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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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42 vote 1 2019.10.10 (23:47:02)


    헷갈리는 이유


    질이 입자보다 낫다. 질은 엔진이고 입자는 변속기라면 당연히 엔진이 낫다. 먼저 엔진이 만들어지고 나중 변속기가 부착된다. 그러나 엔진만 있는 차보다 변속기가 달린 차가 낫다. 여기서 헷갈린다. 먼저 오는 게 더 좋은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것이 더 좋다. 좋다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중요하다는 말로 표현해야 한다.


    진보는 엔진에서, 변속기로, 바퀴로 계속 넘어가는 것이다. 갈수록 나빠진다. 뒤에 오는 것은 안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엔진만 있는 차보다 엔진에 변속기에 바퀴까지 달린 차가 낫다. 진보는 질에서 입자로 힘으로 운동으로 량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갈수록 안 좋은 것이 온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더 좋아져 있다. 더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뭐든 갈수록 나빠지지만 지금까지 온 것을 모두 합치면 좋아져 있다. 질이 입자보다 낫지만 질만 있는 것보다 입자까지 있는 게 좋다. 힘을 더하면 더욱 좋다. 그러나 뭔가 나빠져 있다. 관심이 질에서 입자로 힘으로 퇴행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지엽적인 것을 물고 늘어지게 된다. 본질을 놓치게 된다. 바탕을 잊어버리게 된다.


    엔진에 변속기에 바퀴를 추가할수록 좋지만 관심이 바퀴에 가 있으면 좋지 않다.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싸우게 된다. 지금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사소한 것이다. 100년 전이라면 나라의 독립이 중요하지 페미니즘이 중요한가 하고 코웃음 칠 것이다. 좋아질수록 관심은 지엽말단으로 흐르게 되니 퇴행이다. 


    좋아진다는 것은 동시에 나빠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통제권을 장악해야 한다. 통제되는 것은 진보이고 통제되지 않는 것은 보수다. 통제되는 부분과 통제되지 않는 부분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진보만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보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원리다.


    이끄는 기관차도 필요하고 따르는 객차도 필요하다. 그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균형은 오로지 진보의 조절로 가능하지 보수의 조절로 가능하지 않다. 보수는 원래 조절장치가 없다. 우리가 진보를 해야 하는 이유는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하며 둘 사이에 균형이 중요한데 그 균형은 진보로만 조달되기 때문이다.


    진보는 밖에서 해결하고 보수는 안에서 해결한다. 밖에서 들여오는 것은 조절된다. 일본차를 덜 수입하거나 더 수입할 수 있다. 안에서는 조절되지 않는다. 반드시 누군가 죽는다. 밖에는 빈 공간이 있지만 안은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기관차가 속도조절을 할 수는 있어도 객차는 속도조절이 불가능하다. 보수는 원래 브레이크가 없다.


   공자든 노자든 플라톤이든 아리스토텔레스든 동서고금의 철학자가 하는 소리는 결국 이것이다. 이 순서를 헷갈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선도 필요하고 악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중에서 선만을 추구해야 한다. 삶도 필요하고 죽음도 필요하지만 죽음은 추구할 이유가 없다. 삶은 적극 추구해야 한다. 죽음을 추구 안 해도 결국 죽는다.


    부는 추구해야 한다. 빈은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있으면 저절로 빈자가 되어 있다. 진보는 열심히 해도 중간 정도 가는 것이고 보수는 가만있어도 다른 사람의 진보에 의해 상대적으로 보수되어 있다. 민중의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것은 질이고 지도자를 밀어주는 것은 입자다. 우리는 질에 충실해야 한다. 입자는 저절로 생긴다.


    에너지가 있으면 반드시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다수가 한쪽으로 기울면 비어있는 반대편으로 가는 노무현이 나타난다. 부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온다. 먼저 에너지를 모아놓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의 에너지를 결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길이 있으면 차는 언젠가 온다. 차를 타고 간 다음에 길을 닦자는 식으로 수순이 바뀌면 안 된다.


    에너지는 결 따라간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닫힌계 안에서 돌아가는 내재적 질서를 찾아야 한다. 사건의 통제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통제하려는 공자가 먼저고 공자가 뜨면 그것을 견제하는 노자는 자연히 나타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공자의 길을 가야 한다. 노자의 무리는 거기에 빈대 붙는 자다. 차가 있으면 운전자는 나타난다.  


    산은 산과 비교해야 하고 물은 물과 비교해야 한다. 이 산이 높지 않은 이유는 저 산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 물이 깊지 않은 이유는 저 물이 더 깊기 때문이다. 내재적 질서는 그 안에 있다. 보통은 꽃은 좋고 잡초는 싫고 하며 외재적 질서를 말하게 된다. 그 경우 자신이 판단기준이 된다. 곧 자기소개다. 보통은 죽음이 싫다고 말한다.


    그렇게 느끼니까. 사건은 복제된다. 복제본이 지워지는 것이 죽음이다. 원본이 살아있으면 그만이다. 인류가 살아있는데, 사건이 살아있는데, 불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데 복제본이 지워진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삶은 주목되어야 하나 죽음은 주목할 이유가 없다. 나는 이게 좋더라. 저게 싫더라 하는 것은 철학이 아닌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10.11 (03:10:47)

"민중의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것은 질이고 지도자를 밀어주는 것은 입자다. 우리는 질에 충실해야 한다."

http://gujoron.com/xe/113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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