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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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을 찾아온 외력에 맞서기 위해 급하게 어딘가에 결합하는 건 무리이다. 왜냐하면 외력을 인지한 순간 할 수 있는 1차적인 추론은 이미 질도 아닌 입자로부터의 힘대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이미 자신이 우주와 결합되어있다는 진실을 깨닫는 수 뿐이다. 인간이 우주와 결합되어있으니 그 결합을 깸으로서 우주를 흔들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뇌는 이미 결합을 깨트려 써먹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구조론에서의 깨닫고 연역하라는 말은 연역을 약화시키는 즉 귀납적이지 말으며 연역을 강화시키라는 뜻이다. 연역을 강화시키라는 말은 깨트려 써먹을 수 있는 결합을 최대한 깊게 확보하라는 뜻이며 우주를 타자로 삼지말고 우주와 친해져 있으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일단 친해야지 이로부터 친함을 소모할 수 있다. 지식과 야만이 공존하더라도 만남이 성사되지 않는 이유는 둘이 각각 우주와 친한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식은 이미 진리를 매개삼아 결합해 있으므로 스치기만 하더라도 곧장 만남으로 이어진다. 사실 만남은 중첩의 해제가 촉발되는 조건이니 이미 확률적으로 담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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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상호작용 뿐이다.' 이와 같은 언어문구에 대해 인간이 사유하는 것 또한 뇌와 전기신호 간 상호작용이다. 뇌사를 당하더라도 나머지 신체는 상호작용을 한다. 인간이 아닌 생물이, 생물이 아닌 무생물이 무슨 일을 유발하든 혹은 자연에서 무슨무슨 현상이 저절로 일어나든 죄다 오로지 어떠어떠한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이라는 우주의 연출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전제는 우주는 온통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추론이 전제의 전제의 전제•••로 넘어가지 못하게 통제권을 쥐어야 한다. 이는 주체적인 자세이다. 방향은 양 측 사이의 관계이니 관계를 중심으로 주체와 대상으로 구성된다. 방향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면 '~ ㅡ ~' 이니 한국어로는 '~ 와 ~' 이다. 

그 어떠한 관계를 공유하더라도 둘이 완전하게 동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 는 -> ~' 이 아니라 '~ 와 ㅡ ~' 인 이유는 인간의 사유로는 주어진 2만 가지고는 가운데 관계를 기준으로 양 측 간 서열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방향은 어떠한 조건에서 겹쳐질 수 있으니 중첩은 깊은 관계라 하겠다. 조형적으로 표현하면 '~ ㅡ ~' 와 '~ ㅡ ~' 이 겹쳐지니 
~        ~

     X       로 표현할 수 있다. 콱 맞았으면 이번엔 내가 같은 방식으로 누굴 아니 때려줄 수가 없다. 방식에 해당하는 '겹침이 풀리는 과정'을 추론해야 할 일이다.
~        ~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방향ㅡ>이란 바로 이것이 풀렸을 때 튀어져나오는 정보로부터 추론한 '힘'이다. 즉 처음엔 자연의 '~ ㅡ ~' 상태는 우리가 지닌 '~ ㅡ ~'와 만나는 즉 겹치게 된다. 겹침이 풀리면 우리에게 량에 해당하는 정보가 주어진다. 정보의 내용은 '정보를 받았단 사실'이니 우리는 이로부터 1차적으로 '사실을 돌이킬 수 없음'이라는 방향성 곧 하부구조인 '힘'을 추론한다. 

하지만 정확히 연역하자면 'X'가 풀리기 이전에  2'ㅡ' 와 2'ㅡ' 가 우선 1'겹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므로 X는 5이며 2차적으로 상부구조인 '질'까지 추론해야 비로소 멈출 수 있다. 우리는 2만 가지고는 2를 세지 못한다. 우리의 (2)와 자연의 (2)가 (1)겹쳐진 (2)+(1)+(2) 로부터 인식하지 못하는 와중에, 비유하자면 다섯손가락에서 괄호에 해당하는 세 덩이를 게 눈 감추듯 접고보니(질입자힘) 2(운동)가 남는 것이다.

