈에 띄는 표지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형태로 존재하며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영향을 미친다. 


    호르몬이 작용한다. 에너지 흐름과 맞으면 마음이 들뜬다. 흐름과 어긋나면 위축된다. 주눅이 들어서 소극적으로 된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주눅 들거나 혹은 그 상황에서 마음이 들뜨기 때문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들뜨고 흥분한다. 적극적 태도로 변한다. 생기와 활력을 보여준다.


    인간은 그 생기와 활력 속에 머무르려고 하며 그러려면 주변과 장단이 맞아야 한다. 음악에 몸을 맡길 때 그러하다. 좋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설 때 그러하다. 대화가 통하는 친구와 수다를 떨 때는 누구나 생기가 돈다. 무의식이 격발하고 호르몬이 연출하는 생기와 활력이 인간을 움직이는 본질이다. 주변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얻어진다. 


    유기적인 호흡에서 얻어진다. 균일한 계에서 가능하다. 그것이 상호작용이다. 비슷한 성향끼리 모여있어야 활발해지는 것이다. 욕망은? 그러다가 지쳐서 그만두려 할 때 강화시키는 역할이다. 목적은? 자신을 깨우쳐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수단이다. 욕망이나 목적이나 보상은 낮은 단계에서 작용하는 주변적인 원인이다.


    모든 것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을 들뜨게 하고 생기넘치게 하는 환경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이다. 그러나 상호작용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똑 부러지는 이름을 원한다. 눈에 보이는 표지를 원한다. 상호작용은 둘이서 동시에 움직이므로 잘 안 보인다. 죽이 맞는 친구와의 팀 케미스트리인데 이를 표현할 적절한 언어가 없다. 


    진정한 것은 항상 그렇듯이 이름이 없다. 필자의 작명실력 부족도 한 가지 이유다. 그것은 자기장과 같은 에너지 장이다. 계를 균일하게 한다. 이질적인 것을 하나로 묶어 낸다. 일방작용은 허공에 삿대질하며 혼자 떠들고 있으니 어색하다. 축구라면 패스가 잘 연결되어 자연스러운 것이 상호작용이다. 야구라면 연계플레이의 성공이다.


    연주라면 앙상블을 이루고, 커플이라면 궁합이 맞고, 친구라면 죽이 맞고, 동료라면 의리가 있는 것이 상호작용이다. 서로 간에 합이 맞아야 한다. 분위기나 흐름이나 기세나 유행으로 그것은 나타난다. 그것은 집단적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계 안에서의 상호작용이 모든 것을 깨어나게 하고 생기와 활력을 끌어내어 인간의 행위동기가 된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1) 상호작용론 = 환경과의 관계, 균일한 계, 긴밀한 상호작용, 집단 무의식

    2) 권력론 = 주도권, 신분, 서열, 포지션, 가부장 권력, 돈, 매력, 실력

    3) 욕망론 = 식욕, 성욕, 과시욕, 시기심, 질투, 

    4) 목적론 = 계획, 의도

    5) 보상론 = 쾌락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시켜서다. 누가 시키는가? 집단이 시킨다. 강아지가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간식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아기가 재롱을 부리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상황에 맞춰주지 않을 수 없다. 말로 지시하지 않아도 눈치로 시킨다. 시켜서 한 것이다. 히틀러도 그러하고 나폴레옹도 그러하다. 언론이 시켜서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집단이 시켜서다. 그것은 대개 무의식으로 나타난다. 균일한 계에서 질을 이루는 상호작용이 입자의 형태로 구체화 되면 권력이나 매력이 된다. 상호작용은 배후에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이고 현장에서 인간의 직접적인 행위동기는 대개 권력에 있으며 욕망은 이미 결정된 것을 강화하여 승부에서 이기게 할 뿐이다.


    동기는 누구나 있지만 현장에서 이기는 자는 욕망이 강한 자다. 상호작용과 권력이 같을 때 욕망이 결정하는 것이다. 목적은 그것을 학습하여 잊어먹지 않는 것이다. 보상은 가장 말단의 것이다. 아이가 심부름을 하는 것은 부모가 시켜서다. 시키지 않으면 당연히 안 한다. 보상이 있어도 안 한다. 늑대와 여우는 절대 인간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인간은 보상 때문이 아니라 시키는 일에 복종함으로써 집단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보상은 하기 싫은 심부름을 억지로 할 때나 해당된다. 섹스라는 보상 때문이 아니라 솔로의 극복이라는 관계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커플이라는 관계가 틀어지면 안 되니깐. 상호작용을 유지하려면 계가 균일해야 하므로 맞게 행동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systema

2020.01.06 (18:09:32)

전율! 리플을 안남길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집단의 에너지에 단순반응 하는 존재. 집단과 함께하면서도 집단의 방향을 꺽을수 있으려면 더 큰 집단과 동기화 되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20.01.07 (08:31:38)

"인간은 목적의 동물이 아니라 관성의 동물이다. 목적 없이 그냥 하던 짓을 계속한다는 말이다."

- http://gujoron.com/xe/115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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