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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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10 vote 0 2019.10.11 (16:44:29)

     

    인간은 배신하는 동물이다. 한국인들은 그나마 양반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이든 모든 역사는 배신의 기록이다.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견제장치를 도입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중국의 환관은 거세당해 있다. 배신하지 못하도록 핵심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십상시의 난에서 보듯이 그들은 보기 좋게 배신했다.


    춘추시대의 재상들은 여성을 임신 시켜 황제에게 바치는 꼼수를 썼다. 뻐꾸기의 탁란과 같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배신당했다. 여불위가 죽은 데는 이유가 있다. 춘추시대에 그런 일이 다수 있었고 그런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고 그래서 진시황이 친아버지로 소문이 난 여불위를 죽인 것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오스만 제국은 예니체리가 유명하다. 기독교도의 자식을 세금 대신으로 받아 군대를 만들었으니 운명적으로 배신당했다. 그들은 가족도 없고 부모도 없으므로 임금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다. 의지할 데가 없다. 그러나 보기 좋게 배신했다. 예니체리들이 멋대로 왕을 임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금 역시 뒤통수를 쳤다.


    마흐무트 2세에 의해 예니체리는 몰살되었다. 이집트라면 백인노예로 이루어진 맘루크다. 노예 출신이므로 독자세력을 형성하기 어렵다. 역시 배신했다. 맘루크왕조는 이집트를 250년간 지배했는데 평균 제위기간이 7년인 것을 보면 자기네들끼리 얼마나 열심히 배신했는지 알 수 있다. 왕이 된다는 것이 사망확정이다.


    배신 9단인 원로원이 민중파를 닥치는 대로 암살하자 독재관이 근위대를 만들어 목숨을 부지한 것이 로마제정의 시작이다. 근위대 역시 배신 9단이 되었다. 황제를 암살하고 새로 제위에 오를 황제 후보들에게 경매를 붙여 황제자리를 팔아먹을 정도였다. 소련은 농부 중에서 발탁되어 귀족의 공백을 메운 비드비젠치다.


    귀족을 제거하고 엘리트가 스스로 귀족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중국과 북한과 쿠바는 혁명원로들이 곧바로 국민을 배신하고 훈구귀족이 되었다. 막연히 사회주의를 떠드는 자는 많으나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나는 보지 못했다. 역사이래 인류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이때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봉건주의다. 계급을 정하고 역할을 나누면 된다. 봉건제의 장점도 있다. 영국과 일본과 독일의 발전에는 봉건제의 관습이 숨어 있다. 인도의 카스트도 마찬가지다. 봉건시대에는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현대와 맞지 않을 뿐이다. 노조 비슷한 역할을 하는 수백 개의 자티들이 정교하게 작동한다.


    단, 경쟁에 진다. 영국과 일본은 섬이라서 나쁜 관습이 일부 긍정적인 기여를 했고 인도 역시 히말라야로 격리되어 있다. 독일 역시 40여 개의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기에 지방자치를 하는 봉건적 관습이 발달해 있다. 인도에서 기업을 하려면 뭔가 복잡해진다. 수많은 자티들을 모두 설득해야 하는데 절차가 만만치 않다.


    지도자가 없으므로 이쪽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없고 주고받기식 거래를 하려고 해도 받을 주체가 없으며 주면 엉뚱한 넘이 먹튀를 한다. 준 사람은 있는데 받아 간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협상은 지연된다. 모든 의사결정은 난맥상에 빠져버린다. 그런 관습이 방어측의 입장으로 보면 좋은 방어무기가 된다.


    침략자를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다. 일본이 관습이라는 장벽으로 외국상품의 수입을 차단하는 것이 그렇다. 옷을 종이틀에 고정하는 핀이 위험하므로 한국산 의류의 수입을 허가할 수 없다는 식의 찌질한 딴지를 걸어 일본제품만 쓰게 만든다. 교묘하기가 학을 떼고 환멸을 느끼게 만든다. 인도라면 세포이의 항쟁이 그렇다. 