즉 보통 말하는 관계에는 그 관계를 낳은 두겹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를 구분하려면 우리가 인식한 량으로부터 1차적으로 추론하는 하부구조의 '힘'을 방향'성'이라 표현하고 2차적으로 더 깊게 추론한 상부구조의 '질'을 '방향의 겹침'이라 표현할 수 있다. 방향의 겹침으로부터 방향성이 나오는 것이며 우리가 사유한다는 건 자연과의 깊은관계로부터 얕은관계로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한 싸이클을 완전하게 맺고 끊으려면 출발선을 5까지로만 설정해야 전제의 전제로 날라가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의 방향성을 말하려면 그전에 두 방향의 꼬임을 말해야하는데 그러면 또 그 두 방향을 각각 낳은 방향의 꼬임들까지 말해야 하느냐? 그러한 끝나지 않을 등산은 안 하겠다는 것이니 5 넘게 셀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방향이라는 하나의 전제로부터 방향의 겹침과 그의 풀림으로 인한 방향성까지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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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표현은 주체화 할것이냐 대상화 할것이냐의 문제이다. 다만 이 글을 읽기 전부터 우리의 뇌는 겹침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뇌 스스로 뇌조직을 붕괴시키진 않는다. 당이라는 에너지결합이 뇌에 조달되고 인이 뚝 끊어지면서 나오는 관계가 뇌가 가진 관계에 겹쳐지는 것이다.

뇌가 이미 겹침을 풀어내는 데에 익숙하므로 우리가 대상'화'나 주체'화'에 대해 고민할 수는 있더라도 '화'에 대해서는 머리가 뜨거워지게 의심하지 않는다. '화'는 X의 해체이니 해체과정의 조형적 표현은 '주체->대상' 이다. '화'는 사실 '(주체)화(대상)'을 줄인 표현인 것이다. 주체화라는 말은 '주체->'에 주목한다는 뜻이며 대상화라는 말은 '->대상'에 주목한다는 뜻이다. 

즉 대상은 사실 (주체로부터의)대상 인 것이다. 선주체화 후대상화가 진실이므로 대상화하는 사람은 뇌에서 '~화~'가 이루어진 사실을 까먹은 것 뿐이다. 자극이라는 것도 신체와 외부의 겹침이 풀림으로서 얻어지는 정보이다. 생물은 자연에 있는 '방향의 겹침'을 조달해 써먹는 거다. 

겹침을 더 잘 조달하는 구조가 자연으로부터 유한한 겹침을 보다 잘 확보하니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생태계는 진화한다. 생명의 최초인 아미노산이 세력을 확장한 이유는 무생물보다 겹침을 더 잘 조달했기 때문이라 추론할 수 있다. 아미노산을 낳은 지구가 생성되기 한참 전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우주에서 항성이 세력을 확장한 이유는 가스군에 비해 관계의 겹침을 잘 조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뇌의 기억이라는 것도 생성된 뉴런의 겹침구조가 신규로 흘러들어오는 에너지를 잘 잡아먹어서 살아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주는 내부적으로 생성된 깊은 관계를 부려먹어서 낮은 관계로 떨구는 식으로 숨쉬어 왔으므로 우주의 출발은 깊은(빅) 겹침으로부터의 풀림(뱅)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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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부터 하늘을 향해 벽돌이 일렬로 착착 쌓여있고 그 위에 맹인이 올라서 있다고 치자. 맹인의 이름은 우주이다. 우주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조급해한 우주들은 이미 진작에 삐끗해서 낙사해버렸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말까? 정지해있는 건 죽은 것이니 비존재이다. 

조로할 수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다면 남는 건 스스로 관측하는 것 뿐이다.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관측을 하는 거다. 관측을 하는데에 필요한 대상은 벽돌이다. 관측의 내용은 과연 벽돌 위에 내가 올라서있는가 이다. 수단은 벽돌을 하나씩 빼냄이다. 벽돌을 하나 빼낼 때 마다 높이가 셈해지니 실로 내가 벽돌 위에 올라서 있었음이 증명된다.