    화약을 담는 종이통에 돼지기름을 발랐다는 소문 때문에 항쟁이 일어났는데 돼지기름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영국인 교관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종이통을 손톱이나 칼로 찢으면 되는데 고지식한 교관이 어금니로 깨물어 찢어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그 소동이 난 것이다. 영국인이나 인도인이나 융통성이 없기는 막상막하다. 


    무슬림과 힌두교도 입장에서는 돼지기름이 입에 묻으면 안 된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 찌질한 딴지를 걸어 외국기업의 인도진출을 차단한다. 인도는 1950년대부터 자동차 생산국이었는데 50년간 모델이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봉건 관습이 변화의 장벽이 된다. 물론 타타가 등장한 지금은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도 같다. 


    평등한 다수의 합의를 주장하면서 그것을 진정한 진보를 방해하는데 써먹는다. 봉건제도 안에 일부 평등적 요소가 있고 그것을 악용하는 것이다. 진보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퇴행이다. 모두가 합의하자는 말은 절대 합의해주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대안이지만 작동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많이 쳐봤자 30여 개국에 불과하다. 200개 국가 중에 30여 개국이라면 사실상 실패다. 아사드가 큰소리를 쳐도 할 말이 없다. 에르도안이 폭주하고 푸틴이 박자를 넣고 시진핑이 추임새를 넣어도 할 말이 없다. 민주주의든 자본주의든 고작 15퍼센트 정도에나 먹히는 제도다. 사실 인류는 아직까지 해결책을 내지 못했다.


    AI가 날고 기는 시대에 인류는 여전히 낡은 봉건관습과 씨름하고 있다. 여전히 종교집단의 2500년 묵은 낡은 기술이 먹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류는 전혀 계몽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개량된 봉건제도에 불과하다. 봉건제도가 신분을 고착시켰다면 자본주의는 신분을 변화시킨다. 실제로 그게 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된다고 해도 잠시 되지 항상 되는가? 영국이나 북유럽을 봐도 신분은 당연히 세습된다. 한국 역시 신분고착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원래 이렇게 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퇴행은 자연스럽다. 민주주의가 약간의 숨통을 터주지만 암환자의 등에 연고를 바르는 정도에 불과하다. 막연히 평등을 외치는 자는 지금도 많다.


    그들은 진정성이 없다. 소련의 비드비젠치처럼 재빨리 터를 다지고 세습한다. 프랑스혁명부터 그랬다. 의원들은 재빨리 기득권으로 변신하여 이권을 챙겼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배신은 말할 것도 없다. 로마시민권의 독점을 폐지하고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나눠주자 로마는 몰락했다. 고려는 노예해방에 실패했다.


    광종의 개혁은 무위로 돌아가고 다시 계급제도로 돌아갔다. 조선은 양반이 있어야 했다. 계급이 없으면 국가의 유지가 안 된다.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아서 자본주의처럼 계급의 모순을 자체적으로 해소한다. 중국의 엘리트는 재빨리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찾아내고 군림할 수 있다. 한국은 바닥이 좁아서 안 되지만 말이다.


    자본주의도 혁신이 일어나지 않은 후진국은 사실상 봉건제와 같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와 중남미의 자본주의는 중세의 봉건제도와 정확히 같다. 말이 자본주의일 뿐 기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처럼 불만을 완화하는 장치로 기능할 뿐 실제로 모순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원래 그렇다.


    우주의 존재 자체가 모순적이다. 막연히 이상적인 제도를 고안했다고 떠드는 자들은 모드 비드비젠치의 이득을 꾀하는 엘리트 배신자에 불과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혁신세력이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겨야 한다. 외국을 이겨야 한다. 이기는 동안은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중국이라면 고도의 경제성장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원히 성장할까? 그럴 리가 없잖아. 또 한 가지 방법은 인간을 섞어놓는 것이다. 독일은 대학을 지방에 흩어놓았다. 누구든 다른 지방에서 공부하게 된다. 한국도 625 때 인간이 섞여서 그나마 모순이 완화된 것이다. 반드시 그런 장치가 있어야 한다.