셈을 듣는 이 역시 자신이다. 한번 관측에 성공한 맹인은 떨어져 죽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관측을 멈추지도 않는다. 다만 더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같은 형식을 계속해나간다. 벽돌을 하나씩 치워감에 따라 정보를 얻었으니 빼낸 벽돌은 이제 쓸모가 없다. 고로 밖에다 휙 던져버린다. 통제가능성의 상실은 주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통제필요성의 소실일 수 있다. 이미 정보를 얻었으니까.

이 말은 비유이니 우주가 마치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대상의 입장은 항상 뭔가를 빼앗기는 대신 정보를 전달받지만 주체의 입장은 사건을 물려달라고 떼쓰지 않는다. 다만 우주는 스스로 소모되고 작아지는 와중에 묵묵히 정보를 실어나갈 뿐이다. 그렇다. 굳이 목적을 대자면 벽돌을 하나씩 치워서 한단위만큼 지면에 가까워지게 된 스스로에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배달하는 것이 의미이다.

내가 벽돌을 통제할 수 있으니 벽돌은 타자가 아니므로 우주는 제 몸을 깎아가며 관측 중인 셈이다. 제 몸이므로 벽돌과 맹인을 퉁쳐서 (균일)계이다. 맹인이 관측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벽돌과 타자가 되니 불균일이 도출된다. 벽돌을 집는 손이 외력이니 주체이며 깎여나가는 벽돌탑이 내부이니 대상이다. 정보를 얻음으로서 통제필요성이 소실된 벽돌은 밖으로 던져지니 고립계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보통 사람이 흔히 말하는 짝퉁신은 이렇듯 우주가 내어버린 부스러기이므로 쌩까도 된다. 진퉁신은 벽돌 중 최상단의 대표자는 언제라도 자신을 깎아낼 수 있음 그 자체이다. 벽돌을 버릴 때마다 추가로 버릴 수 있는 벽돌이 줄어드니 사건은 내부로 진행하는 것이며 공간을 소모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렇듯 공간이란 벽돌이라는 비유만큼이나 추상적으로 도출된 개념에 불과하다. 사건에서 가장 챙겨야 할 건 통제가능성의 소모이다. 또한 벽돌빼기를 이어나간다는 말이 마냥 연속성을 뜻하는 아니다. 다음 벽돌을 뺄 때까지의 정지상태는 뭐라도 쳐주지 않겠다는 식이다. 지구와 태양이 운동대칭 중이지만 사실 운동대칭의 정보가 량대칭으로 배달준비 중인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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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사회적 행동은 사회가 스스로를 흔드는 것이며 그러므로 사회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까지 멈출 수 없다는 관성의 사정이 있다. 사회의 입장에서 '스스로 흔들어 보았는데 과연 흔들렸으므로 그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는 식이다. 사회가 스스로를 흔들 때 사회적 타격과 사회는 순간적으로 타자가 되니 외력과 내부이다.

사회가 스스로를 외부와 내부로 나누어 방향이 실린 외력으로 인해 내부가 밀린다는 확실한 정보를 얻는 시점에서 한사이클 짜리 사건은 온전히 종결된다. 캄캄한 와중에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야하는데 곁가지를 잡고 흔들 때마다 뚝 부러져니 점차 나무의 내부 즉 중심인 줄기를 찾게되는 진보가 이루어진다. 한 단위의 정보를 온전히 얻으려면 최소한의 과정이 필요하다. 

나뭇가지를 잡고, 손과의 중심에 축을 세우고, 힘을 주어서 구부리고, 흔들리는 가지가 줄기마냥 튼튼할수록 반대로 내 몸이 움직이고, 최종적으로 내 몸무게를 버텨준다는 계량값이 나와줘야 하니 5단계이다. 구조론이 5단계인 이유는 방향전환을 하려면 5단계의 정보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풀어내야할 중첩은 세부적으로는 5겹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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