    말로 평등을 가르쳐봤자 의미 없고 물리적으로 인간을 섞어놔야 한다. 막연히 평등을 부르짖는 것은 자기 평판을 높이겠다는 수작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통제가능성이다.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봉건제도가 등장한 것은 그 당시로는 그것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도구가 없을 때 인간을 도구로 쓴 것이 고대 노예제다. 철제도구가 등장하자 봉건제가 정착했다. 그 도구가 날마다 바뀌는 것이 근대 자본주의다. 세상은 원래 모순투성이다. 생물은 자라야 존재하고, 물은 흘러야 존재하고, 바람은 불어야 존재하고, 사회는 부단히 혁신해야 존재한다. 


    혁신해서 어떤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고 그걸로 끝난다는 식의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어떤 제도이든 초단위로 썩는다. 우리나라에 검사가 다수라고 하지만 핵심으로 가면 좁혀진다. 핵심의 핵심이 있다. 안쪽고리가 있다.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면 결국 서로 안면을 튼 한동네 출신 서너 명의 패거리가 장악한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 민주주의로 해도 역시 결과는 같다. 단, 민주주의는 정기적으로 권력자가 교체되므로 희망이 있지만 아베처럼 교활한 자는 자민당의 영구지배로 막아버린다. 민주주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데는 당해낼 수단이 없다. 봉건제도 안에서 모든 불만은 가장 낮은 곳으로 수렴되어 결국 약자가 희생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지만 작정하고 농간을 부리는 데는 당해낼 장사가 없다. 다수는 환상이다. 오로지 혁신이 있을 뿐이다. 혁신으로 안 되면 물리적으로 사람을 섞어버려야 한다. 서울출신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해야 한다. 남녀분반 폐지해야 한다. 바람은 분다. 물은 흐른다. 그러므로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


    흐른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긴장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받는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제도는 없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의 부단한 흐름이 있을 뿐이다. 해결책은 새로운 아기의 탄생이다. 사람을 섞어놓기다. 산업의 발전이다. 문화의 진보다. 이런 것이 증세를 조금씩 완화시켜 겨우 버티게 한다.


    만족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믿는 한 조용히 화석이 된다. 그리고 죽는다. 오늘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세계의 국가 중에 15퍼센트 정도만 기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수 엘리트와 지배집단이 만족한다. 만족하는 51이 불만에 찬 49를 이기되 상대방에게 희망을 줘서 다음 게임에 참여하도록 꼬시는 제도다. 


    그렇게 겨우 버티는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본래 모습이다. 인간은 모순을 등에 업고 불만을 입으로 먹고 희망이라는 게임에 참가하며 중독되어 살아가는 동물이다. 완전한 해결책은 절대로 없고 부단히 이겨가는 방안이 있을 뿐이다. 51이 만족하면 그럭저럭 유지가 된다. 그것이 통제가능성이다. 그 길로 가는 것이다.


    세상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사건은 이겨야 존재한다. 외력의 작용에 지면 죽고 이기면 전파된다. 통제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통제하는 방법으로 공격할 수 있고 반대로 통제를 막는 방법으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격은 힘을 모아야 하고 방어는 반대로 흩어져야 한다. 한곳에 몰려 있으면 몰살당한다. 


    흩어지기와 모이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것이 통제가능성이다. 북한은 몰려 있다가 죽고 일본은 흩어져 있다가 죽는다. 모일 때는 모이고 흩어질 때는 흩어져야 한다. 통제가능성 개념을 권위주의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베테랑 병사처럼 고지식한 간부의 말을 안 듣지만 실전에 들어가면 손발이 척척 맞아져야 한다.




[레벨:5]나나난나

2019.10.11 (17:56:51)

아배같은 영구지체재에서는 패배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계속 에너지를 고갈한채로 있을 수밖에 없는건가요?

내부에서는 답이 안나오는 케이스가 이런 경우인거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10.11 (18:00:35)

쿠바나 북한처럼 말라죽으면서도 계속 버티는 거지요.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다면 깨지겠지만.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10.12 (03:44:13)

"완전한 해결책은 절대로 없고 부단히 이겨가는 방안이 있을 뿐이다."

http://gujoron.com/xe/1131922

[레벨:10]하나로

2019.10.12 (10:39:29)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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